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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한 지 얼마나 되셨느냐?"는 질문에 "딸이 중학교 2학년 때 시작했고, 지금 마흔이 됐으니"라고 말한다. 25년 쯤 됐다고 말할 법도 한데, 어머니의 시간은 온통 자식에게 맞춰 져 있다.

25년을 같은 품목을 같은 장소에서 판 것도 짠하다. 같은 품목이란 떡볶이, 순대, 튀김 등이고, 같은 장소란 안성시장통이다. 25년을 하다 보니 이 계통에선 안성시장통 최고참이 되었다. 그동안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만두었다.
이 정도 더위는 더위도 아니라며 환하게 웃는 강금자 씨다. 이번 여름엔 워낙 더워서 장사 쉬려고도 여러 번 생각했다가도 돈을 벌기위해 참았다고 고백했다.
 이 정도 더위는 더위도 아니라며 환하게 웃는 강금자 씨다. 이번 여름엔 워낙 더워서 장사 쉬려고도 여러 번 생각했다가도 돈을 벌기위해 참았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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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통에서 '또순이 아줌마'로 불리는 사연

"나도 시장통에선 '또순이 아줌마'로 통하는디, 이번 여름 같아선 하루에 열두 번도 그만두고 싶더라니께유."

그렇다. 그녀는 안성시장통에서 '또순이 아줌마'로 통한다. 1년에 명절 빼고는 하루도 빠짐  없이 장사하는 억척스러움 때문에 시장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이런 그녀도 올해 여름은 견뎌내기 힘들었다고.

기자가 찾아간 날(8월 16일)도 무더운 여름 오후 2시였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다. 가만히 보니 그녀의 옆엔 항상 불이 있다. 떡볶이와 순대, 그리고 튀김은 모두 지속적인 불의 돌봄이 있어야 한다. 내가 물었다.

"덥지 않으세요?"
"이까짓 더위는 더위도 아니지. 이제 단련이 되어서......"

대답하면서 환하게 웃는 강금자(62세) 씨.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단련되어 있었다. 오늘 같은 더위는 지난 폭염에 비하면 양반이라는 표정이었다. 한 풀 꺾인 무더위는 얼마든지 참을 만 하다고 했다. 이정도 고생도 하지 않고 돈 벌 수 있냐고 했다.

서양식 인스턴트음식 가게에 밀리다.

이정도 되니 자연스레 맞장구 쳐주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어머니, 대단하세요. 이렇게 더운데 항상 불 옆에서 서계시니. 그러고 보니 겨울보다 여름이 정말 힘드시겠어요."
그녀가 25년을 지켜온 자리다. 청춘을 다 흘려보낸 곳이지만, 자녀들이 잘 커줘서 기뻐다는 말 한마디로 그녀의 마음을 표현했다. 명절 빼고 거의 매일 장사하니 시장사람들이 또순이 아줌마라고 불러줬다.
▲ 안성시장 통 그녀가 25년을 지켜온 자리다. 청춘을 다 흘려보낸 곳이지만, 자녀들이 잘 커줘서 기뻐다는 말 한마디로 그녀의 마음을 표현했다. 명절 빼고 거의 매일 장사하니 시장사람들이 또순이 아줌마라고 불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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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음식이라 겨울에 장사가 더 잘 될 거라는 점. 겨울에 불이 있으니 따스하지만, 여름은 더위를 부추길 거라는 점 등을 감안해서 날린 나의 멘트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에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겨울에 난방비가 더 들어간다는 것 때문이었다. 강금자 씨의 가정에 난방비가 많이 들어는 건 물론 현재 있는 노점에도 난방비가 더 들어간다고. 그녀가 앉는 의자에 전기로라도 데워야 겨울을 날 수 있단다. 사실 너무 더워도 너무 추워도 장사가 되지 않는다. 사람이 돌아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이라고 장사가 잘 될 거라는 편견이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다가 그녀가 장사하는 노점 바로 건너편으로 몇 년 전부터 햄버거, 치킨, 피자 등 서양식 가게들이 들어섰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그곳으로 젊은이들이 몰려가기 마련이다. 거기다가 거기는 요즘 젊은이들의 취향을 만족시켜준다. 한마디로 게임이 되지 않는다고나 할까.

