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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해를 캐는 아이들 바리스타 분과 모임에서 정제훈군이 청소년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다.
 2012 해를 캐는 아이들 바리스타 분과 모임에서 정제훈군이 청소년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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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2002년 배우 김하늘과 김재원 주연의 문화방송(MBC) 드라마에서 나온 화제가 됐던 대사다. 이 대사가 어떤 장면에서 나왔는가는 제쳐두고, 이 대사는 선생과 학생을 명확하게 구분 짓는 느낌이 강하다. 학생에게 선생은 범접할 수 없는 존재라는 느낌이다. 특히나 학교에선 더하다.

하지만, "누구나 학생이고, 누구나 선생이 될 수 있어" 이렇게 외치는 학교도 있다. '2012년 청소년 열린 문화학교, 해를 캐는 아이들'이 8월 5일부터 12일까지 인천시 남구의 인천시청소년회관에서 열렸다. 개그·연극, 노래, 요리, 댄스, 영상, 사진, 바리스타 등 12개 분과에 청소년 120여 명이 참가했다.

'해를 캐는 아이들'은 여름방학 동안 열리는 단기간 프로그램이다. 청소년들이 만들고 배우며 서로 나누는 문화학교를 표방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무(無)경쟁을 주제로 진정한 친구를 만나고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입시위주의 경쟁에서 벗어나 다양한 꿈을 꿀 수 있는 곳이다. 준비팀이나 강사로 참가해 조금은 다른 꿈을 꾸고 다른 길을 가는 18세 동갑내기인 세 명을 지난 10일 만났다. 이들의 삶과 진로에 대한 고민 속으로 들어가 보자.

"같은 꿈꾸는 청소년 가르치는 바리스타 강사가 내 꿈"

정제훈군
 정제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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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내리기 위해 커피가루를 통에 담고 꾹 누르다 손가락을 찧고 말았다. 여학생 10여 명의 시선이 모두 집중된 탓일까? 긴장을 많이 했나보다. 취재하러 온 기자의 카메라 셔터가 연신 터진 탓도 있을 터.
이번엔 커피가루를 바닥에 흘리고, 다음엔 시럽을 넣다 손에 묻히고 말았다. 실수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래도 정제훈(18, 인천 남동구 간석동)군의 표정은 밝았다. 제훈이가 만든 커피를 먹어본 학생들은 "정말 맛있다"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제훈이는 이번 '해를 캐는 아이들' 바리스타분과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있다. 파워포인트도 직접 만들고, 필요한 자료는 인터넷을 검색했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처음 하는 강의라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제훈이는 지난해 4월, 다니던 인문계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선생님과의 마찰 때문이다. 다른 건 참을 만했는데 '부모님이 너를 그렇게 키웠냐'는 식으로 말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 자퇴를 못하고 있었는데 학교에서 오히려 부모님에게 전화해 자퇴서에 빨리 사인하라고 했다. 교감 선생님은 "네가 잘되나 어디 두고 보자"라는 막말도 했다. 학교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마저 남김없이 가져가버리는 말이었다.

자퇴 후 친구들이 대안학교 '청'(현 인천청담학교)을 다녀보라고 권했다. "여기 가서 네 꿈을 한번 찾아보라"며 충고해줬다. 이 학교도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됐다. 어색하고 예전처럼 학교를 다시 그만두게 될까봐 두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예전 학교와 달랐다. 말을 계속 건네며 많은 이야기를 하도록 도와줬다. 선생님이 엄마와 아빠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믿게 됐다.

커피 바리스타도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하게 됐다. 추천하는 날 바로 "네, 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바로 학원에 등록했다. 몇 개월이 지난 8월, 제훈이는 커피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을 딴 후 선생님과 중구 신포동에 있는 한 카페에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에 합격해 일을 시작했다.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손님들을 만났다. 하지만, 계속 서 있어야 하다 보니 허리가 많이 아파 3개월 만에 일을 그만뒀다.

바리스타가 된 후 제훈이는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말수가 별로 없었는데, 이제는 많이 한다.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가장 좋은 이유를, 커피를 맛있게 먹은 손님과 웃으며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라고 꼽을 정도다.

부모님도 카페에 찾아와 커피가 맛있다고 칭찬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기분이 그랬는데, 엄마가 친구들한테 "우리 아들이 바리스타 자격증 따고 열심히 일하고 있고, 커피도 맛있게 잘 만든다, 정말 기특하다"고 자랑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눈물이 났다. 이제는 친구들과 직업 군인인 형도 부러운 눈길을 보낸다.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해 후회 없어요. 아직 바리스타 공부 할 게 많아요. 실력도 더 쌓아야 될 것 같고요. 선생님이 '해를 캐는 아이들'에서 강의를 해보라고 추천해주셨는데, 처음 강의할 때는 부끄러워서 실수도 했지만 점점 친구들하고 친해지고 보람도 있어 좋아요. 바리스타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제훈이가 만든 커피는 어떤 맛일까? 취재에 정신이 팔려 먹지 못했다. 다음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먹어봐야겠다.

