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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성회는 제 6회 서울여성문화축제를 통해 가족의 문제, 가족관계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거나 어려움을 통해 새로운 가족관계를 만들어나가려 노력중인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파하고자 한다. 그 중 '女심전심' 수기공모는 여성들이 직접 자신이 맺고 있는 다양한 가족관계와 그에 의해 파생된 자기 경험과 대안을 이야기하자는 기획의도를 갖는다. 이러한 시도들이 '여성과 가족'에 대해 다양한 사고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수기응모 글 중 선정된 5편을 공개하고자 한다. - 기자 말

바쁜 일정에 치이고, 더운 날씨에 시달려서 너덜너덜 지친 몸뚱아리를 이끌고 집에 들어간다. '삐삐삐삐-' 도어락의 번호키를 누르고 현관문을 연다. 보글보글. 가스레인지 위 된장찌개의 구수한 냄새에 이내 군침이 돈다.

"어~ 왔네~"

방금 욕실에서 씻고 나왔는지 한 손으론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한 손엔 맥주잔을 들고 나를 반겨주는 목소리. "피곤하지? 저녁은 먹었어?" 방문을 열고 나와서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다. 집에 들어가면서 씻고 바로 자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 새 식구들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고 있다. 끊이지 않는 대화와 웃음소리가 들리는 집. 이런 게 바로 화목한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

우리 식구는 나, 언니, 언니, 그리고 언니이다. 우리는 모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 그저 높은 서울의 집값이 맺어준 '여성 4인조 가족'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보통가정(엄마, 아빠, 자식이 살아가는) 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 사랑이 싹트는 즐거운 집이다. 그런데 내가 사는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야기한다.

"여자 넷이 같이 살면 힘들지 않아? 둘만 살아도 싸우고 그러던데..."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 우리 되게 재밌게 사는데??"

#1. 4월 어느 날 쇠몽둥이의 추억

네 명의 여자가 사는 스위트한 홈
 네 명의 여자가 사는 스위트한 홈
ⓒ 서울여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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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직장인 동아리활동까지 마치고 나니 12시. 겨우 막차를 타고 도착한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환한 거실에 TV까지 켜져 있는 것을 보니 방금 전까지 누군가 집에 있었던 것 같았다. 잠깐 근처 편의점에 갔겠거니 생각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씻기 시작했다. 10분 후, 우당탕탕 현관문이 요란히 열렸다.

"장미야~!!! 너 언제 들어왔어??" 현관에서 언니들이 다짜고짜 물었고, "나 좀 전에 와서 막 씻었는데요?"라는 태연한 대답에 언니들은 한 손엔 쇠몽둥이를 들고 나를 보며 허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집에 들어올 시간이 지났지만 전화기가 꺼져 연락이 안 되자 집에 있던 언니들이 결국 쇠몽둥이를 들고 마중을 나갔다고 했다.

같은 시간 집으로 걸어오고 있던 나와 길이 엇갈려 언니들은 어두운 골목에서 한참을 기다렸던 것이다. 혹시나 집에 들어왔나 해서 왔는데, 내가 들어와 있어 언니들은 허무하면서도 안심했다고 했다. 그날도 새벽녘까지 집에 온 이야기로 수다꽃을 피웠다.

#2. 우리 집은 '헬재호수카안여등'이다

이게 뭐냐고?

- 헬. 지옥 아님. 바로 헬스장.
- 재. 재활원
- 호. 호프집
- 수. 수다방
- 카. 카페
- 안. 안마방
- 여. 여인숙
- 등. 등등등

때로는 헬스장처럼 스트레칭과 윗몸일으키기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요가를 한다고 몸을 베베 꼬기도 하고, 안마를 해주며 꺅꺅 비명소리가 난무하는 우리 집. 서로의 등짝을 밟아주는 살벌한 우리 집. 하지만 그러다가 눈 맞으면 맥주 한잔, 커피 한잔에 수다가 봇물 터지듯, 유전 터지 듯, 방언 터지듯 터지는 그런 곳. 그리고 가끔은 길 잃은 어린 양에게 기꺼이 잠자리를 제공해 주는 인정 넘치는 여인숙이 되기도 한다. 난 아직도 궁금하면서 기대가 된다. 우리 집이 또 어떤 공간으로 변할 수 있을지… 참~ 좋은데,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도 없고~ 아~

#3, 서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 '소통'

"카톡왔숑~"

헉, 잠시 폰 확인 안 했는데 우리집 단체 카톡창에 글이 수 십 개. 오늘의 안건은 에어컨 설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유례없이 더운 이 여름을 나기 위해 집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눈다. 비싼 전기세와 설치비를 이유로 에어컨을 들이는 것은 기각되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늘 우리 사는 일에 말이 참 많다. 인터넷과 IPTV를 신청할 때에도, 전기세가 많이 나와도, 날이 더워도, 추워도, 누가 놀러를 가도 우리는 관심도 많고 할 말도 많다. 넷이 모여앉아 난상토론을 벌이기도 하고, 단체 메시지 창을 열어서라도 가족회의를 연다. 회의의 주체는 할 이야기가 있는 누구라도 상관없다.

우리가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며 원만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은 허물없이 터놓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라도 마음속에 담아놓지 않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오해 없이 듣는 자세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역시, 언제 어디서나 사람 사는 데 소통은 중요한 문제다.

우리 가족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넷이 살아서 힘들겠다고 하지만, 우리 집에 한 번이라도 와본 사람은 재밌게 산다며 부러워한다. 나를 포함 우리 집에 사는 네 명은 모두 고향을 떠나 서울 살이 십여 년 동안 집도 많이 옮겨 다니고 고생도 참 많이 했다. 뭐 사람 사는데 갈등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겠지만, 서로의 십여 년 간 타향살이 자취생활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우리이기 때문에 서로 더 잘 이해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요즘 느낀다.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만이 가족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 역시 가족이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덧붙이는 글 | 서울에서 사는 비혼 여성 장미님이 응모하신 수기입니다. 제 6회 서울여성문화축제는 9월 22일 영등포 문래공원에서 열립니다.



태그:#서울, #여성, #가족, #축제,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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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성회는 서울 여성들의 자기성장, 성평등한 마을 만들기, 폭력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활동하는 생활인 여성들의 공동체입니다. 2007년 7월에 창립하여 서울여성문화축제, 서울여성아카데미, 지역아동센터 성교육 및 부모교육, 지속 가능한 생태 지킴이 활동과 식량주권운동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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