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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월평주공아파트 1단지 전경
 대전 월평주공아파트 1단지 전경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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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독거노인이 영구임대 아파트 관리 사무소 측의 무성의한 업무처리로 겨울나기를 걱정하고 있다. 1년 8개월을 기다려 얻은 영구임대아파트 입주자격이 취소된 사실을 5개월이 지난 최근에서야 알게 된 때문이다.

정모(86, 여)씨는 대전 서구 괴정동에서 홀로 생활해오고 있다. 정씨의 외아들은 몇 해 전 지병으로 갑자기 숨졌다. 남편의 묘지 옆에 아들을 묻은 정씨는 허름한 집을 세를 얻어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주어지는 생계지원비로 홀로 살아가고 있다.

그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외로움과 추위다. 특히 겨울이면 모든 창문을 비닐로 두 겹 세 겹으로 둘러막았지만 낡은 집은 외풍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동여맨 비닐로 환기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

소식 없어 전화하자 "계약하지 않아 자격 취소됐다"

지난해 2월, 사정을 안 인근 동사무소에서 독거노인을 위한 저렴한 영구임대아파트를 안내했고, 동사무소를 통해 월평주공아파트(대전시 서구 월평동) 1단지 8평형 입주를 신청했다. 영구임대아파트는 기초생활수급자 등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임대기간이 길고 비용이 저렴하다. 특히 아파트 단지 내에 사회복지관 등 여러 복지시설들이 갖춰져 있어 독거노인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입주를 하려면 신청을 한 후 통상 최소 1년 6개월에서 2년 가량을 기다려야 한다.

정씨는 이 달 초경 해당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언제쯤 입주가 가능한지 문의했다. 아파트 입주를 신청한 지 1년 8개월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는데다 겨울이 가까워 오자 조바심이 난 것이다.

하지만 아파트관리사무소 측은 지난 5월 입주계약을 하지 않아 자격이 취소됐다고 밝혔다. 확인 결과 아파트관리사무소 측은 지난 5월 20일경 등기우편을 통해 정씨에게 '입주할 동과 호수가 정해졌으니 계약을 체결하라'는 안내문을 발송했다.

눈이 어두운 정씨는 우체국 집배원으로부터 아파트에서 온 우편물이라는 얘기를 들었으나 분양홍보물로 치부하고 뜯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관리사무소 측은 정씨가 계약기간 내에 입주계약을 체결하지 않자 지난 6월 1일자로 입주 자격을 취소시켰다. 정씨가 이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다시 입주신청을 한 후 2년 정도를 또 다시 기다려야 한다.

관리사무소 "등기우편 보냈다",  독거노인 "전화 한통 못하나"

대전 월평주공아파트 주민들
 대전 월평주공아파트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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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는 "눈이 나빠 글씨를 잘 읽을 수 없어 등기우편물을 꼼꼼하게 챙겨 읽지 못했다"며 "우편물을 잘 살펴보지 못한 불찰이 있지만 관리사무소 측에서 전화 한 통만 해줬어도 이렇게 허망한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내가 확인하기 전까지 5개월이 지났지만 입주예비자 자격이 취소됐다는 사실조차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이에 대해 해당 월평주공아파트 1단지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입주예비자 순번이 되면 배달증명으로 계약을 하라는 안내문을 보낸다"며 "우편물이 반송되면 몰라도 정씨 할머니와 같이 우편물을 본인이 수령한 경우에는 따로 전화를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업무가 많아 입주예비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기는 어렵다"며 "지적이 있는만큼 이후부터는 신경을 써보겠다"고 덧붙였다.

대전 월평주공1단지 관리사무소
 대전 월평주공1단지 관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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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대전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도 "등기우편으로 예비입주자 자격이 됐음을 알린 후 별도로 전화연락을 하지 않는다"며 "등기우편을 발송하면 법적으로도 업무하자가 없다"고 말했다.    

다시 2년 기다려야..."겨울 두 번 더 나야하는데"

입주계약 자격은 월평주공아파트 1단지를 기준으로 분기별로 평균 약 30명 정도(연 약 120여명)에게 주어진다. 이중 절반 정도가 실계약으로 이어진다.

정씨는 "분기별로 계약을 하지 않는 15명에게 전화 한통만 하면 나처럼 내용을 몰라 기회를 놓치는 사람은 없지 않겠냐"며 "입주를 하기 위해 몇 년을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린다면 이렇게 성의 없이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8일 오후 인근 동사무소를 찾아 다시 월평주공아파트 1단지 입주를 신청했다. 그는 독거노인 아파트에 입주하기 전까지 두 번의 겨울을 어떻게 넘겨야할 지를 걱정하고 있다.


태그:#독거노인, #영구임대아파트, #월평주공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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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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