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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공소 회장님이 키우는 '공소 지킴이', 공지.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강정마을에서 살아갈 강아지. 누구를 만나며 자라든, 무슨 일을 겪으며 자라든, 이 마을에서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천주교 공소 회장님이 키우는 '공소 지킴이', 공지.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강정마을에서 살아갈 강아지. 누구를 만나며 자라든, 무슨 일을 겪으며 자라든, 이 마을에서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 조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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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중순서부터 강정마을에는 해군기지 건설지에 케이슨(바다에 항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강정에서 제작하는 케이슨은 3000톤 급) 제작소가 완공돼 조만간 해군기지 사업단 내에서 24시간 레미콘을 들여 공사를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누군가는 '전운이 감도는 강정마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24시간 공사에 대해 마을 주민과 활동가가 선택할 수 있는 대응책은 많지 않다. 몇 안 되는 사람들은 주야 혹은 철야로 공사장 정문 앞으로 모이자는 의견을 냈다. 무모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난 10월 25일 오전 7시. 늘 그래왔듯이 10명 남짓의 사람들이 해군기지 사업단과 공사장 정문으로 왔다. 평소와는 달리 이미 경찰들이 배치돼 있었다. 갓길 너머 도로에는 경찰차들이 주차돼 있었고, 사업단과 공사장 각 정문에는 방패를 든 경찰 6명이 일렬로 서 있었다.

안면을 튼 한 경찰관이 "오늘은 좀 더 심할 것"이라며 "몸조심하라"고 조용히 귀띔해줬다. 속상한 마음에 "아저씨는 그때 절 도와주실 수 있느냐"고 쏘아붙이고선 돌아섰다.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다행이라고 표현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여느 때와 같이 사람들은 각 정문 앞에 앉았고 잠시 레미콘 차량의 출입이 멈췄다. 그러나 강정천을 둘러싼 기동대 버스들을 보며 불안한 마음은 계속됐다.

오전 8시 40분. 교통경찰관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이곳저곳에서 경찰들이 쏟아져 나왔다. 다 어디에 있었을까 싶은 경찰들이 강정천 다리를 형광색으로 채웠다. 곧이어 서귀포 경찰서 구슬환 경비과장의 고착 명령이 떨어졌다. 수백 명의 경찰 앞에 앉은 사람은 10명 남짓. 의자에 앉은 이들은 의자 채 들리고 팔짱을 끼고 바닥에 앉은 이들은 뜯겨서 옮겨진다. 30분에 한 번씩. 때로는 1시간 간격으로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고 경찰들의 고착에 이어 레미콘 차량이 들어간다.

고착을 준비하기 위해 강정천 다리를 건너는 경찰들. 얼굴이 익숙하다. 그들은 몇번이나 이 마을에 찾아왔던 경찰이다.
 고착을 준비하기 위해 강정천 다리를 건너는 경찰들. 얼굴이 익숙하다. 그들은 몇번이나 이 마을에 찾아왔던 경찰이다.
ⓒ 조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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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들이 사람들을 가둬두면, 레미콘 차량을 들어가고 나간다.수십 명의 경찰이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을 이곳저곳에 가둔다.
 경찰들이 사람들을 가둬두면, 레미콘 차량을 들어가고 나간다.수십 명의 경찰이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을 이곳저곳에 가둔다.
ⓒ 조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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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조금 의외의 고착도 있었다. 천주교 제주교구의 미사 중임에도 경찰들이 고착을 한 것이다.

강정마을에서는 매일 오전 11시 미사가 있다, 영성체는 미사 중에서도 가장 신성한 시간으로 예수의 몸을 먹음으로 신앙을 곤고히 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지난 8월 8일, 미사 중 이 영성체를 하려는 문정현 신부를 경찰이 고착하고 팔을 꺽어 성체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고의는 아니었겠지만 밟기까지 했다. 이로 인해 갈등이 격화되고, 결국 제주청장은 천주교 제주 교구를 찾아가 사과와 함께 이후 미사를 방해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 성체 모독 사건 이후 오전 미사 중 고착이 지난 25일 처음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이번에도 영성체를 위해 제주교구의 신부가 내려오는 길에 고착이 진행됐고, 경찰은 미사에 참석한 신부마저 끌어다 고착시켰다. 다행이라면 이번엔 성체를 옮기는 신부의 손을 꺾어 성체를 모독하는 행위는 없었다는 점. 그러나 신부들과 신자들은 경찰에게 둘러싸여 고착당한 채로 영성체 시간을 갖게 됐다.

