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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에도 감빛깔을 닮은 고운 단풍이 들었다.
▲ 감나무 단풍 감나무에도 감빛깔을 닮은 고운 단풍이 들었다.
ⓒ 국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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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섭게 몰아닥치는 찬바람을 맞으니 비로소 10월이 가고 11월이 왔다는 게 실감난다. 무덥던 여름을 보낸 것도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가을도 그 여운을 오래 끌지 못하고 절정에서 뚝 떨어져 자신의 야윈 등을 겨울에게 떠밀고 있다. 유독 길고 냉혹한 겨울이 오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황급히 밀려든다.

내게는 가을을 보낼 때면 언제나 매듭을 짓지 못한 일들은 없는지 되돌아보는 버릇이 있다, 월동준비를 하는 동물도 아니면서. 가을이라는 계절이 자아내는 차분하고도 쓸쓸한 분위기 탓일지는 모르겠지만, 가슴 속에 형체도 없이 활활 타오르던 불덩이들이 그 빠른 발걸음을 멈추고 한 번 더 주변을 둘러보느라 그 불길이 잦아든다. 온기가 그립고, 떠나 있는 사람들이 그립고, 손가락 끝이 차가우면 마침내 가을이다. 

명아주에게도 이렇게 예쁜 단풍이 들다니!
▲ 빨갛게 물든 명아주 단풍. 명아주에게도 이렇게 예쁜 단풍이 들다니!
ⓒ 국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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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열매까지 매달고 있어 더없이 곱고 붉다.
▲ 덜꿩나무 단풍. 빨간 열매까지 매달고 있어 더없이 곱고 붉다.
ⓒ 국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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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과 같다면, 가을은 내면으로 향하는 길을 서성거리는 내성적인 사람과 같다. 열심히 밖에 것들에 두리번거리던 자아는 이제 그동안 소홀했을지 모를 안의 일들을 살피기 시작한다. 가을, 이 계절은 열이 많은 나에게 유독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입가에 잔잔하게 떠오르는 미소! '그래, 난 가을에 태어났지!' 이러저러한 이유들을 갖다 붙여서라도 나는 가을과 조금 더 가까이 있으려 하고, 그래서 더 친숙하다. 굳이 많은 말을 늘어놓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처럼 편하다.

이렇게 좋아하는 가을이 갈수록 더 짧아지는 것 같아서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꼭 기후의 변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그렇듯, 무엇이든 좋아하는 것들은 빠르게 지나간다. 한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 2012년의 가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단 한번 뿐인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소중할 수밖에 없는 시간! 할 수만 있다면 조금만 더 늦게 떠나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음에 들여놓았던 어둠을 환하게 바꿔주는 귤빛 복자기 단풍.
▲ 복자기 단풍. 마음에 들여놓았던 어둠을 환하게 바꿔주는 귤빛 복자기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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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밭수목원에서 만난 애기단풍 나무. 하늘에 빨간 별들이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 애기단풍. 한밭수목원에서 만난 애기단풍 나무. 하늘에 빨간 별들이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 국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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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그런 아쉬움을 달래보려고 나는 그동안 가을이 끝나가기 전엔 늘 여행을 다녀오곤 했었다. 나를 떠나가는 시간들에 대한 배웅이기도 하다. 그런데 올해 가을엔 이렇다 할 여행을 다녀오지 못했다. 비록 사는 곳에서 멀리 떠나 다녀오는 여행은 가지 못했지만 올해 가을엔 여느 해보다 곱고 빨간 단풍들이 나를 온통 사로잡았다.

살면서 올해만큼 단풍이 고왔던 적이 있었나. 시내 가까이 생활 주변에서 단풍이나 나뭇잎 빛깔과 마주칠 때면 나는 몇 번이고 가던 길을 멈추어야했다.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 즐거운 매혹에 빠져 넋을 잃었다. '어쩜, 이래?' 올해 단풍 빛은 꽃보다 더 곱고 붉었다.

단풍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빛은 아니다.
▲ 단풍나무 안에서 올려다 본 귤빛 단풍. 단풍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빛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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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인산 부근에서 만난 붉은 단풍.
▲ 단풍. 만인산 부근에서 만난 붉은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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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마을에서 만난 단풍.
▲ 단풍. 문의마을에서 만난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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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빛깔이 한데 어울려 있다.
▲ 단풍나무. 다양한 빛깔이 한데 어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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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태풍이 몇 번을 다녀갔는데도 그 여린 나뭇잎들은 끝끝내 나뭇가지에서 정해진 시간만큼 견디었고, 또 이별을 앞두고는 아무런 저항 없이 그 시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의연하게 다가올 소멸 앞에서 숨겨 뒀던 내면의 빛깔을 드러내며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는 나뭇잎들. 보고 또 바라보아도 그저 좋고, 마냥 좋다! 어떻게 이런 나무들 앞에서 겸손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1년이라는 시간을 주기로 태어나고 또 죽어가는 나뭇잎들을 보면 몇 백 년을 살 것처럼 허영을 부리는 우리 인간들의 삶이 정말로 왜소해 보인다. 한 번 태어나면 반드시 한 번은 죽어야 한다는 너무 당연한 진리 앞에서도 당장 내 눈 앞의 이익 하나를 더 챙기겠다고 타인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내고 독을 뿜으며 살고 있는지. 정작 용기를 내야 할 때는 가장 비겁한 속내를 그럴 듯하게 위장을 하면서 말이다.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빛깔이 절대 자연의 빛깔을 흉내낼 수 없는 이유다.

나뭇잎들은 온몸으로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는데 그 이야기는커녕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무심한 사람들도 많다.

도심 어디서나 만나는 노란 은행잎.
▲ 은행잎. 도심 어디서나 만나는 노란 은행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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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단풍 예쁘지? 어? 나만 예쁘나?"

누군가 보면 저리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타박할지 모르겠다. 며칠 사이 그 아름다운 가을이 겨울에게 등을 내밀었다 해도 가녀린 나뭇잎들이 우리에게 들려주었던 메시지는 그리 쉽게 잊히진 않을 것 같다. 아직도 난 그들 때문에 이렇게 가슴이, 뛴다!

ⓒ 국은정



태그:#올해 단풍, #나뭇잎, #나무의 일생, #도심 단풍 , #가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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