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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대장정 15일차에 참여한 사람들
 국토대장정 15일차에 참여한 사람들
ⓒ 최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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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이 폭우가 쏟아졌다는데 전혀 모르고 잤다. 모텔 방이 방음이 잘 된 건지, 아니면 내가 너무 곤히 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잠에서 깨어나 시간을 확인하니 7시 35분. 자다가 두어 번쯤 깬 기억이 나지만 이만하면 숙면을 취한 셈이다. 국토대장정을 떠난 이래 가장 오래 잤고, 가장 늦게 깼다. 오늘 출발시간이 평소와 다르게 오전 9시기 때문이다. 덕분에 어젯밤에는 부담 없이 편안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서울이 가까와지면서 출발시간이 늦춰졌다. 이젠 계속 9시에 출발한단다. 아직 6일이나 남았지만 화성시에 가까워져서인지 대장정에 참여한 사람들은 거의 다 온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서울이 여기서 별로 멀지 않는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오전 8시, 충청남도평생교육원 주차장으로 가니 출발시간이 1시간이나 남았는데도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평소와 몰려드는 사람 수가 확연히 차이난다. 채인석 화성시장의 국토대장정을 응원하고 같이 걷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모인 사람들은 대략 200여 명이 넘는 것 같다.

어젯밤 신계리 마을회관에서 잠을 잔 채 시장은 8시가 조금 넘어 충남평생교육원 주차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가족과 함께였다. 어젯밤 가족이 채 시장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왔던 것이다. 오랜만에 어린 딸들을 만난 채 시장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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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9월 8일)은 국토대장정 15일차. 걷는 거리는 16km. 다른 날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거리다. 어제까지는 하루 평균 28km씩 걸었으니 말이다. 채 시장이 오후 4시에 화성시 매향리에서 열리는 '매향리 평화축제'에 참석할 예정이기 때문에 오늘은 걷는 일정을 아주 짧게 잡은 것이다.

이번 국토대장정의 3가지 이슈 가운데 하나가 '매향리 평화생태공원 특별법 제정'이다. 50년 동안 미군사격장으로 사용되면서 큰 아픔을 겪어왔던 매향리에 평화생태공원을 만들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 채 시장의 주장이다.

"미군부대가 있는 다른 지역은 미군부대 주둔으로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매향리는 전적으로 피해만 입은 곳이다. 이런 곳에 평화공원을 조성하는데 국가에서 전적으로 지원해야 옳은 것이 아닌가. 그래야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국가에서 매향리 주민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채 시장은 이렇게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의 주장이 틀린 것은 없다.

국토대장정에 참여한 김영진 민주통합당 수원팔달구지구당위원장
 국토대장정에 참여한 김영진 민주통합당 수원팔달구지구당위원장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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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대장정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 가운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김영진 민주통합당 수원팔달구지구당위원장이다. 수원시민이 여기까지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같이 걷기 위해 찾아왔단다.

오늘은 충청남도평생학습원에서 출발해 직산역까지 16km를 걸는다. 9시에 출발해서 12시 50분쯤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참여인원이 많으니 걷는 시간을 넉넉하게 계산했다. 한 자리에 모인 참여자들은 함께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큰 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화성시 파이팅! 우리는 하나다, 화성시가 최고다, 자연사(박물관)는 화성으로!"

평소보다 몇 십 배 큰 우렁찬 함성이 퍼져나갔다. 15일 동안 쉬지 않고 걸은 채 시장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밝고 편안해 보였다. 화성시민들이 국토대장정을 하고 있는 자신의 진정성을 알아주기 시작했다는 확신 때문이다.

드디어 출발이다. 길 위로 200여 명이 한꺼번에 쏟아져 대열을 이루며 걷기 시작했다. 어젯밤 폭우가 내렸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하늘은 맑게 갰고, 하얀 뭉게구름이 잔뜩 깔려 있었다. 바람은 선선했다. 걷기 좋은 날이다. 맑은 가을날이다.

길 위로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쏟아지듯이 몰려들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쏠린다. 무슨 일이 났나? 하는 눈빛이다.

