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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레이터라고 통하는 발전기. 발전기 가동시 소음은 꽤나 귀에 거슬린다. 전기 공급이 되어 끄는 순간 찾아오는 평안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 발전기 제너레이터라고 통하는 발전기. 발전기 가동시 소음은 꽤나 귀에 거슬린다. 전기 공급이 되어 끄는 순간 찾아오는 평안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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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웅~웅~'

 
짐바브웨에서 생활한 지 7개월,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냉장고가 가동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전기가 공급되는 것이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하면 정전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냉장고가 침묵하고 있었다.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애꿎은 화장실 전등만 껐다, 켰다를 반복했다.
 
1년의 절반 이상을 짐바브웨에서 생활했으니, 이제 적응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 정전에에는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전기 없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난 대한민국에서 24년을 사는 동안 정전사태를 겪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불야성의 세상에서 살던 나로서는 짐바브웨의 깜깜한 밤이 어색하고 불편하다.
 
짐바브웨에서 '제너레이터'(Generator 발전기)나 '인버터'(Inverter 축전기)는 필수품이다. 가정집뿐만 아니라 사업장들도 제너레이터나 인버터를 설치해 정전에 대비한다. 제너레이터와 인버터는 각각 장단점이 있다. 인버터는 전기가 있을 때 충전해서 사용 할 수 있고 조용하지만, 설치비용이 많이 든다. 반면 제너레이터는 휘발유로 전기를 만들어낸다. 기름값이 많이 들고 시끄러운 소리에 귀가 매우 괴롭다. 한국의 한전에 해당하는 'ZESA'(Zimbabwe Electricity Supply Authority)는 일주일에 3~4회 정도는 제너레이터를 틀 기회(?)를 무조건 준다.
 
불야성에 살던 한국 청년, 짐바브웨에서 앞이 캄캄
 
오래된 나무 전신주는 가끔씩 길가에 쓰러져있기도 한다.
▲ 나무 전신주 오래된 나무 전신주는 가끔씩 길가에 쓰러져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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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기 되게 좋네!'

 
짐바브웨에선 이 말을 금기시한다. 이 말을 하면 전기가 금방 나가버린다는 것이다. 난 이 나라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이런 소리를 했다가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오늘은 전기가 좋네!'라고 속으로 생각하면 그것마저도 어떻게 듣는지, 정전이 되곤 했다. 놀라울 정도로 타이밍을 잘 맞추는 전기의 능력을 보면서 정말 그런 말이 생길 법도 했다.
 
한국에선 전기가 끊기면 난리가 난다. 오죽하면 '정전사태'라고 할까. 그런데 잠바브웨 사람들은 정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짐바브웨에 도착한 일주일 동안은 전기가 손님인 나를 배려했던 것이었는지 정전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콘센트에 핸드폰 충전기와 노트북 전원을 연결해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30분 후에 '전원을 연결하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노트북이 꺼지고 말았다.
 
나에겐 '정전사태'였다. 전기가 공급되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노트북 등의 전기제품은 그저 쇳덩어리들에 불구했다.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전기 전자 문명이 인간을 게으르고 무기력한 동물로 만든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정전은 이렇게 독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그러자 문득 정전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정부관리들 덕에 전기요금 폭탄 맞은 서민들
 
한국과는 다르게 네모난 형태이다.
▲ 시멘트 전신주 한국과는 다르게 네모난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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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에선 'ZESA'가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해 공급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잠비아와 모잠비크 등 인근 국가에서 전기를 수입해 사용한다. 때문에 시내부근 외에는 전기를 자주 끊어버린다. 오죽하면 'ZESA'를 'Zimbabwe Electricity Sometimes Available (짐바브웨 전기는 가끔씩 사용가능)'이라고 칭할까? 그런데 올해 초에 전기 수입이 중단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밀린 전기요금이 1억 달러(1200억 원)를 넘어가자 이웃나라 모잠비크 정부가 전기 공급을 중단한다고 선포한 것이다. 전기요금 체납에 의한 단전인 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짐바브웨 정부가 시장에 있는 돈을 모조리 끌어모으면서 일어난 사태인 것이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갚을 능력을 가진 잠바브웨 정부였지만, 선거를 핑계 대며 민생의 불편함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또한 정부 관리들의 체납도 문제였다. 지방에 많은 농장을 가지고 있는 그들의 전기사용량은 일반 국민들의 몇 배가 됨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 납부를 미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많은 고위관리직의 전기 체납 전기요금 지불문제로 고민하던 ZESA가 내놓은 방안은 그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load-shedding'(전력 평균 분배법)이란 것이다. 즉, 전기 사용 양과는 상관없이 가정 수만큼 나누어 요금을 책정하는 방식이다. 모든 집에는 계량기가 있지만 수시로 체크를 하지 않는다. 가끔씩 와서 한 번 체크해 보고 돈이 밀렸으니 갚으라는 영수증을 던져놓고 갈 뿐이다. 주먹구구식인 전기요금 청구방식으로 인해 한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짐바브웨 사람들은 전기요금 폭탄을 맞게 됐다.
 
