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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넘는 세월을 묵향(墨香)과 동고동락해온 중견 서예가 동원(東園) 손현주(孫賢周, 59) 원장을 만났다. 군산시 월명동 주택가에 자리한 '동원서예연구실'을 운영하며 후진양성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손 원장은 한복을 정중히 가다듬으며 '글을 쓴다는 개념보다 글을 낳는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고 말한다.

 

손 원장은 전북 임실(任實)이 고향으로 일곱 살 때 한영수 선생이 가르치는 서당에 다니면서 지필묵을 평생 벗으로 사귄다. 고향에서 한학을 공부하다 1969년 군산으로 옮겨 한국 서예에 큰 족적을 남긴 여산 권갑석(1924~2008) 선생에게 1981년까지 사사한다. 그는 도전과 국전에 거듭 입상·입선하면서 1985년 불교문화미술대전 초대작가가 되고, 1986년 한성예술제 심사위원이 되는 등 30대 초반에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굳힌다.

 

아내도 제자, 아들들도 제자... '서예가족' 이룬 손현주 원장

 

고즈넉함에 끌려 언젠가 한번 들러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집. 1년 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 날 오후, 월명동에 있는 동원서예연구실 마당에 들어선다. 배추, 무, 상추, 고추, 가지, 아욱, 쑥갓, 호박 등을 심어놓은 텃밭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냄새가 코끝을 훔치고 달아난다. 순간 시골 외갓집 뒷밭이 눈앞에 그려지면서 마음의 평화와 풍요를 함께 느낀다.

 

텃밭의 대나무(山竹)와 다양한 모형의 바위들이 묵향 그윽한 연구실 분위기를 힌깟 돋워준다. 건물 처마에 범상치 않은 글귀가 새겨진 목판이 눈길을 끈다. '月桑軒(월상헌)?'.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글이기에 입구에 걸어놓았는지 궁금해하는데, 한복을 시원하게 차려입은 손 원장이 뛰어나와 반갑게 맞아준다. 인사고 뭐고, 마름이 작인에게 소작료 독촉하듯 질문부터 던진다.

 

- 목판에 새겨진 '월상헌'은 무엇을 뜻하나요?

"제 옥호(월상, 月桑)이기도 한데요. 어렸을 때 살았던 고향(임실)에는 양잠(養蠶)을 많이 했고, 집에도 뽕나무밭이 있었습니다. 자칭 양반 고을이라고 하는데, 가난한 산골이어서 호롱불을 켜고 공부했어요. 서당에 다녀오면 뽕나무밭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으로 책을 읽었지요. 그러한 추억들을 어떻게 잊겠습니까. 평상에 앉아 쉬면서도 글귀를 보며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 집도 생각하고 작품도 구상합니다."

 

- 한복을 즐겨 입는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요?

"멋을 부리거나 튀기 위해 입는 것은 아니고요. 한복을 입으면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 행동에 제약을 받습니다. 그렇게 몸을 조심하다 보면 스스로 수도(修道)가 되지요. '칠언절구'에 '君子立身 有九思'(군자입신유구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군자는 움직이는 데 아홉 번 생각한다. 이는 아무리 군자라도 여러 번 심사숙고하고 성찰한 후 행동한다는 뜻이지요."

 

손 원장은 33년 전 결혼해서 아내(최지수)는 물론 어린 아들들에게도 서예와 한학을 가르쳤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아내는 추사백일장초대전, 전북도전 초대작가로 개정·흥남동사무소로 강의를 나간다. 직장에 다니는 아들들도 도전에 수 차례 입선 및 입상,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서예가족'을 이루고 있다. 아내(55세)는 물론 큰아들(32세)과 작은아들(29세)도 손 원장 제자인 셈.

 

필획이 간결한 게 특징인 행서(行書)는 '서예의 꽃'

 

손 원장을 따라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연습실에서는 작가를 꿈꾸는 원생들이 임서를 하느라 열심히 붓을 놀리고 있다. 서예 연습용 한지(韓紙)에서 새나오는 은은한 닥나무 향기와 금방 갈아놓은 먹물에서 풍기는 특유의 묵향이 실내에 가득하다. 그윽한 묵향에 취해서 그런지 마력에 이끌리듯 서예와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의자에 앉자 작품을 둘러보다 큼지막한 목판에서 눈길이 멈춘다.

 

- 목판 글씨가 아름다우면서도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데요?

"귀목에 행서체로 새긴 '鶴舞龜遊'(학무구유)입니다. 돌에 새기는 전각이 있고, 나무에 새기는 서각이 있는데요. 서예도 선과 점의 공간예술이어서 나무에 새기는 칼과 돌에 새기는 칼 자체가 다릅니다. 나무에 새기는 칼은 날카로워야 하고, 돌에 새기는 칼은 도끼처럼 둔탁해야지요. '학무구유'는 '학은 춤추고 거북은 헤엄친다'는 뜻으로 십장생 중에 장수(長壽)와 건강을 뜻합니다."

