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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민주노총은 '나의 투표권 수난기' 기획을 진행합니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투표날에도 특근해 일을 합니다. 유통업·건설현장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식당 아주머니·아르바이트 학생들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일단 투표 마감을 현행 오후 6시에서 9시로 세 시간 연장하면 어떨까요? 여러 시민의 투표권 수난기가 한국 사회의 참정권 문제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편집자말]
2007년 겨울,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공장서 일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2007년 겨울,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공장서 일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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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겨울이었다. 당시 나는 2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상태였다. 또래의 다른 친구들이 전역 후 다니던 대학교로 돌아가던 것과 다르게, 나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복학하지 못했다. 나는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하기 위해 일을 해야만 했다.

나는 고향인 대구에서 지내고 있었지만, 당시 그곳은 경기침체 때문에 일자리가 많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다른 지방의 일자리도 찾아보던 중에, 문득 눈에 들어온 게 있었다. 바로 고향 대구서 멀지 않은 지방인 구미에 있는 어느 공장의 채용공고. 시외버스로 1시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라는 점과 저렴한 값에 제공되는 숙식, 비교적 높은 임금에 눈길이 갔다. 그리하여 나는 오래 망설이지 않고 짐을 꾸려 곧장 구미로 향했다.

다른 일에 비해서 임금이 높은 만큼 일은 고되고 위험했다. 그곳은 휴대전화 케이스 사출과 관련된 일을 하는 곳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휴대전화의 외관이 되는 부분을 만드는 곳이었다. 작업은 이랬다. 알루미늄을 섭씨 700도로 가열해 녹인 다음, 액체가 된 알루미늄을 틀이 부어 일정한 모양으로 찍어내는 것. 완성된 제품이 컨베이어 벨트로 미끄러져 쏟아지면 흠집이 있거나 모양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확인한 뒤 검사하는 부서로 보내는 일을 했다.

말 그대로 3D 업종이었다. 힘들고, 더러웠으며, 위험했다. 사고로 화상을 입거나 손가락이 잘리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일이었다. 사출 과정에서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는 알루미늄 가루들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일해야 했으며, 각종 장비를 만지는 과정에서 손과 얼굴에 기름때가 잔뜩 묻었다. 뿐만 아니었다. 가끔 녹은 알루미늄 조각이 장갑에 튀면 재빠르게 벗어던져야 했다. 왜냐고? 그대로 액체 알루미늄이 장갑을 뚫고 살갗에 닿으면 화상을 입어 물집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12시간 노동은 일주일 단위 주·야간으로 번갈아가면서 계속됐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당시 100여 명이 일하던 작업 현장에 20대 초반인 노동자는 나 외에 1명이었다. 나머지 노동자는 모두 나이가 30대에서 40대 이상이었다. 새로 고용된 젊은 사람들은 모두 며칠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기 일쑤였다.

그렇게 찾아온 2007년의 겨울, 나는 전혀 춥지 않았다. 섭씨 700도가 훨씬 넘는 온도로 달궈진 금속을 옆에 두고 일하다 보니, 12월에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했다.

2007년 대선, 나는 투표할 수 없었다... 왜?

2007년 12월의 중순.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왔다. 당시 23세였던 나는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투표는 국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한다고 배웠던 터라 마음 한편에는 의무감이 생기기도 했고, 처음으로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다는 것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선거를 하루 앞두고 현장에 투입되기 직전, 직원들을 모두 불러모은 현장 책임자의 말 때문이었다.

"내일이 대통령 선거날인 거, 다들 아시죠? 내일은 휴무입니다."

순간, 사람들은 순간 환호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됐다.

"그런데, 연말이다 보니 바쁜 것도 다들 아실 겁니다. 목표 물량을 채워야 하는데 여유가 없어요. 작업 과정에서 불량품이 발생되는 것까지 감안하면, 새해가 될 때까지 다들 열심히 근무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내일 특근이 있습니다. 근무에 참가하지 못하는 분 있나요?"

제17대 대통령 선거 투표가 치러진 2007년 12월 19일 오전 서울 성북구 월곡4동 제2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제17대 대통령 선거 투표가 치러진 2007년 12월 19일 오전 서울 성북구 월곡4동 제2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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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당하게 손을 들었다. 고향에 돌아가 투표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싸늘한 기분에 주위를 둘러보니, 손을 들고 있는 것은 나뿐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쏟아졌다. 그들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은 따가웠다. 마치 '나서지 마라, 니가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본데... 사회생활에서 그렇게 너 혼자 유별나게 굴면 안 된다'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동료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나는 들고 있던 손을 내리지 않았다. 선거일이라 임시공휴일로 지정된 날에 내가 일하지 않고 투표하러 가는 것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 사람이 쭈뼛쭈뼛 날 따라서 손을 들까 말까 망설이는 모습도 보였다. 내가 손을 꿋꿋이 들고 버티자, 나를 보고 자신들도 내일은 일을 쉬고 싶다고 금방이라도 말할 것 같았다. 그때, 몇 달 동안 일하면서 친해진 다른 노동자 중 형처럼 따르던 한 사람이 내게로 다가와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찌르며 속삭였다.

