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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의 내 모습.
 2011년 12월의 내 모습.
ⓒ 김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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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 머리숱 적다. 그것도 남들보다 훨~씬. 이마가 훤히 드러나고 머릿속도 비었어. 개콘 버전으로 하자면, 5월은 가정의 달, 6월은 호국보훈의 달, 내 머리숱은 기준미달! 어렵게 얘기할 거 없다. 흔히들 말하는 대머리다. 인정한다. 나, 대머리야!

왜 이렇게 쿨하냐고? 사실 내가 쿨하게 인정하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 2년 전 아픈 사연이 있었다고.

내가 일하던 직장은 관공서인데, 다양한 시민이 다양한 민원을 들고 찾아오는 곳이었지. 그런데 단골 아주머니가 한 명 있었거든. 아주머니의 요구사항을 네 글자로 하면 "내 돈 내놔"였어. 자기 돈 수억 원을 우리 보고 내놓으라는 거야. 밑도끝도 없는 얘기는 기본 30분이 넘어야 끝이 났지. 문제는 아무리 들어도 누가 돈을 갚아야 하는지, '주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야. 그걸 유독 아주머니만 모르고 있었던 거지. 

아주머니가 애꿎은 직원들에게 돈을 달라고 하니 환장할 노릇이었지. 이런 민원인을 잘 설득해서 돌려보내는 게 내 임무였어. 내가 얘기를 들어주면서 "다음에 주겠다"고 달래면 아주머니는 "꼭 돈을 받겠다"며 벼르고 돌아갔지.

내가 '대머리'를 인정하게 된 사연

그런데 어느날 그 아주머니를 시장에서 만난 거야. 긴장할 수 밖에. 사람들 많은 데서 다짜고짜 "내 돈 내놔"라고 큰소리치면 어떡하냐고. 그렇다고 "저 아주머니 이상한 사람이에요" 이렇게 맞설 수도 없는 거고, 자칫하다간 빚쟁이로 몰릴 위기에 처한 거야. 줄행랑이 상책이라 여기고 슬슬 피하려는데 아주머니 눈에 딱 걸린 거야. 이때 아주머니가 던진 한마디는 "내 돈 내놔!"가 아니었어.

"이봐, 대머리 아저씨!"

갑자기 둔중한 둔기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어. 내가 대! 머! 리! 라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머리숱이 좀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대머리는 아니잖아, 라고 믿고 싶었던 거지.

20년 전 내 모습. 이때만 해도 머리숱이 풍성했다.
 20년 전 내 모습. 이때만 해도 머리숱이 풍성했다.
ⓒ 김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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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 내 인생에 대머리라는 단어가 개입하리라는 건 꿈에도 생각 못했어. 그건, 노동조합 활동에 사용자가 부당하게 개입하는 부당노동행위보다 훨씬 불공정하고, 부부생활 중에 옛애인이 끼어들어서 가정을 파투 놓는 짓보다 훨씬 부도덕한 일이었다고. 그때 내 나이 '겨우' 마흔이었거든.               

그날 밤 냉정을 되찾고 곰곰이 생각해봤어. 찬찬히 돌아보니 현실이 보이더군. 빠진 머리가 다시 나지 않고, 이마까지 훤히 드러났다면 대머리가 맞을 수도 있겠다고. 대머리의 사전적 의미가 "머리털이 많이 빠져서 벗어진 머리 또는 그런 사람"(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라면…대머리 맞다고!

단지 그전까지 아무도 내게 대머리라고 대놓고 얘기를 한 적이 없었던 거야. 내 성질이 더러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소갈머리' 없는 나를 긍휼히 여겨서 그랬는지 그건 알 수가 없어. 어쨌거나 주위 사람들은 나를 다 대머리로 알았던 거야. 남들이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현실속의 나는 이미 대머리였던 거지. ㅠㅠㅠ

몇 년 전 우리 아들이 "아빠는 왜 머리카락이 이마 위에서부터 나는 거야?"라고 물었을 때, 그때 알아들었어야 했어. 20대 중반부터 서서히 빠지던 머리가 어느 순간 확연히 줄어들더니 40대 들어서는 남들과 크게 차이가 나더라고. 어쨌거나 용감한 아주머니의 "대머리 아저씨" 발언으로 현실을 인정하게 된 거야.

대머리, 오해와 진실 몇 가지

근데 대머리를 보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날 직장 후배가 이렇게 묻더라고.

"선배는 미장원이나 이발소에 가면 돈을 절반만 내도 되겠네요?"

이런 우라질네이션! 우리도 돈 다 내! 남들 하고 똑같다고! 미용사들이 나처럼 머리카락이 없는 사람이 자르기 더 어렵다고 하소연을 해. 잘 못 자르면 머리숱 더 없어보인다고 돈을 더 받아야 한대! 미니스커트에 천이 적게 들어가도 몸빼바지보다 훨씬 비싸고, 크기가 작은 핸드백이 배낭보다 고가인 것과 같은 이치라고. 나도 머리를 빗고 가끔씩 가르마 위치를 바꾸기도 한다고! 남들이 잘 몰라봐서 그렇지.  

