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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를 온 몸과 얼굴에 바르고 재밌게 놀았습니다. 머리속까지 파고든 밀가루 제거하느라 고생했습니다.
▲ 놀이터 밀가루를 온 몸과 얼굴에 바르고 재밌게 놀았습니다. 머리속까지 파고든 밀가루 제거하느라 고생했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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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오후, 박람회장으로 향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엑스포 홀'로 가고 있습니다. 유명한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오닐' 공연을 보려고 합니다. 이번이 두 번째인데 6월 30일 열린 공연은 못 봤습니다. 지난 공연은 엑스포 홀에 공연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탓에 '입장 불가'를 통보받았죠.

알고 보니 시간 맞춰 왔더라도 좌석이 꽉 들어차서 못 볼 공연이었습니다. 두 시간 전부터 공연장에 들어가려고 사람들이 모였답니다. 그날 멋진 공연을 보지 못한 아내가 많이 속상해하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제가 아내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해줬습니다.

7월 6일, 용재오닐 공연이 또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실망하던 아내는 그 말을 듣고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달력에 시뻘건 매직으로 동그라미를 수없이 그려놓았습니다. 벽에 걸린 달력을 보니, 두 번째 공연은 꼭 보고야 말겠다는 뜨거운 의지가 온몸으로 느껴지더군요.

두 번째 공연이 있던 날, 아내는 아침부터 저에게 여러 번 다짐을 놓았습니다. "늦어도 오후 3시 30분까지는 와야 한다"며 "좌석 표는 4시부터 나눠주니, 최소한 그 시간에는 엑스포 홀에 도착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마침내 공연 세 시간 전입니다.

용재오닐 공연 좌석 매진, 아내가 아이들에게 싸늘한 눈빛을...

앙상블 '티토'입니다.
▲ 앙상블 '티토' 앙상블 '티토'입니다.
ⓒ 2012여수세계박람회조직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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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일을 마무리 짓고, 박람회장에 도착했습니다. 아내와 저는 서둘러 엑스포 홀을 향해 걷습니다. 갑자기 아이들 걸음이 느려집니다. 세 아들이 신기한 물건을 찾았습니다. 잰걸음을 놓던 아내가 막내 손에 힘을 줍니다. 질질 끌려가던 막내는 고통을 참으며 길게 고개를 뺍니다.

등 뒤로 하염없이 사라지는 신기한 물건을 바라봅니다. 우연히 발견한 재밌는 물건이 시야에서 멀어집니다. 하지만 야속한 엄마는 손 놓을 생각이 없습니다. 지금 아내는 엑스포 홀을 향해 뛰어가고 싶을 겁니다. 또 좌석표가 매진되면 그 귀한 공연(?)은 영영 여수에서 볼 수 없으니까요.

부지런히 걸어 엑스포 홀에 닿았습니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안내를 맡은 분이 안쓰러운 얼굴로 아내를 바라봅니다. 좌석표가 이미 매진됐습니다. 공연 시작 4시간 전부터 기다리던 사람들이 좌석 표를 나눠주자 모두 받아들고 공연장으로 들어갔답니다.

아내가 허탈해합니다. 힘이 풀린 다리를 끌고 발걸음을 돌립니다. 이윽고 아내가 세 아들을 향해 싸늘한 눈빛을 보냅니다. 조금 빨리 걸었더라도 매한가지 결론이 났을 텐데, 괜히 애들만 혼이 납니다. 세 아들이 묵묵히 아내 뒤를 따릅니다. 공연 못 본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는 듯 무거운 분위기입니다.

집에 가다 들른 '가루야 가루야' 공연장... "재밌네"

하얀 밀가루 위에 큰애가 '엥그리버드'를 그렸습니다.
▲ 엥그리버드 하얀 밀가루 위에 큰애가 '엥그리버드'를 그렸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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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간다."

어깨가 축 쳐진 아내가 허공에 대고 한마디 던졌습니다. 세 아들 얼굴이 울상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애써 이곳까지 왔으니 뭐라도 구경하고 가자"고 아내를 달랬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단호합니다. "저녁 식사도 준비 못 했으니, 괜한 돈 쓸 일 없다"며 일찍 집에 가자고 합니다.

더이상 말을 늘어놓았다가는 저녁밥도 못 먹게 생겼더군요. 조용히 입 다물고 길을 걷는데 '어린이 극장'이 보입니다. 아내가 곧장 그곳으로 향합니다. 세 아들은 기대에 찬 얼굴로 엄마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봅니다. 아내가 '어린이 극장' 앞에서 안내원에게 이것저것 묻더니 극장 안으로 들어갑니다.

아이들과 함께 '가루야 가루야' 공연장에 들어섰습니다. 밀가루와 통밀 속에서 신나게 노는 곳입니다. 세 아들이 환호성을 지릅니다. 아내가 저를 바라봅니다. 함께 들어가야 한답니다. 저는 공연장에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고 버텼죠. 하지만, 아내는 끝내 저를 그곳에 집어넣습니다.

마지못해 끌려 들어간 그곳, 이 여름에 하얀 눈(?)이 왔더군요. 바닥에 새하얀 밀가루가 눈처럼 깔려 있습니다. 길을 걸으며 발가락으로 밀가루와 인사를 나눕니다. 마치 눈이 하얗게 내린 마을 오솔길과 논두렁을 지나는 듯합니다. 이윽고 들어선 공간에는 고운 밀가루가 실내에 가득 차 있습니다.

흰 가루 묻히고 달려드는 아들 피하려다가...

