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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 때는 가뭄이 들었고, 이삭이 한창 올라 올때는 태풍이 연거푸 왔습니다. 그 긴 시간을 이겨내고 황금들녘이 되었습니다.
 모내기 때는 가뭄이 들었고, 이삭이 한창 올라 올때는 태풍이 연거푸 왔습니다. 그 긴 시간을 이겨내고 황금들녘이 되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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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과 태풍 이겨낸 황금 들녘, 보기만 해도 마음 뿌듯

모내기 때는 가뭄이 들었고, 이삭이 한창 올라 올 때는 태풍이 연거푸 왔습니다. 그 긴 시간을 이겨내고 황금 들녘이 되었습니다. 지난 13일(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시골 어머니 집으로 내달렸습니다. 황금 들녘을 보니, 마음이 뿌듯했었습니다. 가뭄과 태풍을 이겨낸 벼를 보면서 참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농부 마음은 이때가 제일 기쁩니다. 지난봄부터 여름 내내 자식처럼 키웠던 곡식을 수확할 때, 힘들었던 모든 것이 씻긴 듯이 사라져버립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수확이 못하지?"(김동수)
"그렇지. 큰형님은 절반밖에 거두지 못했다."(동생)
"가뭄이 들어 너무 늦게 모내기를 했으니, 많이 날 리가(수확량) 없지."
"고생만 하고 별로 나지도 않고. 타작해보니까 쭉정이도 많더라."

타작을 하기 전 포대를 나락이 나오는 곳에 끼워넣고 있습니다. 이 때가 가장 설렙니다.
 타작을 하기 전 포대를 나락이 나오는 곳에 끼워넣고 있습니다. 이 때가 가장 설렙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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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얼마나 날까? 지난해보다 많이 날까? 아니면 적을까? 가뭄이 들었지만, 그래도 낫겠지? 라는 기대 반 설렘 반으로 포대를 나락이 나오는 곳에 끼워 넣습니다. 포대가 모자랄 정도로 많이 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포대가 모자릴 정도로 많이 나면 좋겠다."
"지난해보다 같이만 나도 다행이다. 아마 적게 날 거다."
"그래도 타작할 때마다 더 많이 나기를 다들 바라지."
"그런데 콤바인이 제대로 될지 모르겠다."
"왜?"
"아마 올해가 마지막일 것 같다."

"고장이라도 났나?"
"굴러가면 다행인데. 오늘만이라도 돌아가면 좋겠다."

콤바인이 타작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포대자루에 담는 일만 남았습니다.
 콤바인이 타작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포대자루에 담는 일만 남았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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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 멈춰버린 콤바인...

거의 생명이 다 된 콤바인입니다. 이제 논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에 콤바인을 살 수도 없습니다. 신형 콤바인 한 대가 4~5천만 원을 합니다. 중고도 쓸만한 것은 1500만 원 정도는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먹을거리만 하기때문에 비싼 콤바인을 구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마 내년부터는 다른 집 것을 빌려 타작을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올해만 굴러가면 됩니다. 콤바인이 타작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포대 자루에 담는 일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걱정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콤바인이 가다가 멈춰버렸습니다. 

"콤바인에서 냄새가 난다."
"문제가 생겼다."
"어디서?"

"기계를 뜯어봐야겠다."

동생은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한우도 잘 키우고, 농사도 잘 짓고, 기계도 잘 고치고, 심지어 집도 짓습니다. '형 만한 아우가 없다'는 말은 우리 집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공구를 가져와 한 곳을 분해하더니 '00베어링'이 터졌다고 합니다. 벼를 베면 나락만 포대에 담고, 지푸라기와 쭉정이 등은 바람에 날려보내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하는 풍로가 고장이 나버린 것입니다.

콤바인에서 갑자기 타는 냄새가 났습니다. 나락은 포대에 하나도 담기지 않았습니다. 나락을 베면 나락만 남고 지푸라기와 쭉정이는 풍로 역할을 하는 부품이 날려버려야 하는 데 고장이 나버린 것입니다.
 콤바인에서 갑자기 타는 냄새가 났습니다. 나락은 포대에 하나도 담기지 않았습니다. 나락을 베면 나락만 남고 지푸라기와 쭉정이는 풍로 역할을 하는 부품이 날려버려야 하는 데 고장이 나버린 것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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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로 역할을 하는 부품이 고장나. 나락과 쭉정이,지푸라기 반입니다.
 풍로 역할을 하는 부품이 고장나. 나락과 쭉정이,지푸라기 반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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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칠 수 있나?"

"베어링이 없어 고칠 수 없다. 농기구 수리점에 전화해서 정비 기사를 불러야지."
"고장이 나지 않았으면 오전에 다 벨 수 있을 것인데."
"어제부터 조금 이상했다. 소리가 났어. 점검했으면 고쳤을 것인데."

"그래도 정비사가 올 때까지 내가 분해는 해야지. 그래야 오면 바로 고칠 수 있어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절약할 수 있다."

