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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온 한문 공부를 하는 사람. 올레길 여행 갔다가 머무른 제주 강정마을에서 삶이 변하게 되었고, 그 후 쌍용자동차 분향소에서 들은 이야기로 공장노동자에 대한 궁금함이 생겼습니다. 생산직 여성 노동자의 삶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직접 공장에 취업했습니다. <기자 말>

맛살공장의 하루는 조례로 시작된다. 오전 8시 30분 출근으로 돼 있지만, 조례는 8시 10분에 시작한다. 조례에 지각하면 현장으로 들어가면서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는 멋쩍은 상황이 발생한다.

조례에서 주임은 그 전날 생산량과 고객들의 '항의'에 대한 주의사항을 이야기한다.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어준 후 구호를 외치면 조례는 끝이 난다. 집에서 공장까지 1시간 30분이 걸리기에 8시 10분 조례에 참석하려면 집에서 6시 30분에는 출발해야 했다. 출근카드는 현장에 있기 때문에 위생복으로 현장에 들어가야만 출근카드를 찍을 수 있다.

30분 단위로 근로시간이 인정되기 때문에 8시 10분에 찍힌 출근시간은 근로시간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공짜 근로를 20분 제공하는 것이었다. 나는 집이 머니 조장 이모는 9시 30분에 출근해도 된다고 했다. 대신 퇴근시간은 10시로 조정되었다. 처음에는 11시에 퇴근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으셨지만, 그 시간에 퇴근하면 마지막 버스를 놓치기 때문에 10시로 조정했다.

조례가 끝나면 8시 30분. 그때부터 각자가 일하는 곳에 가서 청소를 시작한다. 근속기간이 5년이 넘는 베테랑 이모들은 각자의 맛살을 포장하는 기계로 가서 기계 청소를 한다. 진공포장을 하는 이모들은 맛살 담는 바구니를 가져다 놓는 등 작업 준비를 한다.

전남 여수에 있는 한 식품공장 내부 모습.
 전남 여수에 있는 한 식품공장 내부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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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공포장을 하다가 9시 30분에 출근하면서 고온, 멸균, 냉각된 맛살을 박스에 담는 적재조에 들어가게 되었다. 9시 15분 정도에 현장에 들어가면 바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바닥청소를 시작한다. 적재는 11시가 넘어서야 잔업이 끝나기 때문에 전날 청소가 안 돼 있다. 바닥청소를 끝내면 바로 물걸레를 들고 걸레질을 시작한다. 청소가 끝나는 10시부터 냉각되어 올라온 맛살들을 본격적으로 박스에 담는다.

1㎏ 냉각된 맛살을 10개씩 박스에 담아 옮기는 일은 양손 마디를 욱신거리게 했다. 종일 서서 일하기 때문에 왼쪽 엄지발가락에 쥐가 났다. 차가운 물에 담겨 있다 올라오는 맛살을 바로 꺼내기 때문에 목장갑에 고무장갑을 끼고 일을 해도 손은 곧 젖기 마련이다.

짧은 앞치마는 젖기에 발끝까지 내려오는 긴 앞치마를 새로 받았다. 또 위생화가 젖어 발이 물에 불면서 고무신 같은 위생화를 새로 받았다. 만약 위생화를 반납하지 않고 퇴사하면 4500원을 월급에서 뺀다는 말과 함께.

공장으로 주문된 맛살 생산량을 주임이 계산해서 적재조와 맛살포장조, 가공조에 전달하면 그날 하루 생산해야 하는 맛살의 종류와 박스가 화이트칠판에 적힌다. 일하는 사람들은 그걸 보고 하루 생산해야 하는 물량을 안다.

여러 종류의 맛살을 두 명이서 박스에 담기 때문에 교대를 해준다거나 쉬는 시간이 있을 수 없다.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은 있어야 하니 오후 4시에 10분 정도만 쉰다. 그 외에는 쉬고 앉을 수 있는 시간조차 없다.

"돈 벌어야 하는데 아파서 빠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느날 아파서 빠졌던 도연이가 내게 했던 말이었다. 일주일 동안 월화수는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목금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모두 11~12시간 5일 노동을 했다. 그 다음주 수요일 내 통장에 들어온 주급은 32만5000원. 토요일 특근 시간에 빠진 결과였다.  나는 그 다음 주에도 토요일 근무를 하지 않았다.


태그:#여성,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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