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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천에 있는 화양구곡

화양구곡이 있는 화양천
 화양구곡이 있는 화양천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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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리에서 화양리로 가는 길은 마을 안을 지나 달천 쪽으로 이어진다. 원도원 마을 입구에서 우리는 마을안녕기념탑과 도원성 미술관 안내석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300m를 더 가면 도원교가 나온다. 우리는 도원교를 건너지 않고 달천을 따라 화양동 방향으로 계속 걸어간다. 2㎞쯤 갔을까? 화양교가 나온다. 화양교는 화양천 위에 놓인 다리로 오른쪽 상류에 화양구곡이 펼쳐진다.

화양천은 청천면 이평리를 기점으로 내려오면서 화양구곡을 이루고 화양리에서 달천에 합류된다. 길이는 10.5㎞에 유역면적은 105.8㎢에 달한다. 그러나 화양천의 발원지는 화북면 중벌리 밤티재 아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화양천에서 가장 유명한 화양구곡은 우암 송시열(1607-1689) 선생의 자취가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암서재
 암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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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구곡이란 하류에서 상류로 올라가면서 만나는 9군데 경치 좋은 곳을 말한다. 구곡의 이름은 수암 권상하가 지었으며, 단암 민진원이 글자를 새겨 넣었다. 제1곡: 경천벽(擎天壁), 제2곡: 운영담(雲影潭), 제3곡: 읍궁암(泣弓巖), 제4곡: 금사담(金沙潭), 제5곡: 첨성대(瞻星臺), 제6곡: 능운대(凌雲臺), 제7곡: 와룡암(臥龍巖), 제8곡: 학소대(鶴巢臺), 제9곡: 파곶(巴串).

우암은 제4곡 금사담 위 반석에 1666년 암서재(巖棲齋)를 짓고 권상하, 정호 등 후학을 가르쳤으며, 이들은 또한 1695년 스승 송시열을 제향하기 위해 화양동서원을 세웠다. 그리고 1703년 명나라 황제를 제사지내기 위해 만동묘를 세웠다. 이후 화양동서원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서원으로 그 위세를 과시했다. 그러나 1871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로 훼철되었으며, 1983년 괴산군에서 묘정비를 찾아 다시 세우고 만동묘 주변을 정비했다.

화양서원 묘정비
 화양서원 묘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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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구곡은 우암의 후학들에 의해 일종의 순례지로 여겨졌다. 그들은 화양동을 찾아 산수를 노래하며 호연지기를 길렀고, 충과 의를 노래하며 나라를 걱정하고 도덕과 윤리를 논했다. 그들 중 임상주(任相周: 1710-1791)가 화양구곡을 찾아 흥에 겨워 읊은 경천벽(擎天壁) 시 한 수를 소개한다.  

경천벽이 천 길 높이 솟아                   有壁千丈屹
가히 저 푸른 창공을 떠받치고 있네.     可以擎彼蒼
어찌 중국보다 못하다 하겠는가?         胡不於中國
이곳 화양동의 독특함이.                    獨此華之陽

달천을 따라가는 마음

펜션을 알리는 표지판들
 펜션을 알리는 표지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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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교를 건너면서 보니 화양천은 역시 물이 맑다. 우리는 이제 하류의 화양동 야영장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곳에는 어린애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여럿 보인다. 텐트를 치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야영장을 지나면서 우리는 계속해서 달천을 따라 내려간다. 이제 화양천이 달천에 합류되어 하천의 폭이 꽤나 넓어졌다. 우리는 후영리, 지촌리를 거쳐 덕평리로 갈 것이다. 방향은 계속 북쪽이다.

중간에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펜션을 만날 수 있었다. 펜션이 지나치게 난립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펜션이 지나치게 많으면 수질이 오염될 수 있고, 영업이익이 줄어들 수 있다. 실제로 펜션을 지어 그곳에 살면서 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괜찮지만, 투자 목적으로 지은 사람들은 임대도 안 되지 수입도 없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는 달천변에 있는 펜션 바깥마당을 빌려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다. 우리가 고생하는 것을 알고 후원자가 청주에서부터 도시락을 구입해 왔다. 밥과 반찬이 따로 있는 두 개의 도시락을 먹으려니 생각보다 양이 많은 편이다. 그래도 아침 일찍부터 걸어서 그런지 밥이 잘 넘어간다. 반찬도 아주 맛이 있다.

