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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낮 상수역 희망식당 2호점에 손님이 가득 찼다.
 16일 낮 상수역 희망식당 2호점에 손님이 가득 찼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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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인터뷰를 예상했다. 말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희망식당 하루'의 셰프(주방장) 세 명을 인터뷰하기로 결정하면서 가장 걱정되는 사람이었다.

16일 오후 2호점 셰프 임재춘(51)씨를 만나러 상수역 인근 한식당 '춘삼월'로 향하면서, 처음 문을 열었을 때를 떠올렸다. 이곳이 월요일마다 '희망식당'으로 바뀌기 시작한 건 지난 5월 14일, 그는 어떤 질문에도 단답형이었다. 지금도 그런 식이면 이번 인터뷰는 망했다고 생각했다. (관련기사 :  홍대에서 약속? '희망식당'이 답입니다)

임씨는 말 잘하는 교수도, 정치인도, 단체 활동가도 아니다. 그는 노동자였다. 지금은 해고노동자다. 해고되기 전에도 말 없고 무뚝뚝했다. 5년 동안 복직을 위해 싸우면서 안 해본 게 없다. 집회와 농성이 반복됐다. 그 지루한 싸움은 그를 더 딱딱하게 만들었다. 항상 인상을 찌푸렸다. 최근에 시작한 두 가지 일도 기분 좋게 시작한 게 아니다. 더 싸우려고 했지만 더 할 게 없었다. 지난 2월 대법원이 2년 반을 끌다가 10분 만에 복직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이후, 그는 다른 싸움을 모색해야 했다.

최근 그와 동료들은 악기를 들고 밴드 '콜밴'(콜트악기 밴드)을 결성했다. 자신을 해고시킨 콜텍악기에서 평생 기타를 만들었지만 연주를 해본 건 처음이었다. '희망텐트', '희망광장'에서 공연을 했다. 그 행사에서 동료들 밥 당번을 하다가 희망식당에서도 국자를 들게 됐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 희망식당의 주방을 책임졌다. 이 두 가지 일이 그를 변화시켰다. 처음에는 "안 할 수 없어 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주변 사람들도 그가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 그는 웃고 있었다.

"억울한 심정 풀고 싶다, 단 하루라도 일하겠다"

16일 오전 서울 상수동 희망식당 2호점에서 콜텍 해고노동자 임재춘씨가 닭곰탕을 끓이고 있다.
 16일 오전 서울 상수동 희망식당 2호점에서 콜텍 해고노동자 임재춘씨가 닭곰탕을 끓이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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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몸만한 큰 들통 앞에서 삶은 닭을 건져낸 임씨가 국자로 능숙하게 기름을 떠냈다. 한쪽에는 그가 잘게 찢어놓은 살코기가 쌓여 있었다. 국그릇에 살코기 몇 점을 넣고 기름을 떠낸 맑은 국물을 부으니 이날의 메뉴인 닭곰탕이 완성됐다. 뜨끈뜨끈한 곰탕에서 맛있는 냄새가 났다. 불 위에서는 계속 국이 펄펄 끓었고 그도 땀을 뻘뻘 흘렸다. 연두색 땡땡이 앞치마가 제법 잘 어울린다. 불쑥 주방에 들어가 인터뷰 이야기를 꺼내자 그가 껄껄 웃는다.

"아 무슨 인터뷰요. 나 말고 저 아가 말 더 잘하는데…. 같이 할까요?"

임씨는 주방 한쪽에서 일하던 '순대'(닉네임)를 가리켰다. 희망식당 2호점 출발부터 임씨와 함께한 동료다. 일주일에 한 번 문을 열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을 돕는 희망식당에서 매번 함께 일하고 있다. 살짝 빼기는 했지만 임씨가 인터뷰를 거절한 건 아니다. 그는 국자를 휘휘 저으며 "좀 있다 한가해지면 하자"고 말했다. 그는 아까 건져놓은 닭이 식었는지 확인하고 다시 열심히 찢기 시작했다.

