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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해군으로부터 군가가 듣기 싫으면 강정천에 오지 말란 안내를 받았다.
▲ 기지사업단의 바로 맞은 편, 강정천 다리 위에서 1인 시위를 한다 언니는 해군으로부터 군가가 듣기 싫으면 강정천에 오지 말란 안내를 받았다.
ⓒ 조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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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강정에 삽니다. 위 사진 속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언니는 강정에서 만났는데, 지금은 식구가 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해 여름 우연히 강정에 왔다가 이곳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이 언니는 제주도에 귀촌해 아이를 키우다 강정을 알게 돼 이곳에 살게 됐습니다. 강정초등학교에 다니는 언니의 딸은 어느새 2학년이 됐습니다. 햇수로 2년을 살고 앞으로도 이 마을에서 살아갈 생각을 하는 이 언니는 마을에 해군기지를 짓겠다는 해군과 정부에게 어떤 존재들일까요. 전문 시위꾼일까요?

공사를 위해 들어와 있는 해군기지건설사업단은 한 달 전부터 군가를 틀고 있습니다. 강정천 옆 기지사업단 정문과 공사장 정문의 스피커를 통해 오전 7시, 낮 12시, 오후 5시에 각각 한 시간씩 말이죠. 군가는 펜스 안에 있는 공사부지가 아니라 바깥의 마을을 향해 흘러나옵니다.

저와 함께 산다는 언니는 매일 강정천 위에서 레미콘 차량 기사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사장에 들어가는 레미콘 기사님들께 인사를 하고, 마을 주민들이 쓴 시가 인쇄된 자료를 전해줍니다. 이렇게 지내는 한 달 동안 언니는 강정천 주변에 울려 퍼지는 해군의 군가를 들어야 했습니다.  

지난 16일, 언니는 해군기지 사업단에 민원 전화를 걸었습니다. 언니는 "강정마을 주민인데, 마을에서 군가를 듣고 싶지 않다"고 요청했습니다. 해군은 먼저 언니의 신원을 파악했다고 합니다. 이미 주민이라고 밝혔지만, 해군은 용역업체 직원에게 확인하고 나선 "당신은 시위자가 아니냐"고 물어봤답니다.

언니는 반문했습니다. "마을 주민은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 의견을 표현하면 안 되느냐"고. 해군은 "그런 건 아니지만 신원 확인을 위한 것"이라더니 "군가는 출·퇴근과 점심시간, 이곳 일과에 맞춰 튼 것뿐"이라고 답했습니다. "요청에 대해 고려해 보겠다"는 말도 함께 했답니다. 이후 고맙게도 며칠 동안 군가가 울리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강정천에서 파도소리 들었으면..."

기지단 정문의 스피커가 공사장 밖을 향하고 있다. 하루 세시간 마을을 향해 군가가 울려 퍼진다.
▲ 기지단 바로 옆으로 강정천이 흐른다 기지단 정문의 스피커가 공사장 밖을 향하고 있다. 하루 세시간 마을을 향해 군가가 울려 퍼진다.
ⓒ 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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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 22일 오후 5시 30분경부터 6시까지 다시 강정천 위로 군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언니는 사업단에 또다시 민원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원을 담당한다는 고경훈 소령은 "굳이 왜 그 자리에 서 있느냐, 군가가 듣기 싫으면 강정천에 오지 말라"고 주문했답니다. 그리고 "잠깐 있다 갈 사람들의 민원은 민원으로 처리하지 않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언니는 화가 났습니다. 강정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은 어느새 2학년이 됐고, 앞으로도 아이와 함께 이곳에서 살아갈 언니,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요. 고 소령님, 당신은 여기 얼마나 있을 계획인가요.

통화 중 고 소령은 "군가를 왜 나쁘게 생각하느냐, 군가는 나쁜 것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언니는 대답합니다.

