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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의 정류장에서 상황극 '드라마 플레이'와 관련한 논의가 진행중이다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상황극 '드라마 플레이'와 관련한 논의가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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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 온 아르페(26)씨는 요즘 하루하루가 즐겁다.

한국에 온 이후 안산 공단 지역을 전전하며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지만, 한 달 전부터 비디오 카메라를 배우며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취미'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가 영상 촬영 방법 등을 배우고 있는 곳은 '지구인의 정류장'이라는 이주노동자들의 '아지트'. 아르페씨는 이곳에서 영상 장비 및 편집기술 등을 배우면서 다양한 영상물을 연출해보고 '드라마 플레이'와 같은 즉흥 상황극에 참여할 예정이다. 

'한국어능력시험'을 보는 날, 함께 시험 보는 다른 이주노동자들을 자발적으로 영상 인터뷰해 보기도 했다는 그는 아직 말이 서툴지만 "이거(카메라를 가리킴)와 컴퓨터에서 하는 것(동영상 편집 프로그램)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위한 미디어 교육 사업 진행 '지구인의 정류장'

안산시 원곡동 다세대주택 2층에 있는 '지구인의 정류장'은 아르페씨와 같은 이주노동자들을 위주로 이들의 미디어 교육을 지원하고 직접 영상물을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지역 단체다.

미디어 교육뿐만이 아니다. 한국어와 인권 관련, 법 제도 관련 내용 또한 교육하고 지원함은 물론 노동이나 현지 생활과 관련한 상담을 병행하고, 이들이 커뮤니티를 구성할 수 있도록 쉼터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쉼터는 임시 거주공간으로서 기능하기도 하는데, 현재도 1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생활하며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고 한다.

지구인의 정류장 '입구'
 지구인의 정류장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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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47) 대표는 "안산 지역은 이주노동자 대략 7%, 이주한 한국인들 90%, 선주민 2~3% 정도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며 "이쯤되면 '정착보다는 도시 자체가 붕 떠있는 상태, '정착성 없음'이 하나의 특성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을 고용한 사장들도 많은 수가 안산이 집이 아니라, 강남 등 외지에 있는 자택에서 출퇴근하는 구조다"며 "그러다 보니 지역민으로서의 주체성을 가질 수 있는 집단이 거의 없다"고 이야기했다. 공단지역에서의 많은 세수로 인해 안산지역은 인프라는 잘 갖춰져 있지만, 누군가 머물고 간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

최 대표는 "소위 다문화 담론이 생긴 지 10여 년이 다 되어간다"며 "그럼에도 이주민 수 만 명에 대한 삶의 기록, 도시의 역사일 수도 있는 그 모습들은 누가 기억하고 있는가 반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개인적으로는 2007년에 미디어 지원활동을 시작했으며, 2년 뒤인 2009년에 '지구인의 정류장' 전신인 '이주노동자 영상제작소'를 개소했다.

교육과 생활 구분이 무의미한 '삶의 공간'

사람들로 가득 차 버린 거실
 사람들로 가득 차 버린 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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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세 시쯤 되자 안 그래도 북적북적하던 '지구인의 정류장'은 안산 지역 극단인 '북새통' 사람들과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로 앉을 틈이 없이 가득하였다.

최근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 '드라마 플레이'를 위한 회의를 하기 위해 모인 것. '지구인의 정류장' 최종만(33) 강사는 "드라마 플레이는 안산예술재단의 지원을 받아 안산지역의 '북새통'이라는 극단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추석에 이주노동자들은 무엇을 할 것이냐?' 등의 간단한 주제로 연기, 소리, 몸짓을 이용한 즉흥적인 상황극을 연출해 보는 것이다"며 "9월 9일에 상영회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여 명의 회의 참가자들은 어떤 상황극을 만들 것인가, 누가 배우가 될 것인가, 누가 연출할 것인가 등의 세세한 것들에 대해 2시간이 넘게 토론을 진행했다. 기자가 현장에서 철수할 때까지 이 토론의 열기는 끊이지 않았는데, 넓은 거실이긴 하지만, 20여 명이 뿜어대는 열기는 커다란 에어컨을 무색게 할 정도로 '후덥지근' 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온 월쿠(좌측)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한국어 강사 음정희(우측) 씨
 에티오피아에서 온 월쿠(좌측)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한국어 강사 음정희(우측)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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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옆 방에서는 한국어 강사 음정희(44)씨가 에티오피아에서 온 월쿠(28)씨와 서로 부채질을 해가며 도란도란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다가 어제 병원비로 19만 원을 내고 진료 영수증을 못 받은 한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을 심각하게 상담해주고 있다. 또, 부엌에서는 캄보디아 전통 음식으로 여성 이주노동자의 저녁 요리가 한창이었다.

다양한 '사건'이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구분 없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생활'이라는 주제로 관통되는 삶의 현장 같았다고나 할까.

말할 수 있는 '언론', 공감 받고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

이주노동자가 점차 많아지는 추세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현지 한국인들과 비교해서 인권이나 처우, 생활환경 등에서 '소수자'의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구인의 정류장'은 미디어 교육으로 이들에게 말할 기회를 늘리고, 장기적으로는 '공동체 언론'을 만들 수 있는 기회로 진행하고 있다.

주방에서는 저녁 식사로 캄보디아 전통 음식이 준비중이다.
 주방에서는 저녁 식사로 캄보디아 전통 음식이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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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공권력의 지원에서도 많은 부분 소외된 사람들. 이들에게 이와 같은 커뮤니티는 최소한의 것을 이어주는 '좋은 끈'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이주노동자들뿐만 아니라 현지 한국인에게도 '지구인의 정류장'은 재미있는 커뮤니티 모임이다. 작은 동네의 작은 방 한 구석에서, 그 어느 곳보다도 '글로벌'한 이 모임은 '문화의 고속도로'를 보고 온 것만 같았다.

덧붙이는 글 | 경기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http://gbom.net/) 은 경기문화재단에서 발행하는 문화예술교육 전문 웹진입니다. 웹진 '지지봄봄'에서는 이 기사를 시작으로 인천-경기 지역에서의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소식을 오마이뉴스와 함께 공유할 예정에 있습니다.



태그:#지구인의 정류장, #경기문화재단, #이주노동자, #김이찬, #지지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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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우진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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