희망식당 2호점은 이날도 '대박'이었다. 밥값은 단돈 5000원이지만 함께 식사한 사람 숫자보다 더 많은 돈을 내고도 그냥 가는 사람이 자주 눈에 띄었다. 점심시간 내내 빈자리가 없었고 종종 기다려야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지난 4월 상도역에 1호점이 문을 열고 상수역의 2호점, 충북 청주에 3호점까지 거침없이 확장 중인 희망식당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1호점에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신동기씨가, 3호점에는 유성기업 해고노동자 김풍년씨가 셰프를 맡고 있다.

손님들의 발걸음이 뜸해졌을 시간, 이날 희망식당 담당자들의 늦은 점심이 준비되는 동안 임재춘씨와 마주 앉았다. 그는 다른 희망식당에 가봤는지 묻는 질문에 "안 가봤다. 보통 월요일에 희망식당이 끝나면 바로 내려가서 일요일 저녁에 올라온다"며 "1호점에는 가볼 시간이 없었고, 3호점에도 가보고는 싶지만 가면 이것저것 참견하게 될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 식당 주방장마다 나름 자긍심이 있으니까"라고 덧붙인다. 이제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편안한 모습이다.

임씨가 일했던 콜텍악기는 대전에 있다. 인천에서 전자악기를 생산하는 '콜트악기'의 자회사로 통기타를 만든다. 지난 2007년 콜트콜택악기는 공장을 중국으로 옮기고 30년 동안 일한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노동자들은 싸웠고 지난 2009년 고등법원은 부당해고 판결을 하지만 이는 2년 뒤 대법원에서 뒤집어졌다. 대법원 판결 당시가 투쟁 1848일째, 오는 25일이면 이들의 복직 투쟁은 2000일을 맞는다. 그는 그렇게 서울과 대전을 오가고 있다. 임씨에게 지금까지 싸우고, 앞으로도 싸우려는 이유를 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되든 원직복직을 해서 몇 개월이라도, 하루라도 일을 해야겠다는 심정입니다. 사실 이렇게 투쟁하다가 합의하면 뭐합니까. 기륭전자도 그렇고, 한진중공업도 합의가 제대로 이행된 게 없잖아요. 그래서 단순히 합의하는 게 목표가 아니에요. 진짜로 복직해서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너무나 억울한 심정을 풀 수 있을 거 같아요. 단 하루라도 우리가 일했던 그곳에서 다시 일하는 꿈을 가지고 투쟁하는 겁니다."

희망식당, 그를 웃게 만든 힘

지난 5월14일 영업을 시작한 희망식당 '하루' 2호점에서 콜텍 해고노동자인 임재훈씨와 쌍용차 해고노동자인 박일씨가 그릇에 음식을 담고 있다.
 지난 5월14일 영업을 시작한 희망식당 '하루' 2호점에서 콜텍 해고노동자인 임재훈씨와 쌍용차 해고노동자인 박일씨가 그릇에 음식을 담고 있다.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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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씨도 '희망식당이 그를 변화시켰다'는 주변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 인상이 차가웠다고 말하자 "시작할 때는 걱정이 많았다. 잘 될까라는 걱정, 내가 안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답했다.

"항상 인상을 많이 쓰고 다녔는데, 인상이 달라졌다고 하네요. 나는 잘 모르겠지만 주변에서 다들 그래요.(웃음) 희망식당에 오는 사람 중에는 나를 모르는 사람도 많은데 계속 인상 쓰고 있는 게 안 좋아 보인다고, 웃으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웃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되는 거 같아요."

요리사 정신도 갖췄다. 임씨는 "힘든 투쟁을 하다보니까 웃음이라는 게 하나도 없었다. 완전히 찌들었다"며 "또 그렇게 인상을 쓰면서 음식을 하면 그만큼 맛이 떨어지지 않겠나? 음식 맛이 덜할 거 같아 많이 웃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수줍음'은 여전했다. 종종 주방 밖으로 나와 손님들과 이야기도 나누지만 그는 여전히 묵묵하게 자기 일을 하는 스타일이다. 인상 깊었던 손님을 묻는 질문에 임씨는 "손님들은 잘 알지 못한다. 원래 사람들하고 이야기 하는 걸 잘 못한다"며 "대화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웃으면서 말이다.

