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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언론의 '2012년판 북풍 도발'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북방한계선(NLL)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거나 북한의 핵보유는 정당한 조치라고 말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9일 1면 사이트 톱기사 <"노 대통령, 김정일 만나 NLL 주장 않겠다고 말해">와 전면을 할애한 3면 기사 등에서 정문헌 의원이 지난 8일 국정감사장에서 제기한 주장을 거의 그대로 옮겨 적다시피 한 조선일보는 오늘(10일)자 6면 <盧 "NLL, 영토선 아니다"… 재임중 軍과 계속 갈등>이란 기사에선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당시 군과 얼마나 '극심한' 갈등을 빚었는지를 소개하는 데 비중을 실었습니다.

조선일보 2012년 10월9일자 3면
▲ 조선일보 조선일보 2012년 10월9일자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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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정문헌 주장' 근거 없으니 '노무현-군 갈등' 집중 부각


사실 조선일보의 이 같은 지면배치를 예상 못한 건 아닙니다.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의 'NLL 발언'은 한마디로 자신의 일방적인 주장 외에는 근거가 없는, 황당하고 무책임한 정치공세이기 때문입니다.

대선 국면에서 엄청난 파장이 일 것이 분명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주장했다면 정 의원 스스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분명하게 제시하는 게 온당한 순서일 겁니다. <한국일보>가 10일자 사설에서 지적했듯이 "엄청난 파장이 일 게 뻔한 내용을 툭 던져놓고 '내겐 더 이상 묻지 말라'는 것은 국민을 우습게 아는 건방진 책임회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정문헌 의원은 추가적인 근거를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내가 대화록 내용을 듣거나 본 것에 그쳤다면 노 전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그렇게 상세하게 공개할 수 있겠느냐. 지난 정부 인사들은 상황이 곤혹스러우니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밖에 없을 것"(<한국일보> 6면)이라는 무책임한 주장만 쏟아내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2012년 10월10일자 6면
▲ 조선일보 조선일보 2012년 10월10일자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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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10일 지면은 이런 상황과 배경을 감안해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9일 자신들의 지면에 사설까지 동원, 대대적으로 정문헌 의원의 주장을 거의 일방적으로 실었는데 그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나오지 않으니까 '노무현 대통령, 군과 극심한 갈등'과 같은 기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렇게라도 해서 정문헌 의원의 근거 없는 주장을 일방적으로 보도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겠다는 거지요. 노무현 대통령과 군의 NLL 갈등을 '일지로 정리해서' 구구절절 설명해 놓은 걸 보면 그냥 웃음밖에 안 나옵니다.

비교적 공정했던 <중앙일보>, '조동문' 대열에 합류하려는가

9일 지면에서 조선·동아·문화일보(조동문)와는 달리 비교적 공정한 자세를 견지했던 <중앙일보>가 10일자 지면에서 다소 '흔들리는' 양상을 보입니다. 9일과 마찬가지로 10일 역시 지면(10면)에선 나름 공정한 입장을 견지하고는 있지만 사설에선 정문헌 의원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는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앙일보>가 정 의원의 주장을 신뢰할 만한 나름의 근거를 확보한 것도 아니고 정 의원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제시한 것도 아닌데 10일자 사설에서 갑자기(!) "정 의원은 2009~2010년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지내면서 노 대통령 정부의 대북정책을 면밀히 검토한 당사자로서 대화록을 직접 보지 않고는 알기 어려운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밝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더니 "남북 정상회담 비공개 대화록의 존재 여부와 그 내용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조사해 밝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사설 말미에 "만일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정부는 이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한 부분입니다. <중앙일보> 사설은 제가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방식보다는 직접 한번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10일자 <중앙일보> 사설 마지막 단락입니다.

중앙일보 2012년 10월10일자 사설
▲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 2012년 10월10일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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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정부는 이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북한이라는 당사자가 있는데 실제 있었던 일을 없다고 부정하는 것만으로는 수습이 어려울 것이다. NLL이 실질적인 남북 경계선이라는 점을 확고히 함으로써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원천 무효화하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 반대로 불가피하게 북한과 협상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어려운 문제라고 덮어두려고만 해서 풀릴 일이 아니다.

