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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모든 학교는 8월 31일까지 두발·복장 등 용모에 관한 사항을 규제하고 학생 소지품 검사를 가능하도록 하는 학교규칙(이하 학칙)을 제·개정해야한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4월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바꿨기 때문이다.

인천시교육청은 지난 6월 21일과 22일 이틀간 초중고 학교장 489명을 모아놓고 학칙 제·개정을 위한 워크숍을 열고, 운영 매뉴얼까지 만들어 보급하는 등 교과부의 방침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선 학교에서는 학칙 개정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학칙 개정을 위해서는 학생·교사·학부모 등으로 학칙개정위원회를 구성하고,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아야한다. 의견 수렴을 바탕으로 학칙 개정 초안을 작성해야 하며, 초안 내용을 놓고 구성원들이 참가하는 토론회를 열어 제시된 의견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 최종 시안을 마련하면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공포할 수 있다.

하지만 교과부의 이러한 방침은 갈등과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교과부가 개정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학생 인권을 퇴보시킨다는 지적이 높기 때문이다. '진보 교육감'이 있는 서울·경기·광주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학칙 제·개정은 학생인권조례에 따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특히 초등학생들의 두발과 복장도 규제하는 방향으로 학칙을 개정하는 움직임이 보여 논란은 커지고 있다.

인천 ㅅ초등학교의 학칙개정 1차 시안 자료. <자료 갈무리 사진>
 인천 ㅅ초등학교의 학칙개정 1차 시안 자료. <자료 갈무리 사진>
ⓒ 자료 갈무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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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후 인천 ㅅ초등학교에서 열린 학칙 개정을 위한 학교 구성원 토론회에서도 갈등과 논란이 일었다.

토론회는 학칙개정위에 참가한 학생 대표 2인, 교사 대표 2인, 학부모 대표 2인이 그동안의 경과와 의견수렴 과정을 설명한 뒤, 참가한 학부모들이 질문하거나 의견을 밝히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학칙 개정 초안의 핵심 내용 중 세 가지 조항이 논쟁거리였는데, 학부모 대부분은 학생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또한 의견수렴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 가지 조항은 주로 학칙 제27조에 삽입되는 것으로 ▲학생 두발·복장 등 용모에 관한 사항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며 학생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한다 ▲교육목적상 필요한 경우 학생들의 인격을 존중하며 담임교사 또는 생활지도 교사가 소지품 검사를 할 수 있다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의 소지는 자유로이 하나 학교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이다.

앞서 의견수렴(=설문조사)한 결과는, 이 세 가지 조항을 찬성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5, 6학년 학생 223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64~100%가 세 가지 조항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보였고, 교사 32명 중 78~81%, 학부모 86명 중 86~88%가 찬성한다고 했다.

하지만, 학생 두발·복장 규제와 소지품 검사, 휴대전화 사용 불가 조항 등이 모두 찬성률 100%를 보인 반이 꽤 많아, 의문이 제기됐다. 또한 이 학교 학생이 570명인 것에 비해 의견을 수렴한 학생과 학부모 수가 너무 적다는 점, 의견수렴 기간이 짧았다는 점, 해당 조항에 대한 해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날 학생 대표로 참가한 학생들에게 물어본 결과,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받아 정리한 학생들임에도 학칙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설문조사에 응한 다른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5학년 ㄱ군은 "반 친구들이 소지품 검사 조항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많이 내자, 선생님이 '매일 소지품 검사를 하는 것은 아니고, 정말 필요할 때만 하는 것이니 찬성하라'고 해, 찬성의견에 스티커를 붙였다"며 "휴대폰 사용 금지 조항도 '나는 학교에서 휴대폰을 안 쓰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찬성 의견에 스티커를 붙였다"고 말했다.

이 학생이 속한 반은 소지품 검사 조항에 100% 찬성한다는 의견이 수렴된 것으로 확인됐다.

토론회에 참가한 학부모 ㄴ씨는 "아이가 가정통신문을 가져와, 모두 '찬성'에다 표시를 했는데 나중에 이렇게 학생인권과 관련된 문제인 걸 알았다"며 "학생인권에 대해 먼저 학생이나 학부모들에게 교육을 진행하는 게 필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학칙에 대한 이해 없이 설문조사에 응했고, 때문에 구성원들의 의견수렴이 제대로 됐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토론회 참가 학부모들은 "기존의 학칙으로 학생 지도가 어렵다는 명확한 설명과 학부모에게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학칙을 꼭 개정해야 하느냐. 안 해도 되는 것 아닌가" "두발·복장 규제 조항은 삭제하고, 소지품 검사는 본인 동의를 받아야한다는 조항을 넣어달라"는 등의 부정적인 의견들을 쏟아냈다.

반면, 학칙개정위에 참가한 교사 ㄷ씨는 "현재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조항들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을, 학부모 ㄹ씨는 "아이가 머리가 너무 길어 보기 싫은 데 자르라고 해도 말을 않 듣는다. 학칙이 개정되면 이런 부분을 교사가 지도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찬성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토론회에 참가했던 학부모 ㅁ씨는 <부평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초등학생은 원래 두발·복장이 자율 아니냐. 중고등학교에 가면 규제를 받을 텐데 초등학생 때부터 규제한다는 것은 너무 심하다"며 "학생 동의 없이 소지품 검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인권 침해 소지가 커 반대 의견을 냈다. 휴대전화 사용 문제는 지금처럼 조회시간에 걷었다가 종례시간에 돌려주면 되는 것 아니냐. 아예 학교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토론회에서 학교 측은 "8월 31일까지 학칙을 개정해야하는데, 여름 방학이 껴있어 빨리 추진해야한다"며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들을 최대한 반영해 최종 시안을 마련하고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심의를 받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교과부는 초ㆍ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학생 등 학내 구성원의 의견을 반영해 학칙을 개정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약속한 학칙을 준수함으로써 민주시민의 자질이 함양될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으나, 학교 현장의 상황은 이와는 많이 다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학칙 개정, #학생인권조례, #인천시교육청, #초등학교, #두발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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