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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자로 굽어진 게이랑에르 피오르

게이랑에르
 게이랑에르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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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출발하자 언덕 경사면을 따라 옹기종기 자리 잡은 게이랑에르가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 앞으로는 우리가 넘어온 구절양장 고개도 보인다. 이 고개는 게이랑에르를 외부와 연결해주는 중요한 도로다. 페리가 앞으로 나가면서 게이랑에르에 정박해 있는 크루즈선도 점점 멀어져 간다. 게이랑에르를 벗어나자 S자형 커브 왼쪽으로 설교단 모양의 바위 스카겐(Skaggen)이 나타난다. 입센의 장모 막달레네 토레센은 이곳 스카겐 지역을 보고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피오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깎아지른 바위산에 둘러싸여 있다. 그곳은 좁고 깊으며, 울퉁불퉁한 암반층이 수면으로부터 수직으로 깎아지른 듯 높이 서 있어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다. 절벽 꼭대기로부터 폭포가 포말을 이루며 피오르로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에는 몇 채의 농가가 있다. 이들 중 한두 채는 정말 위험한 길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  

일곱 자매 폭포
 일곱 자매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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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센이 말한 폭포 중 대표적인 것이, 페리선이 S자를 돌때 오른쪽으로 보이는 일곱 자매 폭포(Sju Systre)다. 폭포를 이루는 검은 암벽에는 하얀 구름이 드리워져 있고, 그 사이로 하얀 물줄기가 실타래처럼 떨어진다. 일곱 자매 폭포는 게이랑에르 피오르의 하이라이트다. 일곱 개의 물줄기가 250m 아래 바닥으로 나란히 떨어지기 때문에 일곱 자매 폭포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들 일곱 자매 폭포 건너편 암벽 사이 골짜기로는 커다란 한 줄기 폭포가 쏟아지는데 그 이름이 프리아렌(Friaren)이다. 프리아렌은 구혼자 또는 청혼자라는 뜻으로 일곱 자매에게 청혼하면서 자신을 뽐내고 있다. 조금 더 가자 오른쪽으로 다시 커다란 폭포가 나타난다. 그 이름이 브루데스뢰렛(Brudesløret)인데 베일을 쓴 신부라는 뜻이다. 바닥으로 바로 떨어지지 않고, 2단 또는 3단의 형태로 피오르로 흘러 들어간다.

지옥의 크레바스
 지옥의 크레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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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게이랑에르 피오르에는 이처럼 이름이 있는 폭포 외에 무명의 가늘고 긴 폭포가 수없이 많다. 이들 하나하나가 피오르 전체 풍경을 정말 아름답게 한다. 그리고 그들 산꼭대기 곳곳에는 드문드문 농가를 볼 수 있다. 이들 농가는 1900년대 초까지는 목축을 하며 살았으나, 지금은 대부분 철수하거나 버려진 채로 남아 있다.

게이랑에르 피오르에서 또 하나의 명물은 지옥의 크레바스로 불리는 헬베테스옐레트(Helvetesjølet)다. 이름 그대로 검은색의 현무암이 삼각산 모양으로 우뚝 솟아있다. 가운데 봉우리가 특히 뾰족해 양쪽의 봉우리와 대조를 이룬다. 말 그대로 장비 없이는 접근할 수 없는 크레바스다. 이 봉우리 위로도 구름이 감싸고 있어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게이랑에르 피오르: S자의 오른쪽 끝에 게이랑에르가 있고, 왼쪽 끝에 헬레쉴트가 있다.
 게이랑에르 피오르: S자의 오른쪽 끝에 게이랑에르가 있고, 왼쪽 끝에 헬레쉴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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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지나며 우리는 1시간 동안 페리여행을 한다. 드디어 배는 헬레쉴트와 발달로 가는 세 갈래 길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수닐브(Sunnylv) 피오르를 통해 발달까지 연결된다. 그리고 왼쪽으로 가면 게이랑에르 피오르의 끝 헬레쉴트로 연결된다. 우리가 탄 페리는 왼쪽으로 돌아 헬레쉴트로 향한다. 이곳에서 10여 분을 가니 아름다운 피오르 마을 헬레쉴트가 나타난다.

