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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여성가족부의 19금 판정 논리는 '라잇나우'의 가사 때문이다. '라잇나우' 가사 속에 '아주 놀고 자빠졌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아주 생쇼를 하네','인생은 독한 술'이라는 표현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 싸이의 '강남스타일' 여성가족부의 19금 판정 논리는 '라잇나우'의 가사 때문이다. '라잇나우' 가사 속에 '아주 놀고 자빠졌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아주 생쇼를 하네','인생은 독한 술'이라는 표현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 YG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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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만드는 키워드는 단연 '싸이'일 것이다. 유튜브에 소개된 한국어로 된 뮤직비디오 한 편을 가지고 빌보드차드 2위에 오른 쾌거를 달성한 싸이에 대해 연일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인기와 더불어 후속곡으로 거론되고 있는 5집 타이틀곡 라잇나우도 뒤늦게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010년 말 발표된 이 곡은 '인생은 독한 술' '아주 놀고 자빠졌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아주 생쑈를 하네'라는 가사의 두 대목 때문에 여성가족부 심의에서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지난 12일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싸이의 '라잇 나우' 등 총 300여 곡에 대해 청소년 유해매체물 판정을 취소하였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10월 청소년 유해매체물 심의 세칙을 마련하면서, 그 이전에 유해곡으로 판정된 곡에 대해서 청소년 유해성을 재검토한 결과라며 애써 그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성가족부의 이번 취소가 싸이의 해외 진출과 관련된 인기 때문이 아니겠냐며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성가족부는 지난 청소년 업무가 여성가족부로 이관된 2010년 이후 유해음반 심의와 관련한 행정소송 5건 중 4건을 패소하였으며, 1건인 라잇나우의 경우 스스로 유해음반 판정을 취소하였다. 사실상 여성가족부의 완패다. 

유해매체물 판정과 관련된 논란은 사실 그 역사가 깊다. 이는 판정을 관장하는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여성가족부 산하가 아니라 보건복지부 산하였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보건복지부가 청소년 업무를 담당하던 2008년~2009년 진행된 유해음반 심의와 관련된 행정소송 또한 2건 모두 패소하였다. 2008년 비의 '레이니즘' 등의 유해물 판정 때에는 당시 심의의원인 음악평론가 임진모씨가 "시대에 뒤떨어진 판정에 동의할 수 없다"며 의원직을 사퇴하기도 하였다.

청소년 보호업무가 여성가족부로 이관될 당시에는 기존 부처와 다르게 규제나 단속 중심의 행정보다는 좀 더 청소년의 입장을 반영하여 진일보된 방식의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무더기로 쏟아진 '19금' 딱지 남발은 이러한 기대가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가를 여지없이 보여줬다

글로벌한 인터넷 강국과 어울리지 않는 단속?

싸이의 해외 진출이 매우 특별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빌보드차트 2위라는 놀라운 기록에도 있지만, 그간 기획사 차원에서 큰돈을 쏟아 부은 다른 가수들에 비해 별다른 노력 없이 해외 진출에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세계 어디서나 새로운 음악에 접근하고 공유하는 일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한 유튜브 등을 비롯한 인터넷 환경의 진화에 있다. 뿐만 아니라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한 빠른 정보 유통과 입소문은 싸이의 성공신화를 만드는 데 한몫 하였다.

이렇듯 글로벌하게 정보가 유통되는 현 시점에서 인터넷 강국이라는 한국에서 특정 유해매체물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한국 계정을 단속하면 해외 계정을 통해서 음원을 다운로드 받으면 그 뿐이며, 19금 인증을 통과하기 위해서 좋지 않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부모님 등 다른 어른의 주민번호를 도용할 수도 있다.

세상은 빠르게 급변하고 있는데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보호'의 패러다임은 구태의연한 규제와 단속이라는 방식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는 비단 청소년 유해매체물 판정 뿐만 아니라 게임 셧다운제, 아동포르노물 단속 등 최근 여성가족부가 내놓고 있는 일련의 정책들과 흐름을 같이 한다. 그렇게 칼을 빼들었으면 그나마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면 될 텐데, 전혀 실효성 없는 정책을 펼쳐서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만 사고 있으니 안타까울 노릇이다.

