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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나 살다 생면부지의 땅인 전라남도로 귀농한 이규철씨가 자신의 인삼밭에서 귀농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살다 생면부지의 땅인 전라남도로 귀농한 이규철씨가 자신의 인삼밭에서 귀농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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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아니었죠. 한 대기업 캐피탈의 법무법인에서 일했었는데요. 날마다 사람을 다그치는 게 일이었죠. 죄인 취급하고. 그 사람의 형편을 뻔히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내 위치가…. 회의감이 들었죠. 귀농도 그래서 고민하게 됐구요."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에서 인삼 농사를 짓고 있는 이규철(43)씨의 얘기다. 이씨는 귀농자다. 5년 전 생면부지의 땅인 강진에 터를 잡았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했다. 귀농 직전 업무는 소송을 진행하는 일이었다. 회사에서 빌려준 돈을 갚지 않는 고객을 상대로 한 소송이었다.

"소송을 월 평균 30여 건 진행했어요. 피도 눈물도 없던 시절이었죠. 이유를 막론하고 이겨야 했으니까요. 그래야 돈을 받아낼 수 있었구요. 정말 힘들었죠. 적을 만드는 일이잖아요. 다른 사람의 적대감을 안 사고 싶은데…."

이씨의 귀농 배경이다. 부인(정영호, 42)도 동의했다. 아직 어린 아이들한테도 좋을 것 같았다. 농촌에서 뛰놀면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었다. 그 생활을 누리게 해주고 싶었다.

생면부지 땅 강진에 터 잡은 '서울 토박이'

귀농인 이규철 씨가 자신의 인삼밭에서 인삼의 생육상태를 살피며 풀을 뽑고 있다.
 귀농인 이규철 씨가 자신의 인삼밭에서 인삼의 생육상태를 살피며 풀을 뽑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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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철 씨가 키우고 있는 인삼. 밭의 흙이 기름질 뿐 아니라 인삼의 뿌리도 튼실하다.
 이규철 씨가 키우고 있는 인삼. 밭의 흙이 기름질 뿐 아니라 인삼의 뿌리도 튼실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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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에 둥지를 틀고 인삼을 재배한 건 우연이었다. 완도 보길도에 살고 있는 지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강진을 알았다. 어머니 품처럼 포근해 보였다. 인삼을 선택한 것도 다른 지인을 통해서였다. 인삼에 매료됐다.

선진지를 찾아 다녔다. 금산, 강화, 풍기에서 해남까지 안 가본 곳이 없다. 그러고 나서 한 농가에 부탁을 했다. 일을 배우게 해 달라고. 돈도 필요 없고, 먹고 자면서 일만 배우면 된다고.

인삼재배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일도 많았다. 어찌나 고되던지 '군대(해병대) 생활보다도 몇 배 더 고됐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규철 씨의 인삼밭. 가뭄 탓에 스프링클러가 작동하고 있다.
 이규철 씨의 인삼밭. 가뭄 탓에 스프링클러가 작동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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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재배법을 익힌 이씨는 강진에서 인삼재배를 시작했다. 그때까지 서울에 있던 부인과 세 자녀도 데려왔다. 지난 2007년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도시에서 사기를 치고 왔거나 망해서 온 게 틀림없다며 수군댔다.

농사일은 여전히 버거웠다. 틈나는 대로 선진 농가를 찾아다니고 교육도 쫓아다녔지만 역부족이었다. 가까운 곳에 재배법을 가르쳐줄 만한 사람도 없었다. 날마다 밭에서 일에 파묻혀 사는 게 일상이었다. 돈이 될 리도 없었다. 이렇게 힘들게 살려고 귀농했나 하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너무 힘들었어요. 다시 서울로 올라가고 싶었어요. 한 번은, 귀농한 지 2년 정도 지났을 때쯤이었을 거예요. 술을 죽기 직전까지 마셨죠. 그러고 나서 아내한테 '서울로 돌아가자'고 했죠. 근데 오히려 다독거려 주더라구요. 힘 내자고. 할 수 있다고. 같이 열심히 하면 못할 게 뭐 있냐고. '영원한 내 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농사가 너무 좋아요... 진짜 내 인생 사는 것 같죠"

이규철 씨가 인삼밭에서 인삼의 생육상태를 살피고 있다. 이 인삼은 5년 된 것이다.
 이규철 씨가 인삼밭에서 인삼의 생육상태를 살피고 있다. 이 인삼은 5년 된 것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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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씨앗. 이규철 씨의 5년 된 인삼밭에서 나온 것이다.
 인삼 씨앗. 이규철 씨의 5년 된 인삼밭에서 나온 것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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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다시 마음을 부여잡고 일에 매달렸다. 새벽 서너시면 일어났다. 인삼재배에 적합한 유기질 토양을 만드는 데 노력했다. 서울에도 가지 않았다. 향수병인지, 한 번씩 다녀오면 사나흘 동안 일하기 힘들었다. 전화번호도 바꿨다. 서울에서 만난 인연과의 연락도 모두 끊었다. 오로지 농사일에만 매달렸다.

농사기술도 하나씩 터득했다. 배운 걸 나만의 기술로 응용도 했다. 그게 더 중요했다. 그 결과 지금은 인삼재배의 베테랑이 됐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인삼재배로 시험을 본다면 사시도 패스할 수준'이 됐다. 올해부터선 그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던 친구들과도 다시 만나고 있다.

그렇다고 일이 수월해진 건 아니다. 여전히 벅차다. 트랙터와 관리기 등 농기계로 마을 어르신들의 일까지 거들고 있어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하다. 시쳇말로 이러다 죽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그러나 이왕 하는 일, 즐겁게 하자는 생각으로 한다.

이규철씨의 2년 된 인삼밭. 이씨는 유기농 토양을 만들어 어린 삼부터 튼실하게 키우고 있다.
 이규철씨의 2년 된 인삼밭. 이씨는 유기농 토양을 만들어 어린 삼부터 튼실하게 키우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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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의 인삼재배 면적은 30만㎡를 조금 넘는다. 모두 6년근으로 키운다. 한국인삼공사와 계약재배를 하고 있어 판로 걱정도 없다. 시쳇말로 없어서 못 판다. 유효사포닌의 효과를 배가시키는 홍삼 가공도 하고 있다.

일이 늘어난 만큼 소득도 쏠쏠하다. 그러나 아직 규모의 경제를 꾸리지는 못하고 있다.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어가서다. 앞으로 3∼4년은 더 갚아야 한다. 그 뒤엔 고스란히 순소득이다.

"서울에 살 땐 법에 대해선 자신 있었거든요. 농사는 문외한이었지만…. 그런데 지금은 농사에 자신 있습니다. 날마다 일의 연속인데 그래도 좋구요. 이제야 진짜 내 인생을 사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정말 편해요. 행복해요."

성실과 정직을 신념으로 인삼을 재배하고 있는 이씨의 맺음말이다.

탐스럽게 다음어진 이규철씨의 인삼밭. 싱그런 연녹색을 보이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탐스럽게 다음어진 이규철씨의 인삼밭. 싱그런 연녹색을 보이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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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된 인삼이 자라고 있는 이규철씨의 인삼밭 풍경. 이씨의 인삼밭은 대부분 공기 맑은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5년 된 인삼이 자라고 있는 이규철씨의 인삼밭 풍경. 이씨의 인삼밭은 대부분 공기 맑은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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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인삼, #이규철, #귀농, #강진, #이규철의 홍삼과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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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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