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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이윤정씨의 남편 희수씨가 제보를 해왔다. 아내가 악성 뇌종양, 즉 뇌암에 걸렸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이름처럼 예쁜 외모를 가진 나이 서른의 젊은 아내였고, 4살, 6살 된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 5월 5일 어린이날 쓰러진 뒤로 뇌종양(교모세포종) 진단을 받고 급히 종양 제거 수술에 들어갔지만 종양은 두 군데에 크게 자라 있었고, 한 군데는 너무 깊숙한 곳에 있어 제거할 수도 없이 봉합했다. 그리고 시한부 1년을 선고 받았다.

 

남편은 부인이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근무했고 퇴직 후 곧바로 결혼하고 두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았다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했으니 입사 이전에도 달리 특별한 유해환경에 노출된 적이 없다고 했다. 가족들 중 누구도 이러한 병에 걸린 사람은 없다고 했다. 도대체 왜 이런 병에 걸린 것인지 삼성 말고는 의심되는 것이 없었다. 제보의 내용은 여느 다른 반도체 노동자들의 암 피해 제보와 닮아있었다. 암 호발 연령인 60~70대가 아닌 매우 젊은 30세의 나이에 희귀한 암에 걸렸다. 가족력도 유전력도 없었고 삼성 혹은 반도체공장 외에 다른 곳에서 일한 경력이 없었다.

 

남편의 제보를 받고 뇌종양으로 투병중인 그녀를 만나보았을 때, 한창 방사선 치료로 팔다리에 핏기도 없어지고 머리카락은 많이 빠져 있었다. 다시 만났을 때는 몸이 몰라보게 부어있었다. 아예 퉁퉁 부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항암치료로 얼굴은 보름달처럼 커져버렸고, 항암제가 주는 감정통제 효과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의 원래 성격이 무던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녀는 한번 울지도 않았고 노여워하지도 않았다.

 

남편이 "울긴 울어?"라고 묻자, "어, 울어. 혼자 있을 때"라고 또 무덤덤하게 내뱉을 뿐. 그녀는 우리에게 감정 선을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꼭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이 조금밖에 없다는 걸 저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남은 시간동안 가족들과 행복하게 보내고 싶어요. 시간이 많이 없어요."

 

1년 시한부라는 짧은 시간동안 그녀는 무엇보다 가족들과의 행복한 시간을 바랐다. 그 시간을 비집고 들어가 7년도 더 된 과거에 삼성반도체 현장에서 무슨 일을 했었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내게 하는 우리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하지만 별 수가 없었다. 산재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입증해야 한다.

 

이윤정씨는 열아홉살 고3의 나이에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했다. 그리고 만 6년 동안 기숙사와 현장을 오고가면서 주야간 2교대 내지 3교대 근무를 했다. 그녀의 업무는 반도체 칩을 125℃ 고온으로 가열해, 칩이 고온에 견디는지를 테스트하고 난 후 불량칩을 걸러내는 일이었다. Burn-In 공정 혹은 MBT(Monitering Burn-in Test)공정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그녀가 근무한 MBT공정에는 또 다른 피해자가 있다. 유명화씨. 입사한 지 1년 반 만에 중증 재생불량성빈혈(백혈병, 악성림프종과 같은 중증혈액질환)에 걸렸고, 현재 12년째 투병중이다. 2주일에 한번씩 남의 피를 수혈 받고 살고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피멍이 드는 등 남들보다 낮은 혈소판 수치로 움직이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치료를 위해서는 골수이식을 해야 하는데 현재까지 국내는 물론 해외 기증자까지 모두 찾아봤지만, 아직도 맞는 골수는 찾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이러한 유명화씨에 대한 사연을 윤정씨에게 들려줘더니 오래된 기억이지만 당시 아파서 현장에서 쓰러졌던 명화씨를 기억해냈다. 그리고 나서 조금씩 자신이 했던 일들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사실 일이 쉽지는 않았어요. 교대근무라 늘 피곤했죠. 성과와 물량 경쟁도 심했고, 한 사람 당 30여 대의 설비를 동시에 보았어요. 반도체 칩을 고온에서 테스트하고 뜨거운 챔버를 열면 열기가 확 올라왔어요. 칩들이 빼곡한 보드판을 꺼내서 불량이 난 칩들을 손으로 걸러내는데, 불량난 칩들이 보드 판에 늘어붙기도 하고 까맣게 타버려서 전선피복 타는 냄새 같은 게 났어요. 타버린 칩 때문에 미세한 검은 분진도 생기고….

