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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에서 28km 떨어져 있는 백도.
 거문도에서 28km 떨어져 있는 백도.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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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동백, 등대, 백도 등등. 이생진 시인은 시집 <거문도>에서 "적어도 열흘쯤의 여유가 있다면 사흘은 자연에 취하고, 사흘은 인물에 취하고, 나머지 나흘은 역사에 취해볼 만한 곳이다"라고 했다.

거문도를 찾아간다. 거문도는 행정구역으로는 여수시다. 여수에서 남쪽으로 80㎞ 정도 떨어져 있다. 그 섬에는 역사적인 사건의 무대이기도 했고, 한때 수산물이 많이 나서 파시가 열리기도 했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호기심에 찾고, 아름다운 절경을 보려고 찾아가는 섬이 되었다.

백도로 가는 길, 아무도 따라 오지 않는다

여수여객선터미널에서 거문도 가는 배를 탄다. 오전 7시 40분. 여객선은 여수항을 빠져나와 빠르게 달린다. 시속 60㎞ 정도? 처음에는 창밖의 섬 풍경을 즐기다가 어느새 선실에 켜 놓은 TV에 열중한다. 비슷한 바다풍경이 더 이상 관심을 끌지 못한다. 배는 나로도, 손죽도, 초도를 거쳐 거문도에 도착한다.

거문도는 동도, 서도, 고도를 통칭하는 이름이다. 세 개의 섬에는 900여 명이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행정구역 이름도 삼산면이라는 지명을 가졌다. 거문도 여행 시작은 여객선 종점인 고도에서부터 시작한다. 배에서 내리면 고도는 섬 같지 않게 가게들이 바닷가를 따라 줄지어 있다. 사람 사는 또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다.

거문도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백도를 유람하는 것이다. 백도를 보지 않고는 거문도를 다녀왔다고 할 수 없다. 근데 백도를 가려면 다시 배를 타야 한다. 백도는 거문도에서 28㎞ 떨어져 있다.

백도(白島)라는 지명은 섬 숫자가 백(百) 개에서 하나가 모자라서 백도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 섬 숫자가 39개니 그냥 섬이 많아서 백도라고 했다거나 섬이 흰빛을 띠어서 붙여졌다고 생각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유람선을 타고 1시간 정도 달리면 바다 한가운데 일렬로 늘어선 섬들이 보인다.

백도로 가는 길
 백도로 가는 길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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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로 가는 길
아무도 따라 오지 않는다.
태양은 그곳에서 떠서 반대 방향으로 가는데
아무도 왜 가느냐고 묻지 않는다
고기 비늘 같은 바다의 비늘이
햇빛에 은빛으로 움직인다
아득한 곳이라 지나가는 물새조차 없다

이생진 시인의 <백도로 가는 길> 중 일부

유람선은 백도를 빙빙 돌면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린다. 섬들이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멋을 부리고 있다. 바다에 솟은 바위들. 다른 무인도와 다른 느낌은 바위들이 뾰족뾰족한 느낌이다. 그냥 바위들이 아니다. 그래서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백도는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섬에 오를 수 없다. 그냥 바라만 보아야 하는 섬이다. 내려서 다리라도 쉬었으면 좋겠는데. 백도를 뒤로하고 거문도로 향한다. 돌아오는 길은 허무하다.

거문도 등대 가는 길, 가다가 하늘을 보고, 가다가 바다를 보고

거문도 등대를 찾아간다. 거문도는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별수 없이 택시를 타거나 걸어가야 한다. 등대까지는 4㎞ 정도다. 시간이 여유 있다면 삼호교를 넘어 쉬엄쉬엄 걸어가도 좋다. 걷기에 힘들면 차가 다니는 곳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1.4㎞ 정도를 걸어가는 것도 괜찮다.

등대 가는 길은 두세 명이 이야기하면서 걸을 수 있는 편안한 길이다. 바다를 보면서 걸어간다. 이생진 시인은 <거문도 등대로 가는 길>에서 "가다가 하늘을 보고, 가다가 바다를 보고, 가다가 꽃을 보고, 가다가 새를 보고"라고 노래했다.

거문도 등대 가는 길. 숲 사이로 보이는 등대에 순간 감탄을 하게 된다.
 거문도 등대 가는 길. 숲 사이로 보이는 등대에 순간 감탄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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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를 바라본다는 관백정. 관백정에 오르면 바다는 하늘과 맞닿아 수평선이 된다.
 백도를 바라본다는 관백정. 관백정에 오르면 바다는 하늘과 맞닿아 수평선이 된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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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숲들은 동백나무가 많다. 동백꽃이 필 때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쉬엄쉬엄 걸어가면 하늘 높이 솟은 하얀 등대가 보인다. 거문도 등대는 1905년 남해안에서 처음으로 불을 밝혔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배들을 위해 세운 게 아니라 일본 배들을 길잡이 하기 위해서 세워졌다는 점이다.

등대에서 보는 풍경은 망망대해다. 제주도도 보일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다. 백도를 바라본다는 관백정(觀白亭)에서 수평선 위로 희미하게 보이는 백도를 볼 수 있다. 시원한 풍경은 한참을 바라보아도 좋다. 바다, 수평선 그리고 하늘.

시간이 많이 늦어 버렸다. 등대에서 다시 걸어서 나온다. 해가 바다로 떨어진다. 바다는 비늘이 일렁거린다. 고독의 시간. 뭍으로 가는 여객선은 이미 떠나고 하루를 자고 가야 한다. 식당 2층 민박집에 들었는데 생각보다 깨끗하다.

