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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 불출석은 매년 되풀이되는 고질적인 문제다. 증인이 국회 권위를 무시하고 불출석하거나 '시간만 때우면 그만'이라고 하는 풍토는 이번에 바로 잡도록 하겠다. 모든 불출석 증인은 고발조치하도록 각 상임위에서 노력해주시기 바란다."

2010년 10월 26일 김무성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국정감사 불출석 증인' 문제를 지적하며 적극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책임이 있거나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주요 증인들이 출석을 회피하여 국감 진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국회는 국회법에 따라 동행명령장을 발부하거나 재출석을 요구하고, 계속적으로 출석을 회피할 시에는 고발조치할 것이다."

2012년 10월 9일 이언주 민주통합당 원내대변인의 말이다. 2년이 지났고, 당과 사람이 다른데도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올해 국감장에서도 증인석 곳곳이 비어 있는 풍경은 여전했다.

국감 증인 불참자의 64.5%가 재계 인사... 대부분 '해외 출장 갑니다'

2012년 10월 5일~11일 열린 국감에 불출석한 증인 현황
 2012년 10월 5일~11일 열린 국감에 불출석한 증인 현황
ⓒ 봉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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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10월 5일부터 11일까지 열린 모든 국감의 증인 출석 현황을 파악한 결과, 전체 200명 가운데 31명이 국감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증인 출석률이 가장 저조한 곳은 재계였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이승한 홈플러스 대표 등 기업인 불참자는 20명으로 64.5%를 차지했다. 한승수 전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의장, 정인철 전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 등 공직자 출신은 5명, 김재철 MBC 사장 등 언론계 인사는 3명이었다.

사안별로도 재계 인사의 불참률이 가장 높았다. 국회는 대형마트·기업형 슈퍼마켓(SSM)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 등을 따져 묻기 위해 관련 기업인 8명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11일 정무위원회 국감장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유경 신세계그룹 부사장이 나타나지 않았다.

프레스톤 드레이퍼 코스트코 코리아 대표는 8일 지식경제위원회 국감에 출석했지만, 이승한 홈플러스 대표와 최병렬 이마트 대표, 노병용 롯데마트 사장은 불참했다. 그 뒤를 이어 대선 후보 관련 의혹(4명), 4대강 공사 담합(3명)과 노조파괴 의혹(3명), YTN·MBC 파업(2명)순으로 불출석 증인이 많았다.

특히 대형마트·SSM 문제는 대선 의제인 '경제민주화'와 긴밀히 닿아있어 여야 모두 주목하고 있는 사안이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은 정지선 회장과 정유경 사장을, 야당은 정용진 부회장과 최병렬·이승한 대표, 노병용 사장, 드레이퍼 대표를 증인으로 요청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여야 모두 요청한 증인이었다. 하지만 드레이퍼 대표만 빼고는 모두 '해외 출장'을 이유로 불출석했다.

18대 국회서 30명만 고발... 처벌 받은 11명 모두 200~300만원 벌금

박민식 새누리당 정무위 간사는 11일 국감에서 "여야를 넘어 골목상권 침해, 일감몰아주기 등에 대해 국회와 정부, 대기업 관계자가 나와 사회적 합의의 장을 만들어보자는 뜻으로 고심 끝에 증인을 채택했다"며 "(신동빈 회장 등 불참자는) 국회의 권위를 떠나서 국민들의 요구를 한 순간에 묵살했다"고 비판했다.

야당 간사인 김영주 민주통합당 의원도 "고통 받는 서민과 무너진 중산층을 위한 것이지 우리가 그들(재벌)을 벌하자고 증인으로 부른 게 아니다"라며 "불출석 증인들이 반드시 종합국감에 나오게 하고, 거기도 불출석하면 국회법에 따라 고발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당 상임위 위원장은 정당한 이유 없이 국감장에 나타나지 않은 증인에게 '국회사무처소속 공무원과 함께 지정장소로 출석하라'는 동행명령을 내릴 수 있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는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한 증인 등을 징역 3년 이하 또는 벌금 1000만 원 이하로 처벌한다는 조항도 있다.

그러나 김무성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모든 불출석 증인을 고발조치하기 바란다"던 18대 국회가 실제로 검찰에 고발한 불출석 증인은 30명뿐이다. 이마저도 대부분 '혐의 없음' '기소 유예' 등으로 처리됐다. 처벌을 받은 11명도 모두 200만~300만 원짜리 벌금형을 받는 데 그쳤다. 매년 '솜방망이 처벌'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국감에 불참한 재벌 또는 재벌2세가 처벌받은 경우도 드물다. 2011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감 불출석으로 검찰에 고발당한 최재원 SK그룹 부회장은 '기소 유예'처분을 받았다. 당시 최 부회장은 SK그룹 비자금 의혹 관련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제주도 출장 등을 이유로 불참했다.

'솜방망이 처벌, 짧은 답변시간, 무작정 채택' 등 개선 과제 수두룩

처벌 강화에 앞서 국감 증인 심문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ㄱ의원실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증인들의 답변시간을 충분히 보장해야 '(기껏 증인으로 나가봐야 시간이 짧아)답변도 제대로 못 한다'는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그렇게 제도를 고친 다음에도 안 나오면 문제 삼아야 한다"며 "(불출석한 모든) 증인들이 법적으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강제 구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회가 대형마트 문제처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출석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증인이 정식으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할 때도 있으니 강제로 부르는 게 해법이 되긴 어렵다는 뜻이다.

해마다 국감을 감독하는 시민단체 '법률소비자연맹'의 국정감사 엔지오(NGO)모니터링단(아래 모니터링단)은 2011년 9월 29일에 낸 <국정감사 중간평가 보고서>에서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고쳐지지 않고 여전했던 국감진행 문제(17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와 같았던 점)' 중 하나로 증인 불출석을 꼽으며 "증인 채택 방식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니터링단은 늘 그렇듯, 이번 국감이 끝나면 평가보고서를 발표한다. '증인 불출석'이란 다섯 글자는 올해 보고서에도 어김없이 등장할 전망이다.


태그:#국감, #국감 증인, #재벌,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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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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