 

그래서 에어 건을 사용해서 청소하곤 했지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에어 건으로 날려주었는데 사람이 호흡을 하니까 분진가루가 코로도 들어가고 입으로도 들어가고 눈으로도 들어갔어요. 눈으로 들어가면 따갑고 가려워 비비곤 했는데, 그걸 현장에서 '디바이스 독'이라고 했어요."

 

윤정씨가 한 진술은 명화씨의 진술과 같았다. 같은 일을 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토대로 뇌종양에 대한 업무관련 소견서를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에게 의뢰했다.

 

천안 단국대병원 김현주 교수(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아래와 같은 근거로 이윤정씨의 뇌종양은 업무관련성이 충분하다는 소견을 냈다.

 

▲ 1996년 미국 IBM반도체 노동자에 대한 암 발병 연구 결과 뇌종양 발병은 생산직이나 기술직에서 증가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 현재까지의 역학연구들은 뇌종양과 반도체 종사와의 관련성에 대하여 확정적인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뇌종양 발생위험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5년 이상 근무 및 입사 후 15년 경과 노출군의 경우 뇌종양 발생 위험이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다.

 

▲ 현재까지 뇌종양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해인자는 전리방사선, 비전리방사선(전자파), 일부 화학물질이다. 펄프 및 종이 산업의 황화합물, 염소계 유기화합물, 살충제, PAH노출, 납, 비닐 클로라이드, 비소, 수은 등 과 교모세포종과의 연관성이 보고되고 있다.

 

▲ 국제 암 연구소는 저주파 비전리방사선 노출(휴대전화사용시 나오는 전자파)과 뇌종양 발생 위험을 인정했고, 특히 화학물질과 극저주파 전자파의 복합노출이 뇌종양 또는 교모세포종의 위험을 통계적으로 유의하고 증가시켰다는 보고가 있다.

 

▲ 뇌종양 호발연령보다 약 25년 정도 젊은 만 30세에 진단받았고, 강도 높은 교대근무와 직무스트레스에 노출되어 면역력이 저하되었고, 비직업적 위험요인을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근로복지공단에 낸 산업재해보상보험 요양급여신청(아래 산재신청)은 2011년 2월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이유는 납득할 수 없었다. 퇴직 후 7년이 지난 2010년 현재 삼성이 보여주는 것만으로 작업환경측정을 해놓고 측정결과 위 물질들의 노출 수준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심지어 발병기전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정해줄 수 없다는 극히 보수적인 이유도 있었다. 윤정씨는 산재 불승인 결과에 불복해 2011년 4월 삼성전자의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산재인정을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그해 8월 첫 변론기일(재판)을 마지막으로 변론기일은 더 이상 잡히지 않았고, 그 사이 윤정씨는 점점 몸이 악화돼 2012년 5월 7일 부천의 한 요양원에서 눈을 감았다.

 

윤정씨의 부고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을 찾았을 때, 남편 희수씨는 두고두고 재판부가 원망스럽다고 했다. 한 번만 더 열렸어도, 그는 윤정씨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려고 했단다.

 

"윤정아, 너 산재 맞대. 너의 개인질병이 아니라 산재였어."

 

나는 윤정씨의 죽음이 산재라고 확신한다. 이제까지 반올림에 제보된 피해자 수만 해도 삼성반도체에서만 백혈병, 뇌종양, 재생불량성빈혈, 다발성경화증, 루게릭 등 희귀암과 중증질환 등의 제보는 100건에 다다른다. 이 중 32명이 죽었다. 삼성LCD와 삼성전기까지 포함하면 140명의 피해 제보가 있고, 윤정씨의 죽음은 55번째다. 매그나칩 반도체, 하이닉스 반도체, 화학물질을 다루며 전자부품을 세척한 하청업체 제보까지 포함하면 모두 160건의 피해 제보가 있고 63명이 목숨을 잃었다.

 

반도체 산업이 수백수천 가지의 화학물질이 집약된 산업임에도 청정산업으로서, 첨단 IT산업으로서의 빛만 이야기할 때 피해 노동자들은 늘어간다. 삼성이 무노조경영을 통해 노동자들에게서 알 권리와 노동 3권을 박탈하고 있는 한, 이 죽음의 행렬이 멈추지 않을 것 같다. 현재도 투병 중인 많은 피해자들이 있다. 그리고 죽은 뒤에도 이들의 죽음을 진상규명하려 애쓰는 피해자들이 있다.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에게 최소한 우리사회가 해야할 일들, 그건 산재 인정과 보상, 그리고 산재 살인을 벌이는 사업주에 대해 책임을 묻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종란씨는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삼성, #반올림, #반도체, #이윤정, #산업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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