"우리 회사가 OO기업 하청업체인 거, 니도 알제? 근데 요즘 거기서 우리 보고 인원 감축 하란다 안카나. 이럴 때 밉보이면 니 금방 짤리는기라. 이제 여기 일 적응되서 잘 근무하다가 하루아침에 여기서 나가게 되모, 어디 가서 또 일자리 구할끼고? 그냥 조용히 손 내리라, 임마."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속에서 갈등이 시작됐다. 나는 분명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이런 일로 회사에서 미운털이 박혀 정리해고의 대상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짧은 순간이나마 나와 몇 사람들이 망설이고 있던 그때, 사람들의 마음이 한 쪽으로 확실하게 기울어지도록 쐐기를 박은 것은 현장 책임자의 마지막 한마디였다.

"내일은 특근이니 만큼, 특별수당이 추가돼 임금이 더 많이 지급될 겁니다. 그래서 내일 일당은 평소의 1.5배도 아니고, 2배입니다."

그걸로 끝이었다. 평소보다 2배나 많은 임금이 주어진다는 말에 더 이상 갈등하는 사람은 없었다. 되레 이런 횡재를 거부하는 나만 바보가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내가 향한 곳은 대구의 어느 투표소가 아니라 구미의 기숙사 앞 공장이었다. 결국 나는 원하던 투표를 하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출근해야만 하는 노동자가 됐다.

이명박 17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후보
 이명박 17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후보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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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당일, 나는 근무 시간 내내 투표에 참여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했다. 내 뚱한 표정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나는 "투표는 국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니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우리 같은 신세에 어쩔 수 있나. 일을 시키면 해야지..."

17대 대통령선거가 끝난 다음날.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정신 없는 오전 근무를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회사 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식판에 가득 받은 밥을 먹다가 고개를 들었다. TV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소식을 알리는 뉴스가 이어지고 있었다. 멍하게 TV를 바라보던 당시에는 그 뒤 5년 동안 벌어질 엄청난 일들에 대해서는 까마득하게 몰랐지만, 나는 내 투표권이 허공으로 사라져버린 것에 대해서 뭔가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국민 참정권 보장, 투표시간 연장이 답이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 영풍문고 앞 '성의 있는 촛불들의 투표권 보장 촛불문화제'에 모인 30여 명의 시민들은 투표시간을 연장하고 투표일을 유급휴일로 지정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 영풍문고 앞 '성의 있는 촛불들의 투표권 보장 촛불문화제'에 모인 30여 명의 시민들은 투표시간을 연장하고 투표일을 유급휴일로 지정할 것을 촉구했다.
ⓒ 박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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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공장 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12시간이었다. 구미는 대구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지만, 투표시간이 오후 6시까지니 퇴근 후 대구에 가서 투표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리고 최근,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내 주위의 지인들로부터 비슷한 사연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오전 8시 30분에서 9시 정도까지 출근해서, 저녁 늦게까지 근무하기 때문에 투표하기가 힘들더라는 이야기였다. 아침에는 차가 많이 막히니 직장에 지각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저녁에는 투표 마감 시각 전에 퇴근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것이다. 결국, 시간에 맞춰 투표장에 갈 수 없기 때문에 투표를 할 수가 없다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겪었던 일과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노동자들 대다수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수백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생들은 장시간의 노동을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게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니까 말이다.

그런 이유로 최근 '투표시간 연장'에 대한 목소리가 커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여당 소속 정치인들은 '투표시간 연장'을 정치적 공세로 치부하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새누리당 이정현 공보단장은 "투표는 시간이 아니라 성의의 문제"라고 발언했다. 또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역시 투표시간 연장에 회의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동의한다. 투표는 성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빠진 주어를 말해보라면 '정치권과 선관위'라고 말하고 싶다. 설령 국민들이 투표를 하려는 성의가 부족하다고 해도 정치권과 선관위가 앞장서서 투표시간을 연장하고 투표를 독려하는 게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들이 마땅히 할 일이 아니던가.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은 투표하려는 의지나 성의가 부족해서 투표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투표하러 갈 시간이 부족해서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관련 포스트 보러가기).

나는 투표하고 싶다. 아니, 우리는 투표하고 싶다. 나는 이를 위한 현실적 방안으로 투표 시간을 연장해주길 바란다. 이틀, 사흘 투표일을 연장해 달라는 게 아니다. 단 몇 시간 만이라도, 일하느라 바쁜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 투표시간을 연장해 주길 바란다는 이야기다. 이는 특정 지역의 일부 사람들만을 위한 게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일이다. 정치인과 선관위는 투표시간 연장에 적극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나의 투표권 수난기' 응모 기사입니다.



태그:#투표시간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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