달천을 따라 난립한 펜션
 달천을 따라 난립한 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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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번 탐사를 하면서 이처럼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뭔가를 찾아내려고 더 노력을 하고 있다. 점심식사 후 그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다들 피곤한 눈치다. 우리는 1시15분에 다시 출발한다. 용추교를 건너 달천을 따라 지루하게 계속 내려간다. 중간에 한 번 휴식을 취하며 수박으로 갈증을 해결한다. 이번에도 역시 청주에서 지원대가 왔다.

다시 원기를 충전한 우리는 달천에 놓인 거봉교를 건너 덕평리로 들어선다. 곧 이어 덕평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은 칠성, 괴산 방향과 청주, 증평 방향으로 나누어지는 갈림길이다. 우리는 오른쪽 길을 택해 칠성방향으로 간다. 중간에 사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다시 오른쪽으로 난 송문로운교길을 택한다. 이 길은 달천에 놓인 운교(雲橋)로 이어진다.

운교를 건너지 못하고

흑석-사은 임도 안내판
 흑석-사은 임도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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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운교를 건넌 다음 달천을 따라 칠성면 사은리로 해서 외사리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계획은 산맥이로 가는 흑석-사은 임도를 따라가기로 되어 있다. 그래서 다시 49번 지방도로 올라가 괴산 방향으로 걸어간다. 곧 이어 흑석 삼거리가 나오고 흑석교를 건너면서 문광면 흑석리가 된다. 이제 우리는 청천면을 떠나 문광면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문광면은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이다. 흑석 임도를 통해 칠성면 사은리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우리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벗어나 임도로 들어가는 것이다. 안내판을 보니 폭이 3m, 길이가 5.32㎞로 되어 있다. 이제 좀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임도 5㎞, 1시간 반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다. 또 나무 그늘 사이로 갈 수 있으니 피곤하지도 않을 것이다.

산맥이로 가는 흑석-사은 임도

흙먼지 가득한 임도
 흙먼지 가득한 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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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웬 걸? 임도에 접어들자 또 다른 악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5월 22일부터 9월 18일까지 흑석-사은 간 임도 구조개량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말이 구조개량이지 내용은 콘크리트 포장사업이다. 포장을 위해 땅다지기 작업을 하는데, 상당구간에서 흙먼지가 보얗게 올라온다. 그걸 밟고 가자니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니다. 또 차량이라도 지나가면 그 먼지들이 얼굴을 스쳐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고 가뭄이 어찌나 심한지, 트레킹화가 먼지를 뒤집어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저 아래로 달천이 보인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깐 임도가 점점 산속으로 들어간다. 임도가 탑바위(塔巖)에서 삼성봉(550m)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능선까지는 계속 오르막이어서 대원들이 모두 지친다. 그러자 박연수 대장이 판소리 심청가에서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대목'을 불러 흥을 돋운다.

달천 너머로 갈은계곡과 군자산이 보인다.
 달천 너머로 갈은계곡과 군자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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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일부 대원은 힘에 겨워 상당히 뒤처지기도 한다. 고갯마루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는 다시 길을 재촉한다. 길에서는 굴착기가 작업을 하고 있다. 그래도 이곳은 먼지가 덜한 편이다. 걸을 만하다. 어느 정도 걷자 굴바우 나루터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로 내려가지 않고 산맥이로 이어지는 임도를 계속 따라간다. 여기서부터는 더욱이 달천도 보이고 주변 조망이 아주 시원하고 좋다.

임도에 들어선 지 1시간 45분쯤 된 것 같다. 저 앞으로 산맥이 마을이 보인다. 산맥이는 산막이의 충청도 사투리다. 멀리서 보아도 풍경이 좋다. 가까이 가니 '즐거운 산행되셨어유~ 산막이 옛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이 길은 산행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나보다. 마을로 들어선 나는 노수신의 유배지를 찾아간다.


태그:#화양천, #화양계곡, #달천, #펜션, #산막이 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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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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