하얀 눈(?)의 정체는 밀가루입니다.
▲ 가루야 가루야 하얀 눈(?)의 정체는 밀가루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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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하얀 가루가 묻었습니다. 옷 속까지 밀가루가 들어와도 재밌습니다.
▲ 분장(?) 얼굴에 하얀 가루가 묻었습니다. 옷 속까지 밀가루가 들어와도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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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나라를 지나면 통밀나라가 펼쳐집니다.
▲ 통밀나라 밀가루 나라를 지나면 통밀나라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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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를 가지고 신나게 노는 곳입니다. 아이들은 벌써 엎어져 흰 눈 사이를 헤집고 다닙니다. 밀가루를 온몸에 바르며 즐거운 비명을 지릅니다. 허공에 대고 뿌리기도 합니다. 세 아들은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상상력을 맘껏 발휘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엥그리버드'도 그렸습니다.

아내도 그 모습 보고 행복해합니다. 당황스러운 일은 제가 입은 옷입니다. 이곳에 오리라 생각했으면 세탁하기 편한 옷을 입었을 텐데 바지가 영 이곳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걷어 올린 바지에 하얀 밀가루가 흔적을 남깁니다. 아이들도 아빠 옷에 흰 가루를 뿌립니다.

이리저리 피해 보지만, 세 아들이 던지는 가루를 피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온몸과 얼굴에 흰 밀가루를 잔뜩 묻힌 큰애가 행복한 듯 아빠를 향해 달려옵니다. 저는 질겁하며 아들을 피하다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엉덩이 쪽에 하얀 가루가 묻었습니다. 그 모습 보며 세 아들이 크게 웃습니다.

멋진 옷(?)에 하얀 가루가 잔뜩 묻었습니다. 얼굴에도 밀가루가 덮쳤습니다. 온몸에 가루를 달고 다음 놀이터로 옮겼습니다. 통밀이 쌓여 있는 곳인데 발가락 사이로 끼어드는 통밀 느낌이 좋더군요. 통밀을 떨어뜨려 소나기 소리를 내는 악기도 있습니다. 커다란 공을 던지며 놀기도 했습니다.

'가루야 가루야' 공연 하루 15회, 한 회당 150명 선착순 입장

통밀나라에서는 어떻게 놀면 즐거운지 방법을 알려줍니다.
▲ 안내문 통밀나라에서는 어떻게 놀면 즐거운지 방법을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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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밀을 천천히 부으면 아름다운 빗소리가 납니다.
▲ 소리 통밀을 천천히 부으면 아름다운 빗소리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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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밀바다에서 막내가 헤엄을 칩니다.
▲ 수영 통밀바다에서 막내가 헤엄을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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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무릎까지 채워진 '밀 풀장'에서 개구리헤엄도 칩니다. 통밀 속에 몸을 숨기고 술래잡기도 합니다. 밀을 퍼 담고 흔들어 빗소리도 만듭니다. 세 아들은 평소 집에서는 할 수 없는 놀이에 마냥 즐겁습니다. 생활 속에서 흔히 봤던 밀가루가 새로운 놀이가 됐습니다.

'가루야 가루야' 공연을 마련한 (주)아티움오퍼스 임동욱 대리에게 지금까지 몇 명이나 공연장을 찾았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현재 누적 관람객은 약 56000명이다"며 "박람회장을 찾은 300만 관람객 중 6% 정도가 어린이극장을 다녀갔다"고 말합니다.

그동안 이곳을 다녀간 부모님는 아이들에게 예쁘게(?) 망가진 모습을 잘 보여줬겠군요. 이 공연은 하루 15회 열립니다. 각 회당 150명씩 선착순으로 입장이 가능하답니다. 세 아들과 신나게 논 후, 제 모습을 봤습니다. 밀가루가 옷을 하얗게 만들었습니다. 머리에는 흰 머리카락이 날립니다.

옷 속까지 파고든 통밀이 이상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호주머니에도 이 녀석들이 들어앉았습니다. 그날 저는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반면, 아이들은 이상한 아빠의 모습을 보며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집에 돌아와 세 아들과 시원한 물로 목욕했습니다.

비올리스트 음악 못 들었지만, 아이들 즐거운 비명 들었으니 만족합니다

공기 분사기로 옷과 몸에 묻은 밀가루를 털어냅니다. 완벽한 제거는 어렵습니다. 여벌의 옷이 필요하겠지요?
▲ 밀가루 제거 공기 분사기로 옷과 몸에 묻은 밀가루를 털어냅니다. 완벽한 제거는 어렵습니다. 여벌의 옷이 필요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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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바지에 하얀 밀가루가 묻었습니다. 세탁할 일이 걱정입니다. 그날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 망가진 바지 검은색 바지에 하얀 밀가루가 묻었습니다. 세탁할 일이 걱정입니다. 그날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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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야 가루야는 하루 15회 공연합니다.
▲ 공연 시간 가루야 가루야는 하루 15회 공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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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물을 애들 등에 끼얹으며 생각했습니다. 비록 유명한 비올리스트가 연주하는 공연은 못 들었지만, 아이들의 즐거운 비명을 들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아내도 그 모습이 싫지 않은지 맛있는 저녁상을 차려 놓았더군요. 아이들과 재밌게 논 덕분에 맛있는 밥상도 받았습니다.

여수세계박람회장에 가시거든 '가루야 가루야' 공연이 펼쳐지는 어린이 극장에 꼭 한번 들러보세요. 그곳에서 아이들에게 심하게(?) 망가지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아이들이 즐거워할 겁니다. 가실 때는 꼭 갈아입을 옷 챙기는 일 잊지 마시고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여수넷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여수세계박람회, #가루야 가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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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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