이건 정문헌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것을 전제로 앞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적시해놓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무책임한 정치공세이자 근거가 없는, 거의 소설 수준의 일방적 주장입니다. 노무현재단이 9일 논평에서 언급한 "허위사실을 사실인 것처럼 포장해 확산시키는 북풍(北風)몰이"에 불과하다는 얘기입니다.

진위 여부가 밝혀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정문헌 의원의 주장이 허위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소설 수준의 사설'을 내보내는 <중앙일보>의 저의가 의심스러울 따름입니다. 진정 <중앙일보>는 '조동문' 대열에 합류하려는 것일까요.

근거 제시 못하는 정문헌 의원을 비판하는 언론이 없다

여기서 '2012년판 북풍도발'에 적극 가세한 <동아일보>와 <문화일보> 지면까지 소개하진 않겠습니다. 보도내용은 다르지만 근거 없는 정 의원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보도패턴을 보이고 있는 건 거의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부 관계자 "정 의원 발언은 핵심 빠져 … 노·김 대화 더한 내용 있다">와 같은 '소설 수준의 기사'를 실은 <문화일보>(9일자 3면)는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는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제목으로 뽑는 '아니면 말고식 보도'를 쏟아냈는데, 정말이지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문화일보 2012년 10월9일자 3면
▲ 문화일보 문화일보 2012년 10월9일자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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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조중동문'의 '2012년판 북풍조성' 시도보다 저를 더 절망스럽게 하는 건,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면책특권에 기대 일방적 주장만 하고 있는 정문헌 의원을 비판하는 언론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정치인이 "비겁하게 면책특권의 그늘에 숨어 일부 언론과 벌이는 주고 받기식의 악의적인 언론플레이"(노무현재단 9일 논평)를 보인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근 언론의 보도행태는 도를 넘어서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대선을 앞두고 한 여당 의원에 의해 근거 없이 제기된 정치공세가 대서특필되고 이것이 정치쟁점화하고 있지만 이런 현상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언론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겁니다.

<한국일보>가 사설에서 지적한 것처럼 "대선후보간 공방이 치열한 와중에 (NLL 주장이) 별 근거도 없이 제기됨으로써 이 문제는 대선과정에서 정치이슈화가 불가피하게 됐고, 어떤 형태로든 북한에 대선개입 명분을 주게 된 꼴"이 됐는데도, 이를 비판하는 언론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한국 언론의 퇴보가 어느 정도로까지 심각하게 진행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일보 2012년 10월10일자 사설
▲ 한국일보 한국일보 2012년 10월10일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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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개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 시대의 핵심과제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조중동문'이 왜 이런 무리수를 두는 걸까요. 혹자는 말합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이 정체상태를 보이고, 최근 외부인사 영입문제 등을 놓고 내분 양상까지 벌어지는 등 지리멸렬한 상황을 보이자 '2012년판 북풍 조성'을 통해 위기상황을 타개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 아니냐고.

저는 그렇게까지 '정치적인 해석'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만, 일부 언론의 납득불가 보도행태를 보면 이 같은 해석이 한편으로 이해가 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당시 남북정상회담 참석자들은 모두 정 의원의 주장을 "가당치도 않은 허위사실"이라거나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음에도 '조중동문' 등 일부 언론은 근거 없는 주장을 일방적으로 보도하거나 사실을 전제로 한 논평까지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문화일보>는 얼굴도 없고 실체도 없는 '정부관계자'까지 등장시켜 밑도 끝도 없는 주장을 고스란히 받아쓰는 최악의 행태를 보였습니다.

이번 사건은 북풍이라는 고질병에 받아쓰기 언론 관행이라는 고질병까지 겹친, 한국 언론의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보여준 일대 사건입니다. 특히 치유불가 '악성종양' 상태인 일부 수구언론의 최근 작태는 이 땅에 언론개혁이 여전히 시대적 과제임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언론개혁은 앞으로도 계속 진행시켜 나가야 할 핵심과제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홈페이지에도 올렸습니다.



태그:#조중동문, #북풍, #노무현, #N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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