헬레쉴트 마을의 아름다움

헬레쉴트
 헬레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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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쉴트 마을 역시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260개가 넘는 주택에 640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들은 여름 동안의 관광수입으로 먹고 산다. 여름에는 매일 수천 명의 관광객이 페리나 승용차 그리고 버스를 이용해 이곳을 경유해 게이랑에르나 호른인달(Hornindal), 외르스타(Ørta)와 볼다(Volda) 지역으로 간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남쪽 호른인달로 내려갈 예정이다.

헬레쉴트 마을은 게이랑에르와 함께 최고의 여름휴양지다. 그래서 크루즈 여객선이 자주 들어온다. 이곳에는 마을로 흘러드는 폭포가 있어 마을이 더 시원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온천도 있어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 수도 있다. 헨릭 입센(Henrik Ibsen)도 여름휴가 때면 이곳 헬레쉴트를 즐겨 찾았다. 

호른인달 이야기

호수에 비친 호른인달
 호수에 비친 호른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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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쉴트에서 버스를 탄 우리 일행은 30분 후 호른인달에 도착한다. 호른인달은 인구가 1200명쯤 되는 타운(town)이다. 호른인달이라는 이름은 골짜기 속의 산이라는 뜻이다. 배산임수형의 마을로 도시 앞에 호른인달 호수가 있다. 이 호수는 깊이가 514m나 되어 북유럽에서 가장 깊은 것으로 유명하다.

호른인달 사람들은 농부와 대장장이 중 하나일 정도로 대장장이의 비율이 높다. 이곳에는 200개의 대장간이 있으며, 이들이 만드는 대표적인 농기구가 긴 자루가 달린 낫이다. 이 낫은 들판의 풀을 깎는데 사용된다. 목축이 중요한 산업인 노르웨이에서는 자루달린 낫의 효용성이 높아 많이 팔린다고 한다.

호른인달의 놀이기구
 호른인달의 놀이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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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곳을 지나면서 보니 길과 주변 시장에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알고 보니 토요시장이 서기 때문이다. 호수가 보이는 넓은 공간에는 어린이를 위한 놀이기구들이 여럿 돌아가고 있다. 산골에서 사람들의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놀이터 넘어 보이는 호수는 맑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산과 마을의 반영이 기가 막히다. 이게 바로 노르웨이 피오르의 맛이다.

일반적으로 이곳 호른인달에서 노르트 피오르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노르트 피오르의 중심도시는 호른인달 호수 건너편에 있는 에이드(Eid)다. 그렇지만 우리는 에이드를 거쳐 바다 쪽으로 나갈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호른인달 호수 남쪽으로 가다 그로도스를 지나 좌회전해 남동쪽에 있는 스트린(Stryn)으로 차를 몬다. 스트린으로 가는 길은 비교적 평지를 지나기 때문에 길이 순탄한 편이다.   

헨릭 입센 이야기

1870년의 입센
 1870년의 입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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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센(Henrik Ibsen: 1828-1906)은 19세기 후반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극작가다. 그는 드라마를 운문과 산문으로 쓴 작가로, 모더니즘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낙인> <페르 귄트> <인형의 집> <유령> <들오리> 등이 있다. 그의 드라마에서는 개인과 사회, 가정과 도덕성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시인이기도 했던 그는 <페르 귄트>같은 작품에서는 시적이면서도 초현실주의적인 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입센은 노르웨이의 스키엔에서 때어났지만 덴마크어로 글을 썼으며, 27년간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살았다. 그러므로 그는 노르웨이인이라기보다는 유럽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1858년 수잔나 토레센과 결혼했으며, 1859년 아들 시구르드가 태어났다. 시구르드는 1903년에서 1905년까지 노르웨이 수상을 지내기도 했다.

페르 귄트 삽화
 페르 귄트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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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센은 1906년 크리스티아니아(현재: 오슬로)에서 죽었으며 구세주교회 묘지에 묻혔다. 그의 사망 100주년이었던 2006년에는 그가 만년을 보냈던 집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해 박물관으로 재개관하였다. 그리고 그의 문학을 기리는 '페르 귄트 조각공원'이 세워졌다. 그곳에는 <페르 귄트>의 장면을 묘사한 20개의 인물조각상들이 세워져 있다.


태그:#게이랑에르 피오르, #일곱 자매 폭포, #입센, #헬레쉴트, #호른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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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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