희망식당에는 밥값 5000원을 내는 것 말고 손님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와 식당에 비치된 방명록에 '해고는 나쁘다'는 메시지를 남기는 일이다. 임씨는 그 숙제의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해고되기 이전과 해고된 이후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 그가 직접 겪은 '모범답안'을 제시한다.

"여기서 한 끼 맛있게 드시고 간 분들은 저희처럼 투쟁하는 사람들을 보고 욕하고 손가락질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나쁘게만 보지 말고 그 사람들의 소리를 정정당당하게 들어달라는 거죠. 사실 우리도 이렇게 싸우기 전에 똑같이 그랬습니다. 어디서 집회를 하고 있으면 '시끄럽게 왜 또 저러냐' 그러고, 행진해서 차 막히면 막 '빵빵'거렸죠. 정리해고 당해보니까 그 마음을 알겠습니다."

"희망식당 손님들, 밥 한 끼로 희망 보여준다"

콜텍 해고노동자 임재춘씨가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콜텍 해고노동자 임재춘씨가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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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두 딸이 있다. 아내는 없다. 그가 해고될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큰 딸은 최근 대학을 졸업했고 중학생이었던 작은 딸은 일찍 취직을 했다. 처음 그가 복직투쟁을 하는 것을 두 딸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5년이 지난 지금 큰 딸은 어느 정도 이해를 하지만 작은 딸은 여전히 불만이라고 한다.

"큰애는 2년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갔어요. 그래도 융자받은 게 있는데 갚아줘야죠. 아이들에게 희망 찾아 나가라고 이야기해요. 저도 그러고 있다고. 5년 동안 했는데 더 참아보자 그러죠. 그래도 작은애는 아직 잘 이해 못해줘요.(웃음)"

임씨는 '희망'식당에서 일하며 복직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투쟁하고 있다. 대법원까지 등을 돌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말이다. 그에게 희망이 무엇인지 물었다.

"희망은 본인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라 하죠. 지금 우리나라에는 희망이 안 보이는 거 같아요. 복직 할 수 없다는 10분짜리 판결하는데 2년 반이 걸렸어요. 그 사이 해고노동자들은 계속 고통 받았습니다. 이게 대한민국이에요. 우리는 이제 오래 살았으니까 그렇다지만 자식들은 어떻게 살까 암담합니다.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답하기 어렵습니다. 먹고 살 걱정을 하는 게 지금 우리 모두의 같은 고민이잖아요."

그는 희망식당에서 시작된 '밥으로 연대'가 더 퍼져 나가길 바란다. 임씨는 "밥이 없으면 죽는 거다. 다 먹고살려고 하는 게 일"이라며 "짐승도 마찬가지로 밥이 있어야 한다. 해고노동자들도 밥 세 끼 먹고 살자고 싸우는 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밥을 안 먹어도 된다면 투쟁할 필요도 없다"며 "희망식당에 오는 손님들도 그걸 알고 있다. 밥 한 끼로 희망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희망식당의 문을 닫고 다시 대전으로 내려간다. 거기서 농성하는 동료들이 있다. 최근에는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동탄압 문제로 투쟁하는 사업장들이 매주 수요일 서울에 모여 함께 투쟁을 벌인다. 거리에서 시민을 만나고 각자의 투쟁현장을 방문한다. 곧 콜트 정리해고 투쟁 2000일이 되면 해고자들의 이야기가 다시 한 번 주목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을 끝으로 그들이 더 주목받지 않는 평범한 노동자로 돌아가기를 바라본다.


태그:#희망식당, #콜텍, #쌍용자동차, #임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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