게다가 여성가족부가 '청소년 유해물'이라고 판정하는 기준마저도 쉽게 일반인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래 가사 중에 '술'이나 '담배' 등 특정단어가 등장하면 무조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판정은 여러 번 고쳐 생각해봐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길가에 널린 게 술집이고 편의점마다 쌓인 게 담배인데,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이유로 모든 술집과 편의점을 폐쇄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이는 마치 1970년대 풍기문란을 이유로 경찰이 줄자를 가지고 다니면서 미니스커트 길이를 재고, 장발을 단속하던 것처럼 시대착오적이다.

학창시절 빨간비디오 보던 어른들 왜 이러시나

'청소년 보호'를 앞세운 여성가족부의 강공 드라이브는 다분히 작년 영화화 돼 논란이 된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일명 도가니 사건이나 최근 나주 아동 성폭력 사건 이후의 성폭력 예방대책으로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성폭력에 대한 강력한 처벌책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성폭력에 노심초사한 어른들은 성폭력 예방에서 더 나아가서 '성'이라는 것 자체가 청소년이 몰라야 되는 것, 더 나아가 없어야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과연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본인들의 청소년기가 그렇게 순진담백한 순백색으로만  넘쳐났는가를 묻고 싶다. 최근 뜨거운 복고 바람으로 인해 70~80년대 뿐 아니라 90년대를 추억한 드라마나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응답하라 1997>은 사투리라는 지역성으로 비껴가기는 했지만 시종일관 욕설과 비속어가 쏟아진다.

뿐만 아니라 은지원이 연기한 도학찬이라는 캐릭터는 온갖 도색잡지와 음란물을 섭렵한 남학생들의 우상으로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응답하라 1997>이 잘 묘사했듯이, 도학찬은 빠삭하게 음란물을 통달했지만, 현실에서는 여자만 보면 도망가는 숫기 없는 남자이며 애인에게 헌신하는 순정남이다. 사실 판타지의 영역에서 음란물을 본다고 해서 곧바로 현실에서 문제아가 되는 것이 아니라, 판타지가 그대로 현실의 지식을 대체하는 그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과거와 지금을 비교해 보자. 남자 이이들 사이에 도는 성인잡지나 성인비디오 등을 통해서 이미 볼 사람들은 다 보았다. 본인의 학창시절 부모님이 장롱에 숨겨둔 빨간비디오를 친구들과 함께 키득거리면 본 것은 아련한 추억이 되고, 요즘 아이들이 아버지 컴퓨터를 뒤지다가 나온 야동을 보는 것은 범죄행위가 된단 말인가?

굳이 19금 인증을 받아서 성인 동영상이나 매체를 보지 않더라도, 이미 각종 상품이나 광고를 통해서 성에 대한 정보들은 넘쳐나고 있다. 성기능 개선, 성기 성형수술, 다이어트 등 각종 광고를 통해서 성에 대해 과장되고 왜곡된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는 인터넷 클릭질 한 두 번으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성적 정보는 어떤 곳에서도 주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여성가족부는 생리주기를 달력에 기록하는 한 스마트폰 앱의 일부 게시판까지도 청소년유해매체로 19금 딱지를 붙여놓았다. 최근까지도 원치 않는 임신으로 영아를 유기하는 여학생의 기사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데도 우리의 성교육은 아직도 '피임'이 아닌 '금지'에 머무르고 있다. 이미 아이들은 볼 만큼 다 보고 할 만큼 다 하는 성적 주체인데도, 어른들만이 귀 막고 눈 막으면서 애써 현실을 외면한다.

술, 담배 및 음란물이 넘쳐나는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하면서 애매하게 일부 노래가사나 트집 잡고 있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 자체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연 어른들의 세계가 전부 유해한다면 청소년을 전부 집 안에 가둬두지 않는 이상에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술, 담배가 나오는 노래가사는 청소년유해물로 방송 금지되지만, 반라의 십대 소녀들이 다리춤, 엉덩이춤에 모자라 쩍벌춤까지 추는 모습은 버젓이 황금시간대에 공중파를 타는 현상은 대체 뭐라고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비주얼의 시대에 여전히 텍스트에만 집착하는 어른들 참 아이러니하다.


태그:#여성가족부 음반 심의 세칙, #라잇나우, #청소년 유해매체물, #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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