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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응원가 <대학생 되어> 부일외고 수능응원가 <대학생 되어>
ⓒ 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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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11월 8일)이 이틀 뒤로 성큼 다가왔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부일외국어고등학교(부일외고) 학생 대부분은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아침부터 밤까지 교실에서 수능 마무리 공부에 여념이 없습니다. 3년 동안 고생한 노력과 성과를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평가받는 냉혹한 입시를 앞두고 아이들의 긴장감은 예년과 다름없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평소 쾌활하고 명랑하던 아이, 틈만 나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 녀석들도 밤에 기숙사 방에서 고단한 몸을 눕힐 때를 제외하고는 EBS 수능 교재와 오답노트, 모의고사 문제지에서 눈을 떼지 않습니다. 부모님들께서 학급 인원수만큼 보내주신 간식에 환호성을 지르며 왁자지껄하던 아이들이 요즘은 피자나 치킨 같이 평소 좋아하던 먹거리가 교실에 도착해도 조용히 먹고 다시 공부에 몰두하곤 합니다.

해마다 이 무렵이 되면 학벌주의와 대학 서열화가 공고한 사회에서 수능에 압박감을 느끼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올해 담임을 맡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입시학원에서, 혹은 도서관이나 독서실에서 재수를 하고 있는 졸업생 제자들도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지금 이 시기 담임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수능 당일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학습과 생활·건강 관리 등에 대한 몇 가지 조언을 해주는 것, 그리고 시간을 함께 보내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게 고작입니다. 흔히 수험생을 격려하는 응원 문구로 '수능 대박'이라는 표현을 씁니다만, 학부모·교사·선후배 할 것 없이 응원하는 이들의 마음은 비슷할 겁니다. 아이들이 긴장감 때문에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시험을 망치는 일 없이 제 실력껏 문제를 풀고 노력한 만큼 점수를 받기 바라는 소박한 기대를 해봅니다.

수능응원 UCC를 만드는 이유

부일외고 수능응원가 <대학생 되어> 중 한 장면
 부일외고 수능응원가 <대학생 되어> 중 한 장면
ⓒ 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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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수능 다음날 교실에서 펑펑 우는 아이를 보고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온화하고 사려 깊은 성품으로 친구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던 그 학생은 책임감이 강했던 아이였습니다. 간호학과를 나와 환자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던 아이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고사장에서 너무 떨어 시험을 망치고 말았답니다. 무슨 말로 아이를 달래줘야 할지 몰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아이가 먼저 말을 건네더군요.

"선생님, 모의수능시험보다 성적이 너무 떨어졌습니다. 시험 망쳐서 죄송합니다."

오랜 노력이 점수에 반영되지 못해 괴로운 건 자신일 텐데 부모님과 담임 선생에게 미안해하는 그 아이를 보니 안쓰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다음 해부터 저는 그날의 울컥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수능 전날 학교 강당의 응원 행사에서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능응원 UCC'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이 수험표를 받고 시험을 치를 고사장으로 떠나기 전 한번 크게 웃고 긴장감을 떨치게 해주려는 시도입니다.

지난 2010년에 만든 곡은 가수 윤종신씨의 <본능적으로>를 개사한 <직감적으로>였습니다. 지난해에는 힙합 그룹 리쌍의 <그랜드 파이널>을 패러디해 <그랜드 CSAT>라는 곡을 만들었습니다. 첫해에는 후배 교사 한 명과 의기투합해 만들었지만, 지난해에는 3학년 담임교사 모두가 UCC 영상 제작에 동참해 더욱 의미가 깊었습니다.
 
수능 응원곡이 TV와 라디오·신문과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전파되면서 우리 학교 학생뿐 아니라 많은 수험생들이 따뜻한 사제의 정과 사랑을 느꼈다는 반응을 보내줘 기쁘고 보람찼습니다. 또한, 학창 시절의 기억이 아련한 누리꾼들이 SNS나 인터넷 댓글로 학력고사 혹은 수능 시험을 본 추억을 떠올리며 공감해 주기도 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과분한 반응이었습니다.

