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같이 운동하지는 않았지만 힘들 때마다 격려해주던 형님들
▲ 나를 도와준 공중보건의 형님들 같이 운동하지는 않았지만 힘들 때마다 격려해주던 형님들
ⓒ 최성규

관련사진보기


전남 고흥군 나로도에서 한방공중보건의(공보의) 2년차 시절을 보내던 2011년의 어느 날. 치과·의과 공중보건의 형님들과 점심 식사를 했다. 아직은 배고픈 20대. 밥을 위장으로 퍼 담는다 싶을 정도의 빠른 속도전 이후 식후한정(食後閑情, 식사 후의 한가로운 정취)을 즐기고 있었다.

"성규야, 니 이거 봤나?"
"뭔데요? 그게."

의과 형님이 한 손에 쥔 물건은 남성건강잡지였다. 잡지사에서 주최하는 모델선발대회가 있는데 자기 동문 후배가 출전했다는 것이다. 본선 26인에 뽑혔다고 하니 그 노력이 대단했다. 그런데 진출자들을 찬찬히 훑어보던 중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최종결과 '2위'라는 글자 아래에 있는 저 얼굴! 앗, 저것은 내 대학교 후배님의 얼굴이 아닌가?

키도 크고 남자답긴 했으나 평소 말수가 적고 진중한 성격이라 이런 대회에 나올 줄은 몰랐다. 알고 봤더니 TV 맞선 프로그램에 나와 남녀 미팅 자리에서 자기 PR을 하는 등 사람들 앞에 서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니도 한번 나가봐라. 후배도 하는데."

무심코 던진 말이 당장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튿날이 지나고 그 말을 상기해 보았다. 이런 건 혼자 고민해서는 안 된다. 당사자와 연락해보는 것이 최선일지도.

물어 물어 후배의 연락처를 얻었다. '여보세요'라는 걸쭉한 음성이 핸드폰 너머로 울려나왔다. 학생회를 했던 내 전력이 있는지라 그 친구는 나를 알고 있었다. 밥 한번 같이 먹지 않았지만 서로 서로 존재는 느끼고 있었다.

내면에 있는 고민을 밝혔다. 그 대회는 어떠하며, 왜 나갔으며, 무엇을 얻었는지 말이다. 또한 대회 출전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 상태라고. 후배의 말은 그 남성잡지에서 주최하는 모델 선발대회는 서류전형과 면접을 거쳐 본선 26인을 선발하며, 뽑힌 사람들이 8~10주간 훈련을 하여 수많은 관객이 참여하는 본선 대회에서 기량을 겨룬다는 것이다.

후배는 '다들 참 열심히 사는구나' 느낀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 했다. 마지막으로 남자의 호승심(好勝心)을 불러일으키는 한마디까지.

"한의사가 1등 한번 해야죠."

'몸짱'이 되기 위해... 헬스장 찾아 매일같이 왕복 4시간

두세 달 동안 나의 주 식량이 되어주었던 닭고기. 상추에 싸서 먹으니 참고 먹을 만했다.
▲ 나와 함께 했던 동지 두세 달 동안 나의 주 식량이 되어주었던 닭고기. 상추에 싸서 먹으니 참고 먹을 만했다.
ⓒ 최성규

관련사진보기


여태껏 혼자 운동을 하다 보니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에 큰 갈증이 있었다. 목표를 정해놓으면 좋든 싫든 운동 시스템을 익히게 될 것이었다. 그래. 공보의 때 추억 하나 만들어보자. 이때가 1월이었다.

3월에 대회 공지가 올라오면 4월 중순까지는 참가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2~3개월 안에 몸을 만들어야 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나 자신에 대한 파악부터. 헬스클럽에서 코칭을 받은 경험이 있는가? 없다. 윗몸 일으키기나 팔굽혀 펴기에 대한 조언이야 들은 적 있지만 기구 운동은 젬병이었다. 가지고 있는 운동기구는? 줄넘기 하나. 가장 가까운 헬스클럽은? 나로도에는 없고 고흥 읍내까지 나가야 한다.

그야말로 무(無)에서의 시작이었다. 대회 출전계획을 들은 옆 방 공보의 형님들이 운동기구를 빌려주었다. 방에서 굴러다니던 아령 두 개였다.

"성규야. 나 안 쓰니까 너 가져가라."

