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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나무와 풀들이 제멋대로 자라는 곳이 숲이지만 숲에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질서가 있고 적응하며 공존하는 조화가 존재합니다.
 온갖 나무와 풀들이 제멋대로 자라는 곳이 숲이지만 숲에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질서가 있고 적응하며 공존하는 조화가 존재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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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葛藤은 한자어 그대로 '칡과 등나무'를 뜻하는 말이다. '葛은 칡 갈', '藤은 등나무 등'자다. 칡과 등나무는 줄기가 서로 얽혀 자라는 특성이 있다. 정확하게 관찰해 보면 칡 줄기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등나무 줄기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이처럼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듯이 까다롭게 뒤엉켜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 '갈등'이다. 따라서 두 식물은 아무리 길게 뻗어 가도 화합해 만날 수가 없다. '갈등'의 어원은 이같은 두 나무줄기의 속성에서 비롯됐다. - <숲에는 갈등이 없다> 15쪽

그런데 실제 칡과 등이 서로 엉켜 있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칡은 칡대로, 등나무는 등나무대로 자기 삶을 살고 있다. 칡과 등이 엉킨 것을 찾아보려고 김석윤과 여러 날 산을 헤집으며 다녀 보았지만 찾질 못했다. 그래서 '숲에는 갈등이 없다'는 엉뚱한 제목을 붙였다. - <숲에는 갈등이 없다> 21쪽

책을 받아들고 '숲에는 갈등이 없다'라는 제목만을 봤을 때는, 속고 속이며 살아가는 인간들, 출세를 위해서라면 반칙과 권모술수를 서슴지 않는 인간들과는 달리 환경에 순응하고, 여건에 적응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숲속의 생태계에 관한 내용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숲속은 양보와 조화의 항연입니다. 죽은 나무는 버섯이 자라는 토대가 됩니다.
 숲속은 양보와 조화의 항연입니다. 죽은 나무는 버섯이 자라는 토대가 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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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숲에는 갈등이 없다>(이상우 씀, 아름다운 인연 펴냄)에 담긴 내용은 자연계의 생태만을 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이야깃거리는 다양하고도 내용은 깊었습니다. 하나하나의 나무, 이런 꽃 저런 초목에 담긴 유래나 전설은 구구절절하리만큼 애잔합니다.

'죽어서도 기품을 잃지 않는구나'라는 제목으로 쓴 '고사목'에 담긴 저자의 마음은 선시(禪詩)의 깊이를 능가하는 고뇌가 물씬합니다. 찰나의 깨우침을 읊은 어느 구도자의 오도송(悟道頌) 같고, 어느 선승이 적적열반에 앞서 읊은 열반송(涅槃頌) 만큼이나 심오하고 구사한 표현은 오묘합니다.

황폐해진 교육현장은 싸리나무로 힐책하고, 세상을 풍자하듯 언뜻언뜻 담아내고 있는 패거리 정치와 부패한 사회를 조롱하는 내용은 어른이 되어 읽는 마음을 부끄럽게 합니다.

식물들에 관한 지식과 이야깃거리 차곡차곡

<숲에는 갈등이 없다> 표지
 <숲에는 갈등이 없다> 표지
ⓒ 아름다운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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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상 지음, 김석윤 자문, 아름다운 인연 출판의 <숲에는 갈등이 없다>에는 만고풍상을 알몸으로 드러내고 있는 고사목을 위시한 여러 나무, 호박꽃, 능소화 갖은 온갖 꽃, 콩이나 감자 같은 식재료 식물, 담쟁이 덩굴이나 억새처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거나 찾을 수 있는 식물들에 관한 지식이며 이야깃거리입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고? 자라는 새싹들을 함부로 규정하지 말라. 떡잎에서 운명이 결정된다면 세상은 살맛 안 난다. 운명론, 환경 결정론 등 얄궂은 이론들이 많지만 인간의 삶은 미지未知다.