"노인복지 관련 일을 하고 싶어요"

박규원
 박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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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6일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를 봤다. 평균 60점 이상만 되면 합격으로 고졸 학력이 된다. 가채점을 해봤는데 평균 80점을 훌쩍 넘었다. 답안지를 밀려 쓰지만 않았다면 친구들보다 1년 빨리 대학시험도 볼 수 있었다. 박규원(18, 인천 계양구 계산동)군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규원이는 고교 1학년이던 지난해 10월 자퇴했다. 학교에서 대학 입시와 시험, 성적 관련 스트레스를 많이 준 것도 있지만, 담임선생님과의 마찰이 컸다.

기말고사 시험이 끝나고 보충수업(방과후학교)을 안 하고 그냥 집에 간 적이 있었다. 반 친구들 절반 이상이 그냥 집에 갔다. 시험 끝난 데다 보충수업이라고는 하지만 자율학습을 하는 중이었다. 출석에도 해당하지 않으니 그냥 갈수도 있지 않나,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두 번 정도 생기자 선생님이 3일 동안 계속 벌을 줬다. 수업 시작하기 전과 점심시간, 청소시간에도 계속 벌을 받았다. 오토바이 타는 자세로 서있게 하거나 오리걸음을 시키고, 엎드려뻗쳐를 시키고 교실 앞뒤를 왔다 갔다 하게 했다.

이 후에 선생님과 마찰이 있었다. 많이 아파서 학교를 못 간 적이 두 번 있었는데 하루는 진료확인서를 받아 제출했지만, 하루는 병원도 못가 제출을 못했다. 선생님은 "왜 이런 식으로 학교를 다니느냐, 그럴 거면 학교를 다니지 마라"고 얘기했고, 부모님에겐 '얘가 보충수업을 잘 안 듣는다'는 식으로 말했다. 사실 보충수업을 안 들은 적은 몇 번 없었는데, 과장해서 얘기한 것이었다.

결국 부모님하고도 마찰이 생겨 두 달 정도 가출했다. 부모님은 반대했지만, 자퇴하는 것으로 합의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공부가 싫은 것은 아니었는데, 담임교사와 맞지 않는 게 문제였다.

자퇴를 하자 주위에서 검정고시 준비를 권유했다. 나중에 대학을 가기 위해서라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고졸 검정고시를 봤다. 3개월을 꼬박 준비했다. '해를 캐는 아이들' 준비팀에 들어가 행사를 준비하고 공부도 해야 해 잠을 제대로 못 잤지만 기쁘고 행복했다.

지난해 다니던 학교에서 봉사동아리 활동을 하며 '해를 캐는 아이들'에 준비팀으로 참가하게 된 규원이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준비하고 만들어가는 행사에 점점 빠져들게 됐다. 만난 친구들도 좋았다.

전라북도 전주시가 고향인 규원이는 어렸을 때 할머니와 외할머니 댁을 많이 갔다. 아이들과 놀거나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이야기하고 노는 것이 더 좋았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노인복지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 앞으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할 생각이다.

부모님은 복지 담당 공무원이 돼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지만, 그것보다는 고향으로 내려가 노인복지 일을 하고 싶다. 대학에 갈 생각도 아직은 없다. 그래도 꿈만 생각하면 행복하다.

"친구들하고 학교생활을 하고 싶은 건 당연하죠. 학교가 좀 만 덜 공부 스트레스를 주고,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생각해줬으면 학교를 계속 다닐 수도 있었을 텐데, 한 번 정도 후회는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다른 친구들이 새벽 버스에 몸을 실었다가 밤늦게 서야 녹초가 돼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꿈을 꿀 수 있는 삶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청소년 마음 알아주는 청소년지도사가 될래요"

구자훈
 구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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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어른은 거의 없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지만, 내 아래 세대에게는 마음을 알아주는 청소년지도사가 필요하다. 때문에 나는 청소년지도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다.
구자훈(18, 인천 부평구 산곡동)군은 지난해 엄마의 추천으로 청소년 인문학도서관 '두잉'에서 진행했던 '정세청세'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돼 '해를 캐는 아이들' 준비팀에 함께 했다.

학교에서는 국어·영어·수학 등 주요 과목만을 강요하며 공부하게 만드는데, '해를 캐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아 좋았다. 윗사람의 강요 없이 스스로 행사를 만들 수 있으니 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지난해 행사에 참가하면서 청소년지도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됐다. 청소년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청소년 때 더 많은 경험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올해도 준비팀으로 참가했다. 내년에도 하고 싶은데, 고3이 되는 처지라 아직은 모르겠다.

더 어렸을 때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판사나 검사가 되고 싶었는데, 조금 더 지나 운동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스포츠 에이전트가 될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청소년 관련 활동을 하면서, 이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님은 청소년지도사가 안정적인 직업이 아니라서 걱정하지만, 대학을 가더라도 관련 학과를 가서 공부하고 싶다. 특히 청소년 심리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다. 하지만, 주변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친구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가지려고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면 안타깝다. 새벽 3~4시까지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얘기 들어보면 딱히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학교가 그냥 다녀야하는 곳이니까 어쩔 수 없이 다니는 것이 아니라, 꿈을 키우고 펼칠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해를 캐는 아이들'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나도 내 꿈에 대해 고민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른 친구들에게 이런 것을 많이 알리고 그 친구들도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청소년, #진로, #인천시청소년회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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