뭐,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다. 책도 하나 샀다. 한 유명 트레이너가 쓴 책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입문용이었다. 고흥 읍내에 있는 헬스장에도 가입했다. 헬스장만 이용하려 했으나 사우나 이용과 묶여 있어서 가격이 비쌌다. 아쉬운 사람 입장에서 독점의 폐해를 몸으로 고스란히 받았다.

버스 시간표를 알아보았다. 나로도에서 고흥읍까지 오후 5시와 6시 20분에 버스가 있었다. 소요시간은 40분. 터미널에서 헬스장까지 걸어가고 운동 준비하는 시간까지 따지면 결국 1시간은 잡아야 했다. 읍내에서 나로도로 들어오는 버스는 직행이 7시 10분이 막차였고, 완행은 8시가 마지막이었다. 직행은 40분이었지만 완행은 1시간이 걸린다.

내게 선택의 여지는 없어보였다. 오후 5시에 버스를 타고 나가서 6시부터 운동을 시작하면 2시간도 채 못 되어서 8시 버스를 타야 했다. 보건지소로 들어오면 9시가 된다. 친구들은 운동을 하는 건지 버스를 타는 건지 모르겠다며 놀렸다. 서울로 따지면 강남에서 일산까지 갔다 오는 셈이고, 순천에서는 광주까지 날마다 왕복하는 격이었다. 왕복 8000원의 교통비.

"바나나는 열 개를 먹어도 배가 안 부르네요"

반가운 먹거리를 주셨지만 운동 기간 중이라 먹을 수가 없었다.
▲ 간식을 가져다 주신 한섭방 할머니 반가운 먹거리를 주셨지만 운동 기간 중이라 먹을 수가 없었다.
ⓒ 최성규

관련사진보기

힘겹게 찾아간 헬스장엔 코치가 없었다. 오래 다닌 아저씨들이 지나가다 한마디 던져주는 것이 전부였다. 심지어 잘못된 호흡법을 당당하게 가르쳐주는 사람도 있었다. 심각한 문제였다. 트레이너는 나에게 절실했다.

주말에 순천 집에 오자마자 헬스장을 찾았다. 이것저것 알아본 중에 아무개 헬스클럽이 가장 활기가 넘쳐보였다. 이번에도 솔직히 목적을 밝혔다. 그저 운동한다고 얼버무리면 그만큼 강습의 수준과 열의도 낮아질 테니.

초짜 중의 초짜인 만큼 분할 프로그램은 아직 멀었고 무분할로 전신을 골고루 단련해야 했다. 나를 담당한 최순호 코치의 강습은 항상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라는 말로 점철되었다. 근육의 기력을 모두 소진시킨 상태에서 마지막 한 번의 반복이 근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몸은 '어쩌라고!'라는 비명을 토해냈다.

스쿼트(Squat), 런지(Lunge), 벤치프레스(Bench Press), 데드리프트(Dead lift), 렛 풀 다운(Lat Pull down), 사이드 라테랄 레이즈(Side lateral raise) 등의 자세와 운동법을 혹독하게 배웠다. 맘씨 좋은 헬스장 사장님은 일주일에 한두 번 올 녀석한테 돈 받기도 애매하다며 강습비만 달라고 했다.

운동만큼 중요한 식단도 나름 꾸며보았다. 고구마, 바나나, 현미밥, 미니 토마토, 브로콜리 삶은 것, 닭가슴살. 최 코치님이 식단 대로 먹으니 배고프지 않냐고 물었다.

"아뇨. 아직은 그런 대로 괜찮은데요."

뭔가 풀리지 않는 의문을 두 눈동자에 간직한 채로 코치님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근데 바나나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안 부르네요."
"바나나를 얼마나 먹었는데요?"
"그니까 몇 개더라. 저번에 운동 끝나고 10개 먹었는데."

코치는 뭐라 말은 못하고 기가 차다는 표정만 지었다. 그리고 한 마디만을 던졌다.

"한두 개만 먹는 겁니다."
"그래요? 저 고구마도 한 끼에 6~7개씩 먹는데요."
"……!"

