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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다정(25·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4학년)씨를 만나면 '청년문제를 마주하고 있는 20대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눌 줄 알았다. 사전에 그가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예상했기 때문이다. 옥탑방에 동생과 함께 살면서, 학원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돈으로 생활비와 등록금까지 충당하고 있는 현실은 누가 생각해봐도 힘겨운 성격의 것이었다. 게다가 5년 동안 꾸준히 학원 아르바이트 하면서 학점 관리도 제대로 못했다고 하니, 그 스트레스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상은 완벽히 빗나갔다. 지난 12일 구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자신이 처한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되레 "완전한 독립을 하지 못해 부끄럽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는 유복한 환경에서 사는 친구들을 부러워하지도 않았다. 긍정을 넘어선 강인함이었다. 불안한 20대의 표상이면서도, 불안을 스스로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단 한 가지 불만은 있었다. 바로 '높은 등록금'이었다. 500만 원에 이르는 미대 등록금은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불만이 터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란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4학년 이다정씨(25)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4학년 이다정씨(25)
ⓒ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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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학원 알바를 꽤 오래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입시를 하다보면 학원 강사에 대한 꿈이 생기거든요. 처음에는 멋있어 보여서, 또 돈도 벌기 위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그런데 학원 알바를 1~2년 하다보면 정말 힘들어요. 그래서 다른 알바 찾아서 해본 적도 있는데, 학원 알바가 제일 나았어요. 전공 살려서 그림도 그리고, 입시도 먼저 하니까 다른 애들을 도와줄 수도 있죠. 또 경력이 쌓이다 보니 학원 쪽에서 계속 부르기도 했고요."

- 다른 알바를 해보니 어땠어요?
"학원을 쉬는 동안, 카페에서도 해보고, 단기 판매 알바도 많이 해봤어요. 봉천동 마켓에서 발렌타인 이벤트 같은 걸 해봤는데 힘 드는 거에 비해서 시급이 적었죠. 학원 알바도 힘들지만 객관적으로 가장 낫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은 경력이 쌓여서 시급도 8000~9000원 정도는 되니까요."

- 미대 학생들은 미술학원 알바를 기피한다고 들었어요.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학원 과외는 편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미술학원 하다보면 전공과 학교 생활에 소홀해지게 되고, 학점 관리가 잘 안되더라고요 (웃음). 학점 관리를 제대로 하기에는 아무래도 일이 많으니까요. 그리고 사람 상대하는 일이다보니까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어요. 정신적으로 큰 부담이 생기죠. 고3 입시하는 애들이다 보니까 책임감을 갖고 제대로 가르쳐야 해요. 게다가 학생들도, 부모님들도 예민하니까 곤란할 때가 많죠."

- 학원 아르바이트 통해 번 돈은 주로 어디에 쓰나요?
"부모님이 중국에서 애니메이션 회사를 하셔서 한국에 없으시고, 저는 동생과 옥탑방에 살고 있어요. 다행히 월세는 부모님이 대주시고, 제가 번 돈은 생활비로 써요. 그리고 요즘에는 학자금 대출 거치 기간이 끝나서, 원금을 나눠서 갚는 기간이거든요. 등록금 갚는 데 쓰기도 하죠. 지금 한 달에 세 학기 정도의 원금을 갚고 있는데, 한 학기 원금이 17만 원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 학자금 대출은 매번 받으신 거예요?
"아니오. 입시 막판 되면 (미술학원에) 세 타임씩 나갈 때가 있거든요. 수능을 본 애들이 1월이나 2월께 실기시험을 치르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꺼번에 수업을 해요. 그때 돈을 모으기도 했어요. 저희 집 사정이 한 번 좋아질 때도 있었고요."

- 저번 학기에 국가장학금 제도가 늘어났잖아요. 활용할 생각 안 해보셨는지...
"저는 처음에 신청할 생각을 아예 못했어요. 내용 선전이 제대로 안 돼 있고, 어떤 식으로 선정이 되는지 기준을 잘 몰라서 해봤자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바빠서 신경쓰지 못한 면도 있었죠."

