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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 프리마켓이 열리는 홍대앞 놀이터에서 지난 3월 31일과 4월 7일 양일간 <카메라야 부탁해!> 사진전이 열렸다
 매주 토요일 프리마켓이 열리는 홍대앞 놀이터에서 지난 3월 31일과 4월 7일 양일간 <카메라야 부탁해!> 사진전이 열렸다
ⓒ 김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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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고강복지회관에서는 4월 23일부터 27일까지 전시되었다
 부천 고강복지회관에서는 4월 23일부터 27일까지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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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사진 감각있다잉~"
전시회장 한켠에 마련된 보드판에 관람객들이 아이들에게 전하고픈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놓았다
 전시회장 한켠에 마련된 보드판에 관람객들이 아이들에게 전하고픈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놓았다
ⓒ 김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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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사진이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아요! - 박영록"
"미얀마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선물해준 친구, 떼데퉤이! 내 마음과 사랑을 선물하고 싶구나-Eunhee"
"프로젝트 아이디어가 너무 좋네요^^ 계속해서 우체부들도 더 많아져서 더 많은 나라 아이들의 사진이 담기길 바래요~ -한국에서 JS"
"교육환경이 척박한 곳의 아이들에게 꿈을 꾸게 하고, 넓은 세상 사람들과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게 하는 프로젝트의 취지가 훌륭합니다- GHEEM"
"얘들아, 사진을 잘 찍는구나. 살기 고독할지 몰라도 의미는 있단다. -11살 김남이"

2012년 봄, 홍대 앞 프리마켓과 부천 고강복지회관에서 <카메라야 부탁해!>라는 제목의 좀 특별한 사진 전시회가 열렸다.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카메라야 부탁해!>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국, 베트남, 미얀마, 몽골을 여행하면서 그들의 일상과 풍경을 담은 사진 7천여 장 중 70장을 추려 발표한 사진전이었다. 이 사진전의 기획자는 나다. 하지만 이 사진전의 주인공인 '작가'님들은 내가 아니라 아홉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의 현지 아이들이다. 거의 대부분 카메라라는 것을 난생 처음 만져본 빈곤층 아이들.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결핍되어 있는 빈곤층 아이들에게 디지털카메라를 전달해 마음껏 사진을 찍게 하고, 그 사진들이 담긴 카메라를 대신 여행시켜 비슷한 처지의 외국 친구들을 맺어주고 자존감을 획득하게 한다. 이것이 <카메라야 부탁해!(My Traveling Camera)>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의 방식은 좀 독특하다.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주는 게 아니라 '빌려주는' 식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나라에서 다섯 명의 아이들을 선정해 카메라를 전달해주면 아이들은 마음껏 사진을 찍고 열흘 후 돌려준다. 그렇게 공유되는 카메라, 즉 'My Traveling Camera'는 카메라 우체부인 나를 통해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 아이에서 저 아이에게로 전달되며 아이 대신 카메라가 여행을 하는 것이다.

제목부터 카메라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 이 프로젝트에서 카메라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기본 작동법만 가르쳐주고 카메라를 넘겨주었다. 사진 잘 찍는 기법 따위는 잘 알지도 못하지만 애초부터 가르치겠다는 의도가 없었다. 아이들에게 사진을 잘 찍도록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카메라도 사진작가들이 들고 다니는 그런 DSLR 카메라가 아니라 이른바 '똑딱이'라고 하는 작은 자동카메라이고 그나마도 중고다. 그런데도 감탄사가 튀어나올 만큼 좋은 사진들이 쏟아져 나와 예정에 없던 전시회를 이렇게 갖게 된 것이다. 관람객들에게 카메라를 처음 만져본 아이가 찍은 사진이고 중고 자동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라고 설명해주면 백이면 백 반응이 똑같다. 그런데 이떻게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있는 거냐며 믿을 수 없어 하는 것이다.