식단에 중대한 변화가 필요했다. 더불어 주 식량인 고구마에 대한 수급도 신경써야 했다. 마트에 가면 고구마 값이 너무 비쌌던 것이다. 인터넷 쇼핑사이트에서 시중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주문을 하고 내심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배달된 상자 속 고구마는 절반이 썩어 있었다. 기껏 같은 가격으로 구입하려 발품을 판 셈이다. 닭고기도 국산은 너무 비쌌다. 브라질산 훈제 닭고기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연예인 닉쿤은 몸을 만들면서 스테이크를 먹었다는데, 그 정도 사치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2차 장기자랑 심사를 위해 '쌍절곤' 수련까지

그날의 치열함을 말해주는 손때 묻은 쌍절곤들
 그날의 치열함을 말해주는 손때 묻은 쌍절곤들
ⓒ 최성규

관련사진보기


우여곡절 끝에 운동 스케줄이 정립되었다. 평일에는 읍내에서 자체 운동. 주말에는 순천에서 강습. 근육 형성에 방해가 될까봐 술도 먹지 않았다. 한의사 학회 모임은 선배들이 음주를 강권할까봐 가지 않았으며, 기름진 음식을 먹을까봐 보건소 회식에 빠졌고 친구와의 약속도 잡지 않았다. 겉으로는 엉성해 보일지 몰라도 나름 인고의 시간이었다.

그러다 서류전형 합격 이후의 2차 면접이 걱정되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지만 김칫국도 어떻게 마실지 짚어봐야 되지 않겠나. 선 경험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3명이 함께 심사위원 앞에서 자기 소개를 하고 장기를 선보인다고 했다. 참고로 학생 시절 밴드를 했던 그 후배님은 베이스를 치면서 노래를 했다. 베이스 앰프까지 챙겨간 성의가 높은 점수를 받았을 것이다.

1차는 어찌어찌 합격을 해도 2차 때 장기가 없으면 어떡할 것인가? 가무를 보일 것인가? 노래는 안 되고 몸도 뻣뻣하고. 개그를 칠 수도 없고. 혼자만의 고민이 깊어졌다. 예전 대회 동영상을 보았다. 도전자들이 장기자랑을 하고 있었다. 화면이 바뀌면서 쌍절곤을 휘두르는 모습이 비쳤다. 아, 저거다. 이번 기회에 쌍절곤도 익히면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임도 보고 뽕도 따는 격이렸다.

그런데 당장 쌍절곤을 어디서 배울지 암담했다. 내가 어렸을 때 다닌 태권도장에서는 쌍절곤을 안 가르쳐 주던데. 아마 합기도는 무기술을 가르쳐주니까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기하게도 집 뒤에 합기도장이 있었다. 그 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 뜻이 있는 곳에는 길이 있는 법이다. 극진가라데의 창시자인 바람의 파이터 최영의 사범님은 '최고의 도장이 어디입니까?'라는 아들의 질문에 '너랑 가장 가까운 도장'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분 말을 믿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OO합기도장이죠?"
"네. 누구신데요?"
"네. 쌍절곤을 배우고 싶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쌍절곤이요?"
"네. 배울 수 있나요?"

한번 와보라는 대답이었다. 이렇게 만나게 된 최명석 합기도 관장님. 친해지고 나서야 관장님은 그때 심정을 털어놓았다. 다짜고짜 쌍절곤만 배우겠다는 놈이 어떤 낯짝을 가졌는지 궁금했다고 한다. 이상한 놈이면 바로 쫓아내려 했다면서. 다행히 이상하게 생기진 않은 모양이다.

죄송하지만 장기자랑을 위해서라고 솔직히 밝혔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강습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한 일이다. 준비 자세, 좌우 올려치기, 상하 흔들기, 상하 돌려치기, 팔자 돌리기 정 역, 삼각 치기, 다리 치기, 물레 돌리기, 정면 치기, 수평 교차잡기, 한 손 쌍절곤, 두 손 쌍절곤. 모든 동작을 한 번에 이은 장기자랑용 연무까지.

삼각치기 변형 동작을 하다가 정강이에 맞기도 하고, 상하 돌려치기를 하다 팔꿈치 안쪽 척골신경을 때려서 찌잉하는 극심한 통증을 느끼기도 했다. 얇은 옷을 입고 상하치기를 하다 겨드랑이에 피멍이 들기도 했다. 연습 장소도 마땅치가 않았다. 절(截)의 특성상 행동반경이 넓어서 실내에서는 자칫하면 기물을 파손하기 십상이었다. 보건지소 앞 마당에서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손목 감아 돌리기를 하다 보면 몇 분마다 시린 손을 부여잡아야 했다.

'주진야단' 3개월간의 고군분투... 그 결과는?

