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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셋만 모여도 접시가 깨진다는 데, 여자가 네 명이나 모였다. 김은송(가명,(23), 김효정(가명, 23), 육지인(가명,23), 노정윤(가명,23)이 바로 그들이다. 같은 과 동기임에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각자 학원 다니랴, 스터디 하랴, 과제 하랴, 바쁘지 않은 날이 없다. 1-2학년 때 들고 다니던 예쁜 가방도 내려놓고, 모두들 큼직한 백팩 하나씩 짊어지고 살고 있었다.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학교에서는 '말년 병장'으로 통하는 09학번 여대생 4명이 모였다.

이들에게는 학교에서 불리는 '말년 병장'이라는 공통점 말고도 하나의 공통점이 더 있다. 바로 '지방대 출신'이라는 것. 인턴이나 대외활동 같은 스펙을 쌓을 때도, 취업정보를 얻으려 할 때에도, 이력서 사진 하나를 찍을 때도 서울 학생들과는 다른 점들이 많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겪은 어려움과 지방대생활 4년의 서러움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지난 10일 저녁, 기자를 포함한 4명의 학생들이 학교 앞 카페에서 만났다.

인턴생활 하려고 휴학, 서울에 고시원 구하러 다녀...

-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김은송(이하 은송):"저는 학교 휴학하고 토익 학원 다니고, 스터디도 하고 있어요."
육지인(이하 지인) : "저는 저번에 이미 휴학했던 터라, 이번엔 학교를 다니면서 열심히 취업준비하고 있어요."

- 이제 학교 다닐 날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어때요?
김효정(이하 효정): "진짜 학교 다닐 때가 좋은 것 같아요. 이제 곧 취업 전선에 뛰어들 텐데, 걱정이 크죠. 특히, 우리는 '지방대'이다 보니까 더 그런 것 같고요."

노정윤(이하 정윤): "저도 취업 걱정 많이 하게 돼요. 사실 서울로 모든 게 쏠려 있어서 속상하죠. 이젠 '어쩔 수 없나보다'라는 생각만 들어요. 체념하게 된 것 같아요. 그냥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게 되더라고요."

-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만큼 거의 모든 것이 서울로 집중되어 있다는 건데, 어떤가요?
효정:"진짜 모든 것이 서울로 집중되어 있어요. 저는 가보고 싶었던 포럼이나 강연이 많았는데, 서울이라서 못 간 적도 많아요."

- 거의 모든 게 서울로 집중되어 있다 보니, 지방대 학생들은 인턴활동 등 대외활동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떤가요?
효정:"모 협회 홍보대사 활동할 때였는데, 지방대 학생들도 함께 활동했어요. 홍보대사를 하면서 정기적으로 모이기도 했었는데 장소는 무조건 서울이었고, 모이는 날도 항상 평일이었어요. 서울에 사는 학생들은 지하철 갈아타고 버스타면 되니까 편하지만, 지방 학생들은 수업도 빠지면서 고속버스 타고 몇 시간 걸려 서울에 가요. 또 지하철 갈아타고 가니까 굉장히 불편했죠." 

은송:"대외활동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 친구 중에는 취업하기 전에 인턴을 하고 싶은데, 모두 서울에 몰려 있어서 아예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교수님이 추천해주시는 활동도 다 서울에 있고. 근데 몇 개월 동안 서울 가서 살만큼 여건이 되질 않으니까 인턴을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지인:"저도 인턴 공지 뜬 거 몇 번 찾아봤는데 '서울 소재 대학 혹은 서울에서 활동이 가능한 사람'만 지원하라고 미리 공지를 했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는 휴학하고 서울에서 지내지 않으면 그 활동은 못하죠."

