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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포동 주공아파트 1단지 내 상가. 부동산 중개업체들이 다수 입주해있다.
 개포동 주공아파트 1단지 내 상가. 부동산 중개업체들이 다수 입주해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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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전화도 없었는데요. 평소랑 똑같아요."

23일 정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부동산 중개사 김민수(가명)씨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청와대발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 소식이 신문과 포털의 경제 뉴스란을 뜨겁게 달궜지만, 강남 개포동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는 김씨의 월요일 오전은 여느 때와 같았다.

정부는 21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내수 활성화를 위한 민관 합동토론회'를 열고 DTI 규제 일부 완화 등의 정책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22일 밝혔다. 그간 숱한 요구에도 가계부채 악화를 이유로 건드리지 않았던 정부가 마침내 DTI 규제에 손을 댔지만, 23일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DTI 규제 완화돼도 시장 영향은 미미할 것"

이번에 청와대에서 밝힌 DTI규제 완화 방향은 부동산 등 자산도 소득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DTI란 연소득에서 대출의 연간 총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로, 이 같은 내용의 완화안이 실현되면 이렇다 할 소득이 없는 다주택 소유자나 자산보유자들이 은행에서 보다 많은 돈을 빌릴 수 있게 된다. 결국 다주택 보유자들을 부추겨 주택거래를 활성화시키고 내수 활성화 효과를 보겠다는 게 이번 정부 발표의 노림수인 셈이다.

그러나 일선 부동산업자들은 정부 발표에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김씨는 "요즘 사람들, 융자 부족해서 집 못 사는 사람 없다"고 설명했다. 그가 부동산 중개소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시 개포동은 시세 차익을 노리는 다주택 보유자들의 이목이 쏠리는 강남의 대표적인 재건축 지구 중 하나다. 전국적인 주택경기 침체에 이곳도 이미 거래량이 말라붙은 지 몇 달째지만 그 원인이 대출금 부족은 아니라는 얘기다.

개포 1단지 ㄱ부동산을 운영하는 최선희(가명)씨도 "사람들이 집을 안 사는 이유는 대출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세계 경기가 안 좋고 지금이 바닥이라는 확신이 안 서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씨는 "저희들은 소식을 빨리 접하니까 괜찮다 싶으면 회원들에게 연락해서 매수를 독려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이번 소식은 전혀 그런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그는 "DTI 규제 완화가 시장에 먹히려면 유로 위기가 불거지기 전인 올해 1월쯤 나왔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그때 DTI 규제가 풀렸다면 부동산 시장 연착륙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게 최씨의 설명이다.

'약발'이 안 먹히기는 주식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주요 건설주들은 많게는 5%가 넘는 하락폭을 보였다. 건설 분야 대장주들도 맥을 못 췄다. GS건설은 전일보다 2.57% 떨어진 6만8300원에, 삼성물산은 2.5% 하락한 6만2500원에 장을 마감했다. 현대건설과 현대산업도 각각 3.23%, 5.71%의 낙폭을 보였다.

증권가 전문가들도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송홍익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DTI 규제가 일부 완화되도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155%로 높은 수준이라 사람들이 돈을 더 이상 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승영 토러스 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을 멈추면 소비심리가 살아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나온 정책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완화 혜택을 보는 대상이 좁기 때문에 시장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뭔가 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 느낀 듯"

지난 21일 열린 내수활성화를 위한 민관합동 집중토론회 당시.
 지난 21일 열린 내수활성화를 위한 민관합동 집중토론회 당시.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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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이러한 반응은 정부로서는 당혹스러운 수준이다. DTI 규제 완화는 대통령이 직접 주관한 토론회에서 장장 10시간의 토론시간 중 절반을 할애한 내수 활성화 대책의 핵심으로 제시된 것이기 때문이다. 골프장 개별소비세 인하, 복합리조트 사전심사제 도입, 중소기업 가업승계 세제지원 등도 거론하긴 했지만 내수 활성화 대책과는 하나같이 거리가 먼 내용들이다.

시민사회 인사들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정부가 내수 활성화와는 관련이 없는 내용을 버젓이 내수 활성화 대책으로 내놨기 때문이다. 김수현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왜 이런 결론을 냈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털어놨다.

김 교수는 "자산이 있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수익성을 따지지 대출 늘려준다고 그냥 집 사지 않는다"며 웃었다. 그는 "청와대에서 뭔가 하긴 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이런 정책을 낸 것 같다"면서 "내수 경기 활성화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이번 조치가 실현되면 내수 활성화보다는 가계부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집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 중 주택 담보로 생활자금을 빌리거나 사업자금을 빌리는 사람은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정부가 가계대출을 조정하는 정책을 내야 하는데 거꾸로 됐다"고 비판했다.

이번 발표의 수혜자는 주택을 여러 채 가진 다주택자들이라고 분석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 본부장은 "이번 완화로 혜택을 볼 사람은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DTI 규제가 완화된다 한들 부동산 가격도 높고 매매거래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에 누군가 이득을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한국은행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적절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시중에 멈춰있는 단기 부동자금은 5월 말 기준으로 653조 원에 달한다. 굳이 DTI 규제를 풀지 않는다 해도 시중에는 자금이 넘쳐나는 상태다.

정부는 왜 DTI 규제 완화 카드를 꺼내 들었을까. 개포동 부동산 중개소에는 오후가 늦도록 이번 발표와 관련된 별다른 시장 반응이 없었다. 부동산 중개업자 최선희(가명)씨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며 색다른 추측을 내놨다.

"정부가 사실 하고 싶은 건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 등이 포함된 복합리조트 건립 규제 완화하는 게 아니었을까요. 시선분산 효과 있잖아요. 상대적으로 DTI 완화와 같이 엮으면 그게 별일 아닌 걸로 보이니까."


태그:#DTI, #완화, #재건축,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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