대열의 맨 앞에 선 채 시장은 "새벽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함께 걷기 위해 찾아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해서 더 놀랍고 감동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16km는 다른 날에 걷는 거리에 비하면 정말 짧은 거리였다. 9시에 충남평생교육원을 출발한 채 시장 일행은 12시에 목적지인 직산역에 도착했다. 물론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대열은 길게 늘어졌고, 도착이 늦은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국토대장정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국토대장정 장기 참여자들이 매향리 평화음악회에 참석했다.
 국토대장정 장기 참여자들이 매향리 평화음악회에 참석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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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채 시장과 늘 선두 그룹을 형성하면서 같이 걷는 4인방이 그랬다. 최승권 회장, 한진안씨와 고정석 회장 그리고 이인섭 자원봉사센터이사장. 이들에게 오늘 걸은 소감을 물었더니 "이 정도 걷는 건 이젠 산책 수준이다. 걷다 만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제 지친 기색을 드러냈던 한진안씨는 "오늘은 원래의 컨디션으로 회복했다"면서 기운차게 말했다. 어제 저녁 쉬면서 기운을 차렸단다.

"제가 국토대장정을 하는 목적은 자연사박물관 유치, 화성호 해수유통, 매향리 생태공원 특별법 제정이지만, 오늘은 우리 화성시의 미래를, 화성시의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걸었다. 우리 화성이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지, 우리 화성을 어떤 도시로 만들 것인지 고민하면서 걸었다. 여러분들과 같이 우리 화성시가 잘 사는 사람만이, 힘 있는 사람만이 행세하고 사는 도시가 아니라 서로 배려하고 힘 합치고 더불어 하는 가슴 따뜻한 도시로 만들기 위해 걸었다."

채 시장은 오늘 국토대장정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이같은 소감을 밝혀, 박수를 받았다.

오늘 9월 8일은 첫 번째 매향리 평화예술제가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일원에서 펼쳐지는 날. 오후 4시, 미군 폭격장이었던 농섬이 훤히 보이는 자리에서 '매향리 평화음악회'가 열렸다.

채인석 화성시장은 이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직산역 앞에서 국토대장정 일정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한 뒤 곧바로 매향리로 이동했다. 직산역에서 매향리까지 거리는 60km 남짓. 매향리 평화예술제에 참석하고 채 시장은 다시 오늘의 숙박지인 직산읍 복지회관으로 돌아간다.

병원에 들러 어제 부풀어 오른 물집을 치료하고 온 채 시장은 국토대장정 복장에 슬리퍼를 신은 모습으로 행사장에 나타났다. 국토대장정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채 시장은 양복을 갖춰 입고 참석했을 것이다. 이런 복장으로 행사에 참석하기는 처음이라며 채 시장은 웃었다.

매향리 평화음악회에는 채 시장과 국토대장정을 함께 하는 이들 역시 채 시장과 같은 색깔의 티셔츠를 입고 참석했다. 매향리 평화음악회는 가수 유열씨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권진원, 강산에, 조항조 등이 출연했다.

평화의 비둘기를 날리는 채인석 시장
 평화의 비둘기를 날리는 채인석 시장
ⓒ 최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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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는 차별을 너무 많이 받았다. 차이와 차별이라는 단어가 있다. 차이는 줄여야 하지만 차별은 없애야 한다. 용산 미군기지는 특별법을 제정해 국비를 전액지원해서 공원으로 만드는데 매향리에는 평화공원을 조성하는 데 드는 2000억의 예산 가운데 400억만 지원을 하겠다고 한다. 나머지 1700억을 우리 시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 재정 부담이 너무 커서 할 수 없다. 지금까지 차별만 받아온 매향리를 위해서 국가에서 전액 국비를 부담해서 평화공원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채 시장은 평화음악회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 자리에 참석한 고희선(새누리·경기화성) 의원은 "용산은 우리 매향리와 다르다. 매향리는 폭격기가 와서 우리의 농섬을 날마다 폭격했다. 용산보다는 더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곳이 매향리 사격장이다. 이 사격장을 빨리 없애고 평화의 공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 의원은 "매향리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한 발의를 시작했다"며 "매향리에 빨리 평화생태공원이 들어설 수 있게 최선을 다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날 매향리 평화음악회는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하늘 높이 날려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비둘기는 진짜 비둘기가 아닌 비둘기 모형인  환경 풍선이다. 하늘 높이 두둥실 바람을 타고 날라가는 비둘기들을 보면서, 매향리가 앞으로 평화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비둘기 모형의 환경풍선을 날려 보내는 채 시장의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태그:#채인석, #국토대장정, #매향리 평화예술제, #농섬, #고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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