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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워킹 투어가 끝나자 마음이 급해졌다. 옥스퍼드 여행의 꽃인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Christ Church College)의 입장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옥스퍼드의 수많은 대학과 유명 가게들이 눈을 스쳤지만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를 향해 직진했다.

한국 여행자에게 이 대학이 유명해진 것은 영화 <해리포터>(Harry Potter)의 영향도 크지만 원래 이 대학은 옥스퍼드에서 오랜 역사와 최고의 명성, 그리고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다. 1525년 설립 이래 이 대학에서 영국 수상만 해도 13명이 배출됐다고 하니 그 학문적 명성을 짐작할 수 있는 곳이다.

파스텔 톤의 정원이 화려하다.
▲ 워 메모리얼 정원 파스텔 톤의 정원이 화려하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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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 변에 있는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의 관광객용 입구를 발견하고 대학 안으로 들어섰다. 대학 구내로 접어들자 크라이스트처치의 웅장한 석조 건물을 뒤로 하고 수많은 꽃이 피어 있다. 마치 파스텔화를 보는 듯 화려하면서도 튀지 않는 색상의 꽃들에 아내는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나는 입장시간 마감의 절박감 속에서도 꽃밭 앞에서 꽃을 감상하며 사진을 찍었다.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 입장이 가능한 시각은 오후 4시 30분. 빠르게 걷던 나는 가족들을 뒤에 뒤고 뛰기 시작했다. 나는 출근시간 지하철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여러 사람을 제치며 뛰던 실력으로 열심히 뛰었다. 이 대학의 관광객용 입구를 지키던 할아버지 관리인이 막 입장종료 팻말을 땅에 놓기 시작하려는 찰나였다.

출근길도 아닌데 엄청 뛰었습니다

입장 마감 시간 전에 겨우 들어갔다.
▲ 크라이스트처치 입장하기 입장 마감 시간 전에 겨우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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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야말로 큰일이라도 일어난 듯이 열심히 뛰었다. 나는 그 팻말이 땅바닥에 놓이기 바로 1초 전에 입장객들이 대기하고 있는 줄 안으로 들어섰다. 마치 갑자기 브레이크 걸린 차가 멈춰 서듯이 멈춰선 나는 몸이 기우뚱하면서 넘어질 뻔했다. 뒤에서 보던 아내와 신영이가 크게 웃고, 할아버지 관리인도 뭐라 말하며 웃는다.

영화 <해리포터>의 광팬인 신영이가 이 대학의 '다이닝 홀(Dining Hall)'을 보게 됐다는 마음에 너무 뿌듯해 했다. 너무 아슬아슬했다는 안도감은 우리 바로 뒤에 따라오던 인도인 모녀를 보면서 확인됐다. 인도인 모녀는 입장을 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애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입장객을 관리하는 할아버지는 냉정하게 안 된다고 거절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대충 입장 라인에 서게 하고 입장을 허락해줬을 것 같은데 정말 강한 문화적 차이가 느껴진다. 뒤에서 관광객 게이트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인도인 모녀가 처량해 보이기도.

연한 베이지 색의 석조건물들은 영화 <해리포터>의 영향 때문인지 마치 성처럼 느껴진다. 건물 벽면의 인물상들도 마치 마법으로 만든 듯 정교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우리는 비싼 입장료를 내고 영화 <해리포터> 속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우리는 벽과 바닥에 연륜이 쌓여 반질반질한 회랑과 안뜰을 지나 대학 안으로 들어섰다.

학교를 지키던 성실한 문지기를 기리고 있다.
▲ 윌리엄 파운드 기념석 학교를 지키던 성실한 문지기를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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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을 걷다보니 벽면에는 다양한 석제 기념석들이 걸려 있다. 나는 발을 멈추고 그중 한 기념석의 짧은 문장을 한번 읽어봤다. 그 기념석의 내용은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전혀 예상 밖의 내용이다. 이 대학의 문지기였던 '윌리암 파운드'(William Pound)가 오랜 세월 동안 그가 맡은 구역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았기에 이를 기념해 모뉴먼트를 새긴다고 적혀 있다.

이 학교는 노벨상 수상자나 대학자도 아닌 정직한 문지기를 위해 기꺼이 아름다운 회랑에 기념석을 세우는 학교였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인정하고 그 이름을 기꺼이 새겨주는 모습에서 명문 학교의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 앞에 다가온 호그와트 마법학교

영화 헤리포터의 학생들이 계단을 뛰어다니는 것 같다.
▲ 다이닝 홀 계단 영화 헤리포터의 학생들이 계단을 뛰어다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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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호그와트 마법학교'가 우리 앞에 다가섰다. 영화 <해리포터>에서 다이닝 홀에 가려던 학생들이 숱하게 지나가던 계단이다. 내 옆에는 <해리포터>의 열렬한 추종자인 신영이가 신이 나 이 계단이 나왔던 영화의 장면과 주인공들이 내뱉었던 대사를 설명하고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몰입하면 영화의 세세한 장면까지도 머리 속에 암기되는 모양이다. 영화적 상상력은 현실 세계의 촬영지를 더욱 풍성한 이미지로 다가서게 하고 있었다. 영화 속의 마법학교 학생들이 떠들며 이 계단을 뛰어올라갈 것만 같다.