- 역시 지방대 학생들은 대외활동도 쉽지 않은 것 같은데, 혹시 그럼 대외활동이나 시험 준비 때문에 서울로 유학 간 친구들도 있나요?
효정:"제 친구 중 한 명은 인턴생활하려고 서울에 고시원 구해서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은송:"제 친구도 그랬어요. 시험 준비하는데 휴학하고 서울로 올라가서 방 구해서 학원 다니면서 시험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지인:"저는 국립대 교류학생 프로그램으로 서울대에서 한 학기를 공부하고 왔어요."

서울을 오가는게 일상이 된 지방대 학생들. 쌓여있는 버스 티켓.
 서울을 오가는게 일상이 된 지방대 학생들. 쌓여있는 버스 티켓.
ⓒ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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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로 교류학생 다녀온 거예요? 가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지인:"제가 고등학교 3년 내내 대학 입시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그렇게 고등학교 3년을 보내고 대학에 왔는데, 국립대 간에는 교류 프로그램이 있어서 한 학기나 1년 정도 다른 국립대에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잘난 서울대 한 번 가보자' 싶었어요. 고등학교 3년 내내 대학 입시, 대학 서열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터라 궁금했어요."

- 서울대에서 생활은 어땠나요?
정윤:"서울대에서 개강을 맞이한 첫 날부터 내 자신이 기가 죽어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친구들은 물론이고 아는 사람도 없었고요. 학과 과방을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아는 사람도 없고 날 무시할까봐 겁나서 들어가 보지도 못했어요. 그래서 초기에는 기죽어서 학교 다니면서 사람들과 말도 안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도 초기에만 그랬지, 시간이 지나고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서 학교 잘 다녔던 것 같아요.

근데 제가 서울대를 다니면서 느꼈던 점은 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대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제가 지방대이기 때문에 스스로 기죽었던 게 문제였던 거 같아요. 그 사람들은 절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면서 혼자 상대적 박탈감에 괴롭고 힘들었던 거죠."

'지잡대' 무시, 나도 경험해봤다

- '지잡대'라고 칭하면서 지방대 학생들을 무시하는 태도가 있어서 그러진 않나요? 지방대 다닌다고 하면, 색안경부터 끼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혹시 이런 경험 있나요?
지인:"서울에서 생활할 때,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같이 아르바이트 하던 사람이 저한테 어느 학교 다니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지방대 다니고 있어요"라고 대답하니까 그 쪽에서 "아.." 이렇게 대답하더라고요.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아닌데, 제가 지방에서 학교 다닌다고 말하면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죠. '아, 내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무시 받는구나'"

은송:"서울권 대학 아니면, 무조건 '지잡대'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많더군요. 저는 제가 다니는 학교 너무 좋은데(웃음)."

효정:"저는 지방대 다니고 있다는 이유로 차별도 겪은 적 있어요. 홍보대사 활동할 때, 앉는 좌석을 정해줬었는데 그 기준이 어이가 없더군요. 학교별로 앉히는데, 수도권 대학이랑 지방 대학을 나눠서 앉히더라고요. 활동 처음 시작할 때 하던 '선서'도 서울권 대학 학생이 했어요. 그때 정말 서러웠죠."

- 지방대라 겪는 서러움이 많은 것 같아요. 취업 정보도 잘 접할 수가 없잖아요.
효정:"확실히 서울 소재의 대학생들보다 우리 같은 지방대 학생들이 정보를 많이 모르고 지내는 것 같아요. 회사도 서울에 밀집해있고, 또 지방대 다니는 사람들이 서울에 입사하는 일이 드물고 그러다 보니 정보를 얻을 수 없는 게 사실이죠."

지인:"저는 지역에 가끔 오는 유명인들 특강이나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정보가 많아요. 주위에 취업한 사람도 많지 않아서 조언을 구하기도 쉽지 않더라고요. 취업박람회나 채용설명회 같은 게 있어도 대부분 서울에서 하기 때문에 지방 학생들은 거의 참여 못하는 것 같아요. 가끔 학교에서 지원해주기도 하는데, 그럴 땐 수업을 공결처리 받고 가야하잖아요."

