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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을 흔히 전문직이라 부른다. 전문직의 정의를 쉽게 내릴 수는 없지만, 전문직을 다른 직종과 구별 짓는 핵심이 고도의 '자율성'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전문직의 핵심은 자율성이며, 전문직 종사자에게 자율성은 생명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경북교육청에서는 교사들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강제로 집합연수를 실시해 현장 교사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교육청이 일방적으로 집합 연수를 기획해 강제 집행을 종용하던 행태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서나 있었던 일이다. 주변 교사들은 학교가 암울했던 구시대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하지만 자율성 유린에 대해 심한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현실적으로 교사들은 상부의 명령에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다.

680명 모아 놓고 '진로 교육 연수'... 제대로 될 리 있나

경북의 김천 교육지원청에서 학교에 발송한 집합연수 공문의 일부. 연수에 참가하지 않는 교사에게 사유서를 적게 함으로써 사실상 무조건 연수에 참가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경북의 김천 교육지원청에서 학교에 발송한 집합연수 공문의 일부. 연수에 참가하지 않는 교사에게 사유서를 적게 함으로써 사실상 무조건 연수에 참가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 김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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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연수를 배치하는 것도 문제지만, 적절한 규모의 예산을 내려주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연수를 실시하고 결과를 보고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그러다 보니 지역교육지원청(지역청)의 장학사들도 난감하긴 마찬가지.

경북교육청이 지난 3월 22일 보낸 공문에 따르면 연수 집행과 관련한 경비로 경북도교육청이 지역청에 배부한 금액은 고작 200만 원이 전부다. 지역청에서는 이와 같은 빠듯한 예산으로 강사를 섭외하고, 관내 전체 교사들을 대상으로 연수를 실시해야 하니 연수의 횟수를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

교사 수가 많은 포항시에서는 지난 7월 1회에 500여 명의 교사들을 대상으로 집합 연수를 실시했다. 그런가 하면, 8월 초 경북도교육청이 주관해 교원연수원에서 실시한 진로교육 연수에서는 680여 명의 교사를 대강당에 채워 넣고 연수를 강행하기도 했다.

강사와 수강생 사이의 소통이나 상호작용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이런 연수는 연수라 부를 수 없다. 연수 담당자들은 연수 효과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식으로든 연수를 실시했다는 것과 그 결과를 도교육청에 보고하는 것뿐이다.

강제 집합연수의 한 장면
 강제 집합연수의 한 장면
ⓒ 이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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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불러 놓고 타 교육청 연수를 '현장 중계'하다니

지난 7월 17일, 대규모 강제집합연수 과정에서 빚어진 웃지 못할 촌극의 절정은 예천군에서 일어났다. 최저 비용으로 지역청 내 초·중·고교 교사들을 연수시키기 위해 이 지역청에서 고안한 비책은 A시 교육지원청 주관으로 실시하고 있는 연수 내용을 화상으로 받아 생중계를 했던 것.

안동시 교육지원청 연수가 열리고 있는 같은 시간대에 예천군 교육지원청에서는 교육청 회의실에 교사들을 집합시켜 놓고 정면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를 물끄러미 바라보게 했다. 교사들은 한결같이 '이럴 것 같으면 뭐 하러 사람을 불러 모으는가' '차라리 동영상을 지역청 누리집에 올려놓고 시청하게 할 것이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안동 교육지원청에서 준비한 원격 화상중계 장비
 안동 교육지원청에서 준비한 원격 화상중계 장비
ⓒ 전교조 경북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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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교육지원청 회의실에서 원격화상연수를 받고 있는 교사들의 모습
 예천 교육지원청 회의실에서 원격화상연수를 받고 있는 교사들의 모습
ⓒ 전교조 경북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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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교육지원청에서 처음에 계획한 연수 일정
 김천 교육지원청에서 처음에 계획한 연수 일정
ⓒ 김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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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말, 어떤 지역에서는 강제 집합연수를 수업시간 중에 실시하려다가 교사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김천 교육지원청에서 학교에 발송한 공문을 보면 연수 일정은 오전에 배치돼 있었다. 중등교사의 경우, 교체 수업을 통해 학생 수업 결손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대대적인 수업 결손이 불가피하다. 이에 교직단체와 교사들의 거센 저항이 일자 지역청에서는 갑작스레 연수 일정을 오후로 옮겼다.

대안은 있다... 바로 '자발적 참여'

이게 교사집단의 본 모습일까. 교사란 본디 타율과 강제로만 움직이는 속성이니 강제적으로라도 연수를 시키는 것이 최선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7월 초 Y초등학교에서 열린 연수회에서 확인됐다.

Y초등학교에서는 도교육청과 동일한 주제(토론식 수업)로 연수를 열었는데, 연수 참가는 전적으로 교사의 자율에 맡겼다. 학교 측에 예상한 참가 인원수는 30명 정도. 하지만, 최종적으로 집계된 연수참가자 수는 150여 명에 달했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수이니 참가자들이 연수에 임하는 자세는 사뭇 진지했다. 강사와 연수참가자들이 하나돼 치열하게 질문과 토론을 주고받는 모습이었다. 강사 혼자 떠들고 수강생들은 집중하지 않는 강제 집합연수의 풍경과는 대조를 이뤘다.

Y초에서 열린 연수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진지하게 강의를 듣고 있는 교사들의 모습
 Y초에서 열린 연수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진지하게 강의를 듣고 있는 교사들의 모습
ⓒ 이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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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더위에 몇백 명의 교사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집합 연수를 한들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예비군 훈련도 아니고 지성인 집단으로서 대형모니터 앞에 앉아 화상으로 생중계하는 연수를 받는 교사들의 마음이 어떨까. 사회적으로 존경받아야 할 스승된 사람들의 자존을 이렇게 짓밟아도 되는 것일까. 강제 집합연수를 통해 교사에게 어떤 능력이 함양되는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고도의 자율성을 생명으로 하는 전문가 집단에서 행해져서는 안 될 일이다.


태그:#교사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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