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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 책겉그림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 오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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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적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들과 그 아들을 데리고 다니는 엄마가 그들이죠. 엄마와 아들은 내가 볼 때마다 손을 맞잡고 학교를 가죠. 또 학교 수업이 끝나 집으로 가는 길목에도 정답게 손을 잡고 갑니다.

물론 그 엄마와 그 아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다릅니다. 엄마는 늘 무표정한 모습으로, 아들은 늘 웃는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죠.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그 아들에게 좀 더 따뜻한 말을 건네며 인사를 나눕니다.

처음 그 모자(母子)를 알게 된 때가 3년 전쯤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 집 셋째 아들을 맡기던 그 어린이집 앞에서 가끔씩 마주치곤 했죠. 처음엔 몰랐는데, 차츰차츰 그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지적장애아들이 배우고 있는 '통합반'에 그 아이가 다닌다는 것도 알기 시작했죠.

그 때는 교회 앞에서 따뜻한 커피를 나눠주고 있을 때였으니, 하루에도 두 번씩은 꼭 마주쳤습니다. 한 번은 커피를 나눠주던 아침 시간 때였고, 또 한 번은 우리 집 셋째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오던 퇴근 시간 때였죠. 그때마다 그 아들과 그 엄마를 대하곤 했습니다.

"이 책 한 번 읽어보세요. 아이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아서요."
"고맙습니다."

어느 날 그 엄마에게 책 한 권을 건네주면서 전한 이야기였죠. 그때 준 책 이름이 무엇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다만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자식들이 훌륭하게 자라난 모습을 담은 책이었죠. 불행을 딛고 온갖 역경을 헤쳐낸 모험담 같은, 그야말로 성공신화를 일군 책이었죠.

그때는 내 딴에 제법 잘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뭔가 모방심리를 일으켜서 그 아이를 성공적으로 키워낼 수 있는, 답안지 같은 책을 준 걸로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최근에 내 아내가 그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듣고서는 망치로 머리를 쾅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어머니 정도 되니까,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맡기신 게 아닐까요?"
"그런 말을 너무도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위로도 되지 않습니다."

나도 그렇고 내 아내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어머니를 그렇게 위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지적 장애아를 낳아 기르는 게 아니라, 그걸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되니까, 그런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격려한다는 것 말이죠. 하지만 그 어머니에겐 그게 립 서비스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런 어머니에게 뭐라고 위로해야 제대로 된 격려일까요?

김난도 교수가 쓴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책에서 그에 알맞은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모르파티'(Amor Fati), 이른바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것 말이죠.

이 책에도 나온 바 있지만,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어느 남학생에게 온갖 불행이 닥쳐왔다고 하죠. 어머니는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고, 그 치료비를 대느라 집안 가세가 기울고, 집이 없어 조그만 차에서 넉 달을 지내야 했고, 그 뒤로 힘겹게 그 암을 이겨냈지만 자신과 형이 군대 간 사이에 엄마의 병이 재발하여 집안이 완전 쑥대밭 된 상황. 그때 김난도 교수가 그 학생, 그 청년에게 해 줬던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고 하죠.

"'신은 누군가에게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의 시련을 준다'는 말이 있던데, 이 아이의 신은 왜 그리도 모질까, 고난은 장마철 집중호우처럼 왜 저렇게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일까, 누군가의 사정이 이렇게 될 때까지 이 사회는 도대체 무엇을 하며 방관하고 있었을까, 원망을 삭이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한 참을 머뭇거리다가 겨우 꺼낸 말이 있었다. 조국 교수가 자주 인용한다는 한마디. 니체의 책에서 읽었던 한마디. 아모르파티. 네 운명을 사랑하라."(66쪽)

이 책은 말합니다. 청춘만 아픈 게 아니라 어른들도 무척이나 아프다고 말이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만 갈등하고 흔들리는 게 아니라 어른들도 충분히 흔들리며 떨고 있다고 말이죠. 나팔꽃도 밤새 수없이 파르르 떠는 그 '떨림'을 통해 한 단계 주걱 손을 잡고서 올라서는 것처럼, 어른들도 수없는 고통의 밤을 지새우며 어른으로 올라선다는 것이죠. 그야말로 천 번이나 되는 흔들림과 갈등을 겪으면서 말이죠. 

물론 또 다른 충고도 곁들여주죠. 직장에 사표를 내고 싶어도 자기 발전을 가져다준다면 더 눌러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 없이 돈만 버는 것이라면 과감히 사표를 던지라는 것, 직장에서 잘렸을 때 남들 다하는 벤치마킹보다는 남다른 퓨처마킹(future-marking)에 눈을 돌리라는 것,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대운(大運)을 받고자 한다면 매일 '신발 정리'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 많은 사람에게 지병이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오래 살게 하는 비결이 될 수 있다는 것들이 그것이죠.

그 밖에도 중국의 청두에서 봤다던 '모죽' 이야기는 내 가슴에 큰 울림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모죽이란 대나무를 일컫는 것인데, 그것은 씨를 뿌리고 5년 동안은 작은 순이 나오는 것 말고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하죠. 그러다가 다섯 번째 해가 끝나갈 무렵의 어느 순간부터 하루에도 몇 십 센티씩 무서운 속도로 자란다고 하죠. 그것처럼 도약을 위한 준비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죠. 바꿔 말하면 '열정을 습관화하라'는 그런 뜻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깊은 위로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격언 정도가 될 수 있는 이 책. 젊은 청춘들에게는 크나큰 격려가 될 수 있고 또 나이 지긋한 어른들에겐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 있는 이 책. 다만 나에게는 가볍지만 또 다른 큰 울림을 선서한 이 책. 지금 내게 주어진 힘든 이 길을, 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여 사랑하라는, 그 큰 가르침을 깊이 새기고자 합니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어른아이에게

김난도 지음, 오우아(2012)


태그:#김난도 교수의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아모르파티’(AMOR FATI), # ‘네 운명을 사랑하라.', #신발 정리, #모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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