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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과 인터뷰하는 이불 작가와 이번 전을 기획한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디렉터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이불 작가와 이번 전을 기획한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디렉터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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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선재센터의 김선정 디렉터가 이불전을 기획한 지 14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그의 전시가 9월 9일부터 11월 4일까지 다시 열리고 있다. 이불(Lee Bul, 1964-)은 토종작가로 재료의 차별성, 착상의 독창성 등으로 국제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한국의 대표적 설치미술가다.

올 2월 도쿄모리미술관에서 아시아 여성작가로는 최초로 대규모 회고전을 선보였다. 물론 1997년 뉴욕현대미술관(MoMA) 개인전,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 2007년 프랑스 카르티에현대미술재단 개인전 등 대형전시가 있었다. 1년의 반은 한국에서 또 반은 외국에서 전시를 위해 시간을 보낸다.

9월 13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지난 회고전 성격의 모리미술관 전시에서 새로운 걸 보여주지 못해 씁쓸했다며 이번 전은 신작이라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으나 막판에 1%의 가능성을 보고 몰아붙여 결국 해냈다고 고백한다. 이 전시는 내년에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과 영국 버밍엄 아이콘갤러리에서도 전시된다.

'전복의 미'를 꿈꾸는 미술전사

이불 I '수난유감_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새낀 줄 아냐?(Sorry for suffering_You think I'm a puppy on a picnic?)' from original performance 1990. 도쿄 Courtesy: Studio Lee Bul
 이불 I '수난유감_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새낀 줄 아냐?(Sorry for suffering_You think I'm a puppy on a picnic?)' from original performance 1990. 도쿄 Courtesy: Studio Lee 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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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작가 하면 연상되는 것은 바로 전복의 미학을 전파하는 미술의 전사라는 점이다. 자신은 전사라는 걸 부정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기존의 가치관에 도전하는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런 이면에는 그의 가족사도 한몫한 것 같다.

작가의 부모는 남한체제와 불화로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모친은 수감됐고 부친은 도피생활을 했다. 그러니 제대로 끼니를 챙길 수 있었겠는가. 이렇게 힘든 10대 때의 경험이 오히려 도전적이고 독창적인 상상력을 낳게 한 힘이 됐는지 모른다.

이불은 1987년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3년간 여러 모색 끝에 1990년 '수난유감_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새낀 줄 아냐?'라는 해프닝아트를 펼친다. 괴물의 탈을 뒤집어쓰고 김포공항에서 나리타공항, 도쿄 시내를 12일간 활보하는 몸 예술이었는데 이로 인해 그는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다.

거대여신 출현시켜 남근시각문화 거론

이불 I '사이보그1(Cyborg W1)' Cast silicone polyurethane filling paint pigment 185×56×58cm 1998. Collection: Artsonje Center Courtesy: Studio Lee Bul Photo: Yoon Hyung-moon
 이불 I '사이보그1(Cyborg W1)' Cast silicone polyurethane filling paint pigment 185×56×58cm 1998. Collection: Artsonje Center Courtesy: Studio Lee Bul Photo: Yoon Hyung-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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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렇게 초기 10년간 여성의 몸에 관심을 가지고 남근중심의 시각문화가 구축된 사회적, 정치적 권력구조를 거론한다. 이런 과정에서 여성이 받는 신체의 억압이 얼마나 큰지 이슈화시킨다. 2011년 세계경제포럼(WEF)이 평가한 한국의 남녀양성지수가 135개국 중 117위에 머물고 있으니 20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

1990년대 이불은 이런 관점으로 현대판 거대여신을 상징하는 '사이보그'를 선보인다. 이 시리즈는 신체와 조각의 경계를 없앤 비정형의 조형물로 작가의 자화상 같은 아이콘이 된다. 관능적 육체미를 과시하면서도 기형의 신체를 보여 남근중심의 가부장제가 어떻게 사회를 지배해왔는지 한눈에 보여준다.