길 없는 길을 헤쳐 나가는 것이요 문 없는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다. 특히 아이들은 무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다. 어린싹의 미래를 함부로 규정했다가는 큰코다친다. 대놓고 그 아이의 열등함을 비난했다면 앙심을 심어 주고 마음속으로 그를 시답잖게 여겼다면 씻기지 않는 회한이 된다. -<숲에는 갈등이 없다> 147쪽-

학교별로 등급을 매기는 서열화, 성적순으로 줄 세우기를 하는 평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이겨야만 생존할 수 있는 무한경쟁을 강조하는 무례한 교육, 공부를 못하고 약간 비뚤어진 모습을 보이면 일찌감치 노란 떡잎으로 취급하는 몰염치한 교육현장에 대한 질타를 저자는 떡잎에 실어 이야기합니다.   

여고 교사였던 저자가 고백을 하듯이 소개하고 있는 영희는 코 질질 흘리던 아이, 노란 떡잎 취급을 받던 여고생이었지만 빨간 유니폼에 태극무늬 머플러를 두른 승무원 모습으로 나타나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는 편견이 횡횡하는 사회를 경책하며 교육의 위대함을 강조합니다.

방방곡곡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식물들 이야기

서울 한복판, 심산계곡, 한적한 시골마을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게 <숲에는 갈등이 없다>에서 담고 있는 나무고 꽃이고 덩굴입니다. 그동안 무심하게, 겉으로 드러난 모습, 얄팍한 생물학적 지식만으로 봐왔던 나무와 꽃, 덩굴에서 느끼던 것들이 패스트푸드 같은 아름다움이며 입발림 같은 예찬이라면 <숲에는 갈등이 없다>를 통해서 알게 되고 배우게 되는 나무와 꽃, 덩굴 등에는 전설처럼 깊고 철학만큼이나 광대한 지식이 담겼습니다.      

<숲에는 갈등이 없다>에서는 나무 둥치가 붙은 나무는 '연리목'이라하고, 뿌리가 붙으면 '연리근', 가지가 붙으면 '연리지'라고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숲에는 갈등이 없다>에서는 나무 둥치가 붙은 나무는 '연리목'이라하고, 뿌리가 붙으면 '연리근', 가지가 붙으면 '연리지'라고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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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으로 곧은 대나무이지만 휠 줄 알기에 유용한 도구가 된다. 곧음의 반대 즉 굽음曲은 왜곡歪曲, 곡해曲解, 곡학曲學 등 부정적 이미지로 많이 쓰인다. 그러나 장엄한 하모니를 이루는 오케스트라의 원천은 작곡作曲이다. 직선은 아무리 달려도 평행선을 이룰 뿐 만나지 못한다. 굽음은 결국 원圓을 만들 수 있다.

원융무애圓融无涯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은 곡曲의 미덕 때문이다. 굽음을 통해 직선이 만드는 최고의 미학이 원圓이다. 동그라미는 비굴과 변절의 조합이 아니다. 굽음을 통해 만드는 완성품이다, 그래서일까. 만다라의 기본 구도는 사각형과 원이다. 직선과 곡선의 조화를 통해 최고의 미학과 가치를 창출한다. - <숲에는 갈등이 없다> 200쪽

시비하고 질투하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인간사, 붕당과 패거리 정치가 횡횡하고 있는 정치집단,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며 집권을 모색하고 있는 정치지도자들이 어떤 마음과 자세로 정책을 펴고 어떻게 정치를 구현해야 하는 가를 대나무를 통해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입신을 위해서라면 비굴할 정도로 굴복하고 읍소하는 정치인, 이해가 다르면 부러지더라도 양보 없이 정쟁을 일삼은 정치 모리배들에게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덕목을 대나무에 빗대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대한민국의 국기는? 태극기. 대한민국의 국가國歌는? 애국가다. 200세기 초엽 민간에 퍼져 있던 가사에 1936년 안익태가 곡을 붙였으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더불어 국가로 결정되었다. 대한민국의 국화는? 무궁화다. 대한민국의 국목國木은? 없다 학교마다 교목, 도시마다 시를 상징하는 나무가 있는데… - <숲에는 갈등이 없다> 330쪽

