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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에서 술을 팔지 않는 나라. 술집이 있긴 하지만 술 한 잔 값이 너무 비싸서 취하도록 마실 수 없는 나라. 이슬람 국가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 최고의 복지수준과 소득수준을 자랑하는 북유럽의 강국 스웨덴 이야기다. 술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면 벌써 난리가 났겠지만, 정부에 의한 스웨덴의 이런 강력한 알코올 통제정책은 백년이 넘었다고 한다.

재미난 것은 이 금주운동이 시민의식을 성숙시켰으며, 이를 기반으로 정치운동이 더욱 발전했다고 하면 믿어지시는가. 그리고 이 금주운동을 이끈 사민당(스웨덴사회민주노동당)은 1930년대 이후 장기 집권하면서 지금과 같은 스웨덴의 복지체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알다시피 스웨덴은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전면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스웨덴의 복지체계를 부러워하면서도 '복지'라는 말만 나오면 '나라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떠올릴까. 작년 8월 서울시 무상급식 논쟁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만약 복지가 정말로 '망국병'이라면 어떻게 스웨덴은 망하지 않고 그야말로 천국과도 같은 사회체계를 갖게 되었을까.

흥미로운 것은 올 연말 대선의 화두가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점이다. 망국의 주병으로 거론되던 복지가 대선의 화두가 되었다. 그것도 보수여당에서.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어떤 복지체계를 구축하느냐는 것이다. 이 점에서 스웨덴은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고, 보편적 복지를 70년 넘게 지속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니까.

책표지
 책표지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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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스웨덴의 복지시스템에 대해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책이 나왔다. <스웨덴을 가다-복지국가 여행기>(후마니타스)이다. 저자는 민주노동당이 국회의원을 처음으로 배출한 2004년 이후 지금까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는 박선민이다. 저자는 평등과 연대와 합의의 정신이 살아 있는 스웨덴에서 한국 사회의 미래를 찾고 싶었다고 한다. 

복지는 망국의 지름길이 아니라 오히려 상생의 길임을 스웨덴은 보여준다. 스웨덴이라고 부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앞선 복지를 실현하고 있는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특히 대선 주자들이 이 책을 꼭 읽고, 스웨덴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대한민국의 내일을 그려볼 수 있으면 좋겠다.

'성장'만을 보며 달려온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먼저 스웨덴의 정체를 밝히고 가자. 스웨덴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국가다. 즉 자본가의 생산수단 소유를 인정하다는 면에서는 '자본주의'이지만, 분배의 정의를 제도적으로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사회주의'인 것이다. 한마디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절충형이라고 볼 수 있다.

1920~1930년대 격렬한 노사분쟁을 겪은 스웨덴전국노동조합총연맹(LO)과 고용주협회는 1938년 살트셰바덴에서 협약을 체결했다. 노사는 기업의 경영권과 노조의 파업권을 상호 인정하고, 노사분쟁 사항은 국가의 개입 없이 노사 간 자율적 협의를 통해 해결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리고 이 합의 정신은 현재까지 굳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1970년 어린 여공들이 하루 종일 햇볕 한번 못 보고 환기도 안 되는 먼지 가득한 공장에서 일하는 모습에 항의해 근로조건개선을 요구하다 분신한 전태일 열사, 대량 해고사태 이후 23명이 목숨이 끊은 쌍용자동차와 35m 고공 크레인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309일을 투쟁한 한진중공업 사태를 비롯한 우리나라 노사관계와는 너무도 다른 면을 보여준다.

협력은커녕, 자본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기업은 사설경비용역업체를 동원해 노조원이기 전에 직원이었던 이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노조를 파괴하고, 정부는 이를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이처럼 인간적 가치, 삶의 질을 모두 무시한 채, '성장'만을 외치며 달려온 지금, 1인당 GDP가 2만 달러를 넘었지만 그래서 오늘날 우리 사회는 행복해졌는가?

아이는 낳기만 하세요, 국가가 키웁니다

나라가 잘 살아야 국민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국민이 행복해야 나라도 편안하다는 것을 스웨덴은 보여준다. 혹시라도 국민이 힘든 점은 없는지 세심하게 살펴주고, 불편한 곳이 찾아 고쳐주는 것이 국가의 임무라고 말하는 듯하다. 육아 역시 마찬가지다. 직장맘이 많아지자 육아는 부모만의 일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전체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성 평등 국가인 스웨덴에는 남자 화장실에도 '아기 기저귀 갈이대'가 있다. 동성 간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 부모의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아이의 복지는 사회가 책임진다. 비혼모, 동거부부, 동성부부에 관계없이 누구든 자녀를 키우며 사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사회가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무상의료의 나라 스웨덴.
 무상의료의 나라 스웨덴.
ⓒ Susanne Kronholm/Joh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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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에 관계없이 자원이 공평하게 배분되고, 동일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스웨덴의 원칙이다. 이는 아동·장애인·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 모두에게 적용된다. 스웨덴은 1937년 출산 수당, 1948년 아동 수당, 1947년 기초 연금을 소득 조사 없이 모든 대상자에게 정액 지급하는 복지 제도를 도입했다.

