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내 인생의 공익근무, 이젠 정말 그만하고 싶다. 그런데 정말 이번에는, 내 인생 전체에서 안 하면 후회하게 될 것 같아서, 내 인생의 마지막 공익근무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실무자로 뛰고 있는 거야. 내가 지금 실무 할 군번이냐? 후후."

한 시대를 풍미한 어느 60대 여류 소설가의 이야기입니다. 그와 나는 지난 15일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3층 식당에 앉아 이런저런 정치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걱정이 많은 쪽은 그였습니다. 그는 "아무래도 올 대선에서 박근혜가 승자가 될 것 같다"며 "불안한 징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기업 동향에 발이 빠른 기자들에 따르면, "최근 대기업들은 이미 올 대선의 승자는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에게 돌아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고, "야권이 이대로 자신들의 무능력을 국민 앞에 피력한다면 대선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지요.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자료사진).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자료사진).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내일신문>은 지난 12일 '박근혜 자신감 뒤엔 7가지 이유 있다'는 분석 기사를 내놨습니다. 왜 박근혜 전 위원장이 비박 3인방의 거침없는 비판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대선 경선 룰에 합의해주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것인지, 근거 있는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죠.

첫째, 경제위기가 실보다는 득이고, 둘째, 생각보다 정권심판론이 안 먹히고 있으며, 셋째, 정권과의 관계도 무난하고, 넷째, 병역비리나 BBK같은 비리도 없는데, 게다가 통합진보당 사태 같은 '뜻밖의 원군'을 만났으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박근혜 전 위원장으로서는 현재의 정국이 전혀 불리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이석기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잠잠해질 만하면 한 번씩 종북 문제로 정치권을 뒤흔드니, 이념공세와 색깔론에 밝은 새누리당은 시의 적절하게 그 점을 잘도 써먹고 있지요. 그래서 트위터 같은 SNS 공간에서는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와 새누리당이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조롱 섞인 비판까지 터져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지난 4월 총선에서 패한 야권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부정 문제를 시작으로 임수경 의원의 탈북자 무시발언과 종북 논란까지 사정없이 터지고 있는 중입니다. 종북논란의 끝은 도대체 어디가 끝이 될지 모르게 자고 나면 일파만파 멋대로 진도를 빼곤 하지요.

그런 이유인지, 아니면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 때문인지, 이미 국민들 사이에, 통합진보당의 존재감은 많이 떨어진 상태고, 이젠 그 어떤 말로도 '진보가 신선하다'고 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통합진보당 스스로 완벽히 전향적인 변화를 만들고 진보정치에 백의종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그 어떤 국민들이 그들에게 표를 줄까 싶은 정도지요.

문재인 출마선언 "시민과 동행하는 정치 하고 싶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이 17일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대선출마를 선언한 뒤 연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이 17일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대선출마를 선언한 뒤 연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이 와중에 야권의 대선주자들은 줄줄이 출마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17일엔 민주통합당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문재인 상임고문이 출마선언을 했습니다. 당초 서울 광화문에서 행사를 준비했던 문재인캠프는 손학규 전 대표가 지난 14일 광화문 장소를 선점하는 바람에 '유권자에게 새롭고 신선한 장소를 찾느라' 무척 고생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문재인 상임고문은 이날 지지자 1천여 명과 함께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 세워진 독립문을 관통해 소박한 단상에 올랐습니다. 국회의원들도 30명이나 참석했지만 대개 일반 시민 참여가 많아 오히려 '배지'들이 묻히는 분위기였지요. 그중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노란 깃발이었습니다. 문사모, 문풍지대, 정봉주와 미래권력들 같은 팬클럽이 힘차게 깃발을 흔들었지요.

그는 이 자리에 서서 "시민과 동행하는 정치를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이 모두 아프고, 우리가 처한 현실이 너무 엄중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혁신과 거대한 전환이 없이는 우리나라가 무너지겠구나 하는 절박함 때문에 정치 일선에 나서게 됐음을 역설했습니다.

문 고문은 "특권과 불평등의 나라가 아니라 보통사람들이 함께 기회를 갖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지금 거리에는 표정 없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는데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의와 공평을 나라의 근간으로, 강한 복지국가를 향해 담대하게 나아가겠다고 밝혔습니다. 4대 성장전략도 제시했습니다. 분배와 재분배를 강화해 중산층과 서민의 유효수요와 구매력을 확대해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는 '포용적 성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 사람 중심의 경제성장을 실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색 에너지 기술과 건출 등으로 '생태적 성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소통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협력적 성장'을 추진하겠다는 포부도 밝혔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한 나라로 만들 것이며, 가족돌봄의 공적 서비스를 확대해 여성의 부담을 줄이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우리 모두 담쟁이처럼 서로 손 꽉 잡고 특권의 벽, 차별의 벽, 분단과 분열의 벽, 패배주의의 벽을 넘자"고 제안했습니다. 겸손한 권력, 따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도 했지요.

민주통합당 손학규 상임고문이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손학규 상임고문이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사흘 전 광화문에서 대선 출정식을 열었던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선언문도 단어선택의 차이가 있을 뿐 문 고문의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손 고문은 "저녁을 보장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해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손 고문이 내놓은 '진보적 성장'과 문 고문이 내놓은 '4대 성장전략'도 미시적으로 접근하면 꽤 따질 것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대동소이합니다.

이제 곧 김두관 경남지사가 출마선언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자신의 출마에 대한 정당성을 쌓기 위해 많은 이들이 '출마를 권유하는' 작전을 쓰는 것 같습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것일까요? 거듭 되는 제안이 있으니 적어도 7월 중엔 김 지사의 '대선출마선언'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는 또 어떤 모양새로 대중과 만나고, 또 어떤 정책과 전략을 들고 나설까요?

그러고 보니, 김 지사는 '서민 대통령', 손 고문은 '민생과 통합의 대통령', 문 고문은 '겸손한 권력 따뜻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섭니다. 모두 1% 특권층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걸고 있지요.

민주통합당의 유력 대선주자들은 모두 달콤한 언어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본격적인 행보를 하는 것 같습니다. 좀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들은 여전히 여론조사 지표상으로 박근혜 전 위원장을 지지합니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이 아무리 높아도 박근혜 전 위원장에 대해서는 다르게 평가합니다.

박근혜 전 위원장의 이유있는 자신감은 왜?

다시, 박근혜 전 위원장의 이유 있는 자신감을 언급할 차례인가요? 색깔론에 이념공세, 간첩논란까지 과거 회귀적인 발언들을 쏟아내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의 1위를 지키는 이유는 뭘까요?

문재인 상임고문이 세련된 TED형 온라인 출마선언으로 박근혜 전 위원장을 선사시대로 보내버렸다는 누리꾼의 평가도 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에선 박 전 위원장의 위세가 대단하다는 사실이지요.

15일 마주한 여류 소설가는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대통령 후보가 되느냐가 아니라, 박근혜를 꺾을 수 있는 후보가 누구인가를 보는 점이라고 말이지요. 모든 기준점은 거기에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재선의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런 설명이 잘못됐다고 지적합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통합당 지지자들이 적극 밀고 싶은 후보가 누구인지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12월 대선의 포인트는 박근혜 전 위원장을 이길 민주통합당의 후보가 아니라, 민주진보의 신명을 찾아줄 후보를 찾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태그:#박근혜,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