올해의 수능응원곡 <대학생 되어>

수능응원곡 <대학생 되어>를 녹음하는 중
▲ 부일외고 3학년 담임들 수능응원곡 <대학생 되어>를 녹음하는 중
ⓒ 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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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슈퍼스타 K>라는 오디션 프로에서 로이 킴과 정준영의 협연으로 화제가 된 <먼지가 되어>를 응원곡으로 패러디해봤습니다. 도입부는 KBS 개그콘서트의 '어르신'이라는 코너 속 왕할아버지의 코믹한 대사로 시작됩니다. 아마 수능을 앞두고 얼굴이 굳어 있던 아이들은 3학년 5반 담임 정봉주 선생님의 익살스러운 대사에 '빵' 터질 걸로 예상됩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3학년 7반 담임 백동호 선생님의 '기 불어넣기' 시연도 개그콘서트의 개그맨들 못지않은 웃음을 선물할 겁니다.
  
음치라며 손사래를 치던 몇 분 선생님을 포함해 부일외고 3학년 담임 여덟 명이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학생들이 교내 외국어 말하기 대회 행사 때문에 강당에 간 틈을 타 재빨리 교사 휴게실에 모여 녹음을 진행했습니다. 노트북과 연결한 마이크를 공중에 매달아두고 여덟 교사가 빙 둘러선 채 노래했지만, 로이킴과 정준영 이상으로 열과 성을 다해 노래했다고 자부합니다.

영상은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뒤 노트북으로 편집했습니다. 영상 세대인 수험생들의 눈높이와 취향에 맞는 재치있고 재미있는 영상이 될 수 있게 부일외고 2학년 학생 몇 명이 큰 도움을 줬습니다. 졸업생 제자가 촬영한 응원 사진에 출연해 준 <무한도전>의 정준하씨, <슈퍼스타 K>의 사회자 김성주씨도 감사드립니다.

노래와 녹음, 촬영과 편집 전 과정이 급하게 진행됐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만드는 뮤직비디오와는 감히 견줄 수 없지만, 어설픔 뒤에 있는 소박하고 애정이 어린 마음이 잘 전달되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고3과 재수생들, 자신감·대범함 챙기세요

부일외고 수능응원가 <대학생 되어> 중 한 장면
 부일외고 수능응원가 <대학생 되어> 중 한 장면
ⓒ 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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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여러분, 특히 내성적인 성격이라면 마치 세상 앞에 홀로 선 듯한 불안감, 고독감이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막상 시험이 시작되면 태풍의 눈 안이 고요한 것처럼 의외로 차분하게 집중될 테니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긍정적으로 마음을 제어해 자신감 있고 의연하게 고사장으로 향하세요. 몇 문제라도 더 맞춰야 한다는 부담감 대신 실수를 최대한 줄이면 족하다는 마음, 내게 어려운 문제는 남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어렵다는 대범함을 가지세요.

스무 살에 여러분이 어느 대학에 입학하느냐보다는 서른 살에 무슨 일을 하며 사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서른 살에 하는 일의 종류보다는 마흔 살에 자기 삶과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내적 만족감과 보람을 느끼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최선을 다해 집중력 있게 시험을 치르되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님을 또한 기억합시다. 담담하고 의연한 마음으로 시험을 치르고, 새롭게 다가오는 20대를 맞이하기 바랍니다. 수험생이란 이름으로 지나치게 단조롭고 고단한 시간을 보내온 그대들, 수고 많았습니다. 성적은 1등급과 9등급이 있지만, 한 인간으로서 그대들의 가치와 앞날의 길은 그렇지 않다는 걸 교사가 아닌 인생 선배의 권위에 기대어 강조하고 싶습니다.


태그:#수능, #부일외고, #수능응원, #먼지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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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분야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였고,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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