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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떨어져 냄새를 풍기고 있다
▲ 은행열매 은행이 떨어져 냄새를 풍기고 있다
ⓒ 한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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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의 계절이 돌아왔다. 노란 잎의 향연에 벌써 가슴 설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느티나무나 벚나무 등은 가지가 구성지게 뻗어져나와 도심의 가로수에 적합하지 않다. 번잡한 도심의 교통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나무는 키가 크게 자라면서 가지 또한 하늘로 뻗어올라 간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어디나 가로수로 가장 흔하게 심어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은행나무의 열매다. 은행나무는 잎이 아름답게 물들기 전에 엄청나게 많은 열매를 맺는다. 겉보기에 아주 부드러운 이 녀석들은 속알맹이는 딱딱하고 또 그 속에 말랑한 먹거리를 가지고 있다. 은행은 천식이나 기침, 야뇨증에 특효이며 심지어 고혈압, 탈모예방에 좋다는 이야기 때문에 비교적 고가에 팔리고 있다.

그래서인가, 은행이 익을 때 쯤이면 기다란 장대를 든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높은 곳에 달려 있는 녀석들을 따느라 장대로 무자비하게 가지를 후려치거나 나무에 이단옆차기를 날리는 사람들, 손에 닿는 가지를 붙들고 열매를 달라고 통사정하며 매달려 흔드는 사람들까지 참으로 가을은 은행나무 수난의 계절이 아닐 수 없다.

어느 한 아파트에 즐비한 은행나무들
▲ 은행나무들 어느 한 아파트에 즐비한 은행나무들
ⓒ 한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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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것은 비교적 흔한 감나무나 대추나무의 경우에는 열매가 많이 달려도 사람들이 드러내놓고 탐내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은행나무 열매에는 어찌 그리도 무지막지한 수확의 본능이 일어나는 것일까. 감과 대추의 효능이 결코 은행의 그것에 뒤지지 않을텐데 말이다.

몇 년 전, 양평의 어느 소박한 초등학교에 들러 운동장의 정취를 감상하던 중이었는데 어떤 젊은이 두 사람이 운동장의 구조물을 옮겨 은행을 따기 시작했다. 한참을 정신없이 열매를 따던 그 사람들은 학교 측 관계자가 나와 호통을 치자 줄행랑을 쳤다. 그들이 수확해 놓은 은행은 몇 봉지에 달했는데 학교 측은 결국 노동력을 아낀 셈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동네의 어느 은행나무 한 그루에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모여 긴 장대로 가지를 무자비하게 후려치는 것을 발견하고 말을 건넨 적이 있었다. 따더라도 좀 살살 다뤄달라고, 지나가며 봐도 너무 심하게 나무가지를 흔들더라고 말이다. 내 말을 듣던 사람들은 잠시 하던 일을 멈추는 듯 했으나 한참 가다 뒤를 돌아보니 여전히 은행나무는 좌우로 춤을 추고 있었다.

이제는 공존을 모색할 때다


노란 열매가 가득 열려 있다
▲ 열매가 풍성한 은행나무 노란 열매가 가득 열려 있다
ⓒ 한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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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그렇게 시달려온 은행나무의 고육지책일까.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인지 은행은 으깨지면 냄새가 아주 심하다. 그런데 무자비하게 나무를 흔들어 열매를 따가는 사람들은 그 과육을 그 자리에서 벗겨내고 알맹이만 가져가는 일이 흔하다. 이 얼마나 이기적인 일인가.

우리나라 제일의 아름다운 거리라는 삼청동에도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 가을이면 관광객들로 넘치는 그 곳에도 어김없이 은행들이 땅에 떨어져 냄새를 풍긴다. 노란 은행나무으로 가득찬 거리는 장관을 이루지만 냄새 또한 그렇다. 모처럼 우리나라를 찾았을 관광객들도 코를 막고 다니기 일쑤다.

은행나무는 아름다운 외관을 가졌고 과육은 지독한 냄새가 나지만 그 알맹이는 한방의 약재로 귀하게 쓰이는, 참으로 다면적인 모습을 지닌 나무다.

추석이 지나면 이제 10월이다. 거리에는 이제부터 은행나무가 샛노랗게 빛을 발할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위해서든 영리가 목적이든 무자비하게 나무을 때리고 가지를 흔들어 열매를 채취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도심의 나무에 열리는 열매는 자치단체에서 조직적으로 채취하여 땅에 떨어져 고약하게 냄새를 풍기는 과육을 최소화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도시에서 은행나무와 사람들이 오랫동안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태그:#은행나무, #은행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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