미얀마 양곤의 싼먀디따 사원에서 열여섯살 류바땡기가 쌀 씻는 순간을 찍다. 이 사원에만 150여명의 비구니 스님 학생들이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며 사원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고 있다
 미얀마 양곤의 싼먀디따 사원에서 열여섯살 류바땡기가 쌀 씻는 순간을 찍다. 이 사원에만 150여명의 비구니 스님 학생들이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며 사원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고 있다
ⓒ 김정화/류바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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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에 사는 아홉살의 흐엉, 사랑하는 아버지와 남동생의 모습이다
 베트남 하노이에 사는 아홉살의 흐엉, 사랑하는 아버지와 남동생의 모습이다
ⓒ 김정화/흐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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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바타르에 사는 열한살 툽신치멕, 전형적인 몽골의 천막가옥인 게르에서 동생들과 살고 있다
 몽골 울란바타르에 사는 열한살 툽신치멕, 전형적인 몽골의 천막가옥인 게르에서 동생들과 살고 있다
ⓒ 김정화/툽신치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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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이들한테 사진을 좀 가르쳐야 되지 않아? 그래갖고 사진 몇 장 건지겠어?"
"카메라 한 대를 돌아가면서 쓴다고? 그래야할 필요가 있나?"
"한 나라에서 진행하면 안돼? 그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카메라야 부탁해!> 프로젝트를 기획할 당시 내가 수없이 들어야 했던 얘기들이다. '아이디어는 좋고 재미도 있을 것 같아, 그런데...' 하면서 지인들은 진심으로 우려했다. 맞다. 당연하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듣보잡 프로젝트인 것도 맞고 어딘지 실험적인 냄새가 폴폴 나는 것도 당연하다.

사실 이런 방식의 프로젝트는 내가 아는 한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전례가 없다. 특정한 나라에서 특정한 아이들에게 필름 카메라를 쥐어주고 사진을 찍게 하는 프로젝트는 존재했었다. 인도의 사창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사진을 가르치고 그 과정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 널리 알려진 '꿈꾸는 카메라'가 그것이다.

그러나 <카메라야 부탁해!> 프로젝트는 몇 나라를 최소한 두 차례 도는 방식이다. 때문에 항공권과 통역비 등 비용도 많이 들 뿐 아니라 나라마다 문화와 제도가 달라서 이건 뭐 매번 맨땅에 헤딩이다. 실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수없는 변수와 시행착오를 맞닥뜨려 왜 괜히 이런 무리수를 둬서 사서 고생일까 후회도 막심했었다. 

그럼에도 카메라를 공유하며 몇 나라를 순회하는 방식을 고집한 데에는 내가 불우한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이 즐거움과 꿈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존감이었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퍼주기 식의 자선은 본의 아니게 받는 사람을 무능하고 의존적인 존재로 머물게 한다. 빈곤국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자립심을 키워주고 싶다면 그들을 우선 당당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 스스로 당당해지면 자존감도 생기고 자립심도 저절로 따라온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생각에서 아이들이 직접 무언가를 행동으로 해서 그 보상의 차원으로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노동의 차원이 되어서도 안 되고 아이의 성장에는 도움이 될 수 있는 그 무엇. 그래서 떠오른 게 카메라다. 사진 찍히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있어도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 사람,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런데 필름 카메라와 달리 디지털 카메라는 공유가 가능하다는 속성이 있다. 일부러 삭제하지 않는 한 자신이 찍은 사진이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카메라가 돌면 카메라 그 자체가 좋은 메신저이자 편지지의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카메라를 전달받은 아이는 앞서 그 카메라를 썼던 또래 외국 친구의 사진을 보면서 특별한 친근감을 갖게 되고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며 동병상련을 나눌 수가 있다.

그리고 사진을 찍을 때에는 관객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더 멋지고 더 잘 찍고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되고 그 과정에서 몰랐던 자신의 가치에 눈을 뜰 수 있다. 거기다 외국 친구들과 사진을 공유하게 되면 자기 사진이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기 때문에 덤으로 자부심까지 생길 수 있다. 이것이 카메라를 그냥 주지 않고 돌려쓰게 한 이유다.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기대 효과'일 뿐. 막상 뚜껑 열어보면 효과가 기대를 배반할 수 있다는 생각도 안해본 것 아니다. 카메라를 모으고 현지 협력 기관과 컨택하고 항공권을 끊는 순간에도 나는 내내 미더워했다.

될까?
맞을까?
아아, 접을까?!