"아이들이 강정천에서 들리는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루 3시간 동안 흘러나오는 군가가 해군 관계자의 말처럼 출·퇴근용이라면 사업단 안에서만 틀면 되는 것 아닌가요. 해군을 포함한 공사장의 인부들은 보통 차량을 이용해 출·퇴근하는데, 굳이 왜 공사장 바깥쪽 길을 향해 군가를 트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따뜻한 이웃되겠다는 해군, 하지만...

해군기지 공사부지 옆으로 흐르는 강정천은 이내 바다를 만난다. 이곳은  마을 주민들의 쉼터이고 여름철 지역민들이 많 소중이 찾는 피서지이다.(지난 겨울 촬영)
▲ 강정천에서 은어를 잡아보겠다고 앉은 아이들. 해군기지 공사부지 옆으로 흐르는 강정천은 이내 바다를 만난다. 이곳은 마을 주민들의 쉼터이고 여름철 지역민들이 많 소중이 찾는 피서지이다.(지난 겨울 촬영)
ⓒ 조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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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간 강정천. 요즘은 산란을 준비하러 은어들이 바다에서 강으로 올라오는 시기다. 잠자리채 들고 은어를 잡아보려 하지만 돌아오는 길 비닐 봉지는 텅텅 비어있었다. 하지만 충분히 즐거웠다.
▲ 비닐봉지 주세요... 은어 잡으면 담아 갈거예요 아이들과 함께 간 강정천. 요즘은 산란을 준비하러 은어들이 바다에서 강으로 올라오는 시기다. 잠자리채 들고 은어를 잡아보려 하지만 돌아오는 길 비닐 봉지는 텅텅 비어있었다. 하지만 충분히 즐거웠다.
ⓒ 조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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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총각이었던 경보 삼촌의 결혼식, 신부가 될 언니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려고 꽃을 꺽으러 다녔었다.
▲ 봄맞이 꽃 꺽으러 돌아다닐 때 노총각이었던 경보 삼촌의 결혼식, 신부가 될 언니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려고 꽃을 꺽으러 다녔었다.
ⓒ 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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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군사업단에만 연락해 본 것이 아닙니다. 서귀포시청 녹색환경과에도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담당 공무원 김길하씨는 "여기 아직 군 시설 아니잖아요, 짓는 중인 거지..."라며 의아해하면서도 "정해진 소음 기준에 맞춰 소리를 줄일 수는 있지만, 우리로선 군가를 못 틀게 할 방법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지난 통화에서 고려해 보겠다고 답했던 고 소령은 22일 통화 당시 언성을 높였습니다. "어떤 방법을 하든 해보시라"고. "더 많은 마을 주민들이 요청하면 되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군가는 상부의 지시를 받은 것이니 더 많은 주민들이 와도 바뀔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또한, "여름철 강정천 주변을 따라 많은 지역민들이 피서를 오는데 그때도 계속 군가를 내보낼 계획이냐"는 질문에는 "변함없이 틀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해군은 <함께 그린 강정마을>이라는 문서를 만들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니 '마을은 더 좋게 변할 것'이라고, '해군은 강정마을의 교육 여건을 향상시키고 마을 주민의 따뜻한 이웃이 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직접 만나는 그들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군가가 싫으면 오지 말라"는 말이 '해군기지가 싫거든 마을을 떠나라'는 말로 들리니 말입니다.

주민 여러분의 따뜻한 이웃이 되겠다더니...
▲ 해군의 자료 <함께 그린 강정마을> 주민 여러분의 따뜻한 이웃이 되겠다더니...
ⓒ 해군 자료집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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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해군은 아직 관련 건물 하나 올려지지 않은 이곳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하겠다고 제주도청에 요청했습니다. 6월 2일이면 결정이 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의 반경 500미터는 '제한보호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펜스 바로 옆의 강정천과 강정초등학교, 그리고 우리 집도 그 안에 들어갑니다. 우리가 사는 곳이 군법으로 다스려지는 지역이 된다면 어떤 상황들을 마주하게 될지 걱정입니다.


태그:#해군기지, #강정마을, #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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