- 부모님은 왜 중국으로 나가신 거예요?
"부모님께서 애니메이션 회사를 하시는데, 한국에서는 인건비가 비싸 사업을 하기가 힘들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스무살 때 중국으로 가면 괜찮을까 싶어서 가셨는데, 중국에서도 힘든 것 같더라고요. 초반에는 괜찮았는데, 환율 문제가 터지면 저희는 중국 돈을 한국 돈을 바꾸고 그래야 하니까 크게 휘청휘청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들었어요. 중국 사람들도 애니메이션쪽 일이 힘드니까 하지 않으려 한대요. 또 보통 하청이 일본에서 들어오는데, 일본에서도 이제 한국이나 중국이 아닌 곳으로 하청을 주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 부모님이 어려울 때는 알바해서 번 돈을 보낸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중국 사람들이 일이 힘들다고 아무런 통보 없이 나간 적이 있어요. 그 때 일이 하나도 안들어오던 상황이었어요. 부모님이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아 보내 드린 적이 있어요. 격월로 한 다섯 번가량 보냈어요. 30만 원에서 50만 원 정도. 그런데 월세도 부모님이 내주시고... 그래서 드린 거에 비해서 그렇게 힘든 건 없었어요."

- 그럼 동생과는 부모님 중국으로 가신 이후에 쭉 같이 사는 건가요?
"아뇨. 동생은 중국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대학에 가려고 왔어요. 재외국민 전형으로 산업디자인과에 붙고, 지금은 홍대 앞 치킨집에서 야간 알바를 하고 있어요. 동생을 보면 저는 정말 편하게 알바 하는 거죠."

- 동생과 옥탑방에서 같이 산다고 들었는데, 불편한 점은 없나요?
"방은 하나지만, 사는 데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원래 큰 집에서 살았던 경험이 없어서, 둘이 같이 잘 살아요. 그리고 제가 이사를 왔는데, 저번 집은 2층에 있는 집이었지만 여기가 더 좋아요. 춥긴 하지만, 저번에 살던 집보다 더 쾌적하고 안전한 것 같아요. 저번에 살던 집은 사람이 창문으로 올라올 뻔하고... 그런 집이었거든요. 집이 좋아지니까 삶의 모든 부분이 다 좋아지는 것 같아요."

- 보통 애들은 부모님이 집에 오면 다 챙겨주고, 용돈이나 등록금 걱정이 별로 없잖아요. 부럽진 않아요?
"'쟤네는 저렇게 살고, 나는 이렇게 사는구나'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옛날에는 어둡게 살았는데, 요새 들어서 그럴 필요도 없고 밝게 사는 게 편한 것 같아요. 원래 생각하기로는 '스무 살이 되면, 금전적으로 독립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못하고 있어요. 저는 되레 제가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어요."

"미대 등록금만 왜 이렇게 비싼지 모르겠어요."

이다정씨
 이다정씨
ⓒ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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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긍정적인 다정씨에게도 불만은 있을 것 같은데...
"등록금이요. 이번에 동생이 디자인과에 합격했잖아요. 합격하고 보니까 등록금이 600만 원 정도 되더라고요. 저도 등록금 500만 원이 넘고요. 그런데 이렇듯 미대가 다른 과와 등록금 차이가 굉장히 심한데, 뭔가 다르게 배운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재료비도 우리가 충당하는데, 학교에서 우리를 위해 더 쓰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정말 등록금을 어떻게 쓰는지 정확하게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어요. 등록금이 너무 비싸서 동생이 학교에 못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학교에 자꾸 건물이 생기는 거 보면 내 돈인 것 같고 그래요. 이럴 바에야 이 학교 오지 않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해요. 그런데 지금 막 후회가 되는 건 아니고... 저는 재미있게 살고,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살고 있으니까요."

- 학교가 등록금 내는 만큼의 양질의 교육을 시켜준다고 생각하나요?
"초반에는 자퇴할까 이런 생각도 했어요. 저희는 다 전문교육을 시켜준다고 해서 갔는데 배우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처음 갔을 때는 한복그리기 이런 걸 시켰어요. 이런 게 뭔가 싶었어요. 그래도 2학년 말 때쯤 생각해보니까 '20살 이상인데 알아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수님한테 너무 요구하려고 하지 않았나 싶어요."

- 미안한 이야기지만 세종대가 부실대학으로 선정됐어요. 속상하지 않으신지?
"자꾸 학교에서 일 터지고 이러면 속상하죠. 지난해 등록금 동결이 안 된 것도 그렇고, 생협 문제도 여전히 남아있어요."