은송:"저는 취업 정보 잘 모르는 건 젖혀두고라도, 취업할 때 지방대생들을 아예 차별화 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 두렵기도 해요. 요즘은 블라인드 면접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소문에 의하면 학교별로 점수를 매긴다든지, 지방 국립대 밑으로는 뽑지도 않는다든지 이런 소리가 많더라고요. 무섭죠.

그러다보니까 다들 공무원 준비밖에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공무원은 학벌 상관없이, 스펙 상관없이 시험만 죽어라 열심히 준비하면 되니까요. 모두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달리는 것 같아요. 내 주위만 봐도 다른 취업준비보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사람이 월등히 많아요."

효정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젠 고쳐야 할 것 같아요. '개천에서는 절대 용 날 수 없다'(웃음)."

"이력서 사진 패키지, 원정 가서 찍고 올까요?"

- 서울권 학생들은 이력서 사진 찍는 것도 지방과는 다르더라고요. 메이크업을 전문으로 해주는 곳도 있고, 안성맞춤으로 사진을 찍어준다고 하더라고요.
정윤:"그런 게 있어요? 대박, 처음 들어봤어요."
지인:"아, 이력서 사진 찍을 때 메이크업까지 해주는 사진관 있다고 들은 것 같아요. 메이크업이랑 사진까지 해서 패키지로 구성돼 있다고 하던데요."

은송: "저도 들은 것 같아요. 대기업이나 유명 회사마다 얼굴이나 스타일 취향이 있다고 그거 맞춰서 사진 찍어주는 곳도 있다더군요."

효정:"아는 언니 중에는 이력서 사진 찍기 전에 미용실 가서 몇만 원주고 머리하고 사진 찍으러 가기도 하더라고요. 우리랑은 거리가 먼 얘기인 것 같아요. 우리는 그냥 학교 앞 사진관 가서 증명사진 찍는 게 전부인데..."

은송:"우리 다 같이 서울 올라가서 이력서 사진 패키지로 찍고 올까요? 지방대생들 이력서 사진 원정!(웃음)"

- 취업정보나 지방대 차별 등 이런 점들 말고도 지방대 학생들의 서러움이 더 있을 것 같아요. 전 대학교 오면 대학로 연극이나 콘서트 보러 다니는 건 쉬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효정:"그렇죠. 콘서트나 전시를 보는 것도 힘든 게 사실이에요. 가끔 전주에서도 공연이나 연극하는 걸 볼 수 있긴 하지만, 서울 대학생들처럼 '대학로 연극'을 쉽게 보는 건 힘들잖아요."
지인:"그래도 대학로 연극 공연장 가보니까 지방대생들을 위한 할인이나 혜택이 있긴 하던데요. 보기 좋았어요."
은송:"근데 우리는 대학로까지 가는 시간이랑 차비가 들잖아요.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웃음)"

- 지방대 학생들에겐 쉽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네요. 우리가 넘어야 할 관문인 것 같아요.
효정:"사회구조적인 문제도 해결돼야 하고, 사람들의 인식도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은송:"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학생들을 '지잡대생'이라고 부르는 것이라도 그만 해줬으면 좋겠어요."

2시간 동안 쉴 새 없이 함께 얘기를 나눴던 학생들은 '지방대를 다니는 이유 하나만으로' 겪었던 서러움이 많았다고 입을 모았다. 오랜만에 동기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며 웃었지만, 웃으면서 얘기하기에는 슬픈 일화들도 있었다. 얘기를 나누다보니, 서울과 지방의 거리가 더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서울에 있는 학생들에게 큰 바람은 없다. 바라는 거라곤, 그저 '지방대생'이라고 색안경 끼고 보지 말아달라는 거였다. 지방대에 다닌다고 해서 모든 일에 미숙한 것도 아니고, 개인마다 다르다는 것을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

학생들은 '서울공화국'의 완화와 지방대 학생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꿈꾸며 헤어졌다. 이들이 꿈꾸는 것처럼, '지방대'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그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태그:#지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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