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자를 위한 친절한 등산책> 겉표지
 <여자를 위한 친절한 등산책> 겉표지
ⓒ 시공사

관련사진보기

2010년 8월, '북한산계곡~국녕사'로 산행할 때의 이야기다. 이 구간은 산행의 맛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무척 짧은 구간이다. 그럼에도 이 길을 택한 이유는 북한산 케이블카 설치에 대해 등산객들의 의견을 묻는 사이 산행을 시작하기엔 늦은 시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짧게라도 산행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자 가게 된 것이다.
이 구간을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산행 중 누군가를 만남이 반가울 정도로 등산객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곳이다. 평일 오후 3시 무렵이라 그런지 그날도 산행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하여 한참이 지나도 사람 하나 만나지 못하는 산행을 하고 있었다. 반절 쯤 갔을까.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 셋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들이 자꾸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나를 끊임없이 의식하며 탐색하고 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다지 어려운 길도 아닌데 한참 팔팔한 나이인 그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천천히 걷거나 자주 쉬었다. 때문에 뒤돌아 뛰든 계속 가든 그들과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고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끌어도 그들은 나와 일정 거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안 보는 척 하지만 몰래 훔쳐보고 있음이 사진을 찍는 척 그들의 동향을 살피는 내게 계속 감지되었다.

30여 분간을 전전긍긍하다가 국녕사 신도로 보이는 전혀 모르는 한 아주머니를 아는 체 하며 묻어 되돌아오는 것으로 그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날의 섬뜩함은 한동안 산에 가지 못하게 했다.

사람 많이 다니는 구간으로 '안전한 산행'해야

이후 혼자 산행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여자 등산객들이 보이면 어색함을 누르고 다가가 그날의 경험을 들려주곤 한다. 조심할 필요성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조심하고 미리 대비해서 나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나처럼 섬뜩한 경험을 했다는 여자 등산객들을 여럿 만났다. 그들의 이야길 들으며 그날 내가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난, 매여 있지 않고 자유롭게 일을 하기 때문에 평일에 시간이 날 때도 많다. 이런지라 평일에, 혼자 산행을 할 때가 많다. 사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혼자 산행하는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난 그들에게 쓸데없는 걱정 사서 한다며 웃곤 했었다. 그런데 막상 겪고 나니 그들의 염려가 공연한 노파심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①혼자 산행 시 사람들이 늘 많이 다니는 구간만 갈 것 ②금반지 같은 장신구는 실수로라도 절대 지니지 말 것 ③낙상 등의 위험이 있는 능선 산행은 절대 하지 말 것 ④어떤 일이 있어도, 아주 조금이라도 등산로를 절대 벗어나지 말 것 ⑤사람의 통행이 많은 시간에만 산행할 것 등과 같은 나름의 기준을 세워놓고 혼자 산행을 하고 있다.

남자들의 단순한 호기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지나치게 민감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자로서 느끼는 것은 일상에서처럼 산에서도 여자들이 훨씬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말이다. 게다가 생리 문제 등 여성들만 신경 써야 하는 것들도 있다.

본문 일부
 본문 일부
ⓒ 시공사

관련사진보기


<여자를 위한 친절한 등산책>(구지선 저, 시공사 펴냄)의 주요 독자는 여성. 여자 등산객들이 특히 조심해야 할 것들과 신경 써야 할 것 등을 자신의 산행 경험을 살려 소개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움직일 것: 주중에 산에 오르면 혼자 산을 찾은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들과 많이 마주친다. 혼자 산을 오를 때는 등산로 입구에서 자신의 코스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의 뒤를 따라가도록 하자. 뒤따라갈 때는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동행자는 되도록 여성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귀는 열어두고 다닐 것: 요즘엔 음악이나 라디오를 들으며 혼자 걷는 사람들이 많다. 헤드폰을 귀에 끼고 있으면 주변 소리가 잘 안 들린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음악을 듣더라도 주변 소리가 들릴 수 있게 볼륨을 줄여 듣도록 하자. 한쪽 귀에만 헤드폰을 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자를 위한 친절한 등산책>에서

이는 여성 등산객들이 신경써야 할 몇 가지 중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몇 년 전 내가 국녕사 가는 길에 겪은 것을 떠올리게 하고, 두 번째는 최근 산행 중 자주 만날 수 있는 일부 예의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휴대폰을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인지 이어폰을 끼고 산행을 하는 사람들을 예전보다 훨씬 더 자주 만나곤 한다. 심지어 뽕짝이나 라디오를 크게 틀어 가방에 매달고 다니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지나가고 나면 한동안 그 부근은 시끌벅적해지곤 한다. "뭐 저런 되먹지 못한 사람이 있나!" 욕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게 된다.