- 생협 이야기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학교에 생협이 있어서 식당도 따로 있어요. 재료도 신선한 데서 받아오고, 싸게 파는 곳이었어요. 주위 어르신들도 오시고, 일하시는 분들도 많이 오셨고요. 그런데 이번에 새 건물이 하나 새로 생겼는데, 거기에는 프랜차이즈 매장이 생기고 정작 생협은 없애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많은 학생들이 반대하고 있어요. 프랜차이즈는 비싸기만 하고... 학생들에게는 생협이 필요해요."

- 요즘 삶에서 불만을 느끼고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요. 다정씨는 정치에 대한 관심은 없으세요?
"내가 관심을 가져도 어쨌든 흐르는 대로 흐르는 것 같아서요. 옛날에는 촛불시위 한두 번 가보곤 했는데, 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든 것 같아요. 염세적이죠? 뉴스나 정치권에서도 자기들 원하는 대로 자꾸 대중을 이끌려고 하고, 거기에 내가 이끌리는 느낌이 있어서 관심이 멀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쪽으로 관심 가지고 생각하면 제 상황만 비관하게 되어서 힘들어 질 것 같아요."

- 기성세대들이 자꾸 젊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 없다고 하잖아요. 그런 말 들으면 어때요?
"전 좀 부끄러웠어요. 관심을 가지는게 좋긴 한데, 안 가지고 있는 거니까. 젊은 사람들이 나서야 뭔가 바뀌는 것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저도 귀찮고 힘들고, 또 어려우니까 기피하고 멀어져 있는 거지, 생각이 있으면 나섰을 것 같아요."

"편안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다정씨
 이다정씨
ⓒ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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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칙칙한 이야기 그만하고, 조금 발전적인 이야기를 하죠. 다정씨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어요?
"일단 저는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고, 또 안정적으로 살고 싶어요. 프리랜서가 되는 것 보다는 취직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이쪽 업계가 정말 회사마다 편차가 심해요. 시장이 작다보니 돈을 많이 주는 곳이 몇 곳 없거든요. 이렇게까지 높은 등록금 내면서 다녔는데... 눈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또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보다는 만화를 만들고 싶은데, 만화계가 요즘 많이 힘들어서요. 걱정이 많아요.

- 애니메이션쪽이 발전하지 못하는 데는 어떤 원인이 있다고 보세요?
"인식이 많이 바뀌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 상황 보면 10~20대 젊은 사람들이 저작권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 한 것 같아요. 무단복제 같은 걸 할 때 생각이 없는 것 같고... 저작권에 대해서 고등학교나 그런데서 억지로라도 가르쳐야 할 것 같아요. 무단복제 한 번에 재산의 가치가 없어지는 셈이니까요.

이쪽 직업 가지고 계시는 선배들 보면 상당히 힘들어해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조금만 개선이 되면 나중에 제가 직업 가지게 됐을 때 편할 것 같아요."

- 미술학원 알바는 언제까지 하실 생각이세요?
"저는 졸업을 해도 할 것 같아요. 안정적인 게 필요하니까 제 작업을 하더라도 이 일을 계속 돈을 벌면서 해야 할 것 같아요. 하다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애들 보는 것도 좋고... 어느 정도는 마음을 편하게 먹고 있어요. 일하다가 불만이 쌓여도 친구들 만나서 같이 이야기하면 풀리고 그러니까요."

- 궁극적으로, 앞으로의 꿈은 뭔가요?
"외국 나가 살면서 만화 계속 그리고 싶어요. 한국이 싫은 건 아니고, 안전하고 좋은데, 너무 좁은 공간에서 사는 것 같기만 하고...저는 여행하면서 그림 그리고 싶어요.

그리고 꿈을 위해서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자만이긴 하나 능력이 없어서 못하기보다는, 내가 게을러서 못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 조건이 괜찮기 때문에 열심히만 하면 될 것 같아요."

- 꿈이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아요. 크게 성공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요?
"그냥 편안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지금도 그렇게 나쁜 건 아니에요."

덧붙이는 글 | 고함20 (http://goham20.com)에 중복게재 되었습니다.



태그:#고함20, #20대, #그럼이만, #이다정, #미술학원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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