동생은 콤바인을 분해하고, 형님은 바람에 지푸라기와 쭉정이를 날려보냅니다. 형과 누나는 학교 가는 바람에 혼자 따라 온 막둥이는 심심합니다. 할머니 집에 오면 조카들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역시 학교에 가 버렸습니다. 홀로 남은 막둥이가 심심해 합니다.

"아빠! 나 심심해요."
"큰아빠, 아빠, 삼촌이 있는데, 뭐가 심심하니."
"심심하단 말이예요."
"큰아빠가 쭉정이하고, 지푸라기를 바람에 날려보내는 것 보면서 놀아."
"아빠! 나 할머니집에 가면 안 돼요?"
"가서 뭐 할래. 텔레비전 밖에 안 볼 것 아냐."

큰아빠가 쭉정이와 지푸라기를 바람에 날려보내자. 따라왔던 막둥이는 심심하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다들 이렇게 타작을 했습니다.
 큰아빠가 쭉정이와 지푸라기를 바람에 날려보내자. 따라왔던 막둥이는 심심하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다들 이렇게 타작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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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빠가 쭉정이와 지푸라기를 바람에 날려보내자. 따라왔던 막둥이는 심심하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다들 이렇게 타작을 했습니다.
 큰아빠가 쭉정이와 지푸라기를 바람에 날려보내자. 따라왔던 막둥이는 심심하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다들 이렇게 타작을 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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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빠! 이렇게 하면 바람에 날아가요?"

"날아가지. 옛날에는 다 이렇게 했다."
"바람이 불어야 날아가잖아요?"
"그래, 바람이 많이 불면 되는데."

"아빠, 같이 놀아요."
"조금 있으면 다 고쳐. 그럼 우리 할아버지 산소에 다녀올까?"

내 나이 마흔 일곱, 아직 나락 한 가마니는 들 수 있습니다

잠깐 시간을 내 아버지 산소까지 다녀왔습니다. 다행히 농기구 정비사가 빨리 와서 수리를 했습니다. 다시 타작을 시작했습니다. 동생과 형님은 타작하고 저는 포대를 차에 싣기 위해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나이 마흔 일곱이지만, 그래도 한 포대는 들 수 있습니다. 보기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약 30kg 넘습니다.

"아빠, 힘세지!"
"아빠, 어떻게 무거운 것을 들 수가 있어요?"
"아빠가 아직 한 포대 정도는 들 수 있어."
"아빠, 대단해요."
"막둥이도 나중에 커면 이 정도는 들 수 있을 거야."


마흔일곱. 아직 나락 한 가머니는 들 수 있습니다.
 마흔일곱. 아직 나락 한 가머니는 들 수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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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힘 자랑을 막둥이가 좋아합니다. 지금까지도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분으로 생각했는데, 나락 가마니까지 드는 모습을 본 막둥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가을 들녘에서 볏짚을 묶는 아주머니들도 있습니다. 다 아는 분들입니다. 소밥을 주기 위해 볏짚을 묶고 세웁니다. 기계가 있는 분들은 단박에 끝내지만, 기계가 없는 분들은 이렇게 손으로 하나 하나를 빌려서 묶고 세웁니다. 품이 두 배, 세 배 아니 열 배는 더 듭니다. 하지만 사람의 손이 얼마나 위대한 지 모릅니다. 저 많은 볏짚을 언제다 묶나 생각했지만, 우리집 타작을 다 끝내자, 논 절반을 다 묶었습니다. 티끌모아 태산입니다.

아주머니들이 볏짚을 세우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소밥입니다. 기계가 없는 분들은 아직도 손으로 볏짚을 말립니다.
 아주머니들이 볏짚을 세우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소밥입니다. 기계가 없는 분들은 아직도 손으로 볏짚을 말립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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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들이 세운 볏짚. 사람이 손이 참 무섭습니다. 언제 다 할까. 생각했는데 이렇게 세웠습니다. 티끌모아 태산입니다.
 아주머니들이 세운 볏짚. 사람이 손이 참 무섭습니다. 언제 다 할까. 생각했는데 이렇게 세웠습니다. 티끌모아 태산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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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작을 다 끝냈습니다. 그럼 얼마나 났을까요?

"작년에는 얼마 났노?"
"작년이 61가마니 났다."
"올해는 72개 났다."
"열 가마니다 더 났네."
"정말 많이 났다. 옆에 논은 지난해 15개 났는데 올해는 20개 났다."
"생각보다 많이 났네?"
"응. 올해는 농약 한 번도 치지 않았다가 아이가."

정말 많이 났습니다. 가뭄과 태풍을 이겨내고 대풍이 들었습니다. 다른 지역은 태풍때문에 피해를 많이 입었지만, 우리 동네는 지난해보다 풍년입니다. 벼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꾸벅하고 싶습니다. 수고한 큰형님과 동생에게도 고맙고, 무엇보다 풍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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