이래서 대한민국의 '국목(國木)'으로는 소나무가 제격

촘촘하게 들어가 있는 사진은 설명하고 있는 나무나 꽃들을 식물도감만큼이나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밤이 되면 잎을 포개고 자는 자귀나무의 생태는 섹스리스, 무성의한 부부관계를 조롱하고, "이성과 거시기 하려거든 밤꽃 숲으로 가면 이루어진다"라는 말로 소개하고 있는 밤나무에 관한 이야기는 에로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하기에 충분합니다.  

소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같은 나무에 피지만 동성동본, 근친상간에 의한 열성 유전자의 표출을 피하기 위해 암꽃은 위에 피고 수꽃은 아래쪽에 핀다고 합니다. 게다가 꽃이 피는 시기를 암수가 일주일 정도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숲에는 갈등이 없지만 인간들은 나무에 사지를 비틀며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숲에는 갈등이 없지만 인간들은 나무에 사지를 비틀며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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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이 소나무를 가장 좋아하는 데는 늘 푸른 소나무가 가지는 상록(常綠), 모진 풍파를 극복하는 불굴의 의지로 상징되는 수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소나무가 가지고 있는 종족 보존에 꼿꼿한 절개와 순결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상록, 철갑을 두른 모습으로 상징되는 수형에 모든 생물에서 가장 원초적인 종족 번식의 수단과 방법까지 순결하고 고매한 것이 소나무니 대한민국의 국목(國木)으로는 소나무가 제격이라 생각됩니다. 

영글어 떨어지는 알밤 줍듯 이야깃거리와 지식 줍게 될 것

여느 책들과는 달리 글을 쓰는데 도움을 준 '숲 해설가 김석윤'을 '자문'으로 책 표지에 소개하고 있는 부분이야 말로 숲과 같은 마음,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보는듯합니다.

숲에 갈등은 없지만 조화는 넘쳐납니다.
 숲에 갈등은 없지만 조화는 넘쳐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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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상 지음, 김석윤 자문, 아름다운 인연 출판의 <숲에는 갈등이 없다>를 읽고 나면 그동안에는 그냥 무관심하게 보였던 한 그루의 나무와 한 송이의 꽃, 하나의 덩굴과 한 포기의 식물이 담고 있는 애틋한 사연이 들리고, 회초리 같은 가르침, 송죽과 같은 절개가 보일 것입니다. 

숲에는 갈등이 없다지만, <숲에는 갈등이 없다>를 읽다 보면 다섯 가지 맛을 내는 오미자 맛만큼이나 오묘한 이야깃거리가 왼쪽으로 꼬이고 오른쪽으로 꼬이며 스토리텔링의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밤꽃이 필 때면 과부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도 알게 되고, 제상에 밤이 꼭 오르는 이유도 알게 될것입니다.

타박타박한 발걸음으로 숲속을 걷듯 가을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숲에는 갈등이 없다>를 읽다보면 숲처럼 푸르고 산바람처럼 싱싱한 이야깃거리, 첫사랑처럼 아련하고 호두과자처럼 맛나고 영양가 높은 지식들이 영글어 떨어지는 알밤처럼 여기저기서 툭툭 떨어지는 것을 줍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 <숲에는 갈등이 없다>┃지은이 이상우┃펴낸곳 아름다운 인연┃2012.09.7┃값 14,800원



숲에는 갈등이 없다 - 나무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

이우상 지음, 김석윤 자문, 아름다운인연(2012)


태그:#숲에는 갈등이 없다, #이상우, #김석윤, #아름다운인연,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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