 

- 낙관 글씨 의미는 모르지만, 자그만 글들이 훌륭한 형님을 따라가는 동생들처럼 귀엽고 당당하게 느껴지는데요?"

"칭찬을 멋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용은 '임진년(2012) 무더운 여름에 세 가지(하늘, 땅, 성인) 것을 두려워하는 집의 분재란(蘭) 향기 풍기는 남쪽 창가에서 동원 손현주가 예리한 칼로 새겼다'는 뜻입니다."

 

- 내실에 걸린 '사석위호'(射石爲虎)와 붉은색 '전각'인은 무슨 뜻인가요?

"서한나라 임금, '이광'이라는 사람이 깊은 산 속에서 귀한 자식을 잃어버리고 애달도록 찾아다니다 돌이 아들을 품은 호랑이인 줄 알고 화살을 당기니까 화살촉이 꽂혔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사자성어입니다. 성심을 다해 노력하면 아니 될 일도 이룰 수 있다는 뜻이지요. 붉은색 전각인은 낭중지추(囊中之錐)로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말인데요.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있어도 언젠가는 나타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의미가 깊지요."

 

- 서예는 5체(전篆·예隸·해楷·행行·초草)로 구분하는 것으로 아는데요. 가장 즐겨 쓰는 서체는?

"필획이 해서(楷書)보다 간결한 게 특징인 행서(行書)를 가장 선호합니다. 간결한 획은 때로 가느다란 선으로 연결되지요. 필획이 자유분방하면서도 격조 높게 휘호 할 수 있고, 적절한 속도감을 나타낼 수 있는 행서는 서예인들에게 '서예의 꽃'으로 불리지요. 중국 동진(東晉)나라 때 서성(書聖)으로 알려진 왕의지(王義之: 321~379)의 특이한 서체가 바로 행서입니다."

 

- 전각에도 능한 것으로 아는데요. '전서'에 대해서도 설명을 부탁합니다.

"태초의 글씨가 전서(篆書)이고, 전서를 돌에 새기는 것을 전각이라고 하는데요. 전서를 익히지 못하면 전각을 하기 어렵지요. 저는 서당에서 전서를 익혔습니다. 조형미를 찾기에는 사물을 표현한 전서가 가장 어울린다는 것도 일찍 알게 되었죠. 작은 공간에 문자를 정교하게 새기는 특수성 때문에 '방촌(方寸)의 예술'이라고 하는데요. 임금이 사용하는 옥쇄도 전서체이지요."

 

- 어리석은 물음이 될지 모르지만, 원장님 작품은 글씨가 아니라 자연의 한 부분, 즉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아서 묻는데요. 혹시 사군자도 하셨는지요?

"아닙니다. 그보다 더한 칭찬이 어디 있겠습니까. (웃음) 서예도 결국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공부이자 예술이어서 붓을 들면 그림처럼 자연스러움을 찾아다니지요. 서예는 어디에 국한해서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사람은 그림으로 보이고, 아는 사람은 글씨로 보이고, 무게나 조형미로 보이기도 하고···. '서예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지요. 그리고 저는 사군자도 하면서 소나무를 가장 좋아합니다."

 

- 서실 운영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은데요. 몇 년째인가요?

"결혼하고 이듬해 문화동 카디날장갑 공장 근처 상가 2층에 처음 오픈했죠. 벌써 32년이 지났네요.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참고 견뎌준 아내에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보람도 있었지요. 학원생 중에 국전 특선작가 세 분, 도전 초대작가 일곱 분이 나왔으니까요. 그밖에도 열심히 공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 서예를 배우려고 준비하는 분들에게 조언한다면?

"몇 발짝 앞서 가는 견해에서, 배우는 교재와 똑같이 하려는 자세와 노력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다시 말해 기초를 다지는 '모서'를 열심히 하면 한 계단 높은 '임서'를 하게 되고, 임서를 하다 보면 창의성이 생겨나 자기만의 필체가 나오게 되지요. 10년쯤 노력하면 붓을 이해하고 이기게 되는데, 결론은 열심히 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손 원장 설명은 작업할 때 붓을 운필하듯 막힘이 없었다. 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도, 들녘의 잡초도 서예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그는 작품도 자전(字典)을 찾으면서 구상하기보다는 일기와 천기 등 자연에서 얻는 때가 더 많단다. 연구실을 주택가에 꾸미고, 각종 채소는 물론 닭도 키우고, 토끼도 키우고, 강아지도 키우는 이유도 자연 곁으로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 작품 소재를 얻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구절을 인용하며 마음을 편하게 먹을 때 좋은 작품이 나오더라고 말하는 손현주 원장. 대한민국서가협회(사) 한문분과위원이자 초대작가이며 해마다 심사위원을 맡아오는 손 원장의 건강과 끊임없는 정진을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서예, #손현주, #서예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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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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