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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캠프에 선 엄홍길 대장
 시라캠프에 선 엄홍길 대장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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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명이 출발한 킬리만자로 등정팀의 리더는 엄홍길 대장이다. 모시호텔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엄대장과 함께 등정하고 싶어서 참가했다는 말을 했다. 참가한 사람 중에는 산악인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아마추어 산악인이다. 그중 십여 명은 히말라야의 5000미터급 산을 올라본 경험이 있었다.

그들은 산의 묘미에 빠지면서 기왕이면 우리나라 최고의 산악인이자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엄홍길 대장과 함께 산을 올라봤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참가했다. 엄홍길! 그는 세계최초로 히말라야의 8000미터급 16개 봉우리를 모두 오른 신화적인 산악인이다. 사람들은 수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면서도 끝까지 산을 사랑한 숙명의 그를 바라보며 존경심을 표한다.

하산하다 나무 사이로 본 킬리만자로 정상의 모습
 하산하다 나무 사이로 본 킬리만자로 정상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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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등정을 앞둔 산악인들은 항상 자연에 귀의한다. 무사등정을 바라는 산악인들이 돌탑을 쌓았다.
 고산 등정을 앞둔 산악인들은 항상 자연에 귀의한다. 무사등정을 바라는 산악인들이 돌탑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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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는 6000미터에 가까운 아프리카 최고봉이다. 히말라야의 5000미터급 산을 다녀온 사람들의 얘기로는 킬리만자로, 특히 마차메게이트 루트가 히말라야에 비해 열악하다고 한다. 롯지시설이 없고 등산 중 펼쳐지는 장엄한 모습이나 가이드와 포터들의 지원이 부족하다고 한다.

산에 관한한 거의 초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은 힘들어질 때마다 마음속으로 엄 대장을 의지했다. "등산실력이 부족하다고 설마 나를 버려두고 가지는 않겠지.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엄 대장이 있으니 별일이 없겠지" 하고 마음의 위안을 삼곤 했다.

6천 미터의 고산 등정이라 겁먹은 일행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엄홍길 대장은 출발하기 전 일행과 함께 '우리는 하나다! 도전 킬리만자로!'를 외친다.
 6천 미터의 고산 등정이라 겁먹은 일행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엄홍길 대장은 출발하기 전 일행과 함께 '우리는 하나다! 도전 킬리만자로!'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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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bucket list)'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이라는 의미다. 이번 여행에 참가한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6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9명은 킬리만자로를 버킷리스트 삼아 참가했다. 나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평생가보고 싶은 목적지로 삼고 출발한 곳도 킬리만자로다.  

"산을 네 뜻대로 하려하지 말고 산의 뜻대로 따르라"는 엄홍길 대장

정상을 향해 출발한 지 4일째가 되는 날 아침 바란코 캠프에서 일어나 출발준비를 하고 있을 때 엄홍길 대장이 텐트를 돌며 "별 탈 없이 잘 잤느냐?"고 안부를 전할 때다. 그는 한쪽 다리를 절며 걸어 다녔다. 깜짝 놀란 일행은 무슨 사고가 난 게 아닌가 걱정하며 안부를 물었다. 걱정이 돼 여러 사람이 묻자 다리를 저는 연유를 설명했다.

1998년 봄 안나푸르나를 네 번째 도전한 어느 날 해발 7600m의 산에서 셰르파 '다와''가 몸의 균형을 잃고 얼음 비탈 아래로 미끄러 떨어졌다. 엄 대장은 다와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로프를 잡았다.

등정 도중 자신이 발을 다친 연유를 설명하며 산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강의하는 엄홍길 대장
 등정 도중 자신이 발을 다친 연유를 설명하며 산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강의하는 엄홍길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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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엄 대장의 몸도 휘청하더니 추락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눈을 떠 보니 눈 속에 처박혀 있었다. 다행이 셰르파 다와와 또 다른 동료들은 살아났다. 하지만 자신의 발목이 180도로 돌아가 버렸다. 간신히 한국에 귀국해 치료를 받았지만 주위에서는 "엄홍길도 이젠 끝났다"라는 말을 했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다리가 회복됐지만 그 이후부터 다리를 절게 되었다.

엄 대장은 "산 앞에 겸허하라"고 얘기한다. 정상에 올랐을 때 산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하나 되어야 한다고 한다. 산이 싸워서 이겨야 하는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산을 네 뜻대로 하려하지 말고 산의 뜻대로 따르라"고 한다.

불교도인 엄 대장은 밥 먹기 전에 반드시 '고수레'를 하며 고기 한 점을 산에 던진다. 산에  사는 동물에게도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는 그에게서 자연과 공존하려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인간만이 아닌 산에 사는 미물도 존중한다는 의미다. 엄 대장에게 물었다.

킬리만자로 정상에 선 엄홍길 대장
 킬리만자로 정상에 선 엄홍길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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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같은 거리를 걸어도 도시를 걸었을 때보다 산을 걸었을 때 지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인간의 본성은 자연이고 우리의 원초적 본능은 자연을 동경합니다. 자연은 어머님 품속 같고 자기 내면의 세계와 통하기 때문이죠. 또한 산에서는 산소가 많아 지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살아갈 때 정신치유가 훨씬 더 빨리 됩니다. 산속을 걸으면 하늘에서 별이 쏟아집니다. 사람들이 산을 찾는 이유는 내가 누구일까를 생각하며 자신의 깊은 내면의 세계를 깨우치게 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죠."  

- 산악인 엄홍길이 한국인에게 던진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나도 할 수 있다'는 도전정신입니다. 자신감, 용기, 희망,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죠."

킬리만자로를 하산하던 중 만난 야생화
 킬리만자로를 하산하던 중 만난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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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를 내려오던 중 만난 꽃
 킬리만자로를 내려오던 중 만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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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악인으로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사랑하는 동료가 죽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죠. 동료가 죽었는데 그 이상의 고통이 어디 있겠어요. 그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엄대장은 그가 사랑하는 산악인을 10여 명 잃었다. 삶과 죽음의 숙명 속에 사는 존재가 산악인이라는 그는, 자신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세상을 떠난 고귀한 영혼들에게 큰 빚을 졌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빚을 갚기 위해 재단법인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한 그는 팡보체를 시작으로 네팔 오지에 초등학교 3개를 세우고 현재 4번째 학교를 짓고 있다. 네팔 오지의 학생들에게 씌워진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다.

킬리만자로 등정을 마치고 포터들과 환송식을 하는 엄홍길 대장.
 킬리만자로 등정을 마치고 포터들과 환송식을 하는 엄홍길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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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를 내려오던 중 만난 10센티 미터 크기의 달팽이
 킬리만자로를 내려오던 중 만난 10센티 미터 크기의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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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할 때 등정팀 전부에게 술 한 잔을 따르고 헤어질 때나 새로 만날 때는 꼭 껴안고 스킨십을 통해 따스한 가슴을 전한다. 그와 가까이 있어본 사람들은 그가 흉허물 없이 대하는 따뜻한 스킨십에 매료된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한 동료가 전한 말이다.

"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옆에 없을 때는 전두환이라고 불러요. 하지만 엄홍길 대장이 옆에 없다고 누군가가 엄홍길이라고 부르면 화가 납니다. 왜냐고요? 그분을 존경하기 때문이죠."

킬리만자로 등정팀에게 엄홍길 대장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큰 산이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과 '문화촌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엄홍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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