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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에게 먹이를 사서 주려고 하자 사슴들이 한꺼번에 모여들고 있습니다. 도다이지 주변 나라공원에 있는 사슴은 1000여 년 전부터 있었으며 지금은 1000여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1959년 9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사슴에게 먹이를 사서 주려고 하자 사슴들이 한꺼번에 모여들고 있습니다. 도다이지 주변 나라공원에 있는 사슴은 1000여 년 전부터 있었으며 지금은 1000여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1959년 9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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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토요일 오후 일본 나라현 나라시에 있는 도다이지에 다녀왔습니다. 도다이지에는 752년 화엄경의 가르침에 의거해서 비로자나불이 조성되었습니다. 이 절은 처음 긴쇼센지(金鐘山寺)였지만 이후 도다이지(東大寺)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도다이지 대불을 만들기 전 740년부터 화엄경을 가르치면서 비로자나불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742년 화엄경 강의가 끝난 다음 743년 10월부터 대불 주조에 착수하여 10년 만인 752년 대불 조성을 마칩니다.

화엄경 강의와 대불 조성의 중심에 있는 스님은 료벤(良弁, 689-773년)입니다. 료벤스님은 지금의 시가현에서 백제계 후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처음 료벤 스님 부모는 자식이 없어서 오랫동안 관음신에게 기도하여 겨우 아들을 얻었습니다.

도다이지(東大寺) 다이부츠덴(大佛殿)에 있는 비로자나불입니다. 비로자나불은 보통 지권인(왼손 집게손가락을 뻗치어 세우고 오른손으로 그 첫째 마디를 쥐는 것)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릅니다.
 도다이지(東大寺) 다이부츠덴(大佛殿)에 있는 비로자나불입니다. 비로자나불은 보통 지권인(왼손 집게손가락을 뻗치어 세우고 오른손으로 그 첫째 마디를 쥐는 것)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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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벤 부모님은 밭일을 하면서 나무 그늘에 아이를 재워두고 일을 하는데 갑자기 독수리가 날아와서 아기를 물고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독수리는 지금의 도다이지에 있던 니카케츠도(二月堂) 아래에 있는 삼나무 가지에 걸터앉아 아기를 먹으려는 순간 아이 가슴에서 빛이 나와서 독수리가 눈이 부셔서 먹지 못하고 아기를 떨어뜨립니다.

나무 밑에서 기엔(義淵) 스님이 아기 우는 소리를 듣고 나뭇가지에 아이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나무 위에 올라가서 아이를 데려다 키웁니다. 그가 료벤입니다. 30여 년이 지난 뒤 료벤 어머니는 그 삼나무 아래에서 료벤을 만납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삼나무를 료벤스기(良弁杉), '료벤 삼나무'라고 합니다. 원래 있던 료벤 삼나무는 태풍으로 넘어져서 지금은 새로운 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이 료벤이 도다이지를 지은 스님입니다. 대불은 말 그대로 높이 15미터이고, 두 무릎 사이 길이가 12미터가 넘습니다. 그리고 손바닥 길이가 1.5미터이고 입술 길이가 1.33미터입니다.

대화엄사라는 간판이 보입니다. 도다이지는 절이 생기면서부터 화엄사상을 기반으로 지은 절입니다.
 대화엄사라는 간판이 보입니다. 도다이지는 절이 생기면서부터 화엄사상을 기반으로 지은 절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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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라는 말은 우주의 진리를 체득하신 석가여래의 다른 이름으로, 마하바이로차나(Mahāvairocana), 노사나(盧舍那) 또는 대일여래(大日如來)라고도 합니다. 모두 산스크리트어로 두루 빛을 비추는 존재로서 최고신이라는 뜻입니다. 세계를 비추는 부처, 빛이 비추는 부처라는 뜻입니다.

왼손으로 우주의 지혜를, 오른손으로 자비를 나타내면서 사람들을 깊이 배려하는 마음으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우주, 우주와 우주의 연결을 배려하는 서원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비로자나불은 태양을 숭배하고, 태양을 신성시해온 일본 사람들에게 태양의 화신이기도 합니다. 대불전이 안치되어 있는 다이부츠덴(大佛殿)은 창건 이후 두 번 불에 탔으나 지금 건물은 1691년 다시 지은 것입니다.

