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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 관련한 위험 신호를 자주 접하다 보니 이제 너무 익숙해졌지만, 가계부채는 여전히 한국경제의 최대 위험요소다. 최근 유럽 위기로 인한 수출 감소와 부동산 경기 하락이 더해지면서 그 위험도는 증가하고 있다. 또한 이는 대선 주자들이 내놔야 할 중요 대책 중 하나기도 하다.

지난해 말, 우리 가계부채는 개인부문 금융부채기준으로 1100조 원이었다. 불과 20년 전인 1991년 가계부채가 111조 원이었으므로, 20년 동안 10배가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은 5.3배, 가계 소득은 4.3배 증가에 그쳤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GDP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작년 말 기준 89.2%까지 올랐고, 가처분소득 대비로는 무려 163.7%까지 올랐다.

중요한 것은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계부채 위험에 가장 먼저 노출되는 계층이 어디인지 파악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의 가계부채에서는 채권은행보다 채무가계들이 더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그중에서도 '저소득층' '고 연령대의 영세 자영업자' '하우스푸어'가 가장 위험한 계층이다.

먼저 저소득층의 가계부채 상태를 살펴보자. 한국은행이 2011년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저소득 계층의 경우 대출 잔액은 전체 가계 대출의 12%에 불과하지만, 2010~2011년 상반기 중 총대출 증가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에 달해 여타 소득 계층에 비해 증가 폭이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저소득층 가계부채 급격히 팽창

저소득층인 소득 1분위의 가처분 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중은 200%를 넘었다. 이는 2년 동안의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아야 빚을 갚을 수 있다는 뜻이다.
▲ 소득 분위별 가처분 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중 증가율 저소득층인 소득 1분위의 가처분 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중은 200%를 넘었다. 이는 2년 동안의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아야 빚을 갚을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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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최근 1~2년 동안 소득 하위 20%의 대출이 급격히 팽창하다 보니 이들의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지난해에 무려 201.7%까지 올라갔으며 그 위의 20%도 123.8%까지 올라갔다. 평균 2년 정도의 소득을 모두 쏟아야 빚을 갚을 수 있는 정도다. 이 정도 수준에 이르면, 소득으로 이자를 갚기도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며 다시 빚을 져서 이자를 갚아야 하는 지속 불가능한 단계로 들어설 위험이 크다.

또한 저소득·저신용자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이 다중 채무자일 가능성이 높다. 다중채무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에 616만 명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에는 722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처럼 부채가 있는 저소득 계층은 대체로 저신용이어서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의 고금리에 의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2개 이상의 금융권에서 차입을 한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원리금 상환 부담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 복지의 차원에서 접근하자

이들에 대한 대책으로는 프리-워크아웃(Pre-Workout·사전채무조정)제를 확대하자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더 나아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채무 대리인 제도'를 입법화해 가계 채무자에게 최소한의 인권과 생활권을 보호받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나 이들에 대해서는 과거처럼 '서민금융'이라는 이름아래 여전히 높은 대출을 지속시키기보다는, 원천적으로 채무부담 경감과 함께 사회복지 차원에서 채무 없이 최소 생활이 가능하도록 기초생활이나 보육과 교육·의료 복지 그리고 일자리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서민 채무자에 대한 복지정책을 세부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취약계층은 자영업자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OECD 국가에 비해 매우 높은 비중을 보이고 있다(600만 명). 고용안정망이 부실한 탓에, 직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재취업을 하지 못하고 대부분 자영업을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자영업이 일종의 '실업 예비군' 역할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2010년부터 경기 불황과 베이비 붐 세대들의 은퇴 역시 자영업자의 증가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의 실업예비군 자영업자, 가계부채의 절반 차지

자영업자들의 가처분 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중은 2010년 145%에서 2011년 159%로 증가했으며, 다른 직업군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은 비중을 보인다.
▲ 종사상 지위별 가처분 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중 자영업자들의 가처분 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중은 2010년 145%에서 2011년 159%로 증가했으며, 다른 직업군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은 비중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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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011년 기준 가계대출에서 자영업자의 비중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자영업자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정규직 노동자의 2배가 넘는다. 가처분 소득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중이 40%를 넘는 고위험군 비중도 14%에 달해 가계부채 충격에 노출된 중요한 계층으로 분류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이들의 대출이 주택담보 대출의 형식을 빌고 있기 때문에 경기침체로 자영업의 수익이 악화될 경우, 수입과 주거공간을 한꺼번에 상실할 가능성이 있어 특히 위험하다.

이들의 문제는 단순히 가계부채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베이비 붐 세대 은퇴 후의 일자리와 복지문제, 지역상권 보호와 중소 상인 육성 지원 문제와 중첩된 사회의 중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위기관리 차원에서 원리금 상환 연장이나 환승·유예 등의 조치가 필요할 수 있겠지만, 본원적으로 부채 경감과 축소를 뛰어넘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부동산과 연결된 가계대출이 88%

가계의 자산과 부채의 구성
 가계의 자산과 부채의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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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취약계층은 부채 부담을 안고 집을 산 하우스푸어다. 가계신용 기준 911조 원의 가계부채 가운데 주택담보 대출은 390조 원 정도다.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부채가 부동산이나 주택과 연관돼 있다. 예를 들어 가계 부채 가운데 거주 주택을 담보로 받은 대출은 약 30%, 거주 이외의 주택을 담보로 받은 대출도 25%에 이르고, 전세나 월세 보증금으로 받은 금액도 30%에 이른다. 순수 신용대출을 제외한 85.6%의 대출이 부동산과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다(오른쪽 파이 그램 참고).

