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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사 뒤로 보이는 바위 봉우리가 우금암. 동봉인 오른쪽 봉우리 아래에 원효굴이 있다고 합니다
 개암사 뒤로 보이는 바위 봉우리가 우금암. 동봉인 오른쪽 봉우리 아래에 원효굴이 있다고 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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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합니다. 가람을 이루고 있어 볼 것이 수두룩하게 많은 무수한 절들 놔두고 흔적조차 미미한 폐사지만을 찾아다니며 지역별로 산재해 있는 폐사지를 답사기 시리즈로 펴내고 있는 폐사지 답사가 '이지누'라는 저자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합니다.

카메라와 필기도구쯤이 들어있는 걸망을 걸머메고 여기저기를 떠도는 방랑객으로도 연상되고, 폐사지에 묻힌 전설이나 설화, 흔적으로 서린 불심이나 서원을 찾아다니는 구도자이거나 탐사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현존하는 산사, 사람들 발걸음이 북적대는 산사에서는 찾을 수 없는 구도의 비기(秘記)를 폐사지에서 숨은 그림을 찾듯 찾고 있는 구도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방랑객이건 구도자이건 세속과 세연에 얽매이지 않고 이산 저산을 넘나드는 구름처럼 허허로운 가치와 무애한 사고를 가진 분일 거라는 생각입니다.

저자 이지누는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듯이 땀과 발걸음으로 폐사지에 서린 전설과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전남편>에 연이어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전북편>을 펴내니 보라는 달보다도 달을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을 더 궁금해 하는 어리석음 일지는 모르지만 폐사지보다도 답사가 이지누가 어떤 분인지가 먼저 궁금합니다.

전북지역 폐사지 8곳 담은, <돌들이 끄덕였는가...>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의 표지. 표지의 문자는 '갈 행行'의 고古 문자 랍니다.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의 표지. 표지의 문자는 '갈 행行'의 고古 문자 랍니다.
ⓒ 주)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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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지누, (주)알마 출판의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는 지난 4월 전남지역에 산재해 있는 폐사지 답사기 <바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에 이어 전북지역에 산재해있는 폐사지를 답사하며 기록한 폐사지 답사기입니다.

저자는 전북지역에 산재해 있는 폐사지 8곳, 남원 만복사터, 남원 개령암터, 남원 호성암터, 완주 경복사터, 완주 보광사터, 고창 동불암터, 부안 불사의방터, 부안 원효굴터를 답사합니다.

어떤 폐사지에는 한밤중에 도착하고, 어떤 폐사지는 이른 아침에 도착합니다. 밤에 도착한 폐사지에서는 달빛과 별빛에 비춘 흔적을 찾아내고, 이른 아침에 도착한 폐사지에서는 아침 이슬에 머금은 미륵의 미소를 발견합니다.

1200년이면 고려 제20대 왕인 선종(재위 11971204)이 왕위에 있을 때다. 당시는 고려 중기에 해당하는 시기이므로 대체적으로 이 시기를 여말선초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므로 마애불이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에 걸친 어느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고려 중기에 이미 마애불에 대한 기록이 어엿하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술사가들은 고려 후기나 조선 초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고 있으니, 이는 이규보의 잘못이 아니라 미술사가들의 문제다. - 본문 229쪽 -

고창 동불암터를 소개하고 있는 내용 중 일부입니다. 폐사지를 답사하는 저자의 발걸음은 그냥 폐사지를 둘러보는 구경꾼의 눈이 아닙니다. 터에 서린 비기를 찾는 마음은 숨은 그림을 찾는 절실함이고, 흔적으로 남은 역사를 고증하는 자세는 모자이크 퍼즐그림을 맞추듯 검토하고 검증하는 애틋한 마음입니다. 