비 오는 가운데도 공사는 이어진다. 이렇게 앉아있다. 뜯기어 갇히고 또 풀려나 이 자리로 돌아온다.
 비 오는 가운데도 공사는 이어진다. 이렇게 앉아있다. 뜯기어 갇히고 또 풀려나 이 자리로 돌아온다.
ⓒ 조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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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안다. 경찰이 없으면 이뤄질 수 없는 공사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경찰이 없으면 이뤄질 수 없는 공사라는 것을.
ⓒ 조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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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중에는 한 시간에 한번, 혹은 30분에 한번 정도로 고착이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머리가 바닥에 있는데도 끌어 옮겨지는 사례, 옷이 벗겨진 채로 옮겨지는 사례, 무릎으로 몸을 경박하거나, 양 어깨의 날개쭉지를 뒤로 틀어 비트는 일은 일반적인 일이 됐다. 그렇게 크고 작은 부상들은 이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저 맨몸으로 옆 사람을 붙잡고 앉아 있는 한 사람에 경찰이 다섯 명에서 열 명씩 들러붙어 사지를 뜯어내고 비틀어 옮기는 과정은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일 같았다. 그리고 경찰들에 둘러싸인채 수없이 지나가는 레미콘 차량들을 보고 있는 것도 슬픈 일이다.

그녀는 말했다. "저를 잡아가세요, 저를 잡아가시라고요." 그녀는 공사장으로 뛰어 내렸고, 발꿈치에 금이 갔다. 또 다시 차량 앞에 섰다 연행된다. 그녀의 악다구니가 경찰들이 보기엔, 공사장 직원들이 보기엔 성가시거나 짜증스러운 것인 듯하다. 나는 그녀가 긴 시간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았다. 그녀가 정말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임을 안다.
 그녀는 말했다. "저를 잡아가세요, 저를 잡아가시라고요." 그녀는 공사장으로 뛰어 내렸고, 발꿈치에 금이 갔다. 또 다시 차량 앞에 섰다 연행된다. 그녀의 악다구니가 경찰들이 보기엔, 공사장 직원들이 보기엔 성가시거나 짜증스러운 것인 듯하다. 나는 그녀가 긴 시간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았다. 그녀가 정말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임을 안다.
ⓒ 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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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밤이 왔다. 오후 6시 30분. 이미 해는 졌고, 강정전 다리 건너편에 있던 조명차가 불을 환하게 밝혔다. 사업단과 공사장의 라이트도 켜져 있다. 그리고 몇몇 경찰은 라이트를 들고 왔다.

그럼에도 지금은 밤이다. 약간 더 흥분돼 보이는 경찰들의 몸놀림. "천천히 하라"는 지휘자의 마이크 소리는 그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성급하게 사람들을 해치듯 떼어놓고, 경찰들이 둘러싸서 만든 인간 감옥으로 떼어낸 사람들을 던지듯 넣는다. 한 남자 경찰관이 사람을 들고 가다가 방지턱을 보지 못하고 걸려서 넘어졌다. 이 과정에서 그들에게 들려가던 한 남성이 함께 바닥에 쓰러졌고, 경찰은 그의 배를 밟고 일어섰다. 그새 다른 경찰은 통증을 호소하는 남성의 배 위로 또 다른 남성을 내려놨다. 밤, 10분의 고착 과정 중에 일어난 일이다. 경찰들은 지휘관의 고착 해제 명령이 내려지자, 쓰러진 남성의 안위를 확인하지 않고 무리들과 함께 그들의 차로 돌아가 버렸다. 쓰러진 남성은 주변의 동료들이 부른 119 구급차를 타고 후송됐다.

강동균 마을 이장은 스카이(쌍용·강정·용산) 전국평화대행진 중에 24시간 공사와, 경찰들에 의한 현장 상황에 대한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밤새 이곳을 지켰던 그. "제발, 제발, 그만들 하시오."
▲ "이곳이 우리마을 이요" 강동균 마을 이장은 스카이(쌍용·강정·용산) 전국평화대행진 중에 24시간 공사와, 경찰들에 의한 현장 상황에 대한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밤새 이곳을 지켰던 그. "제발, 제발, 그만들 하시오."
ⓒ 정다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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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고착, 그들이 비추고 있는 것은, 그리고 누르고 있는 것은 사람. 이렇게 7번쯤 하고 나면 아침이 온다. 그리고 태양아래서 10번쯤 하고 나면 다시 밤이 온다.
 어둠 속의 고착, 그들이 비추고 있는 것은, 그리고 누르고 있는 것은 사람. 이렇게 7번쯤 하고 나면 아침이 온다. 그리고 태양아래서 10번쯤 하고 나면 다시 밤이 온다.
ⓒ 정다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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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고착이 이어지고 오후 10시 40분에 있었던 고착에서는 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다. 5명의 여성 경찰관들이 촬영을 하고 있던 한 여성의 사지를 들고 가려던 중 머리를 도로에 떨어뜨린 것. 그들은 떨어진 여성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다시 들어 갓길로 그 여성을 옮긴다. 의식을 잃은 여성은 뇌진탕의 후유증인지 몸이 경련하고 과호흡 상태에 이르게 된다.