그런데 최근까지 주택 가격이 계속 하락하면서 담보인정비율(LTV)이 규제 한도인 50~60%를 초과해 재설정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5억 원으로 인정된 아파트에 대해 50% LTV를 적용받아 2억5천만 원 대출을 받았는데, 아파트 가격이 20% 하락하여 4억 원이 됐다면, LTV는 62.5%로 뛰게 된다. 이자를 내야 할 뿐만 아니라 LTV를 50%로 다시 맞추기 위해 당장 5천만 원의 원금을 상환해야 한다는 뜻이다.

부동산 시장 하락으로 위기에 처한 하우스푸어

하우스푸어는 아직 공식적으로 규정된 바가 없어서 그 규모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100~200만 가구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이 주택가격 하락으로 인해 원리금 상환 압력이 가중되다 못해 주택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특히 주택가격 하락과 소득정체가 겹치면서 대출 연체가 확산되면 대규모 주택압류→경매→주택가격폭락의 악순환에 진입하고, 곧바로 시스템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물론 주거안정과 주거복지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면 당연히 집을 갖지 못한 전월세 세입자에 대한 대책이 우선이다. 그러나 가계부채와 주거문제를 함께 고려한 '위기관리 대책' 차원에서 접근하면 하우스푸어 문제가 더 심각한 측면도 있다. 따라서 집 없는 가구도 많은데, 집도 있고 일부는 투기목적으로 대출을 받아 집을 구입한 가구에게 지원을 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만 부추길 것이라는 비판은 과도하다고 생각한다.

위기의 심각성을 반영하듯 최근 몇 가지 새로운 대책들이 나오고 있다. 제일 먼저 금융가에서 나온 대책은 환매조건부 매입, 즉 '세일 앤드 리스 백(Sale and Lease back)'이다. 한 마디로 원리금 상환을 못 해 경매 직전까지 간 주택을 보유한 하우스푸어에게 은행이 주택을 사들여서 다시 임대를 주는 방안이다. 일정 기간 뒤 하우스푸어의 경제 형편이 나아지면 주택을 되살 수 있는 권리를 준다.

실제 시행을 하는 과정은 복잡하겠으나, 하우스푸어 입장에서는 집 자체가 통째로 경매에 넘어가 저가로 낙찰되는 경우보다 손실을 줄일 수 있고, 당장 같은 집에서 계속 거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수 있다. 물론 하우스푸어는 부채를 터는 대신 자신의 집은 없어지고 집주인에서 세입자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이는 은행 입장에서도 손해가 아니다. 어차피 경매 직전까지 가서 부실화될 채권을 자산으로 전환시킨 후 이자 대신 임대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행이 자진해서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은행이 사들이는 가격 수준과 임대료 수준이 될 터인데 하우스푸어보다는 은행의 이익이 관철될 가능성이 높다.

공공임대주택, 조속히 확대돼야

정부나 정당의 입장에서는 공적자금으로 집을 사들이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재원이 만만치 않다. 서울 아파트 기준으로 중위 가격이 현재 약 4억9천만 원이므로 이를 80% 가격에 매입한다고 해도 4억 원이다. 하우스푸어 100만 가구 가운데서도 위험군에 해당하는 10만 가구의 주택을 매입하려면 40조 원 정도가 필요하다는 단순 계산이 나온다.

이를 의식한 듯 최근 새누리당에서는 재원부담을 줄이는 편법으로 '하우스푸어 정부지분 공유' 방식을 추진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보도에 의하면 '하우스푸어 집주인은 대출금액에 해당하는 일부 지분을 정부에 넘기되, 대출 이자보다 훨씬 낮은 임대료를 정부에 내는' 방식이라고 한다. 회사의 지분을 나눠서 보유하듯 집의 소유권을 집주인과 정부가 공동 소유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지분 공유방식도 일시적인 편법에 불과하다. 가계부채 원리금 상환부담과 주택가격 하락 충격에 대비한 위기관리 대책으로서 일부 하우스푸어 주택 매입이 불가피하다면, 일시적인 환매 조건부 매입이나 지분 공유보다는 아예 공공임대주택 확보 정책 차원에서 매입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어차피 현재 5% 미만의 공공임대주택에 대해 조속한 시일 내에 10%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워킹푸어·자영업푸어·하우스푸어를 구하라

지금까지 가계부채 부담이 현실적으로 큰 세 그룹, '저소득 부채가구' '자영업 부채가구' 그리고 '하우스푸어'를 짚어봤다. 가계 부채가 10년 넘게 누적된 문제인데다 경기침체로 소득개선 여지는 적고, 부동산과 가계부채가 결합돼 있다는 점에서 쉬운 해법은 없다.

이들은 지금 워킹푸어·자영업푸어·하우스푸어라고 하는 3대 푸어 집단과도 곧바로 대응된다. 일을 해도 가난하고, 자기 사업을 해도 가난하고, 집이 있어도 가난한데, 여기에 빚이 얹어지면서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각 취약 계층별 대책 마련과 함께 채무자의 의무만을 강조해왔던 방식에서 벗어나 채권은행도 함께 부채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은 분명 공공성을 추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여 채권은행들이 고통분담에 나서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태그:#가계부채, #금융부채, #워킹 푸어, #자영업 푸어, #하우스 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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