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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축구로 인생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조기축구에 미치지 않고서야 지금까지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좋다우~. 좋으니깐 내 나이 74살에도 그라운드를 뛰는 게 아니겠소."

74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여전히 조기축구를 즐기고 있는 최수철씨.
▲ 축구를 사랑하는 남자 74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여전히 조기축구를 즐기고 있는 최수철씨.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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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끗한 머리와 상관없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축구를 이야기하는 최수철(군산시 수송동, 74)씨. 그는 '군산조기축구계의 산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5년부터 무려 47년간 조기축구를 했다. 아니 하고 있다. 그것도 한 팀에서만 47년째다.

"1965년 3월 이름 하여 노동축구단이라는 팀을 창단했어요. 내가 그때 창단멤버라우~. 44년 동안 노동축구단으로 활동했고, 3년 전 팀명을 천지축구단으로 개명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팀명만 바꿨지 나는 그대로 있는 거예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와 함께 뛰던 창단멤버들은 모두 돌아가시고 없어요. 내가 유일한 현역멤버인 게지…. 지금은 아들뻘 되는 회원들과 함께 공을 차고 있어요. 축구란 게 나이 많다고 봐주고 그러면 재미없어요. 한창 때보다 기력이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운동하고 있어요."

믿기지 않지만 20대 후반부터 70대 중반까지 거의 매일같이 축구를 했다는 최씨. 그런데 그 많은 운동 중 왜 유독 축구였을까. 그는 축구의 매력을 동료애 그리고 팀워크로 봤다. 그리고 가장 사람 냄새 나는 운동을 축구라 말했다. 서로 부대껴 운동을 하고 함께 어울려 마시는 술 한 잔이 삶의 고단함을 내려놓을 정도로 달달했다고. 어쩌면 운동보다 사람만나는 재미가 그를 축구인생으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하지만 축구에 미친(?) 세월. 누군가의 희생은 뒤따랐다. 그는 자진 고백했다.

"지금도 안식구한테 미안하죠. 아침에 출근한다고 나가서 트렁크에 실어 논 운동복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간적이 셀 수 없이 많으니깐요. 또 축구하면서 다친 곳도 한두 군데가 아니니 안식구 가슴이 시커멓게 탔을 거예요. 안식구의 내조 덕분에 제가 지금도 축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제는 아내 걱정 줄여주고자 즐겨먹던 술도 끊고, 순전히 '건강'을 위해 축구를 한다는 수철씨. 그는 현재 군산시 통합축구협회 고문으로 있다. 2002년 축구연합회 회장직까지 맡은 그는 그야말로 군산조기축구계의 산 역사이자 증인으로 지금도 거뜬히 '현역선수'임을 자랑한다.

"어느 누구한테도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어요. 제 건강비결은 축구라고. 우스갯소리지만 어디 가서 내 나이 얘기하면 깜짝 놀란답니다. 다들 70줄로 안 봐요. 허허. 아마 정년퇴직하고, 나이 먹었다고 축구 그만뒀으면 지금쯤 내 나이보다 더 팍삭 늙었을 거예요. 젊은 시절엔 좋은 사람 많이 만나게 해주고, 지금은 건강 지켜주고 나에겐 축구란 놈이 참 고마워요."

적어도 군산에선 '축구하면 최수철, 최수철하면 축구'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축구사랑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 그는 또 한 가지 빼놓은 수 없는 인생사전이 있다고 한다. 바로 군산 시내버스란다. 이곳도 한 직장에만 45년간 근무하고 59세 나이에 정년퇴직했다. 동료들 사이에서 '축구하는 버스기사'로 유명했다는 그는 한 가지 자랑할 게 있다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놨다.

"60년대 후반 무렵이었을 거예요. 회사를 그만둔 한 선배기사를 1년 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정말 못 알아볼 정도로 늙어버렸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어요. '운전하는 사람은 운동을 꼭 해야 한다'고 말이죠. 그래서 시내버스 축구팀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전라북도 곳곳을 다니며 전북시내버스연합회 팀을 조성하는데 갖은 노력을 다 했던 것 같아요. 그때 당시는 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단체를 설립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라 더 힘들었죠. 아마 지금 하라면 도저히 못했을 거예요. 내 동료와 선후배들을 운동하게 이끌었던 것, 그게 내 평생의 보람으로 남네요."

아직도 지나가는 버스를 보면 45년 추억이 스친다는 수철씨. 그저 후배기사들이 안전하게 하루운전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항상 응원한다는 그는 버스기사로서의 자부심을 잊지 않고 있었다.

지난 6일 새벽 6시, 운동장에 모인 축구 동호인들이 최수철씨를 응원하며 단체촬영에 임했다.
▲ 축구동호인들과 함께 지난 6일 새벽 6시, 운동장에 모인 축구 동호인들이 최수철씨를 응원하며 단체촬영에 임했다.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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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오늘도 어김없이 그라운드를 달리는 최씨. 그는 말한다. "혼자라면 47년이란 긴 세월 축구만 하지 않았을 거라고. 함께하는 이가 있었기에 가능한 47년이었다"고. 오늘도 거뜬히 노장의 패기를 보여주는 그의 슛이 새벽을 가르며 골문을 연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서해타임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최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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