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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외우기도 어렵고 또 뜻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반야심경이 이렇게 한글로 풀이되어서 봉독되니 정말 편하고 좋네요. 스님과 함께 독송하면서 붓다의 가르침을 새삼 깨닫는 것 같아 더욱 의미가 깊어집니다. 향후 이런 한글 경전들이 잘 번역되어서 사부대중과 함께 나누는 불교로 거듭나기를 바라봅니다."

 

이판열 인천조계종사암연합회 사무국장은 5월 22일 인천지방경찰청에서 개최된 부처님 오신 날 기념 봉축 법회서 <한글 반야심경> 봉독 소회를 위와 같이 전했습니다. 이번 한글 <반야심경>은 23일 개최된 해양경찰청 법회에서도 소개돼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스스로가 보다 쉽게 마음다짐을 하는 좋은 계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한글 반야심경, 마치 슬로우-랩송을 부르는 것처럼

 

불교 법회의식의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반야심경>은 매우 짧은 경전입니다. 특히 한문으로 된 <반야심경>은 책 한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입니다. 하지만 그 깊이와 통찰력, 인간에게 주는 깨달음의 깊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준이지요.

 

일반적인 <반야심경>은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공중무색 무수상행식 ..(중략)..아제아제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3번)."

 

참 간단하고 쉬운 경전 같지만 오묘한 의미를 가진 낱말 하나하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외우기조차 힘듭니다. 보통 처음과 끝을 외우는 신도들이 많고 어느 정도 중간부분으로 가면 아리송한 말투로 소리를 닫아 버리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반야심경>은 한때 스님들만의 전유물로 여기기도 했지요.

 

그렇다면 한글 <반야심경>은 어떻게 번역되어 독송되고 있나, 잠깐 실어봅니다.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지느니라.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상행식도 그러하니라.(중략)..늙고 죽음도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고집멸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어떻습니까. 잘 살펴보면 템포가 조금씩 느려졌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앞의 한문 <반야심경>을 독송할 때는 일정한 운율이 있기 때문에 외우고 따라가는데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한글 <반야심경>은 일정한 리듬보다는 마치 슬로우-랩송을 부르는 것처럼 그 의미를 생각하며 독송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훨씬 가볍고 부드러우며, 그러면서도 진중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없다, 없다, 지혜도 도(道)도 아무것도 없다

 

<반야심경>의 핵심 주문은 높은 깨달음의 경지보다는 모든 사물의 실체가 결국 사라져버리고 마는 무(無)라는 법문을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이는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도 없고, 마음이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도 없다는 진리입니다. 모든 걱정과 고통이 쓸데없는 생각에서 비롯되니 일심(一心)으로 놓아버려 마음의 평정을 이루라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여기서 <반야심경>이 전하는 무(無)의 한 설화를 잠깐 실어봅니다.

 

동산은 절강성 지방 사람으로 어려서 출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승이 <반야심경>을 강의하던 중 '눈, 귀, 코, 혀, 몸이 없다(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는 구절에 이르자 동산은 손으로 자기 얼굴을 만지며 스승에게 물었다.

 

"저는 이렇게 눈, 귀, 코, 혀 등을 가지고 있는데 어째서 반야심경에선 없다고 하는 겁니까?"

 

이 예기치 않았던 질문에 스승은 적이 놀랐으며 아울러 이 소년의 사실적인 지적에 감동했다. 별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지만 여기엔 실로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다. 비록 어린 동산은 정신적인 이해력에서는 아직 미숙했으나 적어도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자주적인 정신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공부하던 중들 대부분이 신성한 경전엔 절대 착오가 없다고 당연히 믿었었다. 하지만 어린 동산은 다른 사람이나 어떤 책에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걸 단호히 거부했던 것이다. 특히 이번일은 스승을 더욱 감동시켰으며 그래서 스승은 솔직히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의 스승감이 아니다"                     <선의 황금시대> 중에서

 

아마도 위의 내용은 '수처작주'와도 통하는 말이겠지요. 즉, 어디서나 어떠한 경우에도 얽매이지 않아 주체적이고 자유 자재함을 일컫는 내용이겠지요. 지구상 어떤 곳을 가더라도 진실한 마음의 주체만  간직한다면 스스로 참 주인이 되어 '천상천하유아독존'으로 거듭날 수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이 구절의 의미는 결국 나와 남, 우리에 대한 탐착을 비로소 버릴 때 참 나, 진정한 내면의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나의 집, 나의 자식, 나의 부모, 나의 출세, 나의 욕망과 괴로움, 나의 취미, 심지어 나의 과거 추억에 집착돼 눈·귀·코·혀·몸을 허투루 쓰고 있다는 설법입니다.

 

마치 어린아이의 동심에서 순수함을 느끼듯 순수하게 보고, 순수하게 듣고, 순수하게 느끼고, 순수하게 그 몸을 쓸 때 번뇌·고민·갈등이 사라진 평화와 완전한 자유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다가오는 불기 2556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반야, 즉 지혜를 무심한 가운데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의 집착이나 자신에 대한 탐착에서 벗어나 지금 그대로의 삶에 마주하시길 바랍니다. 무(無), 즉 '없다'는 말은 곧 '무한히 많다'는 말과도 일치함을 화두로 잡으십시오. 그리고 일심으로 정진하면 반드시 소원성취하시리라 믿습니다.


태그:#한글 반야심경, #부처님 오신 날, #고타마시타르타,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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