사료를 통한 검증까지 곁들인 꼼꼼한 답사

폐사지를 찾는 발걸음은 절실했고, 흔적에서 역사를 찾는 마음이 애틋했기에 고창 동불암터의 마애불을 여말선초의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 미술사가들을 향해 '이는 이규보의 잘못이 아니라 미술사가들의 문제다'라고 당당하게 지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고창 선운사 동불암자 마애여래좌상
 고창 선운사 동불암자 마애여래좌상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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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불 위로 공중누각이 있었던 흔적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불 위로 공중누각이 있었던 흔적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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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불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불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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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결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지는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불 가슴의 감실
 비결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지는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불 가슴의 감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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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사지란 말 그대로 예전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절은 없어지고 절터나 흔적 일부만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화려하고 장엄했을 예전의 절은 역사와 흔적, 구전되는 설화로만 남아있기 일쑤입니다. 어떤 폐사지에는 탑이나 석물 일부가 남아있고, 어떤 폐사지에는 돌에 쪼아 새긴 마애불만 남아있으니 황망할 수도 있고 허전할 수도 있는 곳이 폐사지입니다. 

버림 받은 듯 방치되고, 없었던 듯이 드러나지 않는 폐사지지만 저자 이지누가 그려내고 있는 폐사지,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에 담겨있는 폐사지들은 현존하는 절들만큼이나 볼 것도 많고 가슴으로 다가오는 것도 많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선정에 들었다가 비박용 텐트를 펼치고 침낭을 깔았다. 그러나 앉지도 또 눕지도 못했다. 그저 주위를 서성이며  망연히 허공을 바라보다가 짙은 어둠에 쌓인 숲 속만 바라봤다. 쇠로 만들어 놓은 난간까지 가서는 들판에 가물거리는 불빛 몇 개를 찾아보고는 돌아오고, 다시 굴속을 한 바퀴 도는 것이 고작이었으며, 또다시 쳇바퀴 돌듯, 그 일을 되풀이할 뿐이다. 무엇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두려움이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저 노자가 말한 위무위(爲無爲)일 뿐이다. 진세를 떠나 다다른 곳에서 어둠 속에 나를 방치하고 아무것도 구하지 않으며 무심하게 거닌 것이다. - 본문 292쪽 -

고창 선운사 동불암사지. 사진 하단 왼쪽으로 마애불, 가운데로 도솔암이 보이고 멀리(사진 위쪽) 선운사가 보인다.
 고창 선운사 동불암사지. 사진 하단 왼쪽으로 마애불, 가운데로 도솔암이 보이고 멀리(사진 위쪽) 선운사가 보인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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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원효굴터 답사기 중 일부입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답사 분위기, 비박하는 느낌, 폐사지에 서린 역사, 전설, 설화 등이 풍경소리처럼 들려오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연상됩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저자의 한가로움이 무심한 바람소리처럼 느껴지고, 어느 글에서는 갈등하는 번뇌가 철책의 견고함으로 다가옵니다.  

읽는 마음 끄덕이고 새기는 가슴 흔들려

폐사지를 누비는 저자의 지극한 발걸음에 돌들이 끄덕이고, 꽃들이 흔들리듯이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를 읽는 내내 필자의 마음은 끄덕이고 새기는 가슴은 흔들렸습니다.

산산골골에 산재해 있는 폐사지를 찾아 뚜벅뚜벅 두발로 걷고, 느낌 뚝뚝 떨어지도록 두 눈으로 낱낱이 살피며 둘러보며 새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대개의 경우는 여건이 여의치 않을 것입니다.

이럴 때, 이런 마음이라면 글·사진 이지누, (주)알마에서 출판한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를 읽는 것만으로도 폐사지를 거니는 발걸음이 느껴지고, 폐사지에서 맛보거나 더듬을 수 있는 느낌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글·사진 이지누 ┃펴낸곳 (주)알마┃2012. 8. 7┃값 22,000원┃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 -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기, 전북 편

이지누 지음, 알마(2012)


태그:#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 #이지누, #알마, #폐사지, #선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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