"전기나 사용할 수 있게 해주고 이런 요금을 내면 덜 억울하지!"
 
사용하지도 않은 전기요금을 내라고 하니 불평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 달에 30달러 정도 나오던 전기요금이 260달러로 8배 넘게 뛰어버렸으니 '요금폭탄'을 넘어 '요금재앙'이 되어버렸다. 어떤 한인은 "집에 정원사만 세워 놨는데 전기요금이 1500달러나 나왔다"며 황당해 했다. 또한 정전이 거의 없는 시내 쪽은 집 평수가 작고, 가정수가 많아서 정전이 자주 되는 주택보다 요금이 적게 나왔다.
 
짐바브웨 마당을 가꾸고 청소하는 정원사들의 월급은 보통 150달러 정도다. 이들은 월급의 거의 전부를 전기요금으로 내야 할 판이다. 이러한 전기요금이 정전문제 해결을 위한 설비투자에 사용된다면 덜 억울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신문 등을 통해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내야 할 전기요금을 왜 우리가 물어내야 하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아프리카 특유의 권위로 불만 여론을 무시하고 있다.
 
전기가 없을 때의 평화로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계량기가 모두 설치되어 있지만 확인을 오래하지 않아 거미줄이 가득하였다.
▲ 계량기 계량기가 모두 설치되어 있지만 확인을 오래하지 않아 거미줄이 가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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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중순이었다. 차량이 많이 다니는 도로 주변에 전광판이 세워졌다. 그것을 본 대다수 사람들은 "짐바브웨에도 전광판이!"라며 신기해 하면서도 "전기가 이렇게 불안정한데 무슨 전광판이냐!"며 불평을 터트렸다. 주변에는 전광판을 지키는 경비원이 배치됐는데 24시간을 지키려는지 텐트와 함께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발전기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일주일, 아니 거의 한 달째 정전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것은 전광판이 설치된 이후부터였다. 전광판이 설치된 전기 라인이 내가 머무는 목사님 동네까지 연결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전기 사정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불안했다.
 
지금은 어떠냐고? 낮과 밤 상관할 것 없이 전광판이 반짝반짝 거린다. 가끔씩 현대자동차 광고도 눈에 띈다. 한국 광고를 그대로 가져왔는지 한글도 보인다. 하지만 우리 동네 전기사정은 원래대로 돌아갔다. 전광판이 설치된 한 달 동안은 전기 공급이 놀라울 정도였는데 또 다시 툭하면 정전이다. 짐바브웨의 전기 라인은 가끔씩 바뀌는데 전광판 라인이 목사님 댁을 비켜간 것 같다.
 
정전이 너무 자주 일어날 때였다. 정전이 된 가운데 저녁이 되자 집은 어둠에 휩싸였다. "오늘도 또 전기가 나갔구나!"라며 불평을 늘어놓다가 짐바브웨 현지인 친구에게 "짐바브웨의 전기는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냐?"라며 원성을 터트리자 친구는 이렇게 간단히 답변했다.
 
"여기는 짐바브웨잖아."
 
그렇다 여기는 짐바브웨인 것이다. 장난삼아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라고 말하는 짐바브웨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는데 너무 나의 잣대만으로 짐바브웨를 평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수도 하라레는 전기 상황이 좋단다. 시골은 아예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곳이 많다고 한다. 전기가 없다고 해서 살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주어지는 상황에 적응하며 살다보니 이런 생활도 나쁘지 않다. 특히 발전기가 돌다가 전기가 들어올 때의 희열과 발전기를 껐을 때의 평화로움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지금도 전기의 고마움을 새기면서 내일을 기대해본다.
 
'내일은 전기가 들어올까?'


태그:#짐바브웨, #전기, #여행기, #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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