25년 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이 장사가 꽤나 괜찮았단다. 아니 대형 인스턴트 음식 가게가 생기기 몇 년 전까지 만도 괜찮았단다. 그 땐 학생들도 학교 마치면 여기로 우르르 몰려 왔다고. 그 시절을 떠올렸는지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지금은 25년 단골이 순대를 사러 왔기에 잘라 팔고 있다. 그녀의 빠진 머리숱이 눈에 들어온다. 수 년 전 아픈 후로 그랬고, 지금은 많이 좋아진 상태라 했다. 작년엔 칼질을 하도 많이 해서 팔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 순대 지금은 25년 단골이 순대를 사러 왔기에 잘라 팔고 있다. 그녀의 빠진 머리숱이 눈에 들어온다. 수 년 전 아픈 후로 그랬고, 지금은 많이 좋아진 상태라 했다. 작년엔 칼질을 하도 많이 해서 팔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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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순이 아줌마의 손맛, 25년 단골이 지킨다.

그래도 그녀에겐 단골이 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내내 손님이 왔다갔다. 한 중년 여성이 20세 이상이 된 아들과 딸을 데리고 여기를 찾았다. 세 명이서 한참을 맛있게 먹고 자리를 일어섰다.

"건너편에 더 화려한 가게도 있는데, 여기를 굳이 찾으시는 이유가?"
라고 묻자 중년 여성의 대답은 간단했다.
"바로 이 맛을 못 잊어서"

아하, 그렇구나. 아무리 '00리아, 0도날드'등이라도 따라올 수 없는 뭔가가 있구나. 이 세상에 유일한 '또순이 아줌마'의 손맛을 누가 감히 따라오랴. 그 중년여성은 신혼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또순이 아줌마' 손맛의 팬이었다. 그 맛을 자신의 자녀에게도 즐기도록 전수하고 있었던 거다.

강금자 씨는 초창기에 가장 기억나는 총각이 한 명 있다고 했다. 대학생 한 명이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자신이 파는 순대로 끼니를 때우더란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끼니를 사먹을 돈이 부족해서 매 끼를 사 먹었단다. 그 학생이 어느 날, 일본으로 유학 간다며 인사를 해 왔을 땐, 짠했다고.

국제적인 그녀의 손맛

그녀의 손맛은 국제적이다. 여기에 외국인 근로자들도 자주 찾아온다. 싸고 맛있다는 이유다. 최근 몇 년 사이 외국인 근로자 손님이 늘었다는 그녀의 증언은 우리 시대를 말해주고 있다. 소위 3D 업종을 외국인근로자들이 많이 차지한 덕분이다.

"중국인들은 아주 깍쟁이래유. 1000원 가지고 이것저것 달라고 그래유. 근디 러시아 사람들은 한 번도 그러지 않더라고유. 아주 매너가 좋아유."
떡볶이와 순대에 이어 그녀의 삶을 지켜준 고마운 튀김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튀김 떡볶이와 순대에 이어 그녀의 삶을 지켜준 고마운 튀김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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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수년 전 매우 아파 머리숱이 많이 빠졌다고 했다. 작년엔 팔 수술을 했다. 하도 칼질을 많이 하고 무거운 걸 들어서였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을 때 그녀는 주저하지 않았다. "아들딸이 잘되었으면"이란다. "한 번 쯤 자식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삶을 살고 싶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다. 나에겐 당연한 일이었다"라고 대답하는 강금자 씨. 그녀의 이름은 '또순이 아줌마'가 아니라 '어머니'였다.


태그:#떡볶이 아줌마, #안성시장, #또순이 아줌마, #강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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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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