악몽의 상상력이 그를 구하다

이불 I '아마릴리스(Amaryllis, 애인) Hand-cut polyurethane panels on aluminum armature enamel coating 210×120×180cm 1999. Collection: Arario Collection(Seoul) Courtesy: Studio Lee Bul Photo: Rhee Jae-yong
 이불 I '아마릴리스(Amaryllis, 애인) Hand-cut polyurethane panels on aluminum armature enamel coating 210×120×180cm 1999. Collection: Arario Collection(Seoul) Courtesy: Studio Lee Bul Photo: Rhee Jae-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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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번 전시를 구상하면서 자신이 던진 질문이 모두 근대어와 관련돼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는 작가의 자의식과도 관련이 있을 텐데 이런 시도가 무모한 모험으로 스스로의 발등을 찍기도 하고 중간에 작업이 끊겨 식은땀을 흘리기는 해도 작가로서 이 주제를 놓칠 수 없는 모양이다.

기자간담회 중에 작가는 "나는 날마다 악몽을 꿈꾼다. 하지만 그게 날 구원한다"라고 했는데 그가 이런 악몽이 낳은 상상력으로 잉태시킨 작품이 바로 '몬스터' 시리즈가 아닌가 싶다. 하긴 우리의 근대화과정도 이런 섬뜻한 괴물을 닮은 것 같다.

'벙커', 식민과 분단이 낳은 현실상징

이불 I '벙커_바흐친(Bunker_M. Bakhtin)'[왼쪽] Cast fiberglass on stainless steel frame plywood fabric-covered foam urethane acrylic mirror electronics interactive sound work 300×400×280cm. 2007/2012. Courtesy: The artist and Bartleby Bickle & Meursault
 이불 I '벙커_바흐친(Bunker_M. Bakhtin)'[왼쪽] Cast fiberglass on stainless steel frame plywood fabric-covered foam urethane acrylic mirror electronics interactive sound work 300×400×280cm. 2007/2012. Courtesy: The artist and Bartleby Bickle & Meursault
ⓒ 아트선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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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을 올라가면 정면에 '나의 거대서사(Mon grand récit)' 시리즈 중 하나인 '벙커'가 보인다. 이 작품을 보는 순간 한반도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잘 형상화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분단시대를 살아온 우리가 흔히 본 벙커다. 그런데 이 안으로 들어가면 관객에 의해 발생한 소리와 융합되는 장치가 있어 흥미롭다.

분명 누구와 소통하라고 그런 장치를 뒀는데 그가 누군가. 조선왕 마지막 왕손인 이구(李玖)다. 그는 영친왕 아들로 해방 후 미국에서 MIT를 졸업하고 건축가가 된다. 군사정권 때는 조선왕조복원사업이라는 명분으로 귀국했으나 이용당한다. 그가 이 작품의 주인공인 건 이구가 바로 식민과 분단의 모순을 다 떠안은 인물이기 때문이리라.

근대성이란 '이상적 민주주의'를 말하는가

이불 I '지하갱도(Souterrain)' Plywood on wooden frame acrylic mirror alkyd paint 274×360×480cm 2012. Courtesy: The artist and Bartleby Bickle & Meursault
 이불 I '지하갱도(Souterrain)' Plywood on wooden frame acrylic mirror alkyd paint 274×360×480cm 2012. Courtesy: The artist and Bartleby Bickle & Meursault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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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의 큰 주제는 '근대성'에 관한 것이라고 작가가 직접 밝힌다. 지천명인 쉰 살을 내다보며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왜 분단 속에 사는가' 등을 묻는다. 과거를 모르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듯 개인과 사회의 정체성을 묻지 않고 우리의 근대를 제대로 알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근대성이란 뭔가? 그의 전시를 소개하는 외국도록에는 이걸 '이상적 민주주의(Utopian Democracy)'라고 소개한다. 물론 그도 인간의 가치를 최우선시하고, 보다 투명하고 공평한 사회를 추구하겠지만 그걸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다만 작가로서 작품을 통해 관객이 이걸 체험하게 할 뿐이다.

2층 입구에 보이는 '지하갱도'라는 작품은 몸을 낮추고 머리를 숙여야만 통과할 수 있다. 이건 이번 전시를 보면서 관객 자신도 한번 돌아보고 그런 자의식을 가지고 근대적인 것이 뭔지 성찰해보라는 뜻인가. 하여간 여기서 반추기제로 거울이 쓰인다.

