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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도시환경 정비를 명목으로 상계동 재개발에 들어갔다.  사진은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부천시청 모습.
 ▲ 정부는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도시환경 정비를 명목으로 상계동 재개발에 들어갔다. 사진은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부천시청 모습.
ⓒ 영화 <상계동 올림픽>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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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자신의 미래가 다가오는 날이 있다. 나에게는 중학교 1학년이 되던 어느 봄날이 그랬다.

학교 CA(클럽활동)로 선택한 시사토론반 첫 수업 시간. 선생님이 보여준 두 신문 기사는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둘 다 88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시점에 발행된 것인데 하나는 올림픽 축제가 얼마나 성대하게 열리고 있고, 누가 어떤 기록을 달성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반면, 다소 낯선 어떤 신문에서는 올림픽 기간에 한국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멀쩡히 수십 년 간 살고 있던 달동네(상계동) 주민들을 아무런 이주 대책 없이 내쫓고 이에 항의하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다루는 정부의 모습을 폭로하고 있었다.

내쫓기는 사람들, 침묵하는 언론

나는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나라가 당시 TV에서 귀에 박히도록 끊임없이 흘러나오던 정수라의 노래 <아! 대한민국>의 가사와 같이 아름다운 나라인 줄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세계를 보게 되자 나를 지배해 왔던 거대한 하나의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러면서 그 즈음 나는 '진짜'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저널리스트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는 대학에 입학했다. 88년 그 무렵처럼 거리로 내쫓긴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대책 없는 수입개방으로 농토를 엎고 아스팔트로 나선 농민들, 기업의 이윤을 위해 구조조정 당한 노동자들, 그리고 여전한 철거민들까지...

그리고 여전히 많은 언론들은 거리의 아우성을 외면하고 있었다. 혹은 가난한 몸부림을 폭도의 그것으로 매도하거나.

2007년, 비정규직을 지켜 주지 않는 비정규직'보호'법 때문에 일터에서 내쫓긴 후 투쟁에 나서 그 해 여름 이슈가 됐던 이랜드 산하 '홈에버' 노동자들은 대개 40대 이상의 아주머니들이 많았다. 한 분의 발언이 아직도 기억난다.

면목동 홈에버 시위현장에서
▲ 비정규직 문제, 바로 당신의 문제입니다 면목동 홈에버 시위현장에서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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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를 만들고 투쟁하기 전에는 OO일보 반대한다고 보지말자는 대학생들이 이해가 안 갔어. 근데, 내가 억울하게 짤리고 나서 이렇게 힘없는 사람들이 하소연 할 데가 없어서 싸우는데, 우리를 그 신문에서 욕하거 보면서 인제야 왜 OO일보가 문제라는 건지 알겠더라고. 공짜로 주는 신문이 두껍기만 하니 보지는 말고 깔고 앉는데 써야겠어."

이후 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지금의 언론들을 바라보면 내 선택에 회의가 든다. 'MB씨의 방송'을 위한 '김비서(KBS)'가 오늘날 우리 언론의 현실이다. 4대강 사업, 한미FTA 집중 홍보, 권력 비리 눈감기 등 정권을 위한 방송으로 언론이 사유화되고 있다. 곡필 언론들은 정치·경제 권력의 이해를 마치 국민 전체의 이익인 듯 포장하면서 국민 다수의 이해와 맞물린 생존 투쟁들을 공격하고 있다.

공정보도를 요구하다 해고당한 언론인이 현 정권 들어 현재까지 15명이고, 보복성 인사이동까지 포함하면 징계 받은 언론노동자는 460여 명에 달한다. 1980년 신군부의 언론 탄압 이후 최대의 학살이 진행 중이다. 카메라 앞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카메라 뒤의 양심적 언론인들도 거리로 내쫓기고 있는 것이다. '별 일 없이 즐거운 세상'과 '별별 일들 다 있는 난감한 세상'의 같은 시대 서로 다른 두 장면이 1980년대를 넘어 2010년대에도 재현되고 있었다.

내쫓기는 언론인들

나는 지난 4월 말, MBC 사측이 파업으로 인한 손실을 메우려고 전문성과 독립성이 확보돼야 할 기자, 피디를 불안한 신분의 계약직으로 30여 명이나 채용하려는 당황스러운 시도에 맞서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입사거부' 선언을 조직했다(기사 보기). 조직적 지원 없이 혼자 준비했고 짧은 기간에 진행됐음에도 200명이 넘는 예비 언론인들이 호응해줬다(자세한 내용 보기). 이런 움직임이 있는 줄 몰라서 동참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뒤늦게 연락을 주기도 했다.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그의 자서전 제목을 통해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파국으로 내달리는 기차 위에 가만히 서서 '나는 중립'이라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결국 그 파국을 용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침묵은 폭력만큼 위험하다.

나는 진짜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 허울만 남은 언론사가 아니라 진짜가 내동댕이쳐져 있는 거리를 택하려 한다. 거대한 권력과 거기 맞서는 돌멩이 하나가 있다면 부딪쳐서 깨지는 돌멩이가 정의였음을 역사는 말하고 있다.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부끄러웠던 때가 있었다. '제4부'라고 으스대며 안정된 밥줄을 꿰차고 있으면서 '없는 사람들' 이야기엔 관심도 없는 그냥 '직장인'인 선배 언론인들을 보면서 그랬다. 하지만, 30억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 소송 청구 등 광폭한 목 조이기에도 굴하지 않고 100일 째(5월 8일 기준) 파업을 이어가는 MBC노동조합 등 파업에 나선 언론인들을 보면서 다시 '진짜' 언론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됐다.

MB정부 하에서 해직된 언론인들이 언론탄압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합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MB정부 하에서 해직된 언론인들이 언론탄압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합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MBC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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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잔치는 신생아가 사망 염려 없이 충분히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됐음을 기념하는 자리다. 공정언론을 위한 방송국들의 연대 파업도 백일을 넘기며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저널리스트를 준비하는 이들 중 많은 수가 국민과 함께, 파업하는 선배들의 옆자리 가까운 곳에 늘 지키고 있음을 전하고 싶다.

'가짜'만 남은 TV가 아닌 '진짜'가 꿈틀대는 거리에서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이 울려나온다.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 거짓 민주 자유의 구호가 넘쳐흐르는 이 땅 / 고단한 민중의 역사 / 허리 잘려 찢겨진 상처로 아직도 우는데 / 군림하는 자들의 배 부른 노래와 피의 채찍 아래 / 마른 무릎을 꺾고 / 우린 너무도 질기게 참고 살아왔지 / 우린 너무 오래 참고 살아왔어 / 아, 대한민국, 아, 저들의 공화국... / 아,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


태그:#MBC파업, #저널리즘, #입사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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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혁'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며 노래 만들고 글을 쓰고 지구를 살리는 중 입니다. 통영에서 나고 서울에서 허둥지둥하다가 얼마 전부터 제주도에서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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