영화 속에서는 다이닝 홀(Dining Hall) 입구에 수많은 마법학교 규칙이 붙어 있는데, 실제로는 대학 인사들의 초상화들이 걸려 있다. 다이닝 홀로 가는 길의 독특하고 화려한 천장을 보면서 다이닝 홀에 들어섰다. 영화 <해리포터>에서 해리포터와 친구들이 식사를 하던 곳이라 전혀 낯설지 않다. 영화에서처럼 식당 안에 올빼미가 날아다니고 촛불이 둥둥 떠다닐 것만 같다. 덤블도어 교수의 식사 시작 신호에 맞춰 맛있는 음식들이 짠하고 나타날 것만 같다.

헤리포터의 마법학교 식당으로 촬영된 곳이다.
▲ 다이닝 홀 헤리포터의 마법학교 식당으로 촬영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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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다이닝 홀과 이 식당이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보다 이곳 식당의 크기가 조금 작다는 점. 영화는 컴퓨터 그래픽의 힘을 이용해 식당을 길게 잡아 늘였기 때문이다. 식탁 위에는 접시와 함께 노란 꽃이 소담스럽게 놓여 있다.

현재 다이닝 홀은 방학기간을 제외하고는 학생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영화에서처럼 교수들이 식사하는 곳이 학생들이 식사하는 식탁보다 더 높은 단 위에 있다. 어둠 속 수많은 노란 백열등이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짙은 갈색의 오래된 목제 식탁과 함께 크라이스트처치를 뜻하는 'ch'가 새겨진 흰 접시에서도 진한 전통이 느껴진다.

가운데 왕관 무늬의 문장이 크라이스트처치 대학 문장이다.
▲ 크라이스트처치 대학 문장 가운데 왕관 무늬의 문장이 크라이스트처치 대학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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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닿았을 때 다이닝 홀에는 영화에서처럼 수많은 학생들이 있진 않았다. 실내는 차분하기만 하다. 다이닝 홀 벽면에 걸린 이 대학 출신 교수와 학자들의 초상화들만이 이곳의 오래된 역사를 설명해주고 있다. 이곳에서 실제 공부하는 학생들은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선배들의 초상화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미래를 향한 꿈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이 다이닝 홀은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도 사용되는 식당이기에 더욱 강한 매력이 느껴진다.

이 다이닝 홀에는 <해리포터>만 있는 게 아니다. 이 대학 수학과 교수였던 '루이스 캐럴(Lewis Carrol)'이 만들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앨리스'가 조각돼 있다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식당 안에서 열심히 찾아봤지만, 스테인드글라스가 너무 많아서 한 번에 찾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영국인 단체 여행객들을 인솔하는 한 가이드가 스테인드글라스 한쪽 창을 가리키면서 앨리스를 설명하고 있었다. 신영이도 앨리스를 찾았다며 그 창을 가리키고 있었다.

왕관 왼편의 소녀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다.
▲ 앨리스 스테인드글라스 왕관 왼편의 소녀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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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는 '헨리 8세(Henry VIII)'를 기념하는 'HR'이 새겨진 창의 바로 왼쪽 창에 남아 있다. 루이스 캐럴은 당시 '앨리스 리델(Alice Liddell)'이라는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당시 어린 소녀들의 유별난 순수함과 상상력을 소재로 해 '앨리스'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는 바로 이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동화를 썼고, 동화에 나오는 다른 여러 캐릭터들도 당시 이 크라이스트처치 대학에서 근무하던 동료 교수를 소재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유명 문학작품의 캐릭터를 성스러운 분위기가 넘치는 스테인드글라스에 남겨 놓은 사람들의 여유가 놀랍기만 하다.

오후 9시 5분, 종이 101회나 울리는 이유는?

중간 안뜰의 강당, 도서관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 톰 쿼드 중간 안뜰의 강당, 도서관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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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닝 홀 밖으로 나서니 '톰 쿼드(Tom Quad)'를 배경으로 한 푸른 하늘에 밝은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톰 쿼드는 다른 옥스퍼드의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중간의 'ㅁ'자 넓은 안뜰이  강당·예배당·도서관에 둘러싸여 있다.

타워 안의 종은 매일 101 회의 종을 울린다.
▲ 톰 타워 타워 안의 종은 매일 101 회의 종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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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쿼드의 4각형 건물 중 대로변에 세워진 출입구 '톰 타워(Tom Tower)'는 역사적인 건축물이 뿜어내는 위엄을 가지고 있다. 이 타워에서는 7톤이나 되는 종을 매일 오후 9시 5분에 101회나 울리는데 이는 크라이스트처치 대학의 창립 당시 학생 수가 101명이었기 때문이란다. 오랜 건물에 세워진 이런 전통은 여행자들에게 이 대학이 오랜 세월 동안 갈고 닦은 지성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 대성당(Christ Church Cathedral)'은 영국 내서도 가장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성당이다. 성당 입구의 관리인이 한글로 된 성당 안내도를 나눠주는 것을 보니 한국인이 이 성당을 참 많이 찾는 모양이다. 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화려하면서도 밝다. 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딱딱함을 버리고 밝고 부드러운 시대로 들어섰음을 보여주고 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다.
▲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가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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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크라이스트처치 대학의 출구를 통해 옥스퍼드의 골목길로 나왔다. 골목길의 크지 않은 서점과 옷집·잡화점·식당들이 우리의 발길을 이끌고 있었다. 런던으로 돌아갈 버스 시각을 여유있게 예약한 나는 옥스퍼드의 거리를 더 걷기로 했다. 우리는 셔터를 내리는 초콜릿 가게에서 초콜릿을 싸게 산 뒤 시장에서 꽃들을 구경했다. 북반구의 짧은 해가 점점 지평선 위로 넘어가고 있다. 석양을 받은 가게의 유니온 잭이 펄럭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태그:#영국여행,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 #다이닝 홀, #톰 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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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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