그런데 프로젝트에 참여한 스물한 명의 아이들이 그 답을 주었다. 아이들에게 다음에 또 이런 프로젝트가 있다면 하겠느냐고 물었는데 참여 희망률이 100%인 것이다. 그리고 시키지도 않았건만 모범답안 같은 후기들을 남겼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찍어줬어요. 카메라가 있어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 수 있었어요. (몽골/람에르덴)"
"베트남의 농촌 풍경을 외국 친구에게 알려 주고 싶어요. 외국 친구에게 내 사진을 보여줄 수 있다니 기분이 아주 좋아요. (헙/베트남)"
"외국 친구들이 찍은 사진을 보면서 다른 나라의 풍습과 미얀마의 풍습이 많이 다른 걸 알았어요. (깔레아니/미얀마)"
"내 사진들을 보면서 나를 기억하고 보고 싶어 해주면 좋겠어요. (응옥 아잉/베트남)"
"다른 나라 친구들과 이 카메라 안에서 친해질 수 있어서 기뻐요. 우리 사진을 보면서 다른 나라 친구들도 행복해지면 좋겠어요. (뚜날디/미얀마)"

<카메라야 부탁해> 프로젝트 제1기에 참여한 베트남, 미얀마, 몽골의 아이들
 <카메라야 부탁해> 프로젝트 제1기에 참여한 베트남, 미얀마, 몽골의 아이들
ⓒ 김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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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아이들이 지난 겨울 나를 웃게 하고 아프게 하고 무엇보다 감사하게 해준 그 주인공들이다. 중독성 강한 살인미소의 베트남 아이들(흐엉, 응옥아잉 하, 남, 헙, 레...), 영하 30도의 추위에도 물 긷고 장작 패며 집안일 돕는 몽골의 아이들(나몽자야, 뭉흐바트, 툽신치멕, 이칭허르러, 람애르덴...), 자비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미얀마의 아이들(떼데퉤이, 휴윗누웨, 뚜날디, 아가수, 류바땡기, 깔레아니...)

툽신치멕은 내가 사진 한 장을 인화해주겠다고 했더니 자기 가족을 찍은 사진 다 놔두고 굳이 내 독사진을 골랐다. 람 애르덴은 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다며 작별선물로 자기 사진이 들어있는 작은 액자를 통째 내게 주었다. 류바땡기와 뚜날디는 장래희망에 대해 쓰라고 했더니 나와 같은 사람이 되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썼다. 떼데퉤이, 휴윗누웨, 아가수 등 나라와 성별을 초월해 거의 모든 아이들은 우리가 함께 했던 일일 소풍 겸 출사의 추억을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입을 모으고....

이러니 내가 어찌 이 아이들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러니 내가 어찌 이 아이들과 함께 했던 그날들을 추억으로만 간직할 수 있겠는가.

1차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후 나는 베트남에서도 미얀마에서도 몽골에서도 똑같은 소리를 전해들었다. 프로젝트의 진행을 도와줬던 협력 기관의 직원에게 아이들이 내가 정말 다시 오냐고, 언제 오냐고 묻고 또 묻는다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그 말을 액면 그대로 알아듣고 몇 번이나 확인 시켜줬는데도 아이들이 왜 자꾸 똑같은 얘기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들이 진짜 듣고 싶은 대답은 그게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내가 그런 것처럼 아이들도 사실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날 잊지 말아요!"
"우리 꼭 다시 만나요!"

내 착각일까? 아이들이 진짜로 기다리는 것은 내가 아니라 카메라일 뿐일까?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가슴 설레어 하며 기다리고 있다는 그 사실이니까! 

그래서 이번 여름이 가기 전에 아이들을 다시 만나러 간다. 그래서 이번 여름이 오기 전에 보물같은 아이들의 이야기와 사진을 함께 나누려 한다.

카메라야 부탁해!

2011년 12월, <카메라야 부탁해!> 몽골전시회
 2011년 12월, <카메라야 부탁해!> 몽골전시회
ⓒ 김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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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및 사이트
* 프로젝트 및 전시회 내용이 '베네핏 매거진'의 인터뷰 기사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기사 보기
* <카메라야 부탁해!> 공식 사이트입니다. 사이트 가기 
* 졸고 [여행의 여왕]이 있습니다. 책 소개 페이지 가기

덧붙이는 글 | * 이 연재는 <카메라야 부탁해!>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진행 과정을 담은 이야기로 일주일마다 새글이 업데이트됩니다.

이 기사를 쓴 김정화씨는 2006년까지 시즌1에서는 방송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였습니다. 2010년부터 시즌2에서는 국제구호와 공정여행 분야에서 대안을 모색하며 1인NGO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프로젝트로 카메라를 통해 아시아의 빈곤층 아이들에게 친구와 자존감을 선물하는 <카메라야 부탁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태그:#카메라야 부탁해, #김정화, #대안여행, #국제구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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