출산 시 부모에게 각각 240일의 육아 휴가를 주는 것은 물론 아이를 출산하면 국가에서 매달 1050크로나(약 17만원)을 16세까지 지급하고, 16세가 되면 '학업 보조금'으로 이름을 바꿔 같은 금액을 20세까지 지급한다. 자녀가 많을수록 아동 수당은 많아진다. 아동 수당은 1926년 뉴질랜드가 최초로 제도화한 이래 1930-1950년대에 많은 나라들이 도입했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복지 선진국인 유럽 국가들은 물론,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까지 아동 수당 도입이 확산되고 있으며, 현재 전 세계적 90개국이 아동 수당 제도를 시행 중이다. OECD 국가 중 아동 수당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미국, 터키, 멕시코 그리고 우리나라뿐이라는 사실은 복지가 돈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는 씁쓸함을 남긴다.

'안 받고 만다'는 장애인 등급제?

우리나라의 장애인 등급제는 선별적 복지 제도의 행정 편의를 위해 마련된 것이다. 장애 등급이 낮아지면 제공받는 복지 서비스도 줄어들기 때문에 내가 '중증' 장애임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그 얼마 되지 않는 복지 혜택을 누리려면 '내가 얼마나 가난한지', '내 장애가 얼마나 중증인지', '내가 얼마나 학대를 당했는지', '내가 얼마나 일할 능력이 없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인간의 자존감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이런 방식들은 '안 받고 만다'는 결심을 이끄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이런 것을 제대로 된 복지 제도라고 할 수 있을까. 결국 보편적 복지가 해답이다. (본문 215쪽)

우리나라와 달리 스웨덴에서는 알레르기나 천식으로도 수당을 받을 수 있다. 스웨덴은 우리나라처럼 장애를 등급을 매겨 구분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일할 능력이 50퍼센트냐 혹은 70퍼센트냐를 따져서 정한다고 한다. 따라서 알레르기나 천식이 심해 일할  능력이 떨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수당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스웨덴이 1994년 이래 '장애인handikappad'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다. 스웨덴에서는 '장애인'이라는 말 대신 '기능적 손상을 입은 사람' 혹은 '기능이 저하된 사람funktionshindard'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즉 다리를 다쳐 다리를 쓸 수 없다면 그것은 다리의 기능이 저하되었다는 것이다.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는 노력이다.

그렇다보니 장애 분류도 매우 포괄적이다. 알레르기, 천식도 장애의 일종이고, 읽기·쓰기 장애도 장애다. 장애 원인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노령에 의한 것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장애를 가진 '개인'이 아니라, 장애를 둘러싼 환경과 조건을 개선해 누구나 삶을 영위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스웨덴에서는 개별적 특성을 고려해 장애를 판정하기에 우리나라처럼 장애 등급을 정하는 일정한 기준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처럼 선별적 복지 정책을 시행했을 때는 대상자가 아닌 사람을 '골라내야' 하므로 객관적인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할 수밖에 없지만 스웨덴과 같이 보편적 복지 정책을 시행할 경우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스웨덴 복지정책이 실패라고?

스웨덴의 국기
 스웨덴의 국기
ⓒ 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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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스웨덴의 복지체계를 구축한 사민당은 1915년에 제1정당이 되어 1920년에 총리를 내고, 1932년 단독 집권에 성공한 이후 1976년과 1991년 단 두 번을 제외하고는 계속 정권을 잡아왔지만 2006년과 2010년 연이어 총선에서 보수 우파연합에 패배했다. 이를 두고 한국 보수 언론들은 '북유럽 복지국가의 실패'라며 기사를 내보냈다. 스웨덴 국민들이 '복지보다 효율'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보수 언론의 분석처럼 스웨덴이 복지제도를 축소하고 있으며, 사민당의 쇠락과 더불어 사회민주주의는 이제 실패한 것일까? 아니다. 답은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나라 보수언론의 바람(?)과는 달리 우파연합이 총선에서 승리한 것은 사민당보다 오히려 더 좌파적인 정책을 내세웠기 때문이라는 것이 스웨덴 사람들의 분석이다.

우파 연합을 주도한 보수당은 '새로운 노동자당'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저소득층의 세금 인하를 약속했고, 이에 국민들은 "보수당이 사민당보다 더 노동자당답다"라며 보수당을 지지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좌우파의 집권 여부와 상관없이 복지 제도는 계속 유지될 것이며, 복지와 경제는 동반 성장한다는 것이 좌우를 막론하고 내린 결론이라는 것이다.

경제민주화가 대세이다 보니 박근혜 후보마저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지만 박근혜식 경제민주화는 결국 '줄푸세'의 다른 이름이다(세금과 정부 규모를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우자). 포장만 경제민주화라고 한다고 무엇이 달라질 게 없는 것이다. 증세를 이야기하지 않는, 특히 부자증세와 같은 스웨덴식 누진 적용이 없다면, 박근혜 후보의 복지론은 공허한 메아리로 울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스웨덴을 가다 - 복지국가 여행기>, 박선민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2012년 10월, 1만3000원



스웨덴을 가다 - 복지국가 여행기

박선민 지음, 후마니타스(2012)


태그:#복지국가 여행기, #스웨덴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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