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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서정가'의 주인공 다쓰에 역의 신예운. 애인과 과거를 회상하는 모노드라마를 담담하고 차분하지만 촘촘하게 그려내었다.
 연극 '서정가'의 주인공 다쓰에 역의 신예운. 애인과 과거를 회상하는 모노드라마를 담담하고 차분하지만 촘촘하게 그려내었다.
ⓒ 문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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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으로도 유명한 일본의 대문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서정가(抒情歌)>를 한국 최초로 무대화한 연극 <서정가>(홍현석 연출)가 지난 2일부터 20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공연중이다.

이번 연극은 극단 '이야기'의 창단 공연으로 국내 패션 큐레이터 1호인 김홍기가 연극 시작 전 연극의 배경인 1930년대 일본 여인들의 근대 패션과 무대에 대해 자세하고 재미있게 설명하여 연극 관람을 한껏 도와주고 있었다.

연극 <서정가(抒情歌)>는 주인공 다쓰에가 죽은 애인을 기억하며 서술하고 독백하는 내용이다. 모노드라마로 누구나 가지고 있을 과거의 기억, 추억, 그 아픔과 애잔함을 1인칭 시점으로 시점의 변화없이 잔잔한 톤으로 풀어낸다.

따라서 이 연극에는 극적 순간이나 내용상의 반전이 없었다. 시종일관 이어지는 독백 속에 우리는 주인공 다쓰에의 과거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사건의 서술보다는 그것에 반응하는 주인공의 내면의 변화와 그 미묘한 떨림 등에 초점을 맞추고 그저 느끼면 되는 것이다.

연극 '서정가'는 공연 시작부에 도슨트를 맡은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가 일본 의복에 대한 설명으로 연극의 이해를 돕는다.
 연극 '서정가'는 공연 시작부에 도슨트를 맡은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가 일본 의복에 대한 설명으로 연극의 이해를 돕는다.
ⓒ 문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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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히 붉은 배경의 무대 속에 오른쪽 앞에는 매화가 꽂힌 화병과 거울, 왼쪽 뒤에는 단아한 의자가 놓여 있다. 가운데 뒤쪽에는 검은 상복이 마치 죽은 애인처럼 놓여 있다. 다쓰에의 애인은 그녀를 속이고 다른 여자와 결혼했지만 사고로 죽었다. 다쓰에는 죽은 애인이 눈앞의 매화나무를 죽은 애인이 환생한 것이라 믿으며 계속 독백하는 것이다. 죽은 애인을 향해 독백한다.

이 극의 시간과 공간은 왠지 여백의 미가 가득하면서도 사실은 촘촘하다. 다쓰에의 어린시절, 가투놀이, 종교와 신화, 어머니와의 추억, 애인에 대한 감정 등이 붉은 매화향이 피어오를 듯이 촘촘히 짜여진 시간과 공간 안에서 밀도 있게 이어진다. 관객은 그 사이를 벗어날 수 없이 빨려들어가며 다쓰에의 가녀린 감성 속에 젖어들 수밖에 없다.

주연을 맡은 신예운은 모노드라마의 불편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다쓰에로서 애인에 대한 미묘한 감정을 중심으로 이 일본문학의 느낌을 잘 살려내고 있었다. 차분하고 가녀린 목소리는 관객을 집중하게 만들었으며, 격앙되지 않고 일관된 어조와 시선처리는 다쓰에가 과거와 애인을 바라보는 그 관점 자체를 드러내주고 있었다.

혼자서 연극 무대를 한 시간이 넘게 채운다는 것은 보통 에너지를 요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도 담담하고 잔잔한 어조로 과거의 기억을 풀어내는 내면연기는 절제력과 일관성을 요하기 때문에 더욱 힘들다. 하지만 신예운은 끈질긴 극복성을 가지고 무대를 압도하고 있었다.

연극 '서정가'중. 주인공 다쓰에(신예운 분)가 붉은 매화가 수놓인 무대 안에서 담감하게 과거를 회상한다.
 연극 '서정가'중. 주인공 다쓰에(신예운 분)가 붉은 매화가 수놓인 무대 안에서 담감하게 과거를 회상한다.
ⓒ 문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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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번 연극의 일등공신인 김홍기는 이번 연극에 "패션이란 관점을 어떻게 하면 삽입할 수 있을까 노력을 했다. 주인공 다쓰에의 기억이 떠올리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한 벌의 옷이 메타포로 들어간다"며 일본 대문호의 작품을 패션과 결합한 새로운 시도의 이번 공연의 취지를 밝혔다.

음악과 무용, 미디어와 공학의 결합 등 융합장르가 성행하는 요사이 공연계에 '의복'이라는 장르로 일본문학을 자연스럽게 국내에 소개하는 이번 '서정가'의 시도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융합의 한 방법이 아닌가 한다. 연극 전 20분가량의 일본 근대 패션에 대한 김홍기의 강의를 듣는 사이 단지 일본의 1930년대 패션뿐 아니라 '패션' 자체에 대하여 빠져들게 되며 '의복'이 문화를 대표한다는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된다.

극단 이야기의 창단공연 <서정가>는 5월 2일부터 5월 20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공연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KNS서울뉴스(http://www.knsseoulnews.com)에도 함께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기사에 한하여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연극 서정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김홍기, #홍현석, #신예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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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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