비로자나불의 손 모양은 지권인(智拳印, 왼손 집게손가락을 뻗치어 세우고 오른손으로 그 첫째 마디를 쥐는 것)이지만 이곳 비로자나불은 통인(通印)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무외인(施無畏印, 팔을 들고 다섯 손가락을 펴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여 물건을 주는 시늉을 하는 것)과 여원인(與願印, 오른손의 다섯 손가락을 펴서 밖으로 향하여 드리운 모양)을 합친 수인입니다. 교리상 비슷한 성격을 가진 두 개의 수인을 합치게 된 것은 보다 많은 자비를 베풀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통인을 취하는 상은 대부분 입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의 연가7년명금동여래입상을 비롯하여 신라의 경주 남산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배리 삼체석불입상 등 삼국시대 불상에서 그 예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대불전 앞에 있는 금동팔각등롱과 금동팔각등롱화대우목판(金銅八角燈籠火袋羽目板)입니다. 수리하기 전 원래 있었던 것입니다.
 대불전 앞에 있는 금동팔각등롱과 금동팔각등롱화대우목판(金銅八角燈籠火袋羽目板)입니다. 수리하기 전 원래 있었던 것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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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부츠덴은 원래 있던 건물의 2/3 크기로 정면 너비가 57.5미터, 옆길이 50.5미터이고, 바닥에서 상량까지 높이는 49.1미터입니다. 목조 건축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큽니다. 이 건물과 건물 앞에 있는 금동팔각등롱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2011년 10월 10일 도다이지 절 안에 도다이지 뮤지엄이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이곳에는 도다이지가 오랫동안 간직해온 귀중한 불교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개관이후 내년 1월 14일까지는 나라시대의 도다이지라는 특별전을 열고 있습니다.

지금 도다이지 뮤지엄 한 가운데 전시하고 있는 국보 후쿠켄쟈쿠관노보사츠(不空羂索觀音菩薩) 불상은 원래 도다이지 홋케도(法華堂, 三月堂)에 있던 불상입니다. 원래 나무로 깎아서 옻칠을 한 다음 금칠을 했는데 지금은 금칠이 많이 벗겨졌습니다.

도다이지 뮤지엄 내부입니다. 국보 후쿠켄쟈쿠관노보사츠(不空?索觀音菩薩) 불상이 한가운데 놓여있습니다. 이번 특별전의 간판입니다.
 도다이지 뮤지엄 내부입니다. 국보 후쿠켄쟈쿠관노보사츠(不空?索觀音菩薩) 불상이 한가운데 놓여있습니다. 이번 특별전의 간판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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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켄쟈쿠관노보사츠(不空羂索觀音菩薩) 불상의 후쿠(不空)는 이 보살을 믿으면 모든 소원이 꼭 이루어진다는 뜻이고, 켄쟈쿠(羂索)는 고대 인도에서 사냥에서 사용되는 끈이나 그물로 빠져나가는 것 없이 모든 사람 사람을 구원한다는 뜻과 대자비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후쿠켄쟈쿠관노보사츠(不空羂索觀音菩薩) 불상의 왼쪽과 오른쪽에는 월광보살입상과 일광보살 입상이 서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도다이지 홋케도(法華堂, 三月堂)에 있던 불상입니다. 이 홋케도는 740년경 지어진 건물입니다. 아마도 이 불상들도 그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도다이지 경내에는 넓은 터 안에 많은 건물과 연못이 있습니다. 그중 니카게츠도(二月堂)에는 탄생 석가모니불 입상에 물을 끼얹는 의식 때 사용하는 불상도 있습니다. 아래 접시처럼 생겨서 물이 담기는 것을 관불반(灌佛盤)이라고 합니다.

탄생석가불 입상, 4월 8일 부처님 탄생일에 부처 머리에 물을 붓는 의식을 거행합니다.
 탄생석가불 입상, 4월 8일 부처님 탄생일에 부처 머리에 물을 붓는 의식을 거행합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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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이지가 있는 나라공원에는 많은 사슴들이 자유롭게 풀을 뜯어 먹거나 먹이를 받아먹고 있습니다. 불교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불교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주고 받은 영향은 불상이나 국보급 미술품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이나 사슴과 같은 짐승이나 더불어서 사는 세상, 그런 세상을 꿈꾸며 만들어 놓은 곳이 도다이지인지도 모릅니다.

<가는 법> 오사카(大阪)에서는 JR 야마도지센(大和路快速)으로 52분 정도 걸리고, 오사카 츠르하시(鶴橋)에서는 긴테츠(近鉄)로 35 분 정도 걸립니다. 교토에서는 JR 나라선이나 긴테츠(近鉄) 나라선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 박현국(朴炫國) 기자는 류코쿠(Ryukoku, 龍谷) 대학 국제문화학부에서 주로 한국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태그:#도다이지(東大寺),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국보 후쿠켄쟈쿠관노보사츠(不空?索觀音菩薩) 불상, #다이부츠덴(大佛殿), #금동팔각등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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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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