당시 경찰들은 이 여성에게 7분간 둘러싸서 내려다 보는 것 외에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해제 명령을 받았는지 이 여성만을 바닥에 방치 한 채 돌아섰다.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 누워있던 여성은 주변인들에 의해 발견돼 구급차로 호송됐다. 병원에서 뇌진탕과 목의 염좌 판정을 받았다.

그녀는 의식이 돌아온 뒤, 자신이 당한 일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런 후속 조치 없이 바닥에 여성만을 남겨둔 채 자리를 뜬 경찰들. 그들이 누구였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단지 그녀 손에 들려 있던, 녹화 버튼이 눌려져 있었던 캠코더의 영상이 그녀가 겪은 일을 증명해 줄 것이다.

밤, 또다시 경찰들이 왔다. 한시간 만에. 사진의 여성은 곧 의식을 잃는다. 그녀의 머리를 땅에 떨어뜰렸던 경찰은 여성만을 남기고 돌아섰다.
 밤, 또다시 경찰들이 왔다. 한시간 만에. 사진의 여성은 곧 의식을 잃는다. 그녀의 머리를 땅에 떨어뜰렸던 경찰은 여성만을 남기고 돌아섰다.
ⓒ 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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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1시 30분, 26일 오전 1시 30분, 오전 3시... 한참을 고착과정에 대해 촬영하던 중에 웃음이 나왔다. 갑자기 한 영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황혼에서 새벽까지>가 바로 그것. 한때 재미있다고 찾아보던 좀비영화들이 떠올랐다.

제주도의 작은 마을, 강정. 차량통행이 거의 없는 도로의 양측은 형광색 경찰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레미콘 차량이 대기 중이다. 몇 사람은 자리에 앉고, 또 몇 사람은 길가로 나섰다. 예닐곱의 경찰들이 한 사람에게 우르르르 달려들어 사지를 잡아들거나, 온 몸을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그 사이로 레미콘 한 대, 혹은 두 대가 유유히 지나간다. 경찰들은 레미콘의 출입이 끝나고 나면 포식을 끝낸 모습 마냥, 돌아선다.

지난 10월 25일 아침부터...오늘 저녁까지 94번째 이어지는 고착. 가장 무서운 것은 이것에 익숙해 지는 것. 그러나 안다. 결코 익숙해 질 수 없음을.
 지난 10월 25일 아침부터...오늘 저녁까지 94번째 이어지는 고착. 가장 무서운 것은 이것에 익숙해 지는 것. 그러나 안다. 결코 익숙해 질 수 없음을.
ⓒ 정다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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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해가 밝았다. 26일 오전 7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백배 명상이 시작됐다. 좀비들은 아침이면 사라지기라도 하는데, 이곳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낮'이요, '황혼에서 다음 황혼, 또 다음날의 황혼까지'이어지는 끝없는 공사와 고착들이다. 다시 경찰은 백배를 하는 사람을 둘러싸고, 그들 앞을 막는 자들을 끌어내고 레미콘 차랑을 들였다.

지친 사람들은 몇몇은 길가에서 잠이 들고, 몇몇은 컵라면을 뜯어 아침을 해결한다. 그들 곁으로 아침 운동을 나선 몇몇의 마을 분들이 보인다. "수고함져" "밤새 지키고 있었냐"는 말이 오간다. 교대 때문인 듯 경찰버스들이 빠져 나갔다가 곧이어 10여 대가  다시 들어온다.

무심하다. 참 무심하다.

이것이 사람이 사는 세상이란 말인가. 슈테판 츠나이크는 "인간성이 별처럼 빛나는 시간"을 썼지만, 이곳에서는 "인간성이 저 하늘의 별처럼 멀어져 보이는 밤낮"이다.

덧붙이는 글 | 답답하다. 서귀포 경찰서의 경비과장은 "해군기지 건설과정에 대해 불법이라는 판결은 없다. 그렇다면 불법은 이곳에 앉은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이곳의 사람들은 언제나 경찰들에 의해서 저지되지만, 그들은 경찰들을 향해 앉은 것이 아니다. 해군기지 공사를 둘러싼 거짓에 맞서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합법'이라고 떠들어도 그것이 진실되지 못하고 도덕적이지 못하다면 '합법'을 가장한 것일 뿐, 더 이상 '합법'이 아니다. '합법'이라는 것이 졸렬한 비겁함을 두둔하는 핑곗걸리가 된다면 그렇게 공공연히 '정의'를 손상시키는 거짓된 '합법'에 당당히 맞서야 하는 것이다(독일 나치에 저항하다 사형을 당한 '쿠르크 후버'교수의 법정 진술 중).



태그:#강정마을, #24시간 공사, #고착, #경찰,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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