책은 볼륨을 작게 할 것, 한쪽 귀에만 이어폰을 낄 것을 권장하고 있지만, 솔직히 난 이어폰을 끼고 산행을 하는 것도 그다지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리거나 딴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돌부리 하나 잘못 밟는 것으로도 영영 산에 갈 수 없을 정도의 부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몸 가까이 날아드는 벌과 같은 곤충을 피할 수 있는 확률도 낮아지는 등 위험에 대처하는 능력도 떨어짐은 물론일 것이다. 사실 귀를 열어두고 산행을 하면 새소리나 물소리, 나뭇잎 살랑이는 소리 등 일상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자연의 소리들을 들을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또 무엇을 조심하고 무엇을 알고 있어야 할까.

비염과 감기, 만성피로 등으로 수많은 약들을 달고 살다 산행을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약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의 건강도 찾고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저자는 지난 몇 년간 산행을 하며 여자 등산인으로 경험했던 것들을 차근차근 풀어 놓고 있다.

산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책

안양 삼막사 삼귀자
 안양 삼막사 삼귀자
ⓒ 시공사

관련사진보기


삼귀자(돌에 새겨넣은 독특한 문양):삼막사(기자 주:삼성산)에 들어서면 바위면을 다듬어 음각으로 새겨 넣은 세 가지 형태의 거북 귀(龜)자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 글자는 조선 말기 종두법을 실시한 지석영의 형 지운영(1852~1935)이 새겨 넣은 것이다. 지운영은 재주가 많은 사람으로 서화가이자 정치가, 사진가였다. 일본에서 사진 기술을 배워 와 서울에서 사진관을 개업하기도 했다. 그리고 조선 정부의 극비지령을 받고 개화파의 일원인 김옥균과 박영효를 암살하기 위해 일본에 특파되었다가 암살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 유배 생활을 하게 되었다. 유배 생활이 끝난 후 그는 삼막사 위에 백련암을 짓고 은거에 들어갔고 당시 '삼귀자'를 새겼다. 전서체로, 우측 각자 머리에 '관음몽수장수 영자'라고 적은 것으로 보아 꿈에서 관음보살을 본 후에 글자를 새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좌측에 '불기 2947년 경신증양 불제자 지운영 경서'라는 명문으로 보아 1920년에 쓴 글자임을 알 수 있다. - <여자를 위한 친절한 등산책>에서

우리나라 산들은 역사와 전설을 많이 품고 있다. 이런지라 산행 중 역사의 현장과 흔적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산이 좋아 산행을 하지만 이처럼 만나는 역사에 조금만 관심을 두면 남다른 산행의 맛을 볼 수도 있다.

<여자를 위한 친절한 등산책>에는 북한산을 비롯하여 불암산과 수락산, 관악산과 수리산 등 서울 근교 15곳 산의 '초보자도 안심하고 갈 수 있는 비교적 안전한 산행 구간 34곳'이 실렸는데, 인용한 '삼막사 삼귀자'처럼 산행 중 무심히 지나치고 말 수도 있는 곳의 역사와 볼거리 등을 지도와 함께 수록하고 있어서 책의 활용도는 훨씬 높을 것 같다.

산행 초보자들에게는 대중교통을 어디까지 이용해 어디까지 가서 산행 출발을 해야 하며 어디에서 끝내야 하는지, 갈림길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가고, 산행은 대략 얼마나 걸리는지 등을 자세히 알려주는 지도 한 장은 천군만마처럼 무척 요긴하다. 책의 제목에 '여자를 위한'으로 표현함으로써 여자 등산인들에게 한정하고 있지만, 이처럼 친절한 지도를 모든 구간마다 싣고 있는지라 이제 막 산행을 시작한 사람들에게도 적잖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여자를 위한 친절한 등산책>ㅣ구지선 (지은이) | 시공사 | 2012-06-27 ㅣ정가 1만5000원



여자를 위한 친절한 등산책 - 주말이 즐거운 서울 근교 산행 가이드

구지선 지음, 시공사(2012)


태그:#산행, #등산, #산행지도, #삼막사 삼귀자, #삼성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