등대에서 나오는 길에 만난 거문도 일몰. 침묵의 시간이다.
 등대에서 나오는 길에 만난 거문도 일몰. 침묵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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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후 어둠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거문도 풍경
 해가 진후 어둠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거문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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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항 방파제에서 본 일출.
 거문도항 방파제에서 본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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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당당했던 사업 참여가 지우고 싶은 과거로
아침에 일찍 눈을 떴다. 방파제 위에서 일출을 본다. 거문도에서 맞는 일출. 조용함. 검은 바다가 점점 밝아지는 기분이다. 아침을 먹고 숙소를 나와 두리번거린다. 방파제 끝에 '거문도항수축기념비'가 섰다.
소화 13년이라고 쓰여 있는 걸로 봐서는 1938년에 거문도항을 만들었다고 알려주고 있다. 당시는 일제 강점기. 기단에는 공사개요를 적었다. 동방파제와 서방파제 길이, 매립면적, 기공은 소화11년 10월, 준공은 소화 13년 11월, 공사비는 19만7천원이 들어갔다고 적어 놓았다.
뒷면에는 공사와 관련된 내용 같은데 정으로 쪼아서 알아볼 수 없도록 하였다. 새긴 형식으로 보아 비용을 댄 사람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많을 걸 생각하게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당당했던 이름이 해방이 되고 나서는 창피했나 보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나 행위들이 후손들에게는 창피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거문도항 방파제에 서있는 거문도항수축기념비
 거문도항 방파제에 서있는 거문도항수축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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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신사 터.
 거문도 신사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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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거리래야 한 바퀴 돌면 끝난다. 골목 사이로 "신사 가는 길" 표지판이 있다. 신사라는 말에 호기심이 간다. 골목으로 들어선다. 이 작은 섬에도 신사를 만들어 순박함 섬사람들에게 참배를 강요했을 당시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신사 터로 오르는 계단이 높다. 옛날에는 상당히 위압적이었겠다. 계단 옆에는 몸돌이 없어진 석등 기단석이 풀밭에서 세월을 한탄하고 있다. 계단을 다 오르면 신사 터만 있다. 신사가 있었던 자리는 거문도 일대가 다 내려다보인다. 거문도 제일 좋은 곳에 신사를 짓고 우러러 보게 했던 당시 일본인들의 비열함이 느껴진다.

영국은 우리나라를 구원하려던 좋은 나라였을까?

거문도에는 또 하나의 아픈 역사적 사건이 있다. 거문도 점령 사건. 영국의 동양함대가 러시아의 조선 진출을 미리 봉쇄하기 위해 1885년 3월 1일부터 1887년 2월 5일까지 약 2년간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한 사건이다. 영국군이 주둔했던 흔적이 영국군 묘지로 남아있다. 거문초등학교를 지나 돌담길을 따라 걸어간다. 바다풍광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바다를 보면서 굽이굽이 걸어서 영국군 묘지로 올라간다.

영국군 묘지는 돌담으로 잘 정비되어 있고 기념 조형물도 만들어 놓았다. 현재 남아 있는 묘는 2기다. 그나마 하나는 돌로 되었고 하나는 나무 십자가다. 돌로 된 비석은 잘 다듬어서 조형미가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반으로 부러진 것을 붙여 놓았다. 예전에는 이곳에 9기가 있었단다.

일본인들이 훼손을 했다고도 하나, 영국군이 물러가고 거문도 주민들에게도 환영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른 지금 단지 영국이라는 우호적인 이미지로만 접근할 것은 아닌 것 같다. 영국군이 처음 거문도에 상륙했을 때는 무력으로 주민들을 제압했을 거며, 섬사람들의 땅을 임의로 빼앗아 사용했을 것이다. 다 같은 도둑이었을 것인데….

거문도 영국군 묘지. 해밀턴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영국군이 불법 점령할 당시 해군 제독 해밀턴의 이름을 따서 거문도를 '포트해밀턴'이라고 불렀다.
 거문도 영국군 묘지. 해밀턴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영국군이 불법 점령할 당시 해군 제독 해밀턴의 이름을 따서 거문도를 '포트해밀턴'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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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갈치 경매 풍경. 관광객들과 어울려 활기가 넘친다.
 거문도 갈치 경매 풍경. 관광객들과 어울려 활기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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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러 여객선터미널로 내려간다. 가는 길에 수협에서는 갈치경매가 한창이다. 은빛갈치라더니 정말 반짝거린다. 생선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놀랍다. 경매로 거래되는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다. 거문도 여행 온 사람들은 갈치를 보고 그냥 갈 수 없다. 섬은 수산물이 풍성해야 활기를 띈다. 여객선터미널은 뭍으로 나가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이생진 시인은 거문도를 <조용한 소설 같은 곳>이라고 노래했다. 가보면 알게 되지만/예나 지금이나/혹은 먼 미래나/거문도는 조용한 장편소설/다 읽고 나면 그 외로움을 알게 된다. 나는 아직도 장편소설을 읽고 있는 중이다. 언제쯤이나 거문도를 다 읽을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거문도 운항 여객선 : 여수 출발 07:40 13:00, 36,600원/거문도 출발 10:30, 15:30, 36,100원/운항시간은 2시간 20분/예약은 가보고 싶은 섬(http://island.haewoon.co.kr)

거문도 내 이동 방법 : 고도와 서도는 삼호교로 연결되어 있어 택시나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고, 동도는 서도선착장에서 도선으로 이동이 가능함. 거문도 가는 여객선은 동도나 서도를 들렀다 감.

백도 가는 유람선 : 29,000원

거문도택시 : 등대가는 길 입구까지 1인기준 8,000원(편도), 8명이상 3,000원/거리마다 요금은 달라지며 가장 긴 거리인 서도 끝까지는 30,000원

자전거 대여 : 1시간당 4천원, 1일 2만원



태그:#거문도, #백도, #거문도 등대, #영국군 묘지, #이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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