물론, 머리 감을 때 남들보다 좀 편하기는 해. 세수하다가 이마 위쪽으로 약간만 비누칠을 더 하면 되거든. 하루 2번씩 머리 감아도 샴푸 쓰는 양이 남들보다 적어.   

오해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 얼마 전에는 길거리에서 한 상점이 개업을 했다고 휴지를 나눠주더라고. 주길래 받았지. 근데 직장동료가 한마디 하는거야.

"에이구, 이렇게 공짜를 좋아하니까 머리가 빠지지."

나 공짜 안 좋아해! 휴지가 필요해서 주는 것 받았을 뿐이야. 세금도 안 밀리고 꼬박꼬박 냈고 남에게 돈 떼먹은 적도 없어! 마트에서 시식도 안 한다고! 다른 사람들도 다 받았는데 왜 나만 갖고 그러는 거야. 당신들은 휴지뿐 아니라 나이트클럽 웨이터 '박찬호'가 나눠준 사탕, 껌도 꼬박꼬박 받잖아! 대머리가 공짜 좋아한다고 누가 처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마치 안경 쓴 사람은 고지식하다는 편견과도 같아! 

그뿐 아니야. 대머리 보고 정력이 세다, 여자를 밝힌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정말 큰일 날 소리야! 대머리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데론의 대사물질인 디하이드로테스테론이 모낭에 작용해서 생기는 것이라고 해. 즉 대머리를 유발하는 원인이 남성호르몬의 활동 때문에 발생하는 거지, 정력 하고는 관계가 없어! 그러니 나보고 여자를 밝히느니 어쩌니 하면 안돼! 나, 한 달 독수공방도 버틴 사람이야.

물론 아직도 아내가 샤워하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뛰기는 해. 하지만 그건 머리숱 많을 때부터 그랬어.

어느 조사결과에 따르니 한국 여성들의 대머리 혐오감이 최고 수준이라고 해. 여성 10명 중 8명 정도가 "소개팅이나 맞선 때 탈모 남성이 나오면 꺼린다" "머리가 벗겨지면 남성의 매력이 반감된다"고 답했고, 6명 정도는 "애인에게 탈모가 생기면 결혼을 다시 고민하겠다"는 답변을 했다는 거야.

그런데 이런 오해의 근본에는 언론이나 미디어의 책임이 커! 방송에서 일단 대머리를 기피하잖아.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대머리는 우스꽝스럽거나 엉뚱한 인물로만 묘사하거나 아주 웃기는 인물로만 나오지 않느냐고. 

여자 주인공은 늘씬한 8등신 외모에 브이라인 얼굴, 남자주인공은 늘씬한 키에 풍성한 머리카락을 떠올리잖아. 거기엔 외모지상주의 현상이 깊이 자리잡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과민반응 아니냐고? 그렇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엔 대머리 남자주인공이 왜 없는 거야! 브루스 윌리스, 율브리너처럼 멋진 주연배우 말이야.

2012년 봄의 나.
 2012년 봄의 나.
ⓒ 김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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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로 고민하는 인구는 점점 늘고 있다고 해. 전체 인구 중 20%가 탈모 증상이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어. 냉정히 생각해 보자고. 여드름, 두드러기처럼 탈모도 피부질환일 뿐이라고. 전염성도 없고 남들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아. 머리 숱이 적거나 많거나, 기르거나 자르거나 치료를 하거나 말거나 그건 단지 자신이 선택할 문제지. 복잡한 세상, 왜 우리는 유독 머리숱에 민감해야 하는 거야?
 
왜 우리는 유독 머리숱에 민감한가

나도 무리를 해서라도 머리를 심을까 고민을 안 했던 건 아니야. 가발을 쓸까도 진지하게 생각해봤어. 탈모를 억제한다는 약을 사먹으려고 알아보기도 했어. 하지만 다 접기로 했어. 내겐 큰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이야.

그 정도 시간과 돈과 노력을 다른 일에 투자한다면 더 값진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 내 인생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머리카락 몇 가닥 때문에 의기소침해질 필요는 없잖아.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하기로 했어.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소린데, 이 정도 생겼으면 머리카락 좀 없어도 되잖아.(^^;) 이런 자신감과 인간성으로 살아가기로 했어. 

탈모 인구는 1천만 명으로 추산할 정도로 급증하고 있어. 그러니 대머리 보고 공짜 좋아한다느니, 정력에 세서 여자를 밝힌다느니 하면 아니 아니, 아~니되오. 그리고 명심해라. 우리 대머리도 마음만은 풍성하다!


태그:#대머리, #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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