멋진 사진을 찍으려면 태닝을 해야 한다는 말에 부랴부랴 오일을 바르고 이 고양이처럼 돗자리 위에 누워 있었다. 옆방 형님들은 '참 가지 가지 한다'라는 말과 함께 혀를 끌끌 찼다.
▲ 고양이는 썬탠 중 멋진 사진을 찍으려면 태닝을 해야 한다는 말에 부랴부랴 오일을 바르고 이 고양이처럼 돗자리 위에 누워 있었다. 옆방 형님들은 '참 가지 가지 한다'라는 말과 함께 혀를 끌끌 찼다.
ⓒ 최성규

관련사진보기


3월 2일 드디어 모델선발대회 공지가 떴다. 4월 중순까지 접수를 하라는 것이다. 최대한 서류를 늦게 내고 몸을 만들기로 했다. 그즈음 대회 준비에 가장 큰 지장이 생겼다.

바벨 스쿼트(Barbell Squat)를 강습받던 중이었다. 최 코치는 바벨의 중량을 1세트마다 10kg씩 올리며 한계를 시험했고, 평소 약하던 허리 근육이 그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삐끗했다. 1주일이 지나도 염좌는 쉽사리 낫지 않았다. 2주가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요부 통증으로 복부 크런치(Crunch)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그나마 가능한 운동 위주로 훈련했다. 벤치 프레스(Bench Press), 프리쳐 컬(Preacher Curl), 트라이셉스 프레스 다운(Triceps press down) 등, 상체를 이용한 운동만 해야 했다.

몸에 아픔을 간직한 채 시간은 흘러갔다. 서류 접수 마지막 날. 제출서류에 전신 사진을 첨부해야 했다. 특히 상체 탈의 사진. 이런 근육 사진은 전문 스튜디오에서 찍어야 한다. 지방에서는 그런 곳이 흔치 않았다. 그걸 미처 몰랐던 나는 동네 사진관 중 그나마 나은 곳을 골랐다. 나름 비싼 가격을 주었다.

헬스장에 가서 사진을 보여줬다. 관장님은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배에다 조명을 강하게 넣어버리면 없는 근육이 더 없어 보이잖아. 복근에 그림자가 하나도 없네. 민숭민숭해 가지고"

그래서일까. 다음 주 1차 합격자 발표에서 내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면접 때 쓸 장기자랑도 필요가 없어졌다. 시원섭섭한 마음이었다. 3개월 동안의 고군분투였다. 주진야단(晝診夜鍛, 낮에는 진료하고 밤에는 단련함)의 시간들. 9시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노곤한 잠에 빠졌다. 특히 주말은 강습 때문에 순천까지 멀리 가는 게 부담이었다.

막판에는 요통으로 고생했다. 본선을 진출했더라도 그 상태로는 고통의 연장일 수도 있었다. 결과는 없지만 몸은 남았다. 이번 대회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운동하는 법을 몰랐을 것이다. 언제 수첩에다 빼곡히 기록하며 운동계획을 세워보겠는가? 이번 대회가 아니었다면 평생 쌍절곤을 휘두를 일은 없었을 게다. 그저 이소룡의 전유물이라 생각했겠지. 생면부지의 체육관 관장님들과 또 언제 친해지겠는가?

불합격 소식을 듣자 그동안 먹고 싶었던 기름진 음식이 간절했다. 지방도 삼대 영양소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몸으로 뼈저리게 느끼던 중이었다.

"형들. 오늘은 진짜 진짜 맛난 거 먹읍시다."
"그래. 니 먹고 싶은 거 시키라."

그동안 마음으로 응원해준 공보의 형님들과 탕수육을 시켜먹었다. 한 입 베어 물자 돼지고기의 육즙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와 오장육부를 적셔주었다. 그리고 끝이었다. 조금 더 먹자 고소함보다는 느끼함이 몸 안 가득 퍼지며 입맛을 질리게 했다. 지난 몇 개월의 인고를 통해 다져진 고기에 대한 열망이 이리 허무하게 흩어지다니. 공중보건의 배치 전 훈련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단 것이 무지 땡기던 훈련소 기간. 나가기만 하면 모든 초코파이를 동 내리라. 훈련소 출소 후 맛본 OO파이는 그저 달기만 할 뿐 아무 감흥도 없었다.

초짜의 도전은 이렇게 끝이 났고, 인생은 혓바닥의 장난과 같음을 알게 되었다. 기실 아무것도 아님을. 그렇게 바라고 원해도 알고 보면 별 거 아니다. 이 모두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적어놓을 뿐이다.


태그:#공중보건의, #헬스, #모델선발대회, #닭고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