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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민주통합당 의원이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도종환 민주통합당 의원이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국회 인터넷 의사중계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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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그는 차분하게 자신의 시를 읊었다. 시 낭송회 자리가 아니었다. 9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서였다. 그는 바로 시인이자 19대 국회의원인 도종환 민주통합당 의원이다.

도 의원은 이날 5분 모두발언에서 <흔들리며 피는 꽃>을 낭송했다. 본회의장에 있던 국회의원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어 그는 국회의원들을 향해 "이 시에 정치적인 문제가 있습니까, 이런 시를 학생들이 읽어서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정치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데 교육 당국 앞장서면 안 돼"

그가 19대 국회 첫 본회의 의사일정 자리에서 자신의 시를 소개한 이유가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이 교과서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이유로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자신의 작품을 뺄 것을 출판사에 권고해 논란이 일고 있어서다.

도 의원은 이 자리에서 평가원의 권고 조치를 힐난했다. 그는 "이 시는 지난 10년 동안 교육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라며 "단지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교과서에서 작품을 빼도록 강요하는 건 정치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의원은 지역과 부문,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라며 "이런 의정활동을 어린 학생들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도 의원은 연설이 끝날 즈음 이번에 삭제를 요구받은 한 출판사 국어교과서에 실린 '도종환 시인 소개글'을 읽으며 "이런 평가가 정치적 파당적 편견을 전파하는지 현명한 판단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의 시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가를 끊임없이 묻게 하고,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또한 혼자가 아니라 함께 누리는 행복을 위해 살아야 하고, 자기 밖의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검정교과서를 심사하는 교과부 산하 평가원은 지난 6월 26일 검정 심사를 받은 중학 국어 교과서 16종에 수정·보완 의견을 출판사에 보냈다. 그때 유명 시인 도 의원의 시와 산문이 실린 8종에 작품 교체 등을 요청했다. 출판사가 수정·보완 권고서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평가원이 검인정 국어 교과서 채택 합격을 취소할 수도 있다.

이 교과서들에는 도 의원의 <흔들리며 피는 꽃> <담쟁이> <종례시간> <여백> <수제비> 등 시 5편과 산문 1편 등 전부 6편의 작품이 실릴 예정이었다. <담쟁이>와 <수제비> <종례시간> 등 시 3편은 2~3개 교과서에 중복 게재됐다.

평가원 "현역 정치인은 안 돼" vs 작가회의 "국회의원이던 김춘수 시인은 되고?"

도종환 시인.
 도종환 시인.
ⓒ 신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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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원은 "검정 규정에 따르면 정치적 중립성을 감안해 현역 정치인의 경우 수록을 배제하는 게 원칙"이라며 각 출판사들에 수정·보완 권고 조치 이유를 밝혔다. 2012년 교과용도서 검정 본심사 결과 설명회 질문 내역에서도, "도 시인의 작품이 '특정인물에 대한 옹호'로 수정요청을 받았다, 현재 국정교과서에도 실려 있는데 반드시 수정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도 시인의 경우,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현직 정치인으로 활동 중이므로 수정 보완 권고를 했다"고 답하고 있다.

문학계는 이번 조치에 강하게 반발했다. 도종환 시인이 부이사장을 지낸 문인단체 한국작가회의는 9일 '시인을 추방하지 말라'는 성명을 내고 "교과서에 실리게 될 시들은 정치인 도종환 이전에 시인 도종환의 작품"이라며 "도종환 시인이 야당 국회의원이 아니고 여당의 국회의원이었다 해도 이런 치졸한 이유를 들어 추방하려 했을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시영 작가회의 이사장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김춘수 시인은 1980년대 민주정의당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당시 시인의 작품 '꽃'이 교과서에서 삭제됐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며 "시인 작품 7편을 하루아침에 추방시키는 게 말이 되냐"고 항의했다. 이어 "권고 자체가 매우 자의적이다"라며 "교과부가 교과서에 도 의원의 시를 그대로 두지 않으면,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에 정학균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검정운영팀장은 "김춘수 시인의 시는 국정교과서에 수록됐으므로 교과부에서 검정하지만, 도 의원의 시는 검인정 교과서에 속하기 때문에 검정심의회 의결에 따라 수정·보완 조치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이 이사장은 자신의 트위터(@ro_roadwalker1)를 통해 "교과부는 교과서에 실린 도종환의 시를 그대로 두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교과부는 그의 트위터로 해명을 요청하는 글을 보냈다.

교과부는 "검정교과서 심사는 교과부가 아니라 교과부의 위탁을 받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하고 있다"며 "수정·보완 권고는 평가원에서 위촉한 대학교수와 교사들로 구성된 국어 검정심의회에서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심의회는 도종환, 이자스민 등 현역 정치인과 관련해 특정 인물에 대한 홍보라는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해당 출판사에 수정을 권고했다"고 덧붙였다. 

평가원 "선관위에 질의 후 다시 심의"

평가원 홈페이지에 나온 '검정 심사의 기본 원칙' 중 '객관성의 원칙'에서는 "교육 내용이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심사"한다고 밝히고 있다. 초·중등학교 검정 교과용도서 공통 검정기준에 있는 '교육의 중립성 유지' 영역에도 "정치적·파당적·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거나, 특정 종교 교육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된 내용이 있는가"라는 항목이 명시됐다.

또한 편찬상의 유의점으로 "교육 내용은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공정하고 교육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특정 정당, 종료, 인물, 인종, 상품, 기관 등을 선전하거나 비방해서는 아니되며" 등의 내용이 있다.

한편 평가원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법 위반 여부를 공식 질의하고 그 결과에 따라 처리방안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9일 오후 밝혔다. 평가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현역 정치인으로 활동 중인 도 의원의 시를 교과서에 게재하는 것이 특정 정치인 홍보 등의 이유로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는지를 선관위에 질의하겠다"라며 "그 결과에 따라 검정심의회를 개최해 처리방안을 심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출판사들은 저작자협의회를 개최해 수정·보완 요구의 반영 여부를 결정한 뒤 18일까지 수정본을 평가원에 제출하게 된다. 수정본에 대한 평가원의 재수정·보완 권고 통보는 8월 2일까지 진행된다. 이후 평가원은 교과서 견본을 접수하고 저자와 출판사의 의견을 검정심의회에 상정해 최종 의결을 요청할 예정이다. 최종 합격 여부는 8월 31일 공고한다.


태그:#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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