부정을 통한 긍정에 이른다는 역발상

이불 I '비아 네가티바(Via Negativa 부정을 통해 신을 규정하는 방법론)' 내부[왼쪽]과 외부[오른쪽] Wood acrylic mirror two-way mirror LED lighting alkyd paint English and Korean editions of The Origin of Consciousness in the Breakdown of the Bicameral Mind approximately 290×600×600cm 2012
 이불 I '비아 네가티바(Via Negativa 부정을 통해 신을 규정하는 방법론)' 내부[왼쪽]과 외부[오른쪽] Wood acrylic mirror two-way mirror LED lighting alkyd paint English and Korean editions of The Origin of Consciousness in the Breakdown of the Bicameral Mind approximately 290×600×600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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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입구 '지하갱도'가 맛보기라면 왼쪽에 '비아 네가티바(Via Negativa)'는 규모나 내용으로 봐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이 수많은 거울로 된 미로 안에 들어가면 사방팔방으로 관객의 이미지가 무한대로 확대돼 환각에 빠지게 된다. 어지럽기는 하지만 테마파크처럼 재미도 있어 관객표정이 확 살아난다.

여기서 작가가 끄집어내는 단어는 역시 '리플렉션(reflection)'이다. '반성, 반사, 반영'이라는 뜻인데 쉽게 말해 우리의 삶과 역사를 제대로 조명해보자는 메시지일 것이다. 내부와 달리 외부는 온통 텍스트로 뒤덮여 있다. 그 과정을 빼곡히 기록한 것인가.

위 작품명이 암시하듯 과거 독재시절에 유행하던 '하면 된다'라는 맹목적인 긍정과는 다른 부정을 통해 진정한 긍정에 이루는 유토피아를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관객이 이걸 몸소 겪어야 한다고 작가는 힘주어 말한다.

인류의 공동운명체 같은 공간 펼치다

이불 I '스튜디오(Studio)' View of exhibition at Artsonje Center(Seoul) 2012. Courtesy: The artist and Bartleby Bickle & Meursault
 이불 I '스튜디오(Studio)' View of exhibition at Artsonje Center(Seoul) 2012. Courtesy: The artist and Bartleby Bickle & Meurs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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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의식이 고양되어 3층에 올라가면 넓게 탁 트인 공간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조형적으로 빼어난 구성이 돋보이면서도 왠지 난파선이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문명의 위기도 보게 된다. 그러기에 인류는 하나의 공동운명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선 가 모두가 힘을 합치지 않으면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사회를 비유한 카뮈의 소설 <페스트>가 떠오른다.

작가의 근대성은 '거대서사'와 같은 맥락

이불 I '테아트롬 오르비스 테라롬(Theatrum Orbis Terrarum Theatre of the World)' Cast fiberglass PVC tubing dimensions variable 2003. Private collection Seoul
 이불 I '테아트롬 오르비스 테라롬(Theatrum Orbis Terrarum Theatre of the World)' Cast fiberglass PVC tubing dimensions variable 2003. Private collection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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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2-3층 전시실을 다 보고 나오면서 마주하게 되는 위 작품을 보자. 자궁의 탯줄로 연상시키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임에도 너무 황홀하고 아름답다, 이런 생명을 낳는 이미지를 주는 신체미술은 결국 관념주의나 정신주의를 배제하는 20세기 몸 철학에서 온 것이리라.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근대성이란 말은 뭔가. 죽음을 넘어 생명을 담지하고 키우는 탯줄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현대문명이 낳은 불신과 증오의 늪에서 나와 대립과 경쟁보다는 연대와 우애를 중시하고 정의와 평화가 공존하는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것은 또한 이불 작가가 일관되게 작업해온 '거대서사' 시리즈와도 그 맥이 상통한다.

덧붙이는 글 | 성인 5000원 학생 3000원 02-733-8945 http://www.artsonje.org



태그:#이불, #사이보그, #몬스터, #근대성, #거대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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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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